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단편소설-오이소박이

천마리학 2012. 2. 29. 20:20

 

 

 

오이소박이   *   권 천 학

-경희해외문학상대상수장작품

 

 

 

 

“배라먹을 짜식!”

아리랑식당의 뒤뜰, 울타리 가의 벤치 위에 쏟아지는 오후 3시의 초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경애는 주방장 모자를 벗어 벤치 위에 떨어진 햇살을 툭툭 날려버리고 걸터앉자마자 앞치마의 주머니에서 담배부터 꺼내 문다.

“너 혹시 내가 식당주방에서 일한다는 말 진수에게 한 거 아냐?”

경애가 주방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수에게 하지 말라고 경주에게 당부한 것은 진수에게 좀 더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진수가 힘든 엄마의 처지를 생각하며 자포자기에 빠질까봐서. 머지않아 스스로 옷가게를 차려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진수를 데려올 작정이라고, 좀 성급하지만 이른 언질을 준 것도 그것이 더 진수에겐 희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수가 4년제가 아닌 전문대학을 간다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데 요리전공, 그것도 한국요리를 전공하겠다고 하니 억지로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경주에게 다져본 말이었다.

“아니, 안 했어. 언니가 그 말은 하지 말랬잖아. 너무 뜻밖이라서 나도 놀랐어.”

아직도 경주의 목소리가 귓바퀴에서 아직도 뱅뱅 돈다.

어미에 대한 반감으로 빗나간 걸까?

떨어져 산 6년 가까운 시간동안 아이의 적성도 모르고 지난 것이 또다시 죄의식으로 덮쳐왔다. 삶이 이토록 파김치로 죽 쑤어질 운명이 될 줄이야. 이게 다 그 ‘베라먹은 짜식’ 때문이다.

여자라 해서 다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요리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먹으면 된다. 경애가 그렇다. 어릴 때 가끔 어머니를 도와 밥상을 차리면 식구들이 맛있다고는 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가지나물을 만들어 상에 올리면 아버지는 늘 어머니가 하는 것보다 더 맛있다고 했었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빵공장에 다니는 엄마가 늦어질 때 대신하는 경애에게 미안함을 대신한 칭찬이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결혼해서 살 동안에 경애가 담근 파김치는 유난히 맛있다고들 했다. 남편은 물론 올케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경애표 파김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애가 요리를 먹고사는 방편으로 삼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 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런데 진수까지 요리전공학과로 진학을 하겠다니. 참 묘하게 변했구나.

 

 

 

 

 

9월, 벌써 들쭉날쭉 늘어선 지붕들 너머로 보이는 크리스티 피츠 파크 (Christie Pits Park) 귀퉁이의 나무들이 가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슴에 맺힌 울분도 가을을 맞이하여 색이 바래지는 나뭇잎처럼 바래졌으면 좋으련만 택도 없다. 경주와의 통화로 오히려 묵직한 쇳덩이가 얹히고 그 ‘배라먹을 짜식’에 대한 분이 다시금 솟구쳐왔다.

“개새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 나서 가슴 밑바닥까지 고여 있을 니코틴을 뿜어내기라도 하듯, 후욱~ 머금은 담배연기를 깊게 토해낸다.

그냥 ‘빌어먹은 자식’이라고 하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아서 말을 비틀어 ‘배라먹을 짜식’이라고 하고, 그 한 마디로도 부족하여 ‘개새끼’가 한 마디 더 붙여졌다. 그 두 마디 말로서 어찌 분한 마음을 다 풀어낼까만 그래도 그 두 마디는 한 쌍을 이루어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속에 쌓여있는 울화의 어느 한 귀퉁이를 눈곱만큼이라도 삭여내는 것으로 써먹는 육자배기가 되어 아예 입에 올라 혼잣소리처럼 수시로 튀어나오는 입버릇이 된지 오래다. 오늘따라 한 쌍의 육자배기를 뱉어내어도 시원치가 않다. 늘 하던 대로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고 저녁식사 준비시간 사이에 잠깐 나와 피우는 담배의 꿀맛도 사라졌다.

어디 4년제 대학만 대학이냐. 중요한 시기에 어미 떨어져 할머니와 살면서 이모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뭔들 충분할 것이며 뭔들 힘들지 않을까. 다 내 탓이고 내 잘못이지. 그래, 경애말대로 전문대학이라도 가서 취업이라도 하겠다니 그것만 해도 신통방통이지.

“그나저나 언닌 어때? 잘 지내지? 건강하구? 언니일이 빨리 풀려야 오든지 가든지, 빨리 합치지. 진수 할머니도 연세치곤 아직까지는 짱짱하시지만 그래도 어디 노인네 건강 믿을 수 있어? 그러니까 언니, 언니자신을 위해서도 포기할건 포기해버려. 이젠 시간도 그만큼 흘러 버렸으니 분을 삭힐 때도 됐잖아. 언니가 빨리 마음도 잡고 자리도 잡아야지.”

