*2011년 8월 24일(수)-도리의 한국출생신고와감기. 아리의 놀이본능과 ‘아주마니’ 845.
24도~22도. Clear. 나중엔 Cloud 로 바뀌었고 비가 내리기도 했다. 아리를 US(University Settlement)의 여름캠프에 데려다 주고, 역시 30분 정도 할머니가 함께 놀아주었다. 아리의 발동걸기를 위한 워밍업인 셈이다. 항상 아리는 할머니가 시작을 해줘가며 유도해야 몸도 마음도 풀린다. 오늘도 아리는 바스킷 볼로 시작, 2번 골인! 사실 할머니는 뛰고 달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아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오, 내 사랑 아리! 아리가 적응을 시작한 후,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도리랑 함께 시청으로 갔다. 모처럼의 데이트를 즐길 겸. 마침 시청광장에 차려진 젝 레이튼의 추모장, 광장바닥과 벽, 기둥 등에 써진 추모사들을 돌아보면서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했다. 외부에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뉴스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던 터이기도 하고, 또 잭 레이턴의 중국계 부인 올리비아 챠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 호감을 가지고 있던 터이다. 추모광장을 둘러보는데 비가 쏟아졌다. 잿빛으로 내려앉았던 하늘이 내렸다 개였다를 몇 번 반복하더니 오후부턴 개었다. 그런 속에서 시청 광장 한 켠에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올개닉 농산품 시장도 돌아보았다.
아리는 저보다 훨씬 키고 크고 나이도 많은 여자아이와의 놀이를 성공시켰다!
시청의 1층 로비에 있는 못 그림도 다시 감상하고, 카페에 들려 샌드위치를 먹으며 잠시 쉬고, 도서관으로 가서 책 2권을 반환하고, 새로 책과 디비디와 음악 씨디를 빌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돌아왔다. 얼마 전에 엄마가 신청한 도리의 한국 출생신고가 8월 24일로 완료되었다는 메일이 관악구청 담당 직원 김선영씨로부터 왔다. 이제 우리 ‘도리’도 한국의 딸로 정식 입적되었다.
오후 5시 20분, 아리 픽업. 정말 아리의 놀이본능과 익사이팅을 말릴 수가 없다. 여전히 더 놀자고 떼를 쓰고, 간식으로 가져간 핫케익을 먹지도 않았다. 아침에 엄마가 싸준 스넥은 먹었는데 캠프에서 나눠준 간식 핫도그는 먹지 않고 스넥 통에 담아놨다. 오늘은 놀이 상대가 돼 줄 제 또래의 아이들도 없었는데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놀자고만 해서 핫케익을 먹는 조건으로 잠시 놀아주겠다고 했더니 겨우 반쪽 먹었다.
처음엔 모두들 어린아리에게 뜨악했지만 이내 놀이친구가 되어 함께 논다. 힘으로나 달리기로나 항상 아리가 뒤지지만 아리는 괘념치 않고 열심히 합류한다. 아니 달리기에선 가끔 앞지르기도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낙오되지 않으려고 하는 아리를 보면 때로 안쓰럽다!
모래판에서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체격도 큰 여자아이 곁에서 놀이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가는 대로 따라다니며 근근이 논다. 그네로 가서 한 바탕, 다시 모래판으로. ··· 그랑쥐 파크의 놀이공원은 데이케어와 유치원이 있는 놀이터와 다르다. 모두가 낯선 아이들이고, 제 또래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러나 아리는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 그저 누구하고나 놀기만 하면 된다. 하다못해 할머니라도 놀아주면 된다. 노는 일에 이토록 열성인 아이가 아리말고 또 있을까. 정말 못 말리는 우리 아리! 할머니가 기르면서 조장한 일이지만 그래서 할머니가 더 힘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 바랄뿐! 그게 할머니 마음이다.
다시 그네로 가서 놀다가 그 여자아이가 자기 엄마랑 그네타기를 멈추고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 또 끼어들었다. 그 여자아이의 엄마가 뭔가를 물어보고 아리는 대답하고··· 멀찍이서 자세히 눈여겨 살펴보면 사람 낯을 가리는 아리가 놀이터에서 나이불문, 피부색깔 불문, 남녀불문으로 이 아이들, 저 아이들에게 끼어들며 놀자고 하거나 같이 끼어들어 노는 것을 보면 사회성은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만날 땐 수줍어 하면서 놀이터에서만은 다르다. 이상타!
“아리! Let‘s Go! 아리!” 한참을 놀고 난 뒤에 할머니가 가자고 소리쳤더니, 아리도 그 친구들과의 대화가 시들했는지 할머니에게로 왔다. 와서도 더 놀자고 한다. 못 말려!
일본아이 '라키'를 만났다. 처음엔 그애의 강아지때문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근접하기엔 겁이 많은 아리다.
