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92- 아리의 특별한 친구교제와 제도교육의 한계

천마리학 2011. 3. 29. 02:50


 

*2011년 3월 3일(목)-아리의 특별한 친구교제와 제도교육의 한계

 

 

 

 

아침에 밖으로 나서자마자 밝은 햇살이 눈이 부셨다. 쌀쌀하긴 했지만.

“와, 뷰티플 데이로구나. 아리야, 하늘을 봐. 구름도 멋지구나. 그렇지?”

하늘을 바라보던 아리가 갑자기 생각난 듯,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할머니, 썸머!”

“그렇구나. 우리 곧 하와이 여행에 가서 여름을 즐길 수 있을 거야. 거긴 여름같을 거니까. 하늘 보면서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자.”

 

유니온 역의 플렛폼에서 손가락으로 포스터를 가리켰다.

<Mars needs Moms.> 요즘 개봉되는 영화포스터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저거 엄마더러 다운 받아 달래서 보자. 아리 좋아하는 스페이스 쉽도 있잖아.’했었던 거다. ‘맞어, 할머니가 깜빡 했구나’ 하는데, 아리가 또 뭐라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몇 미터쯤 떨어진 거리에 어떤 키 큰 아저씨가 손에 커피컵을 들고 플렛폼의 노란선 안에 서 있었다. 아하, 아리가 그 아저씨더러 위험하다고 말한 거였어.

“쏘리, 쏘리.”

그 아저씨가 아리에게 말하며 한 걸음 물러서더니 계속해서 한 발을 다시 노란선 안으로 디밀며 아리의 표정을 살폈다. 그때마다 아리가 ‘노우~’ 그렇게 장난을 치는데 서브웨이가 도착했다.

 

 

 

 

 

아리는 책을 매우 좋아합니다.

맨처음 챕터스에 간 것이 두 살 때였습니다.

할머니가 데리고 갔었는데 그때부터 챕터스는 아리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데이케어에서 나오는데,

복도에 오래되어 처분하는 낡은 책들이 상자에 담겨있었습니다.

집에도 책이 많이 있건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그 속에서 한권을 골라내었습니다.

<고래와 상어>라는 그림책입니다.

스파다이나 스테이션에서 스트릿트 카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책을 안고 있습니다. 

 

 

 

 

 

 

 

데이케어 안으로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놀기위해서 교실로 들어갔는데, 아리가 ‘하이, 코니!’ 했다. 코니선생님이 ‘하이, 아리!’하면서 반갑게 반응을 해줬다. 역시 코니 선생님이 아이들에겐 잘 하신다. 그런데 아리가 레고상자 쪽으로 갔는데 거기에 도나선생님이 다른 아이와 노느라고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냥 돌아서려던 할머니가 일부러 다가갔다. 작은 목소리로 ‘하이, 도나!’해야지 했더니 아리가 즉각 ‘아이 디드.’했다. 아마 작은 소리로 한 모양이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도나에겐 부담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인사를 스스로 했다는 사실. 다만 작은 목소리가 약간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런데 바로 그때 도나도 반응을 보였다. 할머니가 ‘잘 했어. 우리 아리.’ 하는데 ‘오우, 아리 이즈 얼웨이즈 하이, 도나! 하이, 굿모닝 도나! 해요. 난 그런 아리가 아주 좋아요.’하는 것이다.

 

 

 

 

 

 

스트릿 카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책을 펼쳐들고 읽습니다.

책에 빠져있는 덕분에 할머니가 편합니다.

^*^

 

 

 

 

 

이 틀 전, 자면서 할머니가 요령껏 아리에게 물어봤었다. 요지는 어떤 선생님을 좋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리의 데이케어를 중단하기로 결정해놓고, 아리의 행태를 좀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리는 도나, 웬, 코니, 크리스티나, 캐롤라인, 이렇게 다섯 선생님 중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은 ‘코니, 두 번째는 웬, 세 번째는 캐롤라인, 네 번 째는 크리스티나’라고 하면서 도나의 이름만을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도나는?’하고 물었더니, ‘아이 던 라이크 허.’하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었다. 간접적으로 두세 번 방법을 바꿔서 물어도 대답은 같았다.

도나가 왜 싫어? 하고 다시 물었다. 아리가 잠시 생각을 모으더니, ‘아이 플레잉. 앤 덴 도나 케임. 얼웨이스 쉬 세드 아리, 나빠!’한다는 것이다.

짚혔다. 충분히 짚혔다.

짚히면서도 다시 확인했다.

“아리가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도나 선생님이 와서 아리 나빠, 아리 하지마, 한다고?”

끄덕였다.

아리가 익사이팅하다보니 지적당하는 일이 많이 있었을 거였다. 바로 그 제지하고, 제한하고, 가두는 교육이 좋지 않다고 보는 할머니의 교육관이다.

도 나선생님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교육방법이 달라서라고 해야겠지만, 혹은 자기 일에 쌓인 스트레스로 굳어진 것이라고 해야겠지만, 어찌됐건 아리에겐 좋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어린 아리에겐 스트레스이고, 상처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데이케어를 조금이라도 빨리 그만두게 한 것이 괜찮은 결정이었다는 것. 쯧! 흐음!