6년, 분을 삭힐 때가 됐다고? 흥,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마지막 화풀이라도 하듯 허리를 굽혀 시멘트 바닥에 담뱃불을 거칠게 눌러 비벼 끄고는 마당 귀퉁이에 줄서듯 놓여있는 세 개의 쓰레기통을 향하여 휘익 꽁초를 던진다. 아까부터 쓰레기통을 들락거리던 갈매기 두 마리가 움찔 하다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쓰레기통 주변을 알짱거린다.

“뭐 먹잘 게 있다고… 쯧”

괜히 기러기가 측은하게 느껴져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의미 없이 던진다.

처음 토론토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도시의 건물 위에 날아다니는 기러기가 너무 신기했다. 도시의 지붕에 웬 기러기? 비둘기라면 모르지만. 그런 생각과 함께 왠지 자기 자신이 기러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살면서 줄곧 기러기는 가을 새이거나 바닷새이거나. 거기다 더하여 시리게 푸른 가을 창공을 지나 먼 길을 떠나는 철새 정도의 상식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던 새였다. 그리고 기러기가 아니라 갈매기라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만 기러기나 갈매기나 경애에겐 낯선 곳을 떠도는 외롭고 썰렁한 존재임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불쑥 떠오르는 노래 한 가닥, 아주 오래 전에 불렀던 기억 속의 노래 한 소절을 웅얼거리곤 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하긴, 쓰레기통 뒤지는 니 신세나 낯선 땅에서 헤매는 내 신세나… 그게 다”

육자배기가 또 튀어나오려는 순간 식당의 뒷문이 열리며 주방 보조인 한씨 아줌마가 얼굴을 내민다.

“오이 배달 왔어. 진수 엄마. 지금 절일까?”

“그러세요.”

한씨아줌마의 모습이 안으로 사라지자 경애는 벤치에서 일어나 옆에 놓았던 주방장 모자를 들어 허벅지 위에 대고 탈탈 턴다. 마치 앞치마에 내려앉는 가을볕을 털어내기라도 하듯이. 그 ‘개새끼’를 두드려 패기라도 하듯이.

 

아리랑식당의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한 첫날, 주문받은 오징어볶음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바짝 달아오른 프라이팬에서 차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가 튀어 올랐다. 튀어 오른 물기 한 방울이 얼굴로 튀었다. 순간적으로 앗 뜨거! 하면서 한걸음 물러섰다. ‘배라먹을 짜식!’하고 뱉어내었다. 그리고 이어 커다란 뒤지개로 뒤집어가면서 ‘개새끼!’ 물론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육자배기였다. 보고 있던 한씨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다음부턴 오-징어 볶음 주문받지 말까-요 주방장니임?”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간 육자배기 때문이라는 걸 직감했다. 어쩌면 경애가 오징어볶음을 잘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못 들은 척 했다. 한씨아줌마가 뜨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했다. 오징어볶음을 서빙하고 주방으로 들어와 경애의 눈치를 살피며 다가오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주방장님, 저어 다음부턴 오징어볶음…”

“왜요? 주문 많이 받아야지요. 그래야 장사가 잘 되죠. 장사가 잘 돼야 아줌마나 나나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 아녜요?”

경애가 말허리를 자르며 능청을 떨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웃기까지 했다. 그런 경애를 보고 오히려 야릇해진 것은 한씨아줌마였다.

“참, 아줌마 성이 한씨라고 했죠?”

“네에-. 왜요?”

말꼬리를 길게 빼면서 이상하다는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찾는 배라먹을 개새끼가 한 씨라서요.’하고 싶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한 씨라고 하는 개자식이 있어서요’하는 말을 혀 아래 눌러버렸다.

“여기 사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여기 식으로 남편 성을 따라 쓰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한씨 아줌마도 그런가 해서요.”

 

이민 8년차인 한씨아줌마, 이민 선배라고 해서 별반 사정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대충 고향친구의 말만 믿고 이민 왔다가 몽땅 날리고 이제 겨우 안정이 되어간다는 것과 남편이 한인교회에서 허드렛일을 봐주며 살아간다고 했다. 안정이 되어간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이 아니라 사기를 당하고 쓰러진 몸과 마음을 이제야 겨우 추스르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네에, 난 또… 난 내가 한씨예요.”

그래도 뭔가 석연찮았는지 한씨아줌마 역시 조금 전에 성애가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삐쭉하는 제스처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김빠진다는 표시 같았다.

경애가 다시 김빠진 분위기를 부추켰다.

“한씨아줌마, 절 주방장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도 한씨아줌마 대신 언니라고 부를게요.”

마흔 아홉인 자신에겐 언니뻘 되는 오십대 중반의 주방보조 한씨아줌마와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였다.

“그럼 내가 뭐라고 불러?”

“진수 엄마.”

“아하, 아들 이름이 진수구나. 그럼 그러지 뭐.”

그렇게 서로 호칭을 풀었어도 가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삐딱할 땐 ‘주방장님’이나 ‘한씨아줌마’로 돌아가긴 했지만, 한결 친숙하고 편안해졌다. 경애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자신이 진수의 엄마임을 스스로에게 새겨두고 싶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절여지고 있는 오이들을 뒤적이며 경애가 말했다.

