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776-벌새가 찾아온 아침과 부챠드 가든(The Butchart Gardens).

천마리학 2011. 12. 10. 01:09

 

 

 

*2011년 6월 11일(토)-벌새가 찾아온 아침과 부챠드 가든.

 

 

오늘은 빅토리아를 떠나는 날.

저녁 비행기이므로 낮 시간을 이용한 마지막 코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부챠드 가든(The Butchart Gardens).

있는 음식들을 이용하여 알뜰하게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아빠가 렌트카를 가지러 간 사이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할머니는 도리를 안고 창밖 구경을 시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찌르르 찌르르···

창밖에 가지를 성글게 뻗은 별로 오래 되지 않은 캐나다산 단풍 나뭇가지에서 쫑쫑쫑, 조그만 새를 발견했다. 가늘게 들리는 찌르르 찌르르··· 어쩌면 그 소리마저 환청인지 모른다. 시선을 세워 자세히 살펴봤다. 벌새였다.

아, 벌새!

 

 

 

그동안 여러 차례 뛰어다닌 곳이지만 떠나려니 아쉽다.

떠나기 직전에 다시 온 아리,

토템형상의 조각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

조각 아래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아저씨.

토템과 아저씨를 번갈아본다.

 

 

  

 

중간 굵기의 줄기 앞에서 자리를 옮겨 앉으려고 떠서 공중비행을 하는데, 그 날개짓이 마치 선풍기의 팬 같이 파르르 공중에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동안 나뭇가지에 와서 짹짹거리는 새들이 있긴 했지만 벌새를 발견한 건 지금이 처음이다. 저렇게 작은 벌새가 공중에서 춤이라도 추듯이 가녀린 날개짓으로 정지비행을 하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 정말 감격스러웠다.

짧은 순간의 정지를 위해서 날개가 얼마나 아플까? 눈물겹다. 눈물겨운 것은 늘 아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벌새의 순간이 할머니의 순간으로 느껴졌다.

 

 

 

 

벌새를 본 아침.

벌새가 떠난 후 우리도 떠날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도리.

홀가분한 기분으로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 가자구요!

출바알!

 

 

 

 

손에 잡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순간, 소리쳐 부르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순간.

그 짧은 순간이 사라질 듯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엄마야 빨리 와 봐, 벌새야.”

소리 죽여 엄마를 불렀다.

“도리야 보이지?”

엄마랑 할머니랑 도리가 숨죽이며 신기하게 보는 동안 벌새는 잠시 단풍나무 가지를 향해 날아오르며 놀다가 날아가버렸다. 다른 나무를 향해서 갔을까? 하여튼 무심히 갔다. 갈 때는 무심히.

빅토리아의 다른 길로 경관 좋은 해안 길을 따라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경관도 빼어났고 집들도 아름답고 좋았다.

 

 

빅토리아 대학의 교정에 있는 토템.

토템 앞에서 흉내를 내고 있는 아리.

아리는 아직 토템이 무엇인지 모른다.

 

 

 

 

경치 좋은 곳에 예정없이 차를 멈추고 돌아보며 즐기기도 했다.

다운타운으로 가서 어제 보았던 주청사 부근의 거리를 돌아 가보지 못했던 다리를 건너서 섬의 다른 쪽 지역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다운타운으로 오는 길에 점심을 먹고 최종목적지인 부처드 가든으로.

오늘은 비교적 시간이 널널하다.

아리는 계속 할머니를 힘들게 한다.

런! 런! 할머니 런!

아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65세 된 할머니더러 달리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래도 아리에게는 말이 될 뿐만 아니라 최대의 요구이다. 여전히 아리는 할머니를 제 또래로 생각한다. 그래서 할머니의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욱신거린다.

엄마는 늘 그러지 말라고, 아리를 말리고, 아리의 말을 들어주지 말라고 하지만, 그거야말로 말이 되는가?^*^

말이 안 되지.^*^

언제쯤 아리가 늙음을 이해하게 될까?^*^

 

 

 

 

부처드 가든의 입구에 있는 노란색 등나무 꽃넝쿨이 벌써부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서 뽀뽀하는 젊은 커플들도 있었지만

누구나 낭만적이 된다.

할머니와 아리는 숨바꼭질을 하였다.

우리 가족도 모두 즐겁다.

 

 

 

 

부처드가든.

입장료가 경노요금도 없이 어른은 $30.

비싸다싶었지만 아름다웠다. 볼만하다는 생각이었다.

주차장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넝쿨 흐드러진 등나무로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이름을 모르는 꽃들이 자연지형을 따라 배치되어있었다.

한 사람의 집념이 일구어놓은 아름다운 자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든의 중앙으로 난 길을 가고 있는 아리와 아빠,

윗길로 가고있는 할머니에게 잡혔다.

 

 

 

 

일본식 정원이 있는 것이 또한 부러웠다.

브리티시 대학교에 갔을 때도 아세아 연구소를 비롯하여 일본의 어떤 교수를 기리는 일본식 정원이 있었고, 서스팬스 브릿지에 갔을 때도 일본어로 된 팜플릿이 있었다. 토론토 대학교의 일본 도서관은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동아시아 도서관의 소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일본 문화센터도 그 기능을 활발하게 하며 문화교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 일본의 흔적들. 일본이 새삼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정말 도리의 세계적인 미모는 어쩔 수가 없다.

이곳에서도 지나치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감탄하고, 말걸고...,

이 아줌마도 역시 그냥 가지 못한다.

기분좋은 엄마!

 

 

 

정원시설 내에 빙빙 돌아가는 목마가 있었다. 아리가 신이 났다. 갈색말을 골라 아빠와 함께 탔다. 타는 사람이 없어 아리 혼자 타게 되어 마치 단독으로 전세를 낸 것 같다.

부챠드 정원의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길 어디쯤 사거리 교차로근처의 숲속에서 나와 있는 야생 사슴을 보았다. 아빠가 차를 멈추고 조용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라봤다. 아리가 좋아했다.

사슴은 숲속에서 나와 길 옆의 풀밭에서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가 멀리서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진 못한 것 같고, 단지 잠시 길을 동무를 찾아 나섰다가 길이 나오니까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유빅(빅토리아 대학교, UVIC:University of Victoria 를 이렇게 부른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런 모양이다.) 캠퍼스에서도 사슴을 보았다면서 자랑한다.

 

 

 

 

엄마랑 도리는 어디 쯤 있을까?

빈 스트롤러를 끄는 아리와 아빠가 열심히 찾아가고 있다.

 

 

 

사슴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아쉽긴 했지만 시간이 넉넉하여 쫒기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고, 여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모두가 엄마가 잘 짠 여행계획 덕분이다.

빅토리아에서 비행기로 밴쿠버까지. 30분 정도의 비행시간.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아리가 TV가없다고 불평하자 스튜어디스가 거리가 짧아서 그렇다면서 미안! 하며 웃었다.

 

 

 

 

부처드 가든의 가장 안쪽의 터닝포인트인 분수대 앞에서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는 도리와 엄마,

아리와 아빠도 만났다.

 

 

밤 9시 비행기로 밴쿠버 출발, 새벽 5시 토론토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