잔디밭에서 첫날 만났던, 볼을 페인트모션을 잘 하던, 11살 이상이 되어 보이는 그 남자 아이를 또 만났다. 일본아이였다. 어제 대강당에서도 볼을 가지고 놀다가 만났고, 오늘 두 번 째로 만났는데 서로 알아보고 반가워했었다. 이름을 물었더니 ‘락키’라고 했다. 그냥 갈 리가 없는 아리, 또 엉겼다. 할머니 역시 더 말릴 수가 없어 잠시 놀게 했다. 락키가 아리를 많이 봐주며 놀았다. k와는 다르다. 여기서 만나는 k 또래의 아이들 혹은 아리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k 보다 어린 아이들도 처음보는 아리를 이내 받아들이고 같이 어울린다. 또 지금 락키처럼 아리가 어리다싶으면 동생처럼 양보도 해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눈에 띈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모두 서로 배려해주고 같이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아이들의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경쟁, 남보다 출세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남을 짓밟거나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물리치려고하는 자세가 다르다. 물론 한국아이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다고 하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하이 도기!' 아리가 먼저 강아지와 말문을 텄다.
작년에 지우누나(10세)도 엄마랑 함께 한국에 갔다가 일 년을 겨우 채우고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잖은가. 그 이유가 여기 문화에 익숙한 지우가 한국에 가서 학교에 다니는데, 그곳 아이들의 놀이방법이 달라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로 인하여 틱 장애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의 유연하고 평화적인 태도와는 달리 한국아이들은 첫 마디가 ‘너, 이걸 할 줄 알아? 난 할 줄 아는데...’ ‘너 이거 해봤어? 난 해봤는데...’ ‘너, 공부 몇 등이야?’ 하는 식이더란다. 여기 아이들의 질문은 다르다. ‘내 이름은 마이클인데, 넌 이름이 뭐야?’하고는 이름을 알려주면 곧바로 이름을 부르며 ‘우리 같이 놀자!’ 하고 놀이로 들어가고, 놀이에서 상대가 잘 하면 거침없이 ‘오케이, 유 윈!’ 하며 인정해주고 칭찬한다. 그런 경우 한국아이들은 눈을 흘기며 샘부터 부리고, 삐진다. 어떻게든 상대보다 내가 우월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낸다. k로부터도 그런 사실을 확인했다. 확실히 다르다. 이 세상은 나 혼자 훌륭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가는 것이 훌륭해져야 하는 것임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지금처럼 자란 한국아이들이 주역이 되는 다음세대에서 과연 평화롭고 정당한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일등, 혹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 혹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사람’은 될지언정 ‘존경받는 인격자’, ‘인류를 위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나, 어제 대강당에서 형을 봤어, 형의 발차기가 아주 끝내주던데!' 라키가 좋아했다. '그러니까 형은 지금부터 나랑 놀아줘야 해, 알았지 형?'
어느 정도 놀이기운을 뺀 후, 다시 레츠 고우! 락키에게 바이! 하고 할머니에게 오자마자 하는 아리의 말. “What did you say before?”(아까 할머니가 뭐라고 했죠?) 으악! 정말 못 말리겠다! 처음에 US에서 나올 때 더 놀다가자고 떼를 쓰는 아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할머니가 ‘우리 가다가 오제 갔던 오그든 스쿨에 들리자’ 했었다. 운동장에서 돔형 철봉과 스탠드 철봉을 했던 오그든 스쿨(Ogden Public School). 그 말을 기억하고 이제 공원에서 놀만큼 놀았으니 할머니의 그 말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놀라 자빠지겠다. 평소에도 아리는 저에게 유리한 말은 당시에는 건성으로 넘기고도 자신의 일이 끝나면 언제나 다시 그 말을 들추어서 본을 뽑고야 만다. 이런 녀석이 있나!^*^ 오, 아리! 되묻곤 해서 할 수 없이 ‘무슨 말? 아, 오그든 스쿨?’ 했더니 탄성을 지르며 ‘오, 예!’ 할머니가 졌다!^*^
라키의 축구실력은 또래 팀원들 중에서도 좋았다. 그러니 아리가 상대가 될 리 없다. 그럼에도 라키는 아리에게 볼 다루는 법을 보여줬고, 아리는 넘어지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너무 지친 할머니가 시큰둥, 손을 끌고 걷기만 하자 행여 할머니가 오그든 스쿨로 가지 않을까봐서 길 위에서도 끊임없이 오그든 스쿨에 가자고 조르면서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플리즈, 플리즈~’를 연발한다. 마지못해 ‘알았어’ 하면서 길을 건넜더니 그래도 미덥지 않은지 자꾸만 할머니의 말문을 이어가려고 애를 쓴다. 어떤 방법일까? “오그든 퍼블릭 스쿨, 옥든 퍼블릭 스쿨, ···” 말하자면 할머니가 ‘퍼블릭’이란 말을 빠트렸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아리의 목적은 할머니의 생각속에서 오그든 스쿨을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계속 그러다가 혀가 꼬여서 ‘오든그 퍼블릭 스쿨, 옥드근 퍼블릭 스쿨···’ 한다. 그것도 일부러 그런다. 그렇게 해야 할머니가 재미있어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되니까. 아리 녀석, 웃기는 녀석! 아리 녀석, 깍쟁이 녀석! 그렇게 말해도 아리는 기분이 좋아 하하하... 웃는다. 반격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목적달성했다는 의미다. “그래, 오그든 퍼, 블, 릭, 스쿨!”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웃으며 한 자 한 자 강조하며 내려다보자 비로소 마음이 놓인 아리는 ‘예~ 땅쿠!’ 소리친다. ‘땅쿠’는 ‘땡큐’를 아리가 기분 좋을 때 한국식으로 하는 말이다. 헉!