한씨아줌마가 대답대신 바라봤다. 어디 다녀올 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한씨아줌마는 연배도 연배지만 타국생활에 많은 경험을 한 탓인지 비교적 사려 깊고, 서양식 예절도 어느 정도 잘 습득하고 있다. 그런 한씨아줌마에 대한 예의로 한 박자 늦은 대답을 한다.

“은행에 잠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체국에도 아예 다녀 올 계획이다.

“알았어. 오래 걸리지 않지?”

“녜, 갔다 와서 이거 담을 테니까 준비 끝내 놓으세요, 언니.”

경애는 앞치마를 벗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졌다.

은행은 걸어서 5분 거리지만 생각은 닷새분량이다. 진수 통장으로 5천불을 송금하고 은행을 나왔다. 마음 같아서야 이곳으로 데려와서 공부시키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송금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5천불, 한화로 환산하면 5백만 원 정도이다.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열심히 모은 돈이기도 하다. 진수의 대학 등록금이라도 치러주고 싶었다. 물론 경주가 염려 말라곤 했지만 그냥 말 수가 없었다. 경애에겐 큰 돈이면서 적은 돈이기도 하다.

은행을 나와서 근처의 우체국코너가 있는 대형 잡화점 샤퍼즈 드럭 마트(Shoppers Drug Mart)로 갔다. 카드판매대에 먼저 들렀다. ‘Love’ 라고 인쇄되어 있는 카드 한 장을 골라 창가의 의자로 갔다. 가슴이 떨렸다. 손가락도 떨렸다. 처음으로 부치는 카드. 힘들게, 천천히 썼다.

<진수야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 요즘 대학입시 때문에 힘들지? 전문대학 간다면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리라고 믿어. 진수를 사랑하고, 언제나 미안한 엄마가>

이 짤막한 문장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동안 가슴 속에 쌓여있는 말들이 고작 이것뿐이라니. 먹먹하기만 했다. 마지막 ‘엄마가’를 쓸 때쯤엔 기어이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도 내가 엄마일 수 있을까? 아직도 어미 자격이 유효한가? 그래서 ‘이곳으로 너를 초청할게.’ 라는 말을 차마 쓰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수월치 않았는데 앞으로 또 일이 어떻게 풀릴지. 언제쯤 형편이 좋아질지, 짐작할 수도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장담했다간 거짓말쟁이가 되어 진수를 더욱 실망 시킬 것 같아서다. 그래서 ‘조금만 더 기다려 줘’라고만 썼다. 그래도 카드를 부치고 돌아오는 거리는 한결 산뜻했다. 바람이 서늘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가벼워졌다. 이번 겨울이 따뜻할 거란 예감이 들기도 했다. 아니, 이번 겨울은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바람결에 밀려온다.

 

모처럼 마음이 뿌듯해진 경애가 서둘러 식당으로 돌아와 오이소박이를 담기 시작했다. 잘 절여진 오이와 준비한 양념들을 알맞게 버무려 소를 박았다. 사흘 후면 제임스가 회사동료들을 몰고 올 예약일이니 그 날짜에 맞추어서 오이소박이를 충분히 준비해놔야 한다. 곁에서 시중을 들던 한씨아줌마가 입을 연다.

“역시 진수엄마 손맛이 최고라니까.”

제임스가 주문한 오이소박이의 제 맛을 살리려면 오늘 담아서 숙성시켜놔야 한다. 제임스는 갓 담은 오이소박이도 좋아하지만 약간 숙성된 오이소박이를 더 좋아한다. 한씨아줌마가 다시 입을 연다.

“제임스 그 사람 참 괜찮아 보이잖아?”

제임스가 은근히 경애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경애의 속을 떠보는 말이다. 두 사람이 맺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을 열지 않는 경애가 안타깝다.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지만 자식 떼어놓고 혼자서 낯선 나라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돌아갈 것 같진 않으니 그럴 바엔 누군가와 맺어져 사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어서다. 젊은 여자 혼자서 치루는 타국생활이 얼마나 힘들까? 그런 경애가 동생처럼 여겨져서 늘 안쓰럽다.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버무려진 오이소박이를 항아리에 담는 경애를 향해서 한 톤 높여 한 마디 더 던진다.

“안 그래요 주 방 장 님?”

“여기 진수엄마밖에 없는데요.”

“그거나 저거나…”

‘뭐가 그거나 저거나예요? 어 다르고 아 다른데···”

경애가 잠깐 시선을 주었다.

“워킹비자 갱신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가요, 한 씨 아 줌 마?”

“이그. 알았어, 알았어, 진 수 엄 마.”

그제야 두 사람이 서로 통한 속을 알고 싱겁게 웃는다.

