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815-4살vs10살, 염려되는 한국의 어린이 교육

천마리학 2012. 3. 27. 00:21

 

 

 

*2011년 7월 25일(월)-4살vs10살, 염려되는 한국의 학교교육과 가정교육

815

 

 

K의 영어학원의 첫날. 8시 40분까지 가야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엄마가 아침에 몸살인지, 음식을 토하고 두통에 시달렸다. 아빠가 K를 유니버시티 스트리트에 있는 학원까지 차로 데려다주느라고 오후 출근을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다른 건물에서 했다. 그러느라고 안내하는 선생님을 따라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 두어 블록을 가서 꺾어지고··· 그러느라고 미처 아빠에게 연락할 수 없어 애가 탔다. 속으로 걱정을 하면서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있는 중에 그곳까지 아빠가 찾아왔다. 할머니랑 아리 K가 그곳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갔다. 미안했다.

 

 

 

에어 캐나다 센터와 유니온 스테이션 사이의 실내 통로에서

 

 

 

K는 아리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곁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다. 프린트를 나눠주는 선생님들이 아리를 보고 귀엽다고 종이와 연필을 따로 주면서 그림을 그리도록 배려해주었다. 아리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가끔 K에게 보여주는데도 K는 아주 싫어하면서 툭 튕겨버리더니 아리를 나가라고 한다. 그런것을 보면서 할머니의 심경이 복잡해진다. 아무리 어리지만, 아니 어리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어린 아리를 다둑이며 양보하라고 하며 견디게 하고, 할머니 역시 최소한으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여러 번 그러는 걸 참다못해서 슬며시 K에게 ‘왜 그래? 그러지 마라’고 했더니 귀찮게 한다면서 핑계를 대며 계속 불만스러워 했다.

계속 아리를 구박해서 할 수 없이 아리 손을 잡고 나왔다.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있어서 뻔히 안다. 아리가 전혀 귀찮게 하지 않는다. 다만 진행 보조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종이와 필기도구를 가지고 그리고 있을 뿐, 바스락거리는 정도이다.

 

 

K가 계속 아리를 구박하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리를 데리고 살금살금 강의실을 나와 휴게실로 가서 강의실을 체크하면서 아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남의 자식을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아무리 가까운 친구사이라 해도 아이 때문에 어른들까지 틈이 생길 빌미가 되고도 남음이 짐작되었다.

12시에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본 강의는 또 다른 건물의 강의실이라는 안내를 받고 돌아오는데, K로 부터 놀라운 말을 들었다.

“아까 왜 나갔어요?”

“니가 아리를 구박하며 나가라고 했잖아. 아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넌 아리에게 트집을 잡고 싫어하니”

“이거 제가 등록한 학원이잖아요.”

“그런데?”

“그럼 나 혼자 들어야 하잖아요.”

어머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에어 캐나다 앞에서

 

 

낯선 나라에 처음 와서 처음 시작되는 강의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인데, 저를 도와주기 위하여 아빠가 출근시간까지 늦춰가며 데려다주고, 할머니와 아리가 함께 참석해서 도와주려는 건데, 아리는 그렇다 치고··· 아리가 방해하거나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방해된다고 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K 스스로의 생각일 뿐. 생각 자체가 순수한 어린이답지 않은 점에 참 난감했다. 그런데도 불만은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고모랑 아리가 함께 들어야 해요. 돈은 내가 냈는데···”

할머니와 아리가 왜 공짜로 참석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그 말의 분위기 속엔 공짜로 듣는 것이 싫은 기색이 포함되어있음이 알았다. 여러 날 동안 학원을 알아보고 고르고 마땅한 곳을 찾아내어 등록부터 모든 절차를 모두 우리가 하며 준비했다. 학원 등록비 이외엔 일체 다른 돈도 받지 않고 서비스하는 것이다. 시간도 돈도.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치 않다. 아무리 어린이라지만 어떻게 생각이 저렇게 될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웃고 말았다.

아리가 곁에서 부시럭대고 또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아리를 보고 귀엽다면서 아리에게도 프린트들을 나눠주며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등, 친절을 보이니까 그게 싫은 모양으로 짐작되긴 하지만 그것도 그렇다.

그 일이 아니라도 아리를 일일이 맞상대하면서 그 결과는 언제나 어린 아리가 불리하고, 아리의 울음으로 끝이 난다.

