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819-수영장과 깨어진 체스 판,

천마리학 2012. 4. 4. 22:33

 

 

 

 

*2011년 7월 29일(금)-수영장과 깨어진 체스 판,

819.

 

 

오늘도 일기예보는 비.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흐릿하기는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오늘도 옆 건물(ILSC 의 본 건물)인 Mice 후계실로 가서 아리와 후스볼(fussball. table football)게임을 하고, 준비해간 스넥(당근과 블루베리, 바나나)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만화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리가 할머니에게 돈이 있느냐고 물었다. 빌리아드(당구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거기 어디 동전을 넣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녀석!

“할머니도 그걸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우리 다음에 와서 며칠 전에 여기 있으라고 해준 콘시어즈(경비안내)에게 어떻게 사용하는 지 물어봐서 하자.”

끄덕끄덕.

 

10분 전, 학원에 도착. 교실 앞 복도의 정수기에서 물을 채우고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아리가 교실을 기웃거리고 하하하 웃으며 오더니 레이몬드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온 k의 손에 도넛 상자가 들리워 있었다. 오늘은 스넥을 내놓은 모양이다. k가 상자를 열어보였다. 할머니가 아침에 준비해준 토스트와 도넛 3개가 들어있었다. 도넛을 주어서 토스트를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 엄마, 아리 몫으로 3개를 남겨왔다고 했다. 어? 기특!

“응? 고맙구나. k가 할머니랑 누나랑 아리를 생각했다니···”

k가 아리에게 아리몫의 도넛을 주자 낼름 받아먹고, 할머니에게 할머니 몫을 내밀기에 괜찮아 너 먹어라 했더니 k가 역시 낼름 먹는다.

 

 

 

 

 

 

 

 

세인트 페트릭 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탔다. 유니온역에서 스트릿카를 갈아타자마자 k는 바로 앞의 1인용 자리에 앉는다. k가 온 뒤로 줄곧 그래왔다. 억지로 양보당한 아리가 이제는 버릇처럼 양보하면서도 할머니에게 잠시 불만스러운 눈짓을 보내며 웅얼거린다. ‘와이 k 씨트 히어. 예쓰터데이 투!’ 할머니가 바로 옆의 2인용 자리 창가에 앉히면서 소근거렸다. ‘아리는 여기서 사니까 매일 앉을 수 있지만 k형은 토론토에 처음 왔잖아. 그리고 곧 가잖아. 그러니까 아리가 양보해야지.’ 아리가 수긍했다. 이래서 아리가 배운 양보 라는 한국말 단어다. ^*^

집에 돌아와서 k가 의기양양하게 엄마에게 도넛을 건넸다. ‘이건 누나 몫이예요.’ ‘k가 가져온 것이라 특별히 맛이 더 좋구나.’ 싱글벙글하는 k에게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k야. 왜 매형껀 안 챙겼어?’ ‘매형껀 ··· 설탕이 ··· 하얗게 많아서요···’ k가 얼버무렸다. 다음부턴 매형도 챙기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오후 5시경, 수영장에 올라갔다.

비도 온 끝이라서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많았다.

며칠 만에 올라온 풀에서 아리와 k는 완전 물방개다. 늘 아리의 접근을 꺼리는 k가 오늘은 자기의 다이빙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리를 부르기도 하고, 어쩌다가 아리에게 가르쳐주겠다고 하면서 뒤로 입수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k가 자주 그러듯이 형식적이고 순간적인 친절을 보인다.

k는 늘 그렇다. 심지어 자기의 필요시엔 고모가 못 듣게 소곤소곤 뭔가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 걸 일일이 나무랄 수도 없어 모른 척 하고 있으면서 아리의 반응만을 살피는데, 아리 역시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슬몃, 무반응이거나 싫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리의 게임기구 중에 조그만 판에 양편에 하마형상이 있고 오색의 작은 구슬이 들어있는, 둥그렇게 투명한 돔 모양으로 덮인 놀이판이 있다. 서로 양편에서 하마를 손으로 튕기듯 누르면서 오색의 볼들을 먹게 하는 것이다.

 

 

 

 

 

 

 

오래 전에 사용하던 것인데, 깊숙이 묻혀있는 것을 아리가 꺼냈다. 생각 같아서는 꺼내지 않았으면 좋을 성 싶은데, 어린이의 생각은 다르다. 그때마다 k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옷장 속에 있던 전자 올갠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을 아리가 꺼내자 k가 온통 연주하며 즐긴다.