 

 

아리랑식당의 주방장이 되기까지 고생도 할 만큼 했고, 토론토바닥을 뒤질 만큼 뒤지기도 해서 이젠 알 만큼 알게도 되었다. 그동안 온갖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 얼마동안은 희숙의 집에서 눈치 보며 빈둥거리기도 했고, 희숙의 소개로 사무실 청소도 해봤다. 한인식당의 설거지나 반찬보조를 하면서 옮겨 다닌 식당이 세 군데나 된다. 희숙의 고마움에 대한 답으로 짬을 내어 희숙에게 반찬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정통 한국맛, 그 깊은 맛을 혼자 먹기 아깝다면서 희숙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전하여 돈을 받고 반찬을 공급하도록 주었다. 투 잡이 되었다. ‘개새끼’를 찾기 위해서라도 토론토를 떠날 수는 없다. 그러자니 경제적 자립이 더욱 절실해졌다. 경제적 자립이 되면 진수와 시어머니도 모셔올 수 있다.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서 식당 일이 가장 수월했다. 영어도 서툰데다 ‘개새끼’의 거처를 염탐하거나 잡는 일에도 유리할 것 같았다. ‘언제건 처먹으러 나타나겠지. 지가 안 먹고 견뎌?’ 어리석은 기대일진 모르나 접지는 않았다. '언제 나타날래? 개미귀신이라도 되어 구덩이 파놓고 기다리마' 하며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코리아타운의 한식당주인들 사이에 음식솜씨가 어는 정도 인정받는 판이니 요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지름길로 판단됐다. 그래서 어렵사리 영어공부도 하면서 요리학원을 다녔다. 일 년 만에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마침 지금의 아리랑식당의 주방장 자리가 나자 주인아저씨가 먼저 손을 뻗어왔다.

 

사실 요리사가 된 후 첫 직장인지라 경애에게는 손님들의 반응이 매우 중요했다. 요리에는 특별한 재주가 없을망정 기왕 요리사로 취직을 했으니 원망은 듣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경애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리랑식당의 음식 맛이 좋다는 평이 나고 손님들도 늘었다. 반찬 만들기에 더욱 신경을 썼다. 한국식당이면 다 하는 일반 메뉴들이지만 주 요리와 함께 나오는 반찬들에 대한 평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김치를 비롯하여 멸치볶음, 감자볶음, 땅콩조림, 콩나물, 무나물, 배추나물 등의 나물류와 오징어채무침, 그리고 오이소박이 등이다. 그 중에서도 오이소박이의 인기가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옛 추억을 되살리며 파김치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김치를 담가보기도 했다. 그러나 캐나다의 파 품종으로 담그는 파김치로는 한국에서의 ‘경애표 파김치’의 맛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진수가 좋아하던 오이소박이를 담아보기로 했다. 물론 오이도 한국의 오이와 똑같은 품종은 찾기 어려웠다. 한국의 오이를 최소한 서너 개는 합쳐야 할 만큼 큰 캐나다의 오이, 그 팔뚝만한 크기에서부터 사람을 질리게 했다. 맛도 없어 보인다. 실제로 맛도 없다. 다행히 육질이 단단하여 사각거리고 맛도 한국오이와 비슷한 피클용이나 통조림용으로 쓰이는 품종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피클용 오이로 담그면 오히려 한국에서의 오이소박이보다 더 사각거리고 고들거려서 좋았다. 쉽게 물러지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실험과 궁리 끝에 담가내는 오이소박이가 손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자연히 오이소박이 떨어지는 날이 없도록 신경 쓰게 되었다. 한국 손님들도 그랬지만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아리랑식당을 찾아오는 외국사람 단골들도 오이소박이를 즐겨 찾았고, 어쩌다가 우연히 찾아온 외국손님들 중에는 오이소박이 때문에 단골이 되기도 했다. 산뜻하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셈이다. 주로 샐러드로 이용하거나 피클로 만들어 햄버거사이에 끼워먹는 정도의 오이를 김치로 만들어먹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리랑식당의 오이소박이’란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오이소박이. ‘아리랑식당의 오이소박이’가 유명해지면서 주인아저씨의 얼굴도 싱글벙글이 되었고, 경애의 입지도 좋아졌다. 한씨아줌마는 ‘역시 진수엄마 손맛이 최고야’ 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경애에게는 오이소박이가 가슴 아픈 메뉴이기도 하다. 진수가 좋아하는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진수는 어렸을 때부터 경애의 매콤한 오이소박이를 좋아했다. 오이소박이가 적당히 익어 신맛이 돌 때까지도 진수는 오이소박이 한 가지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녀석이었다. 막 담갔을 때는 싱싱해서 좋다면서 경애의 귀에 입을 대고 사각사각 씹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시큼하게 익으면 익어서 좋다고 하며 시어진 국물에 밥을 비벼먹곤 했다. 그런 아이를 ‘배라먹을 놈’ 때문에 할머니에게 맡기고 흔한 오이소박이를 먹이지 못하다니. 오이소박이를 담글 때마다 가슴에 걸려있는 자식, 죄인일수밖에 없는 어미의 마음이다. 진수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오이를 절이고, 고춧가루에 부추 소를 버무리면서 아리게 생각하고, 아린 속으로 울고, 울면서 사죄하고… 그러면서 ‘개새끼’를 어떻게 잡을까 이를 간다.

