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아리와 시간보내기, k의 월반문제, 도리의 변경된 잠버릇

천마리학 2012. 4. 3. 03:55

 

 

 

*2011년 7월 28일(목)-아리와 시간보내기, k의 월반문제, 도리의 변경된 잠버릇

818.

 

 

비가 내리는 아침, 집을 나서는데 비가 멎어있고, CN 타워 중등이 비안개로 감춰져 있다. k가 보고 신기해 한다.

레인 점퍼에 레인 부츠까지 챙겨 입힌 아리는 가는 도중 비가 내리지 않자 불평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 레인부츠를 슈즈로 갈아 신고 가겠다는 것. 이유는 달리는데 불편해서다. 아리는 장차 마라톤 선수가 되고야 말 것 같다.^*^

k 입실 시킨 후 레인부츠를 벗고 놀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놀자고도 하고, 공원으로 가서 벗고 놀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도 하며 달래어도 몇 미터 안가서 징징대며 보채어서 그럼 너 혼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협박까지 해가면서 겨우 학원에 도착했다. 이런 광경을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서너 걸음 떨어져 걷는 k.

 

준비한 우산 때문에 할머니의 짐이 더 무겁다. 아리의 조그만 우산은 아리가 사용하지 않을 땐 할머니가 든다. 아리가 막대처럼 휘둘러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는 k도 제 우산을 할머니에게 맡긴다. 우산만이 아니라도 k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외출 할 때마다 제 물건을 할머니 손에 맡기곤 한다.

 

집안에서의 태도를 봐도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다. 소파에 바로 앉아있는 일이 없다. 소파등에 다리를 걸치고 비스듬이, 거꾸로 또는 옆으로, 몸부림치는 듯한 자세로 끊임없이 나대며 식탁에 있는 할머니와 누나의 이야기에 끼어들거나, 상관을 한다. TV를 볼 때도 아리는 바로 앉아있는데, k는 바로 앉는 법이 없다. 쿳션을 베고 비틀고 옆구리에 끼고··· 옆으로 눕거나 등받이에 다리를 뻗어 걸거나, 온 몸을 걸쳐 소파를 통째로 차지하고 몸부림 자세로 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바로 앉아라' 하지만 듣지 않거나 그때뿐이다. 갈 길이 멀다. 하나인 자식교육은 더욱 신경을 써서 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스트릿 카 안에서 엄마랑

 

 

 

k를 교실로 들여보내놓고, 아리와 할머니는 옆 건물인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던 Michener Institute 건물로 갔다. 할머니가 가자고 하기도 전에 아리가 앞장을 섰다.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첫날, 그곳에 자판기도 있고 휴게실도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 휴게실엔 찾는 사람이 없이 조용하고 넓고, 대형화면의 티비와 빌리아드 대(포켓볼대)와 후스볼(fussball. table football) 게임기와 넉넉한 소파와 테이블이 있어 좋다. 첫날만 티모시 커피샾에서 보내고 다음 날부터 사흘 째 그곳으로 갔다. 거기서 싸커게임도 하고 그림그리기도 한다. k의 수업이 끝나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을 유용하게 보낸다. 들어서자마자 레인부츠부터 벗고 양말발로 후스볼을 시작한다.

싸커게임 아리는 아직도 많이 서툴지만 요령터득과 재미가 있고, 그림그리기는 아리에게 차분히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좋다. 할머니의 의도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가방엔 색연필 7자루와 종이와 연필이 준비되어 있다. 스넥으로 먹을 과일과 토스토도 있다. 10시 30분경에 스넥을 먹이는데 집에서 안 먹던 블르베리를 할머니를 따라 이쑤시개에 꽂아가며 잘도 먹는다. 오늘은 할머니가 두 개를 꽂기도 하고 세 개를 꽂기도 하고··· 그랬더니 아리도 그렇게 한다. 꽂는 방법도 서툴러서 이쑤시개의 끝 쪽으로 잡는 법을 가르쳐주며 시합을 했더니 네 개까지 꽂았다. 꽂을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다. 부라보 아리!

 

 

 

 

요즘 우리 오빠가요, 좀 힘들긴 한데요,

그래도 잘 지내게 될 거예요.

우리 오빠를 위로하기 위해서

제가 왕관을 쓰고 오빠와 놀아줄거예요.

왕관요?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죠.

 

 

 

 

k도 할머니가 준비해준 스넥을 식탁 위에 놓고 간 첫날 이후부터는 가지고 간다. 교실에서 스넥을 준비해주지 않기 때문에 할머니가 준비해주는 토스트와 사과 한 개를 가지고 다닌다. 브레이크 타임에 배도 고프고 맛있다고 한다. 흐음, 배고픈 맛을 봐야지!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후세인이 할머니를 알아보고, 빨리 지하실로 내려가 보라고 했다. k 일로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되었다. 서둘러서 이미 k!를 외치며 내려가고 있는 아리의 뒤를 이어 내려갔다.

