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817회-‘양보’와 ‘루저’ 

천마리학 2012. 3. 30. 14:42

 

 

 

*2011년 7월 27일(수)-‘양보’와 ‘루저’

817

 

 

아리가 k를 부를 때, k! k이! 김건! 이다. ‘k형’이라고 말해주긴 했지만 ‘형’의 발음을 어려워하며 그렇게 부른다. 한편으론 k이에게 이름을 부르는 이곳의 문화를 설명해주었다. 그런데도 k는 아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불만이다.

이곳에선 우리나라와 달리 어른들과 이야기 할 때조차 어른의 이름을 부른다는 설명을 해주어도 소용없다.

k에겐 모든 충고들이 안 먹히고 귓등이다. k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언제나 제가 필요할 땐 말을 걸어오고 제가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그 다음 말은 듣지도 않는다. 딴전이다. 할머니가 거듭 설명해주니까, 오히려 볼멘소리로 아빠가 이름은 중요하다고 했단 말이예요! 한다. 아빠가 이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의 의미는 다르지. 그건··· 알아듣도록 간곡히 설명했건만,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시큰둥, 무반응이다. ···· 다 쓸 수도 없다.

어떻게 가르칠까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가 계속 트집을 잡았다.

“너 그렇게 부르지 마. 내 이름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 젤 싫어.”

장난이라니, 그야말로 k의 생트집이다. k라고 부른다 해도 형 을 안 붙여서 마음에 안들 수는 있지만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니다. 아리가 전혀 장난치지 않았음을 할머니가 곁에서 듣고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모른 척 그냥 넘겼다.

 

 

 

 

 

 

 

 

 

아리를 따로 불러 기회가 되는대로 k형 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어렵게 고쳐 발음하기도 하고, 언제나 양보하라고 하면 아리도 씨근거리며 불만스러워 하고, k형이 싫어하니까 될 수 있으면 k형 곁에 가지 말라고 하면 멈칫거리기도 하고, k형이 더 강하니까 맞으면 너만 아프니까 k형 몸에 손대지 말라고(이런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잘 못 가르치는 것 같아서 갈등을 느낀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아리도 엄청 익사이팅해서 못 말리는 성격이다. 그런 두 놈이 만났으니 수월하긴 어렵다. 그렇더라고 여섯 살이나 위인 k의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오히려 아리가 포기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것도 알수있다. 속이 편치 않다.

아리가 요즘 수시로 듣는 한국말이 양보!다.

엄마아빠와 같이 어울리는 시간에 어쩌다 아리가 양보!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오, 아리가 그 말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려운 단어인데··· 하면서 기특해 했다. 듣고 있는 할머니가 속이 근지럽고 안타깝다.

k 때문에 수시로 아리에게 양보하라는 주문을 강요해서 익힌 단어이기 때문이다.

 

k가 아리에게 하는 말 중에서 할머니도 듣기 싫은 단어는 ‘루저’ 이다.

사사건건 길을 가면서도 아리와 맞상대가 되어 꼭 “아이 원, 유아 루저!”를 아리에게 손가락으로 찍으면서 힘주어 거듭한다.

 

 

 

 

 

 

 

 

k가 처음엔 윈 이라고 하였는데 아리가 원 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보더니 바꾸었다.

‘루저’라는 말은 한국에서부터 사용해온 말 같다. 아리는 아직 ‘루저’라는 말을 모른다.

아리가 매우 긍정적인 반면 k는 부정적인 면이 많다. 성장과정인 때문인지 아니면 아리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지금의 일시적인 상황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리가 호의적인 반면 k는 은근히 악의적이다. 사실 속으로 이것이 ‘오기’라는 것을 느끼면서, 어린 녀석이 왜 저럴까 하고 소름이 돋기도 한다.

아리는 나름대로 원칙적이고 논리적인데 비하여 k는 우김질이고 명령쪼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 아이를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아리와 k, 참 많이 다르다.

어제도 롱고스에 가는 길이었다.

엄마는 도리의 스트롤러를 밀고, 아리와 건이 할머니가 함께 걷는데 길에서 아리는 늘 그러듯이 달리기를 한다.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아리의 특징이고 그래서 할머니가 힘 드는 것은 예삿일이기도 한데 k가 있다고 해서 달라질 리가 없다. 오히려 함께 놀 수 있다는 생각에 k를 좋아하느데, k가 받아들이지 않고 일일이 딴지를 걸며 맞상대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는 일초만 지나면 끝이다. 금새 다시 k형! 을 부르며 어울리곤 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퇴짜를 받거나 묵살당하거나 얻어맞지만.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리는 길을 걷다가도 뛰고, 뛰면서도 수시로 k에게 런! 런! 혹은 터치미! 플레이 위드 미! 하지만 k는 모두 묵살이다. 그럼에도 아리는 목이 터지라 매달려서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지만 참을 수밖에.