 

제임스는 오이소박이가 좋아서 아리랑식당을 찾아오는 외국사람 중의 하나다. 한국음식이 좋아서 가끔 코리아타운에 온다는 그가 우연히 아리랑식당에 들렸다가 오이소박이 맛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리고는 단골이 되었다. 단골이 되어 낯이 익어갈 무렵인 어느 날 그가 꽃다발을 들고 식당에 왔다. 오이소박이를 만들어낸 주방장을 만나고 싶다고 면담을 요청했다. 주인아저씨의 부름을 받고 홀로 나온 경애에게 그는 맛있는 오이소박이를 먹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아리랑식당사람들 모두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가족처럼 친근한 단골이 되었고, 갓 버무린 오이소박이에서부터 약간 숙성된 오이소박이, 많이 시어진 오이소박이까지 다 맛 볼 수 있게 되었다. 오이소박이라면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삼일 숙성되어 약간 새큼한 맛을 내기 시작했을 때의 오이소박이를 더 좋아했다. 시어진 국물에 밥 한술 넣어 비벼먹는 것까지 영락없는 한국사람 입맛이다. 그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오이소박이를 먹거나 시어터진 오이소박이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것을 볼 때마다 경애는 자신도 모르게 진수도 그랬는데… 하고 떠올리며 마음이 시어졌다.

 

그렇게 말문을 튼 제임스와는 친구처럼 되어갔다. 주말이나 휴일, 특별한 날, 이를테면 경애가 한 달에 한번 일찍 들어가는 마지막 목요일 같은 날에 맞춰 박물관에도 가고 교외로 드라이브도 한다. 답답한 경애의 일상에 숨통을 터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주인아저씨나 한씨아줌마도 은근히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해주었다. 그가 올 때마다 경애는 특별히 바쁘지 않으면 직접 서빙도 하고 대화도 나누게 되고… 그러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는 영 스트리트(Yonge Street)와 칼리지 스트리트(College Street)가 만나는 곳에서 조그만 프린트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십년 전에 아내와 이혼하고 싱글로 살고 있었다.

 

일하는 사이사이 주방과 홀 사이에 나지막하게 막아진 유리창 너머로 자주 홀을 살피 는 것이 경애의 습관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저 습관이려니 하고 넘기고 있었지만 한씨아줌마는 뭔가 낌새를 눈치 채고 있다. 홀을 살피는 경애의 눈매에서 어딘가 심상찮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냥 홀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홀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을 일일이 체크한다고 이해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대한 손님들의 반응이 어떤가 살피는 것. 그래서 가끔 한씨아줌마는 필요이상의 말을 경애에게 한다. 경애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는 의도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식당 음식이 참 맛있다는 거 손님들이 다들 인정해’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땐 ‘저쪽 7번 테이블 있잖아, 저 손님이 우리 집 불고기 양념이 아주 특이하대. 자기가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서 가장 맛있다는 거야. 그래서 불고기 먹고싶을 땐 꼭 우리 집으로 온다잖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오이소박이에 대한 것이다.

“한국음식 중에서도 김치 불고기 모르는 사람은 없지. 그런데 저쪽 구석에 있는 팀들이 오이소박이를 벌써 세 번째 추가야. 오늘 처음 먹어보았는데 아주 특이한 맛이라는 거야. 역시 진수엄마 손맛이 최고라니까.”

필요이상으로 손님들의 칭찬을 전달하는 것이 경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한씨아줌마의 배려라는 것을 경애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경애의 진짜 속마음을 모르는 한씨아줌마의 말은 귓가를 겉돌 뿐이다. 경애는 그런 한씨아줌마가 미안해서 피식 웃고, 한씨 아줌마는 자기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눈을 흘긴다.

 

갑자기 도마 위에서 소리를 내며 뚜닥거리던 칼질소리가 멈췄다. 아주 짧은 시간, 홀 쪽을 응시하는 경애의 얼굴이 굳어졌다. 숨이 멎는 듯, 머리끝이 쭈뼛, 소름이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하나, 두울, 셋! 숨을 고르던 경애가 튕겨지듯 홀 쪽으로 뛰쳐나갔다. 문턱을 넘어오던 한씨아줌마가 아슬아슬하게 비켜섰다. 주방 안쪽에서 양파를 다듬고 있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학생이 굽혔던 허리를 펴고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놀란 한씨아줌마의 눈길이 경애의 뒤를 따랐다. 홀로 뛰어나간 경애는 벽면에 잇대어있는 8번 테이블에 다가서자마자 거기 앉아서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남자의 멱살을 휘어잡는다.

“이 배라먹을 자식~ 야 이 개새끼야~”

조용하던 홀의 분위기가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계산대에 앉아있던 주인아저씨도 놀라서 바라본다. 경애에게 멱살을 잡힌 남자가 토끼 눈을 뜨고 반사적으로 경애의 팔을 비틀어 잡으며 일어섰다. 그 순간, 아! 소리와 함께 입에 비수라도 문 듯 날카롭던 경애가 멱살잡이 한 손을 놓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홀에서 서빙을 하던 두 아가씨가 놀라 일손을 멈춘 채 바라보고, 주인아저씨가 다가가고, 한씨아줌마도 다가가고,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

“오우, 쏘리, 쏘리, 쏘리, 쏘리…”

횡설수설 쏘리라는 단어만 입에 올리며 겨우 몸을 일으킨 경애가 한씨아줌마에게 끌려서 주방으로 떠밀려 왔다.

“미안합니다. 제가 찾는 도둑놈인 줄 알고 그만.”