레이몬드선생님과 k가 월반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할머니를 보고 반겼다. 레이몬드 선생님이 할머니에게 k가 자기 수업시간에 지겨워해서 아무래도 월반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k의 문장쓰기나 단어실력을 보면 그래도 된다고 했다. 월반하려면 보호자가 디렉터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앞장서서 유니버시티 어베뉴에 있는 ILSC(international language study center)의 본 건물로 행했다. 수업 첫날에도 느꼈지만 참 친절한 레이몬드 선생님(30세).

 

물론 k가 단어나 문장실력이 기초반인 그 반에서 우월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좀 조심스럽다. 그래도 k가 원하면 그러겠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꼭 k의 실력이 이유만은 아니었다. k의 수업태도 때문이었다. k에게 ‘니가 수업시간에 지겨워했다면서? 월반하고 싶니? 니가 원하면 할 수 있대.’ 했더니 ‘지겨워서가 아니라, 피곤해서 그랬어요.’한다. 내참!

‘그래? 그래도 니가 원하면 월반해도 된다는데···’했더니 머뭇거렸다.

레이몬드선생님에게 지루해서가 아니라 피곤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오빠것도 만들어주셨는데요,

이건 분명 제꺼예요.

 

 

 

 

어제 저녁에 엄마에게 졸라서 10분간만 보기로 허락 맡아 혼자서 헤리포터를 보다가 약속시간을 어기려는 것을 제지시켜 억지로 들어가 자게 했었는데.

집에 가서 누나와 의논해본 다음, 결정해서 내일 말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가던 길을 멈추고 레이몬드선생님은 학원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세인트 페트릭 역에서 전철을 타고 유니온 역에서 스트릿 카로 돌아오는데, CN타워가 비안개에 싸여 중간쯤이 흐릿했다.

 

 

 

 

어?!

오빠가 또 장난치나?

 

 

 

k의 영어실력은 월반해도 된다. 가장 기초반인 커뮤니티 기본반이니까. 그리고 내 경험이나 주위의 이야기들에 의하면 그것이 한국사람들 대부분의 경우이다. 쓰고 읽기는 어느 정도 잘 한다. 학교에서 하는 문법 위주, 쓰기위주의 영어교육의 방법 때문이다. 지금 월반하는 것보다 기초반에서 듣기와 말하기를 충분히 더 다지는 것이 좋겠다는 것, 귀와 입을 튼 다음 월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만큼 친절한 선생님도 드물다는 것이 엄마와 할머니의 의견이었다. 좋은 선생님 만난 것도 행운,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반을 옮기는 경우도 많고 또 수업태도를 바르게 가지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래서 결국 월반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일 가서 뭐라고 말해요?’ 하는 k에게 엄마가 말해주었다. ‘아이 원트 스테이 디스 클라스.’ 할머니가 더했다. ‘비코우즈, 유아 어 베리 나이스 티쳐’.

 

‘고모, 오늘 저녁엔 고모랑 함께 자요.’ 했다. 초저녁에 고모가 이부자리를 펴는데 k가 들어와서 할머니를 제치고 얼른 아리의 요를 제 자리에 깐다. ‘왜?’ 할머니의 물음에 ‘이게 좋아요.’ 아마 아리의 요가 더 좋아보였던 모양이다. ‘그래?’ 아리의 요는 스펀지라서 약간 두터워 보이지만 실제로 누어보면 얇다.

 

k가 원하는 대로 해서 이부자리를 펼쳤다. ‘얘기 해주세요.’ k가 며칠 전에 들은 도깨비 이야기가 여전히 궁금한 모양이다. 아니면 아리처럼 어린 아기의 심정으로 아리에게 하는 할머니의 행동이 그리웠을 수도 있다.

아리와 k 중간에 할머니가 누웠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빠만 힘든게 아니라 사실은 저도 좀 힘들거든요.

뭐냐구요?

손님들이 오면 저도 같이 놀고 싶은데

엄마는 저를 잘 시간이라고 자라고 하시거든요.

 

 

 

도리는 요즘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초대된 손님들, 강장노님 내외분, 신선생님 내외분, 제이형이 저녁식사를 시작할 무렵, 잠잘 시간이 되어서 올라가며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웃음으로 뽑힐만한 예쁜 웃음을 보이며 올라갔던 도리가 잠시 후 다시 내려온 이후로 계속 된다.

약간 이른 저녁식사 시간, 그 시간이면 언제나 잠을 자는 습관이었는데, 그날부터 왠일인지 잠이 들지 못해서 세 번이나 내려와 결국 포기했었다. 그날은 손님이 와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지금까지 계속된다.

엄마가 침대에 눕히면 좋아서 방실대다가 이내 잠이 드는데 지금은 잠이 오는 표정이어서 침대에 데려가 눕히고 엄마가 손을 떼기가 무섭게 울어버린다. 엄마가 달래다가 결국은 다시 안고 내려오곤 한다.

아마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모양이다. 그래, 예쁜 우리 아리, 날로 날로 발전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