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95-도리의 책읽기와 아리의 약속 안 지키기.

천마리학 2011. 4. 13. 18:11

 

 

*2011년 3월 8일(화)-도리의 책읽기와 아리의 약속 안 지키기.

 

 

 

 

이제 겨우 백일을 하루 앞 둔 아기가 무슨 책 읽기냐고? 하지만 도리가 벌써 책 읽기를 시작했다. 흐음!

엄마가 그림이 있는 동화책을 도리 앞에 펼쳐들고 이야기도 해주어가면서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는데, 도리는 말은 못해도 응응, 옹알이를 해가며 관심을 보였다. 어떤 그림에서는 혹은 페이지에서는 손을 뻗어가며 더 큰 동작을 하기도 한다. 10분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할머니가 계속해도 마찬가지다.  마치 헛손질 같은 손짓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소파에 기대고 앉아있는 도리가 피곤해보여서 멈췄다.

 

 

 

 

아리도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막 세살이 될 무렵이었던가? 할머니가 아리를 스트롤러에 태워 큰 서점인 '챕터스'에 갔었다. 책들을 보고, 이것 저것 구경하며 뽑아도 보고 읽어도 주고, 또 책 진열장 사이를 아장아장 걸어다니게도 했었다. 바지에 피피도 하고 푸푸도 하는 아기였지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아주 좋아했다. 매주 두 세번씩, 짬이 나는대로 데려갔다. 젖병과 간식과 여유옷을 챙긴 보따리를 가지고 가서 오후 내내 놀다 오곤 했다.

 

물론 할머니는 직원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적당한 장소를 찾아 요리조리 옮기기도 했다. 주로 1층의 창가, 가끔 2층의 음악실과 어린이책 진열대 근처였다. 스트롤러로 올라가기가 힘들어서였다. 차차 스트롤러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알게 되고 내부구조도 익혀가면서 요령껏 드나들었다. 거기 있는 장난감은 모조리 아리가 맛보았다. 2층 로비의 스타벅스에서 가지고 간 밀크와 쿠키를 먹이기도 했다. 물론 할머니는 더러 커피 한 잔씩.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나 둘 직원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서는 책 진열대에서 자기가 원하는 책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서 읽은 책을 주로 찾았다. <브라운 베어, 웟드유 씨> <페이퍼 백 프린세스> 같은 것들이다. 아기들은 본 책을 보고 또 보곤 한다. 없으면 안내원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는데 안내원들은 아기 손님에게 매우 친절했다. 진열대에 없는 책을 어디선가 애 쓰고 시간 걸려서 찾아다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책을 사는 것은 아니고 단지 한동안 보기만 하는 것이어서 속으로 엄청 미안했다. 미안한 것이야 어디 그것뿐일까만, 아리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그런 것들을 다 무릅쓰는 것이 대수롭지 않았다. 스스로 참 뻔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했다.^*^

 

 

 

 

 

책진열대에 자기가 원하는 책이 없으면 안내원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는데 안내원들은 아기 손님에게 매우 친절했다. 오래동안 출근하듯 다니면서 때로는 어지럽히기도 하고, 귀찮게도 했지만 모두들 귀여워했다. 가장 어린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한권도 사진 않았지만 가기만 하면 알아보는 직원들까지 생겼다. 그 덕분인지 아리는 지금도 책을 매우 좋아할 뿐만 아니라 챕터스가 아리의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4개월 된 도리가 책에 흥미를 가지는 것을 보면 역시 아리 동생이다.^*^

바쁘고 힘든 중에도 여러 가지로 신경쓰는 엄마의 정성은 참 대단해.

유아교육이란게 어디 표준이나 룰이 있겠는가. 엄마가 도리에게 보이는 정성만으로도 충분히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챕터스의 장난감부에서 장난감을 고르고 있습니다.

벌써 책은 한바퀴 돌았거든요.

 

 

 

 

 

 

오늘 아침, 할머니가 이층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리가 엄마에게 묻는 말이 들려왔다.

“엄마, 데이케어 마지막 날이 언제예요?”