주방으로 들어와서 영문을 묻는 주인아저씨에게 대답하고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급하게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토끼 눈을 하고 서있는 손님에게 다가가서 극진하게 해명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해명이 수월하게 받아들여졌다.

“If he looks like me, he must be a pretty good-looking guy…(나를 닮았다면, 꽤 잘 생긴 모양입니다…)”

토끼눈의 남자가 던지는 위트 있는 한 마디로 홀 안에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돌발적으로 일어난 짤막한 해프닝이 싱겁게 막을 내렸다. 경애가 아리랑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여섯 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엉뚱한 실수를 하고보니 경애로선 겸연쩍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리랑식당 식구들에게 감추고 있던 비밀을 온통 다 들통이 난 기분이기도 했다. 물론 그 일을 계기로 그동안 경애가 주방에서 일하는 중에도 수시로 홀을 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씨아줌마의 생각도 바뀌었다. 자신의 음식에 대한 소님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그 일로 해서 어정쩡하게 다소 풀죽은 모습이긴 했으나 치 뜬 시선으로 수시로 유리 칸막이 너머 홀을 훑어 내리는 경애의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이 IMF의 직격탄을 맞았을 때 남편은 다니던 자동차부품 생산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실직자생활로 갈피를 못 잡던 남편이 택시운전을 해보겠다고 택시회사를 전전하다가 자유롭고, 노후보장이 된다는 말에 혹하여 빚을 내어 비싼 권리금까지 주어가며 개인택시를 사들였다. 개인택시를 사들인지 석 달쯤 된 어느 늦은 밤에 무단횡단을 하는 행인을 피해 급하게 핸들을 꺾다가 앞서가는 트럭을 들이받고 전신주에 부딪쳐서 논두렁에 처박히는 대형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중환자실에서 반년을 보낸 남편은 빚만 잔뜩 남기고 끝내 마흔 아홉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서른아홉의 경애에게도 세상이 끝나는 것과 같았다. 졸지에 과부가 되고, 알거지가 되고, 빚장이가 된 경애에게 시어머니는 쌍 아홉수가 악수(惡數)라고 한탄하면서 살던 시골집과 코딱지만 한 논밭 떼기를 모조리 팔아 아들 병원비를 청산하는데 보탰다. 경애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빚을 대충 갚고 전셋집을 얻어 시어머니와 합쳤다. 진수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대형슈퍼마켓의 매장에 판매원으로 취직을 하여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러다가 동생 경주의 도움으로 신림동에서 조그만 피자가게를 인수받아 경영하기 시작했다. 판매원으로 일 할 때 보다 수입이 좋았지만 일은 훨씬 고되었다. 굴절을 겪고 후 다시 희망이 보일락 말락 할 때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할 데가 필요했다. 피자가게가 있는 건물의 3층에 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가면서 만나게 된 놈이 ‘개새끼’ 한성조이다. 겨우 일어서려는 자신의 삶을 헝클어버린 놈. 교회의 부목사였고 경애와는 동갑나기였다. 동갑나기라고 더욱 친하기도 했고 워낙 성실하여 신도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던 놈이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심방 때도 그랬지만 가끔 핏자가게에 들려서 어울리지 않는 오이소박이를 곁들인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청주 어딘가에 개척교회를 차려서 나가게 되었다. 신도들은 유능한 젊은 부목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아 또 하나의 역사(役事)를 이루어내는 것을 기뻐하며 축하했다. 자발적으로 개척교회의 모금을 했다. 알게 모르게 개인적으로 헌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개새끼’가 은밀하게 경애를 찾아왔다. 진지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일이니 몇 배의 축복이 내려지리라고 하면서 틀림없이 일 년 후에 큰 이자를 붙여 돌려주겠다고 했다. 많은 신도들이 관여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일에 마(魔)가 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차피 모아진 돈을 통장에 넣어봤자 이자가 붙는 것도 아니어서 성스러운 일에 쓰이는 것이 훨씬 뜻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의심 없이 물론 이자도 없이 빌려주었다. 오년 동안 피자가게를 해서 모은 5천만 원이었다. 시어머니께 시골집을 마련해드리려던 돈이다. 그러나 ‘개새끼’가 청주로 내려간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모두가 사기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자 없이 준 이유 때문에 경애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경애와 ‘개새끼’ 둘이서 배를 맞춰가며 벌인 사기극이니 은신처를 대라고 몰아붙였다.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소문은 진실처럼 굳어져갔다. 아무리 경애가 아니라고 한들 소용이 없었다. 혼자 사는 점, 동갑나기라고 친하게 지낸 점, 이자 없이 큰돈은 준 점까지 모두가 경애를 공범으로 몰아세우는데 잘도 들어맞았다. 법에 고소하고 싶지만 교회의 일이라 차마 못한다고 윽박질렀다. 법으로 호소하고 싶은 사람은 경애였다. 언제 ‘개새끼’와 미래를 속삭이기라도 했다면 모르겠는데, 그동안 모은 살 같고 피 같은 돈을 몽땅 떼인 것만으로도 천길 나락이었는데 추잡한 소문으로 덮씌워지다니, 너무나 억울했다. 경애는 이를 갈았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어린 진수는? 그리고 시어머니는? 더러운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죽을 수가 없었다. 세상 끝까지라도 뒤져서 ‘개새끼’를 찾아내어 목을 따버리고 말겠다고 작정했다.

