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브레인 파워업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최정화 교수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한국 최초의 국제회의 통역사. 파리 통역대학원 박사학위를 아시아 최초로 따낸 여성. 통역 분야의 공로상인 다니카 셀레스코비치상을 최초로 수상한 동양인이기도 한 그녀는 지난 십 년간 한불 정상회담 통역을 전담해 왔다. 그런데 불어, 영어, 한국어 3개 국어를 ‘통’한 ‘언어의 달인’인 최 교수는 대학 졸업 때까지 외국에 한 번도 나가지 않은 ‘토종 국내파’라고. 최 교수는 말이 빠르다.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같은 시간 내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휠씬 많은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나갔다. 남들보다 더 많이 훈련된 언어영역 개발에 의한 것이라 짐작해 본다. “외국어를 잘 하게 되면 많은 사람과 교감할 수 있게 되죠. 삶을 진하게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최 교수의 휴대폰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이 컬러링으로 설정되어 있다. 국가도, 어떤 다름도 초월한 벗을 만드는 비결을 그녀는 외국어에서 찾은 듯하다. |
[기획] 두뇌훈련 메카니즘 당신의 머리 속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보석이 들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하디 귀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보석은 쓰면 쓸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쓰지 않으면 빛을 잃고는 끝내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이 보석상자는 바로 당신의 ‘뇌’. 쓸 것인가? 잃을 것인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흔히들 뇌 속을 우주공간에 비유한다. 1천억 개 이상의 뉴런(뇌신경세포)은 우주의 별보다도 많은 신경세포간의 연결점인 시냅스를 만들어 빛나고 있다. 두뇌 내에 존재 가능한 두뇌 회로의 수는 10의 백만승 개. 우주의 입자 수인 10의 79승에 비교하더라도 그 수가 얼마나 광대한지 다만 상상에 맡길 뿐이다. 게다가 이런 두뇌 회로는 1초에 1천조 번 흥분한다. 두뇌 개발이 무한하다는 것은 무한에 가까운 이런 숫자가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뇌 속의 수많은 뉴런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매순간 반응하며 정보를 전해 받고 전달한다. 각각의 뉴런은 수상돌기 하나에 접촉함으로써 천 여개나 되는 다른 뉴런들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뉴런 간의 정보 전달은 그들의 연결점인 시냅스에서 일어난다. 시냅스에서의 정보 전달은 전기적 자극이 화학적 자극으로 바뀌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보전달물질 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시냅스를 가로질러 확산되면서 정보가 전달되는 것. 뉴런들은 뭉쳐서 네트워크 즉 회로를 구성한다. 각각의 뉴런은 수천에서 수만 개의 회로에 관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뉴런은 활동하고 사용되면 활기를 띠지만, 쓰이지 않으면 퇴화된다. 이렇게 쉴새 없이 새로운 뇌회로가 창출되고 강화되며 때론 퇴화되는데 이로 인해 뇌의 가장 큰 특성인 ‘가소성’이 생긴다. ‘가소성’은 어떤 변화나 환경에 의해 재구성되는 성질을 의미한다. 뇌의 가소성 때문에 태내에서 또는 아주 어릴 적 뇌의 일부가 손상되면 다른 부위가 그 기능을 담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일본의 한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소뇌가 비정상적으로 작았다. 10살이 넘어도 잘 기어다니지 못할 정도였지만, 특수 학교에서 기어가는 연습 등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 이제는 서서 걷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 소녀의 뇌를 촬영해 보니 소뇌의 운동 조절 기능을 대뇌피질이 옮겨와 대신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뉴런은 사람이 태어난 이후로 죽을 때까지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계의 통념이었다. 그런데 최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서는 지속적인 운동 등을 통해 뉴런이 생성되기도 한다는 새로운 보고가 발표되어 앞으로의 연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두뇌 훈련 메커니즘 자주 쓰는 두뇌 회로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그 연결 고리가 강화된다. 뉴런 간의 2차선 도로가 많이 사용할수록 8차선 고속도로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운전을 처음 배운 사람은 오직 운전에만 신경 써야 되지만, 숙달이 되면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능숙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뉴런의 가지(수상돌기)가 하나 더 뻗친 것은 단지 한 가지 일에 익숙해지는 것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두뇌 회로의 효율성은 수상 돌기 하나하나가 늘어감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갖가지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뉴런의 기존 네트워크에서 부가적인 네트워크가 재편성되어 형성되는 훈련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 프로 축구 선수가 야구를 해도 다른 아마추어들보다는 휠씬 잘 하는 법. 운동을 잘 하는 신경 회로가 이미 형성되어 있고, 한 가지 운동에 쓰이는 두뇌 회로들이 다른 운동이 요구하는 회로들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제 3, 제 4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제 2외국어를 배울 때만큼 어렵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뿐만 아니라 많이 사용하는 회로의 뉴런의 경우, 신경전달물질의 주요 통로인 축색돌기에 수초가 쳐진다. 수초는 전선의 피복과 같은 것으로 정보전달 시 전기 자극의 손실을 막아 정보 전달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 도전은 YES! 판에 박힌 일은 NO!