 

 

하버프론트에서

 

 

4세와 10세, 여섯 살의 나이차이가 아무 효과가 없었다. K가 나이는 많고 아는 것은 많아도 정신연령은 아리보다 나은 게 없다. 경쟁의식만 부추키고, 공부 잘 한다고 대접하고, 하나뿐인 자식이라고 과보호하고··· 모르는 사이에 잘못되어가고 있는 가정교육 내지는 한국의 학교교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듣는 동안에도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고 아리의 행동에 신경 쓰며 계속 아리에게 나가라고 수시로 윽박질렀다. 어제 저녁에도 너 학원에 안 데리고 갈 거야. 너, 나 따라 오지 마, 하던 말이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아리는 아무 눈치 없이 그림을 그리고, K! 하고 부르며 K에게 보여주면 들은 척도 하지 않거나 짜증스럽게 ‘너, 나가!’했다.

곁에서 보며 말없이 참다가 할 수 없이 아리를 데리고 통로 뒷자리의 빈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렇다고 버려둘 수도 없고 그림자처럼 살펴가며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의 마음이 썩 편치가 않게 된다. 쉬는 시간에 로비에 있는 자판기에서 스프린터(사이다)를 사먹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아리는 그런 걸 먹이지도 않았고 먹지도 않아서 할머니도 아리도 처음 본다. 그런데 자판기에서 사는 버릇까지 아리에게 보이게 된 것이다. ‘물을 먹어라’ 해도 듣지 않았다. 2달러를 주면서 사게 했는데, 아무리 자판기를 봐도 어떻게 사야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하버프론트에서

 

 

아리도 덩달아 사달라고 하면서 자판기의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했다. K는 아리의 행동을 또 어김없이 제지시키며 제가 한다. 제지를 당한 아리는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가 좀 정리해주었으면 하는 눈치. 그런 경우가 수시로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리가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 아리는 더 이상 할머니가 사태정리를 해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 마음이 안타깝다.

 

잠시 후에 K가 살펴보다가 못 찾고 물러서자 아리가 다시 다가가 여기저기 눌러보고 살펴보기 시작한다. K가 아리를 무시하는 태도로 ‘흥, 니까짓게?’ 하는 태도로 거들떠 보지도 않고 딴전을 피우며 안내원데스크를 가리키며 할머니에게 '가서 알아볼까요?' 하는데, 아리가 소리쳤다.

“할머니, 여기!”

아리가 자판기의 버튼을 여기 저기 눌러보고 두드리다가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정말?"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 나서 시연을 해보였다.  

K는 의식적으로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흘끗 아리를 스쳐보더니 냉냉해지며 딴전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아리는 자판기에 붙어서서 열심이다.

해당 캔을 두드리니까 동전 투입구에 2달러 라는 표시가 나타났다.

“오, 아리가 알아냈구나!”

할머니가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집 앞의 소비즈(sobeys)에서

 

 

 

 

그 순간 K가 잽싸게 할머니로부터 받은 2달러 동전을 손에 들고 자판기쪽을 가더니 아리를 밀치고 투입구에 동전을 넣는다. 

“아리가 먼저 했으니까 순서대로!”

할머니가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리를 밀쳐내며 어느 사이 자판기 앞을 점령하고 있었다.

기회를 놓친 아리가 뻥! 할머니도 멍! 

억울함과 불만으로 은근히 할머니의 응원을 기대하는 아리의 눈빛.

"형아 먼저 하게 하자. 우리 아리가 양보하면 되지?"

여전히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지켜보는 아리.

그러는 사이 K가 튕겨떨어진 병을 꺼내었다.

아리가 다가서서 동전을 투입구에 넣으려고하는데,  K가 '내가 해줄게' 하면서 아리로부터 동전을 빼앗다시피 한다. 아리가 동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손을 뒤로 뻗으며 울쌍을 지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처음으로 상관을 했다.

"아니, 아리가 하고 싶어하니까 아리가 하게 해줘. 자, 아리가 하세요!"

그제야 아리가 다가서서 동전을 넣는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행여 K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한 마디 부연설명을 했다.

친구의 아들보다는 내 새끼에게 잠시 참게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나중에 아리에겐 잘 설명해서 아리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려고. 이것이 바로 '거리'이다. 

아리는 K가 물을 꺼냈다.

또 다시 3 주 동안 머무는 기간이 결코 수월치 않으리라는 것이 훤히 예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