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816-가엾은 아리의 목마름과 가정교육

천마리학 2012. 3. 29. 00:07

 

 

 

*2011년 7월 26일(화)-가엾은 아리의 목마름과 가정교육

 816

 

 

K 학원 둘째 날.

새벽에 12시 30분경에 아리가 할머니방으로 올라와 잤는데, 고단했던지 아침식사시간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K는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아리는 식사시간인 7시 30분, 할머니가 올라와 깨웠다.

K형 학원에 데려다주러 가는데, 함께 갈까, 할머니 혼자 다녀올까? 했더니 처음엔 더 자겠다고 하더니 나중엔 함께 가겠다면서 겨우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엄마가 K에게 쉬는 시간에 먹으라고 사과 한 개를 넣어주었다. 할머니가 다시 토스트를 구워 넛델라와 피넛버터를 발라 준비하고 물병을 챙겨 주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알았지만, K가 준비해준 식빵을 식탁위에 두고 갔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안 가져 간 것이었다. 그래도 강의실에 스넥으로 도넛을 준비해둬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갈 준비를 하다가 K로부터 또 어색한 말을 들었다.

엄마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주는 중이었다.

아침 9시까지 데려다주고 12시에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집에 왔다가 갈 것인지, 그 근처에서 12시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올 것인지. 그리고 갈 때 올 때 교통수단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아리를 데리고 갈 것인지 등을 의논하는 중이었다.

엄마가 어떻게 갈 거냐고 묻기에 할머니가 스트리트 카를 타지 않고 걸어갈 거라고 했더니 K가 대뜸 하는 말이었다.

“왜요? 돈이 아까워서요?”

“ ? ”

뜨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의 장난기 발동!

 

 

 

 

둘째 날이지만 첫날인 어젠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었으므로 오늘이 처음으로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또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한 번은 갈아타야 하는 지점이므로 시간상 별 차이가 없으므로 걸어가면서 확실하게 길을 익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또 운동 삼아서도 좋다. 그런데 K는 어떻게 대뜸 돈과 관련해서 말할 수 있는지 정말 아이들 교육이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 버스나 전철을 타도 갈아타야 하니까 시간이 비슷하게 걸려, 그래서 걸어가는 거야. 걸어가면 거리구경도 하고, 운동도 되고 좋잖아.”

K가 시큰둥한 표정이다.

K. 고모, 그 정도로 돈 없는 거 아냐. 부자야.”

“··········”

역시 말이 없다. 이번엔 곁에서 들으면서 내심 놀라던 엄마가 보내었다.

K아 누나도 부자야. 돈 걱정 안 해도 돼. 알았니?”

그제야 K가 씨익 웃었다.

 

아리라면 어땠을까?

좋아했거나, 아니면 분명히 “Why?”라고 물었을 것이다. 대뜸 돈 때문이라는 발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돈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어린 나이 탓도 있겠지만, 가정에서의 교육상 그럴 것이라는 것을, K를 보면서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새록새록 짚어진다.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 아리!

그 불만스러움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집에서부터 걸어가는데 아리가 목마르다고 했다. 학원에 도착하면 사주겠다고 했지만 본 빌딩엔 자판기가 없다. 다른 빌딩으로 옮겨는 도중에도 매우 목이 말라했다. 그런데도 K는 제 손에 들고 있는 물병을 줄 생각은커녕, 전혀 관심조차 없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저 필요할 때 할머니하고 말을 하려고만 했다. 할머니가 집에서 K 물병 챙기면서 아리 물병도 챙겨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정황 없는 중에 깜빡 한 것이다. K의 태도에 대해서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좀 심하다. 과연 아리라면 그럴까?

아리 역시 더 어린 네 살짜리이기 때문에 모를 일이긴 하지만 평소의 아리의 생각이나 행동에 비춰보면 아마도 여기 있어 물, 하면서 제 물병을 내밀 것 같다.^*^

학원에 도착하면 사주겠다고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아리는 놀기에도 실제로도 목이 마르다.

본 강의는 또 다른 건물이었다. 지하1층의 오른 쪽 첫 번째 방이었다.

 

 

 

 

할머니, 왜 내가 항상 참고 얻어맞아야 하냐구요?

형, 나빠!

 

 

 

 

K를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 두고 나오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아리를 K의 동생으로 짐작하면서 곁에 앉으라고 의자를 마련해주었다. 할머니가 우린 등록하지 않았고, 데려오느라고 함께 온 것이라고 했더니, 상관없다면서 할머니만 원하면 함께 앉아도 된다고 하면서 다시 할머니의 의자를 갖다 주었다.

“땡큐!”

아리에게 도넛상자까지 내밀며 먹으라고 했다. 테이블 중심에 마커와 연필 펜들이 있었고, 선생님은 아리에게 따로 종이를 주면서 그것들을 사용하라고 하고, 스티커까지 챙겨주었다. 아리는 좋아라 그림을 그리기에 열중했지만 K는 또 못마땅하다. 아리 앞으로 놓아준 도넛 상자를 제 앞으로 끌어가버린다. 종이나 마커를 사용하는 것을 은근히 제지하며 트집을 잡았다. 눈치 없는 아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스티커까지 이용하는데 K는 사사건건 내 눈치를 살펴가며 하지 않아도 될 간섭하며 방해를 했다. 눈에 거슬렸지만 내버려 뒀다.

수시로 나가! 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리는 머쓱해지면 때로는 할머니를 바라봤지만 할머니는 아리, 네가 양보해라. 양보! 알지? K 형이 형이니까 아리가 양보! 라고 말할 수밖에.