알아듣게 대답해주느라고 엄마의 설명이 길었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겉으론 여전히 명랑한데, 데이케어 다니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모양이구나 짐작했다.

저녁 때 픽업하러 갔을 때 아리는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리오, 제프리와 함께 놀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아리의 볼이 유난히 빨갛다. 옷을 갈아입고 카페를 지나올 때 역시 큰소리로 ‘울리마’ 아줌마를 불러댔고, 울지마 아줌마는 아리를 불러서 초컬릿 우유한잔을 주었다.

“내 이름은 수리포야. 울지마가 아냐.”

냅킨에 ‘瑞芳’이라고 적어서 보여주었다. 한국발음으로는 ‘서방’이라고 한다고 알려줬더니 중국식 발음은 ‘스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이름은 ‘수리포’이며 홍콩에서 왔다고 했다. 할머니가 ‘좋은 향기’라는 의미라고 했더니 맞다고 했다.

 

 

아리는 데이케어를 그만 둔 후에 휴론학교에만 다니게 될 때, 카페에 들려야겠다고 했다. 얼마 동안 카페가 아리의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도 많습니다.

만져보고, 열어보고.....

 

 

 

 

 

 

 

킹스트리트 못 미쳐서 갑자기 스트릿 카의 드라이버가 전화를 받더니 차가 스톱해버렸다. 더 이상 가지 못한다는 안내방송을 한 후 킹 스트리트와 반대인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 정거장쯤 가서 내리게 했다.

걸어서 다시 킹 스트리트의 사거리로 왔다. 킹 스트리트의 스트릿 카 정류장에서 고장난 스트릿 카를 인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정류장에 서서 고쳐지길 기다렸다. 걸어서 가자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오늘 따라 데이케어를 나올 때 아리가 장갑이 젖어서 끼지 않았다. 스카프도 약간 젖긴 했지만 두를 만 했는데도 젖었다고 두르지 않았던 탓으로 아리가 손도 시리고 춥다고 했다. 할머니의 스카프를 벗어서 머리까지 온통 감싸주고 아리의 손을 할머니의 손으로 감싸 쥐어서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20분 쯤 기다린 끝에 고장차를 끌고 갔고, 다시 이어서 유니온 스테이션 행 스트릿카가 왔다.

 

 

 

소비즈에 들려서 식빵을 사는데, 아리가 계산대 옆에 진열되어 있는 초컬릿 두 가지를 골라서 사달라고 졸랐다. 저녁식사를 잘 하는 조건으로 사주었다. 아리는 초컬릿을 소비즈의 휴게실 테이블에 앉아서 먹고 가자고 하는 것을 안 된다고 했다. 오늘은 스트릿 카 고장으로 늦어져서 엄마아빠가 걱정하며 기다릴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집에 가서 저녁식사하기 전에 초컬릿을 먼저 먹겠다고 했다. 저녁식사만 잘 하기로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몇 가지 골랐습니다.

다 고를 순 없구요. 최대한 조금 골랐답니다.

왜냐구요?

엄마아빠가 저쪽에서 보고 계시거든요.

^*^

 

 

 

 

 

 

물론 아리가 약속을 쉽게 지키지 못하리라는 예상을 하면서도 했다. 집에 돌아오니 7시였다. 할머니가 픽업 출발 전에 준비해놓은 카레라이스를 만드는 동안 아리는 처음 요청했던 대로 초컬릿을 먹겠다고 했다. 먹고 나서 저녁식사를 잘 하라고 독려하며 허락했다. 엄마와 할머니에게 나눠줘 가면서 두 개를 다 먹었다. 하지만 그 후에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다음엔 절대로 소비즈에 갔을 때 초컬릿을 안 사줄 것이며, 할머니는 아리와 놀아주지도 않을 거라고 했고, 엄마도 동조했다. 그랬더니 아빠 언제 오느냐고 했다. 엄마도 시큰둥. 그랬더니 한동안 어색한 듯 하면서도 제 방에서 혼자서 놀았다.

아빠는 오늘 저녁에 메이플 립 콘도의 입주자와 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