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예전 머나먼 외국 땅에서 챔피언을 따낸 우리나라 권투 선수가 챔피언 벨트를 들고 외친 한마디가 TV를 통해 전국에 울려 퍼졌다. ‘엄마’는 아주 원초적 대상이다. 생명의 역사인 여성에게 엄마라는 역할은 너무나 막중해 버겁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세포와 뇌에 하나하나 입력되어 우리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태어나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놓인 아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모든 인간의 생명을 키워내는 모성의 존재인 엄마,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는 아이의 뇌 속에서 그 관계를 건강하게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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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상을 지배한다
신경과학 분야의 한 실험에서 갓 태어난 고양이를 온통 수직 줄무늬만 있는 환경에서 자라게 했다. 뇌 발달이 왕성한 시기가 지난 후 그 새끼 고양이들은 수평의 사물을 인지하지 못해 수평으로 놓인 사물에 막무가내로 달려들거나 걸려 넘어지곤 했다. 수평적인 사물을 인지하는 뇌의 부위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시각 대뇌피질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 실험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주변의 감정적·사회적 세계에서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볼 수 없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실험은 비록 고양이에게 실시한 것이었지만 고양이보다 훨씬 복잡한 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심각한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엄마의 전적인 보호가 필요한 시기에 놓인 아이들에게 그들의 요람을 흔드는 손인 엄마의 영향력은 생존 그 자체다. 사람의 뇌를 비롯한 신체 기관은 평생에 걸쳐 변화·발달하지만 성장과 변화의 폭이 큰 일곱 살 이전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뇌와 신경계, 신체 기관의 균형적 발달은 우리가 어떤 감정적·정신적·신체적·영적 경험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어린 시절에 형성된 몸과 마음, 감정, 경험 등은 평생의 건강과 행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랑밖엔 난 몰라~, 뇌에 새겨지는 엄마의 사랑
엄마에게서 만족감을 느끼고 그것이 뇌에 긍정적인 정보로 입력될 때 아기는 비로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아기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뇌의 안와전두엽(orbitofrontal) 부위에 입력된다. 이 부위는 정서적 안정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다른 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교감하며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을 주관한다.
이 능력은 아기가 받는 관심과 보살핌의 질과 양에 따라 좌우된다. 아기에게 일어나는 최초의 감정이입과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은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시작된다. 아기는 자신을 향한 엄마의 사랑 또는 무관심, 실망의 감정 등을 엄마의 눈빛에서 느낀다. 그리고 뇌의 안와전두엽에 전달된 이 느낌은 몸 구석구석의 세포로 전달되어 장기와 신체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감정을 느끼면 다가가고 나쁜 감정을 느끼면 멀어지는 것은 아기의 생리적 본능이다. 태어나서부터 18개월까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아기는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기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먹는 것, 노는 것 같은 육체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감정적 유대감이나 친밀감도 큰 기쁨이다.
엄마가 너무 무관심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하면 아기의 뇌와 몸 사이의 의사소통은 원활하지 않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장해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나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부족해 자기표현 능력이 떨어진다. 감정을 통제·억제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기 전까지 아기는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몸으로 표현한다.
아기가 최초로 주변과 교류를 시작할 때 엄마는 아기가 더 적극적으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아기가 생후 12~18개월이 될 때까지 엄마가 하는 행동 중 90% 이상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고, 욕구를 통제하거나 금하는 행동은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독립 만세! 독립의 걸음마에 균형 잡기
아기는 걸음마를 통해 엄마의 품에서 외부 세계로 걸어 나가기 시작하며, 자율성과 독립심도 키운다. 또한 아기의 의지는 걸음마를 배우는 시기와 동시에 발달한다. 의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려는 내면 욕구를 더욱 강화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목적을 선택하는 능력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강력한 의지와 자아를 갖출 필요가 있는데, 잘 훈련된 의지는 자율성과 자유로 인도해준다.