토론토 어딘가로 잠적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비싼 비행기 싹을 들여가며 서울에서 토론토를 오가게 되자 가정을 내팽개친 꼴이 되었다. 그럴수록 분노와 증오가 단단해져갔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교회들까지 안 뒤진 데가 없을 정도로 뒤지고 다녔다. 한인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뒤졌다. 다행히 80년대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생 희숙이를 수소문 끝에 연결되어 도움을 받았다. 3개월에 한 번씩 국외로 들락거려야 했다. 지금이야 취업비자를 받아서 연장해가고 있지만, 기어코 ‘개새끼’를 잡기 전에는 안 떠나리라.

 

제임스의 예약파티도 무사히 치르고 특별한 일 없는 나날이 흘러가면서 가을만 저 혼자 익어가는 어느 날, 저녁타임 준비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경주의 전화를 받았다. 경애는 핸드폰을 들고 뒤뜰로 나왔다.

“언니, 진수가 돈을 가져왔어. 언니에게 돌려주라고.”

벼락을 맞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감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작년부터 이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더니 언젠가는 이메일마저 반송되었으니까. ‘제 힘으로 하겠대. 내가 주는 것도 안 받아. 그동안 알바를 계속했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언니, 이런 말을 해야 할지… 한국요리 전공한 건 엄마대신 스스로 오이소박이 실컷 담가먹을 거라고… 언니, 언니 듣는 거야? 언니 기분 아는데… 그래도 알고 있긴 해야 할 거 같아서…’ 뭐 대충 이런 말이 들려온 것 같긴 한데,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귀가 멍해지면서 아무소리도 안 들리고 그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힘없이 핸드폰의 커버를 덮었다.

크리스티 피츠 파크의 나뭇잎들이 붉고 노랗게 마지막 용을 쓰고 있는 것이 확연하다. 이번 겨울은 따뜻할 것 같던 예감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얼마 전의 기대가 일순간 노랗게 부서져버렸다. 붉고 노란 나뭇잎들이 수 천 수 만 개로 흩날려 보인다.

 

 

그날 저녁, 처음으로 속사정을 한씨아줌마에게 털어놓았다.

“너무 실망할 것 없어. 그 나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지. 조금만 참고 견뎌봐. 천륜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누가 알아? 아들놈이 엄마를 찾아와 최고의 맛을 내는 오이소박이 밥상을 차려낼지··· 알 수 없는 일이야.”

희극 같은 그 말이 경애의 마음을 옭아매기도 했지만 열리게도 해주었다. 그래 맞아. 지금까지 견뎠는데. 조금만 더 견디자. 견디면서 나도 이 코리아타운에서 오이소박이를 한국음식의 대표주자로 만들어봐? 놀라운 역설에 경애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경애의 마음이 가라앉을 무렵 한씨아줌마가 말을 이었다.

“이봐. 진수엄마. 나 부탁이 있어. 이번 목요일 저녁에 내가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올 텐데, 그날 나와 주면 안 될까?”

목요일은 경애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중요한 사람인가보죠?”

“응, 하필이면 날짜가 그렇게 됐어, ··· 잘 대접하려면 저런 꼬맹이들에게 맡길 수가 없어서 그래. 아무래도 손발 맞는 진수엄마가 있어야···. 주인아저씨 눈치도 덜 보이고. 대신 내가 다른 날 하루 더 나올게.”

“알았어요.”

약속한 목요일, 초저녁 경애는 일찍 퇴근하지 않고 주방에 있었다. 문이 여닫힐 때마다 신경을 쓰던 한씨아줌마가 서로 부축하듯 들어오는 두 남자를 보고 달려 나가 맞이했다. 그때 마침 화장실 계단에서 올라오던 경애가 힐끗 그 광경을 바라봤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는 것을 돕고 있었고 한씨아줌마도 그 옆에 서 거들고 있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겨우 자리에 앉는 남자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몸반쪽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몸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중환자였다. 돕는 남자가 한씨아줌마의 남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가가서 도울까 하다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으로 들어온 한씨아줌마가 음식 서빙을 준비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양노원에서 계시는 분인데, 따져보니 우리 먼 친척뻘 되는 분이더라구. 한국에서 무슨 사업을 하다 망했다는데… 중증중독인데다 골수암까지 번져서… 죽기 전에 한식다운 한식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아마 마지막 외출이 될 거야.”

한씨아줌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리 칸막이 너머로 시선을 보내던 경애가 윽! 소리를 냈다. 겨우 좌정한 후 힘겹게 주위를 둘러보는 남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데다 퀭한 눈과 광대뼈가 거의 해골을 연상시키는 남자, 손까지 덜덜 떨며,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 ‘배라먹을 놈’, ‘개새끼’, 한성주였다.

목울대로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 온몸을 조여 오는 전율. 한씨아줌마가 왜 그러냐고 물으며 놀라 다가섰다.