그 하마판 놀이가 k에겐 재미있던 모양이다. 아리가 목이 터져라 놀자고 해도 대답조차하지 않던 k가, 한참 놀이를 하던 아리가 싫증을 내고 놀이를 멈춘 후에도 놀자고 하더니 아리가 하마판을 치우고 다른 놀이로 옮겨가자 k가 그걸 다시 꺼내서 ‘고모, 한판해요.’ 하면서 할머니에게 놀기를 청했다. 할머니가 일부러 거절하고 아리와 놀아주었더니 혼자서 양손으로 놀이판을 가지고 열심히 놀기 시작했다.

풀에서 두 녀석이 난리를 치니까 물에 잠겨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가서 결국 두 녀석의 차지가 된다. 미안!

그래도 사람들은 아리를 귀엽다고들 말한다. 오늘도 어떤 한국청년이 다가와서 아리가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k가 겨울에도 오겠다고 말했다. ‘고모’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는데도 싫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 말은 삼켜버리고, 유학 온 셈쳐달라고 한다. 며칠 전 하버프론트에 다녀오는 길에서도 k가 캐나다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을 물으며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었다. ‘캐나다에서 살려면 지인이 있어야 해요?’ ‘지인? 무슨 뜻이지?’ ‘아는 사람이요.’ ‘ ? ’ ‘우리도 지인이 있잖아요’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우리 가족을 말하는 모양이다. ‘가족이나 친지, 잘 아는 친한 사람이 초청하는 형식으로 하면 가능하지. 캐나다에서 살고 싶어?’ ‘끄덕끄덕’

(??? 글쎄?? 너무 힘들어서···)

 

 

 

 

 

 

 

녀석은 친절하게 해주는 누나도 좋아하고, 누나의 음식도 아주 좋아한다. 요즘 k에게 쏟는 누나의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누나가 휴가 중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만일 출근을 시작하게 되면 일일이 신경 써 줄 수 없고, 힘든 일이다. 게다가 아리와의 태도에서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만약 k의 정서연령이 나이 많은 형으로서 타당하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얼마 정도의 힘든 것을 고사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아리는 k의 맞상대가 되지 않고, 생각이나 행동이 너무나 차이가 나서 어렵다.

최소한 k에겐 영어가, 아리에겐 한국말이 서로 도움이라도 돼야하는데··· 아직은 별로다. 할머니는 힘든 중에도 정성을 다 하는 엄마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도저히 다음에 또 오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k가 온 후로 아리의 한국말이 약간 늘었나? 오기 전에도 할머니와의 한국말 대화에서 고급의 한국말 단어들을 가끔 구사하고 한국말을 거의 알아들었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셈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k는 가끔 ‘고모’가 아리나 ‘매형’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보라고 권했기 때문에 아리의 말을 귀담아 듣고 따라 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리는 한국말을 가끔 섞는데, 주로 부정적인 의미들의 단어나 말뜻인 경우가 많다. ‘양보’를 비롯해서, ‘하지마라’ ‘이게 뭐야’ 등.

외국어는 흔히 나쁜 말부터 귀에 들어온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지금은 k의 무응답에도 전혀 무심해서 계속 건이 같이 놀자!를 불러대지만, 쥐어박거나, 짜증내는 소리 등 자신에게 돌아오는 불편한 태도에 무안해 하면서 으아함을 몸이나 표정으로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그런 순간에도 점점 익숙해져 가는지 k가 그렇거나 말거나다. 시시때때로 아리가 목이 터져라 반복하는 말을 무반응으로 묵살하고, 따돌리는 k의 태도와 애달아하는 아리의 태도가 안타까워서 할머니가 아리의 놀이상대나 말상대가 되어주곤 해서 그 순간을 넘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는 아리와 쌍벽을 이루며 ‘고모’에게 제 말을 해오는데 가끔 할머니가 ‘k, 지금 아리가 말하잖아.’하기도 하지만 k는 마지못해하거나 꼭 아리가 어쩌고 저쩌고··· 핑계를 대곤 할 뿐, 별 효과는 없다.  

아리의 어려서 헤아리지 못하는 무개념과 지나친 익사이팅도 문제다. 온통 놀이만이 주관심이고, 주로 달리기처럼 활동적인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할머니가 일일이 상대가 되어줄 수 없어 어렵다.

두 철없음이 만났으니 오죽하랴!

 

 

 

 

 

 

 

 

수영장에 다녀와서 7시경, 누나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리, k가 제각각 놀고 있는 틈을 타서 할머니는 살짝 할머니 방으로 올라와서 모처럼 컴 앞에 앉아있는데도 아리가 줄곧 k에게 이것저것 놀자고 요청하는 목매는 소리와 그것을 무관심으로 누나에게 이것저것 말을 하는 건이, 건이 대화상대가 돼주면서 아리를 제지시키는 누나의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는데, 아리를 말리는 소리가 끊임이 없는데, 어느 순간 쨍그렁!

