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마음의 닻을 조절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천마리학 2012. 2. 11. 01:29

 

 

 

마음의 닻을 조절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權  千  鶴

 

 

-나이아가라 폭포-

 

 

 

 

무시무처선(無時無處善),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불경에 나타난 부처님의 말씀 중 약이 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짤막한 경구에도 삶의 지혜가 스며있고, 가르침이 서려있고, 게송마다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힘이 있다. 그야말로 금과옥조(金科玉條)이다. 물론 삶의 지표로 삼는 것이 어디 불경뿐일까만 나는 수시로 불경의 구절들을 되새겨가며 마음의 닻을 조절한다. 그 많은 불경구절들 중에서 늘, 수시로 생각주변에서 떠올려 아하! 그렇지 하고 상황정리를 해주며 동무 삼는 ‘일체유심조’.

 

오래 전, 서른 초반의 일이다. 유명한 몽블랑 만년필을 한 선배로부터 선물 받은 일이 있다. 촉이 굵고 부드러운 곡선에 금테를 두르고, 머리꼭지에 쓴 하얀 별 형상의 마크가 명품의 품위를 유지해주었다. 반들반들 윤기 흐르는 까만 몸체. 손에 쥐면 손 안이 가득한 촉감이 좋았다. 평소 시를 쓸 때 시는 소설과 달라서 굵은 펜이 좋다고 하면서 굵은 펜을 사용하는 나의 취향을 배려한 선물이었다. 애지중지. 특별한 자리에만 가지고 다녔다. 정작 글쓰기 보다는 지니고 있음으로 해서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던 내가 가진 최초의 명품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 만년필을 잃어버렸다. 독자들에게 사인할 때와 좋은 시 많이 쓰라고 당부하던 선배의 말과는 달리 몇 번의 사인과 몇 편의 시 원고를 썼을 뿐인데··· 한숨을 크게 쉬어야만 엉킨 가슴이 풀릴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평생 책 외엔 그렇게 집착을 가져본 일이 거의 없다. 사실 그 만년필을 가져간 사람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속을 끓여야 했다. 끓이다가 문득 그 보다 더 오래전의 일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때 가장 절친한 친구가 나의 책 <안나 까레니나>를 빌려가고는 돌려주지 않은 채 전학을 가버렸다. 돌려받기를 몇 번 시도했었지만 돌려받지 못하고 끝내 가슴속에 파묻는 책이 되고 말았다. 우정과 귀중품사이에서 마음을 앓았던 그 책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았다.

 

사춘기시절 나는 책벌레였다. 광적일 만큼 책을 좋아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고, 용돈을 아껴가며 헌책을 사들였고, 그것도 모자라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헌책방을 뒤지곤 했다. 방바닥에 책이 있으면 타넘지 않았다. 책은 나의 신주단지였고, 모든 세상이었고 내 소유의 가장 귀한 재산목록이었다. 그런데,

30대의 어느 날 종로서적의 쌓여있는 책의 숲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한 생각. 맞다, 책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의 수많은 물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물건에 집착하고 있었구나! 쯔쯔쯧!

일체유심조! 마음 한번 탁 고쳐먹으니 그날로 ‘안나카레니나’도 톨스토이도 사라져버렸다.

 

만년필도 마찬가지인 것을. 그 애가 고시에 성공해서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글 한 줄이라도 머리꼭지에 하얀 별을 이고 있는 그 만년필로 쓸 수 있다면 그만인 것을. 쓸데없는 집착에 끄달렸구나. 쯔쯔쯧!

일체유심조, 그렇게 마음 한번 탁 고쳐먹으니 이번엔 몽블랑도 날아가버렸다.

 

 

 

 

 

 

 

금년 여름에 나는 또 엄청난 사고와 맞닥뜨렸다. 오래 동안 별러왔던 소설쓰기를 시작하려던 계획이 망가졌으니 나에겐 그 어떤 사고보다도 큰 대형사고이다. 년 초 부터 계획에 계획을 거듭하고, 이런저런 상황정리를 해가면서 7월부터 시작하여 12월에 마칠 작정이었다. 젊어서부터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사춘기 때부터 구상해왔던 발상인데 미루다미루다 지금에 이르렀다. 자료정리, 몇 차례의 해외 장소헌팅까지 해둔 상태인데도 시작이 어려웠다. 예순이 넘으면서부터는 이제 또 한 해 넘기면 영영 못 쓰고 말 거라는 초조함까지 생겼다. 그래서 금년엔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해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7월에 한국에 사는 친구가 10살 된 아들을 보내왔다. 영어공부를 위해서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나 얽힌 사연이야 말로 할 수 없지만 일단 거두절미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에게 몽땅 온 여름을 바쳤다.

나의 소설쓰기 계획은 또 무산되었다. 속에서 번지는 화가 절망의 불이 되어 끓어올랐다.

마음의 평정을 잃고 허둥대며 지내는데 히말라야의 안나 푸르나에서 산악인 박영석씨 일행의 실종사건이 터졌다. 뉴스를 지켜보다가 문득, 참고가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쓰려고 하는 소설도 등산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준비기간이 워낙 오래 동안이어서 모아놓은 자료도 많지만 더, 더 깊은 묘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수색과정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어느 순간, 아, 이러려고 미뤄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탄탄한 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내년 1월부터 시작이다.

나는 지금 마음의 닻을 내리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일 · 체 · 유 · 심 · 조!

한마음 탁 고쳐먹고 다지면 만사가 형통이다. 내가 원효다. 해골에 담아놓은 물을 마시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뭘 망설이고 뭘 바라겠는가.

 

 

2012년 월간불교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