경애는 애써 견디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흔들며 목에 가시라도 걸린 듯 딴청을 부리면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주저앉아지는 무릎을 겨우 조리대를 짚고 버텼다. 땀이 솟았다. 한씨아줌마가 들이대는 물컵을 받아 마셨다. 이를 악물고 최대한으로 태연을 가장하며 요리를 하고, 한씨아줌마의 요청 이상으로 성의를 다해 음식을 내보냈다. 오이소박이도 담아냈다. 교회모임에서 오이소박이를 맛있게 먹으며 칭찬하던 일이 떠올랐다. 물론 사단이 나기 전의 일이다. ‘빌어먹을. 왜 이 순간에 그런 일까지 떠오르는 거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정신이 제대로 있는지. 그저 둥둥 뜬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가득 먼지들이 들어차는 기분? 야구방망이로 된통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이럴까? 수습되지 않는 감정으로 허둥대느라고 한숨도 못 잤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다. 분노도 울분도 더 이상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사라져버렸다.

 

 

 

다음날, 11월도 다 가는 마지막 금요일. 경애는 전날 밤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방에서 한씨아줌마와 부딪치지 않도록 비켜가면서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소처럼 보내느라고 애쓰다 보니 오히려 뭔가 더 어색해졌다. 가끔씩 코웃음도 아닌, 한숨도 아닌 야릇한 헛웃음이 코를 통해서 나왔다. 오히려 한씨아줌마가 더 걱정스러운 눈으로 경애를 살폈다.

“그 양반, 오늘을 못 넘길 거래.”

귓등으로 들었지만 경애의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여울을 만들었다. 그때 제임스가 들어왔다. 저녁 9시경. 평소의 저녁식사 시간보다 좀 늦은 시간이다. 경애는 여울을 건너 뛰어 홀로 나갔다. 제임스는 지난 번 회식 때 고마웠다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았다.

“오늘 저녁 일 마치고 잠깐 시간을 내 줄 수 있어요, 오이씨?”

 ‘오이’는 친근함을 표시하느라고 제임스가 붙인 경애의 애칭이다. 자진해서 서빙을 하던 경애가 멈칫, 제임스를 바라본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오이씨.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크리스티 피츠 파크로 가요. 거기 차를 세워두었거든요.”

알았다고 했다. 안정되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유리칸막이 너머에서 한씨아줌마가 두 사람을 향하여 윙크하는 것을 등 쪽으로 선 경애는 알아채지 못했다. 마주 보이는 제임스만 싱긋 웃었다. 모든 뒤처리를 한씨아줌마 몫으로 맡기고 조금 일찍 제임스와 함께 식당을 나왔다. 벌써 문을 닫은 가게들도 있었다. 공원이어선지 공기가 한결 싸늘했다. 서쪽 길가의 나무 아래 제임스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혹시 어디를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닌데, 어떻게 입막음을 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제임스가 차 문을 열지 않고 차 뒤편으로 갔다.

“오이씨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요.”

제임스가 트렁크 뚜껑을 열었다. 다가가서 트렁크 안을 들여다보던 경애의 눈이 커졌다. 어머나! 가로등 불빛이 쏟아지고 있는 차 트렁크 안에는 오이가 가득 실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

“오이씨, 이 오이로 오이소박이 담으면 얼마동안 먹을 수 있을까?”

“…………?…………”

“오이씨에게 부탁하는데, 이 오이로 오이소박이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한 번에 다 만들어주는 것보다 두고두고 조금씩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평생 동안.”

“…………?…………”

“모르겠어요? 오이씨? 나 지금 오이씨에게 청혼 프러포즈하는 거예요.”

경애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바늘밥이 터진 부대자루 같았다. 어디서 그렇게 웃음이 용솟음쳐 나오는지 자신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동안 웃어본 일이 없는, 숨겨져있던 웃음보가 터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웃어도 가시지 않는 웃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나무 둥치를 손으로 짚었다. 생각 같아서는 공원의 잔디밭에 나뒹굴고 싶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웃었다.

지켜보던 제임스가 어깨를 들먹이며 따라 웃기 시작했다. 큰 입을 벌리고 제임스가 웃자 경애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큰 키의 우둠지에서 검은 피부 때문에 드러나는 제임스의 하얀 이가 마치 공중에 떠있는 팔찌 같아서였다. ‘무슨 팔찌가 공중에 떠있냐? 입도 크다’ 하면서 웃었고, 순간 아, 저 팔찌가 내 운명을 묶는 수갑이구나 하며 스쳤다. 허탈했다. 이내 웃음이 잦아들면서 눈물이 났다. 눈물을 감추느라고 우우우 이상한 신음소리까지 냈다. 다시 웃음이 터졌다. 한국말을 잘 모르는 제임스는 ‘오이,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웃는 거야? 우는 거야?’ 하며 따라 웃었다. ‘정말 오이소박이 하나 잘 키워야 할까 봐. 진수를 만날 때까지…’ 경애는 그 생각을 웃음 사이에 띄워 날린다.

둘이서 웃어 재치는 소리가 뒤엉켜 공원의 잔디 위를 비추고 있는 불빛 사이를 지나 밤하늘로 따뜻하게 퍼져 나갔다.

 

2010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