맞상대가 되지 않는 상대지만 그래도 열심히 따라붙는 아리. 적당히 배려해주는 라키. 아리가 라키의 볼을 방어할 태세를 취했다. 물론 실패로 끝나기 일쑤지만. ^*^
다시 돔형철봉에 오르고 내리기를 두 번, 오늘은 내려가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익혀줬다. 도중에 피피가 하고 싶다고 해서 벤치 옆의 바윗돌에 빗대어 하게 했는데 고추를 삐딱하게 잡아서 팬티와 바지가 젖어버렸다. 으! 오늘은 마침 할머니 백팩에 갈아입은 옷도 없었다. 그걸 빌미로 그만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리는 노우! 다시 동산모양의 바위무더기 위로 올라가더니 할머니더러 올라오라고 하면서 ‘아주마니’를 하자고 한다. “아주마니?” 끄덕끄덕. “그게 뭔데?” ‘아주 많이?’ 아주머니?‘ ··· 여러 번 되물으며 그 뜻을 알려고 했지만 파악하지 못했다. 자꾸만 올라오라고 하면서 다람쥐가 된 아리는 바위동산위에서 얏! 이얏! 하면서 어설픈 태권도 모양을 지어보이며 사방으로 한바탕 시범을 보이더니 그것이 ‘아주마니’라고 하면서 할머니에게 가르쳐줄테니 빨리 올라오라고, 강요수준이다. “그게 뭔데?” 아리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뭘까? 이게 바로 영어 못하는 할머니와 한국말 못하는 아리사이에 생기는 퀴즈이며 문제이다.^*^
아리의 헛발질. 그래도 아리는 즐겁다. 할머니는 함께 놀아주는 라키가 고맙다.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위로 못 올라간다고 했더니 올라와서 보기만 하라는 것, 이 번엔 떼 수준이다. 가겠다고 하자 김이 빠진 채 할 수 없이 동산에서 내려오더니 기어코 할머니의 어깨를 딛고 스탠트 철봉도 몇 번 했다. 그래도 떠날 생각이 없는 아리. 할 수 없이 할머니가 가겠다면서 단호하게 스파다이나 에비뉴 쪽으로 걷자 동산에 저 혼자 올라가서 제 할것 하다가 할머니가 코너를 돌아설 때쯤 흘긋 봤더니 그제야 쏜살같이 달려서 온다. 흐이구!
집까지 걸어오면서 저도 미안함이 있었던지 또 다시 ‘할머니 해피?’하고 살피기에 ‘노우’ ···· 하면서. ‘아리와 베스트 프랜드’마저 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계속 보채면서 자기는 할머니와 베스트 프렌드 이길 바란다고, 할머니가 해피해지길 바란다고, ··· 계속 싫다고 해서 울적해 하면서도 갑자기 ‘할머니 아리 배고파.’한다. ‘집에 가서 먹자.’했더니 ‘맥도널드’에 가자고 한다. 길 건너 앞쪽에 보이는 맥도널드가 있다. 헉! ‘갈테면 너 혼자 가거라. 할머니는 집으로 가겠다.’ ‘엄마가 준비해놓은 음식이 훨씬 더 맛있고 좋다.’ ··· 했더니, 그럼 왜 지난 번 건이랑 갔었느냐고 따진다. 흐이구! 계속해서 ‘베스트 프랜드’도 안하고 싶고, 아리 할머니도 안하고 싶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더니 심각해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걸으면서 노우, 안돼, 싫어, 하며 팔에 매달리곤 하다가 걸음을 멈추고 허그를 했다. 할머니가 무감각하게 가만히 있자 제 손으로 할머니의 팔을 잡아 저를 감싸게 만들면서 허그를 하자고 했다. 여러 번 만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걸었더니 할머니의 뻗어있는 손을 제 손으로 오므려서 꽉 잡게 만들기도 한다. 녀석!
하다보면 아리가 때로 정공을 취할 때도 있다. 라키가 봐주는 상태에서다. 아리는 더욱 신이 난다. 라키는 지루할 지 모른다. 그래도 함께 계속 놀아준다.
“할머니가 아리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끄덕끄덕. “그런데도 아리는 할머니 말을 안 듣고, 속상하게 해서 힘들고, 지쳐. 그래서 이젠 할머니도 아리가 싫어.”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누가 아리를 할머니보다 더 사랑해주는 사람 있어? 엄마 아빠?” “없어. 할머니가 더.” “함께 놀아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아리 위험할 때 막아주고···” 그런데도 왜 할머니 말을 안 듣는 거야? “아리, 가슴, 생각 못 해써” 제 가슴을 가리키며 그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 할머니 가슴이 찡! 울컥하고 말았다.
저녁때 도리의 콧물이 약간 노르스름 했다. 부디 더 진행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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