최근의 PET스캔 연구 결과는 상상만으로도 두뇌가 개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험자가 단지 머리 속으로만 팔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동안 측정한 PET 이미지와 실제로 운동신경이 활동하는 동안 측정한 것을 비교해 보았는데 그 결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전두엽 피질의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예를 들어, 운동 선수의 경우, 부상을 당해 연습을 할 수 없을 때 머리 속으로 운동하는 상상만 해도 나중에 실제 운동을 할 때에 도움이 된다. 뇌에 풍요로운 환경… 창의성 개발시켜 천재적인 발상은 꼭 ‘번개’를 맞아야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기까지 수많은 습작이 존재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들도 시 한 편, 악상 한 곡조를 떠올리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했다. 이렇듯 창의성도 두뇌 훈련을 통해 개발될 수 있다. 창의력을 많이 발휘하면 두뇌 구조도 달라진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브로드만 39번’ 영역으로 불리는 뇌의 두정엽 측면 부위는 상상력, 기억력, 집중력 등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뇌를 분석한 결과 그 영역이 보통 사람보다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인슈타인의 39번 영역에 있는 뉴런의 수는 보통사람과 별로 차이가 없지만, ‘신경 교세포’라는 것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신경 교세포는 뉴런이 원활하게 물질 대사를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많다는 것은 39번 영역의 뉴런의 활동이 상당히 많았음을 시사하는 것. 창의적인 활동을 했을 때, 이 부분이 커지는 것은 동물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다. 미 버클리대학의 매리언 다이아몬드 교수는 생쥐를 두 집단으로 나눠 하나는 놀이기구가 풍부하여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두뇌에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게 하였고, 다른 쪽은 놀이기구 없이 단순한 행동만 할 수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게 했다. 그 결과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생쥐의 39번 영역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생쥐보다 16%나 더 커졌다고 한다. 그 이유도 역시 신경 교세포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창의력은 단지 ‘브로드만 39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뇌 피질과 대뇌 변연계, 뇌간 등 뇌 전체가 연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창의력이 종합적인 능력이라는 뜻. 이런 창의력을 개발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것을 권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것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창조적인 발상의 시작이라는 것. 언어 영역… 개발 시기 따라 두뇌 활동 달라져 두뇌는 언제 개발했느냐에 따라 같은 능력이라도 그 작동 기제가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언어 능력 개발의 경우에 그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똑같이 모국어와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라도 어려서 외국어를 배운 사람과 성장한 뒤 배운 사람은 외국어를 쓸 때 뇌의 활동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로 뇌를 촬영했을 때, 어려서 외국어를 모국어를 배우듯 배운 사람은 모국어와 외국어를 쓸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거의 같았다. 그런데 성장한 후 외국어를 습득한 사람은 외국어를 쓸 때 모국어와는 다른 부위가 활성화되었고 그 영역도 휠씬 많았다는 것. 그러나 어릴 때부터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되느냐 아니냐 만이 뇌의 언어 활동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를 늦게 배웠더라도 아주 능숙해지면, 대뇌 활동이 어릴 때 배운 사람과 거의 비슷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두뇌는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변화하고 개발되는데, 이 과정은 일생동안 지속된다. 두뇌 개발을 위한 적절한 자극과 동기가 필요할 뿐.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이라는 책에는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은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것은 참으로 힘이 솟는 일이다. 스스로 ‘나의 뇌의 빛나는 가능성’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를 믿어줄 때 힘이 나듯, 뇌도 그 가능성을 인정해줄 때, 잠재된 능력을 드러내 보일 테니 말이다. 글│정호진 hojin@powerbrain.co.kr 도움받은 책│〈두뇌 운동〉 리처드 레즈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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