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시수필-각, 12월을 깨닫다

천마리학 2012. 1. 16. 03:25

 

 

 <시수필>

각(覺) * 權 千 鶴

-12월을 깨닫다

 

 

 

 

 

                                수레 짐이 무거워 덜고 덜어가면서

                                끝내 다다른 길 끝 등마루 섣달

                                여벌옷조차 없이 가파르게 선

                                흰 소 한 마리

 

                                오르면 닿으리라

                                믿었던 하늘 또다시 저만큼 서 있고

                                숲도 구름도 그 아래 여여하다

 

                                바퀴 아래 깔린 시간들이

                                시퍼렇게 일어서는 모서리에

                                마지막 짐 내려놓고 보면 결국은

                                처음도 끝도 한 타래이므로

                                언제나 발 디딘 그 자리가 한 복판인 것을

 

                                고삐에 매인 마음조차 풀어버리고

                                훠어이

                                큰 숨 한 번 몰아 뿜어내고 보면

                                뿔 달린 짐승도 또한 여여하다

 

 

 

 

 

 

 

 

<모두가 약, 그래서 감사하다>

때는 마침 12월 하고도 마지막 주. 어느 덧 일 년을 마감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먼 듯 가까운 듯, 한 해를 또 보내버리고 나서, 습관처럼 지나와 버린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작년도 있었고 제작년도 있었고 그리고 그보다 더 먼 젊은 시절이 있었지만,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50대도 있었고 40대도 있었고, 30대도 있었고 20대도 있었지만, 특히 한국에서 살 때도 있었지만 ···, 그러나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나를 점검하자. 나는 언제나 세상의 복판이니까.

내가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돌아보자. 잘못했던 부분 혹은 미흡했던 부분을 찾아내어 고치고 새롭게 다지며 출발해야 하니까.

어디에 살든 멀리 갈 것 없다. 나를 중심으로 가까운 시간들을 돌아보면 된다. 한 해 한 해가 쌓여서 나를 이루어 나가고, 금년 한 해도 또한 역사 속으로 들어갈 테니까. 멀리 보기 위해서 굳이 먼 시간을 더듬지 않아도 된다. 먼 시간 속의 일들은 이미 화석이 되어버려 고치기 어렵다. 추억으로 접어 둘 뿐이다. 그러나 바로 어제의 실수, 가까운 시간 속의 실패는 만회하기 쉽다. 그런 의미로 해마다 이때쯤이면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연말의 점검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럴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꽤나 힘들었던 시간들도 이렇게 지나고 보면 다 그만그만하게 느껴지고 어디 그리 어려운 일이 있었기나 했었던가 하고 덤덤해진 것도 사실이다. 많아진 나이 탓일까?

 

 

 

 

 

 

젊었을 때는 왜 그리 힘 든 고비도 많고 왜 그리 거슬리는 일도 많은지, 연말이 되면 다 잊고 새해부터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자! 하고 다짐하며 시작하지만 어느 덧 불평과 불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곤 했다.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변으로부터의 불만, 가족으로부터의 불만···

거꾸로 나 자신으로부터의 불만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으로부터의 불만으로 옮겨가고, 사회로 옮아가고 세상으로 옮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더듬어 결국은 나 자신에게로의 불만으로 종결하고 만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어 어디로 끝을 맺든 간에 언제나 최종종착점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왜 그리 좋은 배경을 가지지 못 했는가? 나는 왜 그리 능력이 없는가? 나는 왜 그리 못났는가? 나는 왜 그리 불운한가? ··· 결국 나의 부족함이 결론이다. 그러면서 때로 실망하고 때로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 실망을 딛고 분발하여 일어섰다. 나는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주인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 불만스럽던 세월을 지나와 보니 그 모든 것이 다 젊다는 증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애쓰고, 결함과 결핍은 동기가 되어 젊음을 불태우는 장작개비가 되어준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인 것이다.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 모두가 다 그럴 것이다.

 

 

 

 

 

 

가족, 이웃, 사회, 국가, 그리하여 세상으로 불만을 옮겨놓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자칫 핑계가 되고 불손한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된다. 그 잘못된 핑계나 변명들은 그릇된 사고(思考)를 만들고 자칫 그릇된 행동으로 변질되어 그야말로 사고(事故)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좋아질 리가 없다. 아무리 불쾌한 조건이라도 건실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나의 입지가 좋아지고 나의 삶이 발전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구덩이로 빠지게 된다.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일 뿐이고 나는 수레바퀴에 치여 버둥대고 만다. 나 자신은 곧 현장(現場)이고 현실(現實)이기 때문이다.

 

타국에서의 삶이 고국에서 살 때보다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장 언어부터 문제가 되었다. 짧은 콩글리쉬로 의사소통을 하자니 저절로 입이 다물어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눌러 참아야 했고, 질문이 있어도 묻지 못해 여전히 모르는 입장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때가 가장 속이 상했다. 언어만이 아니라 정서도 다르고 문화도 낯설다. 그런 속에서 견디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해야 했지만 그것이 다 낭비는 아니었다. 오기가 생기고 의욕이 생겼으니까. 그렇게 해서 이제 타국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타국에서 산다는 것이 한 때는 고생이었더라도, 한때는 외로움이었다 하더라도 그 고생스러움과 외로움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의 내 모습만큼, 지금의 내 자리만큼 끌고 오지 않았나 생각하면 고생스러움도 외로움도 모두 약이 된다. 오히려 감사해진다. 고생스럽고 외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빗나가지 않아서, 꿋꿋하게 살아서, 변함없어서, ··· 끌어다 붙이면 감사해야 할 이유가 많다.

 

12월,

아직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아직은 다소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내년이 있다. 계획이 있다. 실천할 의지가 있다. 지금의 내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뒤에는 언제나 나, 나 자신의 뚝심이 있다. 내가 나의 주인이며 세상의 복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2011년 12월 20일 화> 사진은 안양예술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