달려 내려가보니 아리가 체스판을 떨어트려서 깨어졌다. 놀자고 조르다가 k는 들어주지 않고 엄마는 방을 치우라고 하고. 아리가 거실에 가져왔던 체스를 정리하여 방으로 옮기다가 유리로 된 무거운 체스판이 상자에서 벗어나 떨어진 것이다. 실수다. k는 놀다가 어질러져도 절대로 치우지 않고, 치우라고 시켜도 핑계만은 대면서 자리를 옮겨 흥떵거리며 또 다른 어지러움을 만들 뿐. 이부자리를 펴고 개는 일도 전혀 안 한다. 시켜도 안 듣고 오히려 페트릭에게 해달라고 한다. 아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 이미 엄마와 할머니는 익숙하다. 그래서 늘 치우는 것도 아리 차지다. 조금 전에 엄마가 아리에게 치우라고 종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리는 비명에 가까운 진한 울음을 터트리고 엄마가 한숨을 쉬며, 버큠으로 청소를 했다. 할머니에게 안긴 아리의 작은 몸둥이가 뜨겁게 흔들린다. 체스판에 대한 애착이 강함이 드러난다. 요즘 체스 때문에도 아리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던가. 아리는 함께 하고 싶은데 룰을 정확히 이해 못하기 때문에 k는 늘 따돌렸었다. 어쩌다 잠간동안 상대를 해주는 동안에도 아리를 탓하는 소리가 끊임이 없고, 한 순간 안해! 하고 돌아서버리는 k. 그때마다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기 하는 아리. 아리 혼자 맥이 풀어져 있다가 치우라는 소리에 아리가 치우거나 할머니가 치우곤 한다.

감정 억제를 하지 못할 만큼 어려워하면서 헉헉,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우는 아리를 할머니가 안고 진정시키는데, 실수니까 괜찮다. (사실 그 실수도 k가 아니었으면 안생겼을 일이다.)그러나 실수도 많이 하면 안 되고 침착하지 않으면 실수가 많다. 조심해야지, 하면서 지금 어떻게 해줄까? 무엇이 필요 한가? 를 물었더니 ‘아이 니드 데디!’ 했다. 가장 힘든 시간엔 역시 아빠다. 아빠는 아직 회사에 있으니 퇴근해서 오실 때까지 기다리자 했다. 잠시 안겨 울더니 감정제어를 못하고, 혼자서 세탁장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현관의 신발장 안으로 숨어든다. k는 곁에서 서성이며 얄미운 소리만 한다. 휴우~

게다가 수시로 헤리포터 보자고 조른다.

 

 

 

 

 

 

 

k의 고집과 집념은 정말 대단하다. 우리집은 언제나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본다. 주말에나 보자. 약속이나 규정은 꼭 지켜야한다, 고 그토록 말했건만, 그리고 요청할 때 마다 이유를 설명하며 안 된다고 하는데도 며칠 동안을 수시로, 거의 3분 간격으로 떼를 쓴다. 할머니가 학원에 데리고 갈 때도 불쑥불쑥 ‘오늘은 헤리포터를 볼 수 있어요?’ 하고 픽업하자마자 ‘집에 가서 헤리포터 봐요.’ 하는 건이다. 그때마다 할머니 역시 ‘지난 번에 약속했잖아. 약속대로 해야지’ 하지만 참 심하다.

아리는 지하철을 내려와서 플렛폼 주변 광고판마다 붙어있는 헤피포터의 포스터를 보면서 ‘할머니, 헤리 포터! 여기도, 저기도!’하면서 좋아라 한다.

아, 오늘 수영장에서 내려오면서 아리가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할머니를 향해서 외쳤다.

“에스프레소!”

헤리포터를 보고 주문을 외우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계속되었다. 정말 아리는 장소 불문하고 항상 즐겁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k는 무관심.

“아앗!”

할머니가 쓰러지는 흉내를 내거나

“열려라 참깨!”

하고 엉뚱한 주문으로 받아준다. 그렇게 할머니가 아리의 상대가 되어주면 그제야 k가 툭, ‘프로테늄!’ 하면서 슬쩍 끼어든다. 내가 더 안다!는 표현이다. 할머니 역시 그런 k에게 무심함을 가장한다.

페트릭이 이부자리를 깔아주는데 영문을 모르니까 전처럼 깔았다. 눈짓을 한 다음 할머니가 다시 들어가 교체를 하는데 k가 들어왔다. 어! 하더니 웬일로 수월한 반응이었다. 할머니가 벼개를 노란 타월로 감싸니까 감싸지 않는 게 더 푹신해서 좋다고 감싸지 말라고 하고, 이대로가 좋다고 하고, 이불도 바뀌었다면서 내일저녁부터는 처음대로 깔아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