 

아리가 양보? 하고 말하는 할머니의 설명에 이내 수긍했다. 그러나 어린 아리는 눈치코치 없이 K를 부르고 K에게 놀자고도 하며 말을 붙이고 수시로 K의 팔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아리가 K 팔을 잡거나 가볍게 툭 치면 K는 영락없이 바로 반격, 더 세게 아리를 때리는 것이다. 아리는 항상 되로 주고 말로 받는 형상이다. 단 한 번의 양보도 없다. 양보는커녕 아리가 무심히 팔을 잡는 것까지도 K는 아야! 큰소리와 함께 홱 돌아서면서 강하게 때린다. 할머니가 그러지 마라, 고 하면 얘기 먼저 때렸잖아요. 한다.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말할 수 없다. 어쩌다 할머니가 ‘건아’하고 부르면서 어깨나 등을 만지면 그 순간 또 아악! 하고 엄살스럽게 과장해서 아픈 듯 소리까지 친다. 습관적이다. 피해의식? 완전 유아독존이다.

그런 행동이 반복된다.

 

 

 

 

할머니가 일부러 K가 시험해봤다.

K가 소파의 등걸이 위에 몸을 가로 걸치고 몸부림포즈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이것 역시 눈에 거슬리는 좋지 않은 생활태도다. 그냥 앉을 때도 바로 앉는 법이 없다. 소파위에 눕거나 비스듬이 다리를 벌려 등걸이에 올리고 몸을 곤 자세로 있거나 TV를 본다.) 아리가 뭔가를 하자면서 K! 하고 가볍게 툭 친다. 그러자 K가 아악! 소리치며 발딱 일어나서 아리를 때린다. 의외의 반응에 아리가 가만이 있지 않고 다시 때리고 달아난다. K가 화를 내면서 팔을 뻗어 아리를 때리려다가 소파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운다.

식탁에서 지켜보던 할머니나 누나 역시 헛숨만 쉬며 둔다. K가 큰소리로 울어 제치니까 할 수 없이 누나가 간다.

K 많이 아프니? 그래서 어떡해? 어디 보자.”

K가 계속 반발하며 엄살이다. 보다 못해 할머니가 한 소리 한다.

“잘 살펴봐라. 그리고 빨리 응급실에 전화해라. 큰일났구나!”

누나가 얼굴을 돌리며 피식 웃는다.

K, 어디 팔이 부러졌니? 큰일 났구나. 빨리 엠브런스를 불러야겠구나. 응? K, 말해봐라.”

“괜찮아요오···”

어정쩡 몸을 일으키며 얼버무린다. 토론토에 온지가 며칠 안 되는데 이런 일이 벌써 몇 번째다.

그래서 이젠 K가 그럴 때 ‘아프지 않잖아? 엄살피우지 마라.’ 한다.

못마땅해 하면서 불퉁거린다. 때때로 ‘왜 나만 가지고 그러세요?’하기도 한다. 참 난감하다.

 

 

 

 

할머니, 형이 언제 나와?

그때까지 공원에 가서 놀자!

 

 

 

K가 아리를 무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또 K가 아리에 대해서 샘을 부린다는 것도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K는 나이답지 않게, 또 자신에 대한 우월감만 잔뜩 차 있을 뿐, 상황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는 행동이 아리보다 더 어린 아이와 같다.

누나가 ‘니가 아리를 동생처럼 보살펴야지. 넌 열 살이지만 아리는 이제 네 살이야. 많이 어리잖아.’하고 조용히 타이르니까 ‘그러니까 더 분해요.’ 누나가 속으로 놀란다. ‘K친구들에게도 그러니?’ 하니까 그 말은 대답을 안 하고 ‘친구들은 더 할걸요.’ 한다. 누나가 고개를 저으며 손들었다.

K를 통하여 가정교육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자기 자식이 공부 잘 하는 것을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최고라고 생각하는 부모들, 부모들이 자식에게 얼마나 맹인이며, 또한 자식교육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게 된다.

 

 

 

오빠! 그래도 오빠가 참어!

그래야 오빠가 착한 사람이지!

내가 오빠 마음 다 알어!

 

 

 

오후에 K가 또 놀래켰다.

영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도중에 K가 아리를 핑계 삼는 말이 나왔다. 할머니가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하면서 강의실에서도 아리가 너에게 불편을 주는 일도 방해하는 일도 없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K 왈.

“내가 학원에 다니는 의미가 없잖아요.”

저를 도와주려고 다른 일정 다 제치고 있는 저에게 매달려있는 우리 가족들, 그것도 생전 처음 만난 사이인데, 담당선생님의 배려로 함께 강의를 듣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온 곳에 대해서 망서림도 없고, 생전 처음 만난 우리 가족에 대한 서먹거림도 없다. 미안해하거나 예의바름 같은 것을 찾아볼 수도 없다. 낯설어서 눈치라도 봐얄 텐데, 천만의 말씀이다.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고, 자신이 최고고, 자기가 이겨야하는 경쟁심만 가득하다. 말로만 듣고 생각으로만 해오던 우리나라 교육 혹은 자녀교육에 대해서 그 진상을 실감하게 됐다. 자녀교육에 대한 글들을 별로 쓴 일이 없지만, 만역 썼다면 얼마나 진상을 모르고 그저 떠도는 이야기만을 가지고 썼을 것인가. 그 실태를 알지 못하고 일반론이나 소문만을 토대로 아는 척하는 겉핥기식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아무리 K아빠와 친한 사이라 해도 이러다간 어른들 사이마저 나빠지고 말거라는 예감부터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