 

 

 

 

 

 

 

 

오늘도 마찬가지. 아리가 길을 건널 때마다 달리기를 한다. k는 아리를 묵살하면서도 때로 아리를 따라 달린다. k는 아리에 비해서 몸이 무겁고 행동이 굼뜬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이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아리가 상당히 빠르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뒤쳐진다. 길 끝에 당도하면 서로 빠르다고 다툰다. 벌써 여러 번 있는 일이다.

할머니가 아리와 k가 서로 주장하는 말이 들렸지만 k 목소리가 더 커서 아리의 말은 묻히는 것을 들으며 가까이 가자 아리가 억울한 듯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하고 말을 시작하고, 할머니가 그래 말해봐 하는데, k가 큰소리로 계속 ‘아이 원, 유아 루저! 아이 원 유아 루저!’하고 떠들어 대며 들리지 않도록 방해한다. 말을 방해받자 속이 터지는 아리가 k를 향해,

“예쓰 아이 노우, 유아 파스트 댄 미. but···”하고는 할머니에게 말을 시작하는데, k가 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유아 루저! 유아 루저!’를 또 다시 연발한다.

참 말하기 어렵다.

 

 

 

 

 

 

 

 

‘k, 고만해라 아리 말 좀 듣자’ 했더니, ‘내가 이겼는데 얘가 자꾸만 자기가 이겼다고 하잖아요’ 한다. ‘그래 아리도 그걸 인정하잖아. 니가 아리보다 더 빠르다는 걸 안다고 하잖아. 그런데도 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외치면 되니?’ 그제야 머쓱, 말이 없다. 겨우 마감시켰다. 휴우~

아리가 눈치코치 모르듯이 k 역시 루저라는 말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하는 건 아닐 수 있다. 아리보다 6년이 위이긴 하지만 k 역시 어린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나이에 비해서 남을 배려하는 정신지수가 낮고 지식은 많은데 정서적인 부분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그래서 생각의 발상이 늘 까칠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도 로저스 센타 곁의 고가도로를 지나칠 무렵 또 일이 생겼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k와 아리의 불협화음이 계속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할머니의 불협화음일 뿐, 아리는 여전히 순진해서 눈치코치 없이 함께 놀고, 함께 장난치고, 함께 달리고 싶어서 연신 k를 불러댄다. 아리의 목마름이 또 안타까운 상태다. k는 여전히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할머니가 될 수 있는 한 아리의 말상대가 돼주며 걸었다. 그런데 k 역시 자꾸 끼어든다.

 

 

 

    

 

 

 

로저스 센타 옆의 브릿지 위를 지나면서 아리가 ‘할머니 비아 레일!’ 하면서 오랜만에 보는 비아레일과 고우 트레인을 가리켰다. 할머니가 ‘아, 그렇구나. 정말 비이레일이 오고 있구나’했다. 아리는 k에게도 기차를 보라고 불러대었다. k는 들은 척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뭔가 다른 제 말을 앞세웠다. 그래서 할머니가 k에게 ‘지금 아리가 말하고 있잖아, ’ 했더니 ‘아, 왜 내말은 안 듣는 거예요? ’하며 불멘소리를 한다. 할머니가 ‘지금 아리가 먼저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었잖아. 그리고 아리는 너에게도 기차를 보여주려고 보라고 소리치는데도 넌 들은 척도 않고 있잖아.’ 했더니 갑자기 k가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괘씸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정말 난감했다. 아리는 대뜸 어? 놀라면서 할머니, ‘k헝 고우,’ 하더니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속으론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내색도 하지 않으며 아리 손목을 잡고 가던 길로 몇 걸음 내쳐 걸었다. 아리가 자꾸만 할머니, ‘하오 어바웃 k.’ 하며 되돌아봤다. 속이 불편한 채로 다리 끝 부분까지 와서 약간 비켜 서 있었더니 저만큼 k가 다시 오고 있었다. 휴우~

정말 참기 어렵다. 남의 자식 건사 참으로 어렵다. 그냥 꾹 눌러 참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