두 살 무렵이면 아기는 자신의 욕구와 바람이 부모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따르려는 강한 욕망을 느낀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는 단계로, 부모의 역할도 이전의 보살피는 것에서 사회화를 도와주는 것으로 바뀐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전개되는 갈등은 서로를 힘들게 하지만 자기감정의 균형이나 다른 사람과 융화를 익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가 평생 살아가면서 필요한 ‘적절한 균형 잡기’ 기술을 뇌의 회로에 입력하는 이때,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아기의 뇌 회로가 다르게 형성된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고, 만족을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알며, 욕구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뇌에 확실히 새겨지는 것이다.
감정의 정글 속에서 헤매는 우리 아이 구조 법
옳고 그름을 알고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대개 두 살에서 다섯 살 무렵이다. 아이의 생각이나 느낌이 언어로 연결되어 표현되는 것도 이 시기다. 생각과 느낌, 언어, 몸 사이에 연결고리가 잘 형성되어야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생각과 느낌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게 된다.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본래 모습이나 생각,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능력이 어려서부터 뇌에 제대로 입력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부모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수치심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이에 반해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 표현에 전혀 규제를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은 자제력이 부족해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두 경우처럼 진정한 자신을 발휘하지 못하는 절름발이가 되지 않기 위해, 엄마는 아이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아이의 이야기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강박적으로 애쓸 필요는 없다.
어른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받은 후에야 위로나 충고를 받아들인다. 아이가 화가 나 있을 때 위로하고 달래주거나 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흔히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괜찮아’라는 말을 남용하다 보면 아이는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린다.
무언가를 해주는 것보다 진심으로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아이가 자신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아이가 감정의 정글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아이를 구조하는 방법은 정글에서 아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다.
동생 때리지 않기, 그 아름다운 통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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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고리가 확고하게 성립된 후에는 뇌의 배외측 전전두엽(DLPC) 부위가 발달한다. 안와전두엽의 옆과 윗부분을 감싸고 있는 배외측 전전두엽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안와전두엽이 있어 다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어떤 기분일지 느낄 수 있다면, 배외측 전전두엽은 그 깨달음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게 한다. 동생을 때리면 안 되고, 차가 다니는 길로 뛰어들면 위험하다는 것도 이 시기에 깨닫는다. 배외측 전전두엽이 계속 발달하면서 아이는 대소변도 가리게 된다. 이 무렵 아이는 자아의식이 발달해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데, 엄마는 이런 아이를 통제하느라 기진맥진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엄마의 간섭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는 효과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 시기에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아빠가 이전보다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남성은 아이가 이성적인 사고를 갖춰갈수록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다. 규정과 법규를 깨우치는 이 시기에 사회의 규정과 법칙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아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딸의 경우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아빠가 엄마를 억압하거나 무시하면 딸은 아빠의 행동이 일반적인 사회 규범이라고 믿고 뇌에 입력하기 쉽다. 이런 인식은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끼친다. 배외측 전전두엽과 안와전두엽의 상반된 기능은 엄마와 아빠의 역할로도 비유할 수 있다. 본능적 감정과 직관을 따르는 안와전두엽은 ‘엄마 뇌’가 되고, 이를 조절하는 배외측 전전두엽은 ‘아빠 뇌’가 되어 서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이 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되는 것은 선택할 수가 있다. 그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아이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크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책임감 때문에 너무 겁먹지는 말자.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법이니.
엄마 우울해? 나도 우울해
위싱턴 대학의 심리학자 제럴딘 도슨Geraldine Dawson 박사는 우울한 엄마를 둔 11~17개월 아이의 뇌파를 측정한 결과, 변연계 부위의 활동이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좌측 전두변연계는 기쁨과 만족감 등 긍정적인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로, 이 아이들의 뇌 활동은 엄마의 기분에 따라 심한 굴곡을 보였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기쁨에 대한 반응을 억제하는 아이들은 슬픔에 대한 반응도 억제한다고 밝혔다. 우울한 엄마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든 종류의 감정에 있어 그것을 느끼는 아이의 능력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엄마의 우울증 자체가 아이에게 손상을 입히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울증이 있는 엄마도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려고 노력하면 아이의 뇌 활동이 더 활발해진다고 한다. |
글·박영선 pysun@brainmedia.co.kr |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
도움 받은 책·《엄마 딸의 지혜》(크리스티안 노스럽 저, 한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