 

 

 

 

 

 

잘 다녀왔습니다!

보이죠? 아리 바지의 양쪽 무릅이.

할머니가 손으로 도안을 넣어 기워준 것이랍니다.

할머니는 곧잘 아리의 바지나 잠옷, 양말 등을 기워주시곤 하지요.

아리가 이 바지를 보는 순간,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뷰티플!

그때 할머니는 매우 행복했답니다.

 

 

 

 

 

 

저녁 때 할머니가 아리를 픽업하러 갔을 때 마침 알렉산더의 엄마를 만났다. 알렉산더의 엄마는 며칠 전에 할머니에게 말했던 토요일의 초대에 우리가 참석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물었다.

토 요일의 초대. 플레잉 데이트. 아리와 알렉산더가 워낙 오래전부터 친하게 붙어 놀며 서로가 너무나 좋아해서 늘 서로 집에 가겠다고 했었다. 알렉산더라 자기집에 아리를 초대했고 아리 또한 가겠다고 했고, 할머니를 조르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알렉산더네 집이 마침 수리중이어서 다음에 기회를 만들겠다고 했었는데, 요즘 공사가 끝났다면서 아리를 초대한 것이다.

토요일에 이미 아리의 스케줄이 꽉 차있긴 하지만 가능한 한 갈 것이라고, 이메일로 엄마가 연락하게 하겠다고 했다.

아리는 토요일 오전엔 코리아 킨더가든에 가야하고, 오후엔 스즈끼 음악학원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알렉산더네 집에 오후 2시 경에 와도 좋으니까 시간을 조정해서 와달라고 했다.

집 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인트 죠지역에서 스파다이너 역까지 단 한 정거장임에도 아리와 알렉산더는 함께 가기를 원한다. 평소에는 레벨 2에서 내리지만 알렉산더와 함께 간다면 레벨 1에서 내려야 한다. 지난번에도 함께 가려고 했다가 미룬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함께 가도록 했다.

아 리와 알렉산터. 얼마나 좋아하는지, 데이케어를 나올 때부터 신이 나서 서로 엉긴다. 카페를 지나는데 아리는 울지마 아줌마가 불러도 친구가 있어서 가지않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그래도 잠깐 갔다오지 그러니?’했더니 생각을 바꿔 울지마 아줌마에게 뛰어갔다. 울지마 아줌마가 친구를 생각해서 롤리팝 2개를 쥐어보냈다. 아리는 롤리팝 한 개를 알렉산더에게 주고는 또다시 신이 나서 지하도로 향한다. 스파다이나 역의 플렛폼에서 헤어질 때까지, 헤어져서도 서로 되돌아보며 소리쳐 부르고, 손을 흔들고.

정말 아이들이 뭘 아는지. 그 뜨거운 감정이 넘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진다.

 

 

 

 

 

 

오늘 데이케어에서 아리가 만든 종이접기를 보입니다.

할머니에게 주는 선물이랍니다.

땡큐! 아리!

 

 

 

 

 

“헤이, 아리!”

아 리가 저만큼 엄마의 손을 잡고 가고 있는 알렉산더를 제 이름으로 부른다. 아리의 즉흥적인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다. 처음엔 알렉산더가 못 알아듣지만 나중에 아리가 큰소리로 말하는 설명을 듣고서야 알렉산더도 아리를 제 이름으로 부른다.

“헤이, 알렉산더~”

아리는 그렇다. 에드립도 강하고, 변용도 잘 한다. 순간적으로 역할도 바꾼다. 어쩌면 그것이 아리의 재능인지도 모른다.

 

우리 아리의 특성 중엔 ‘친구사귐’도 있다. 아이들이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리는 몸담는 곳마다 아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들이 생긴다.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는 그 곳을 떠나온 후에도 만나기를 원하는 친구를 말한다.

먼 저 다니던 키즈앤컴파니에서도 제이든과의 친교가 특별해서 아리가 지금의 데이케어로 옮긴 후에도 별도의 시간을 내어 함께 놀게 해주자는 제이든의 엄마 요청으로 주말 데이크가 이루어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제이든이 집에서도 늘 아리 이야기를 하고, 아리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제이든 외에도 엘리스도 있었지만 엘리스는 아리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엘리스의 엄마는 아리를 ‘엘리스의 제임스 띤’이라는 별명까지 붙였었고, 아리가 다른 데이케어로 옮긴다니까 가지말라고 울상을 짓기도 했었다.

 

 

 

 

옷을 벗자마자 아리는 또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엄마와 도리에게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도리가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도 오빠가 읽어주는 책을 열심히 듣고 있답니다.

 

 

 

 

 

제 이든의 엄마나 알렉산더의 엄마 모두 그동안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내린 결정들이라는 걸 안다. 할머니는 영어가 부족해서 그 부모들과의 대화가 오히려 없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의사표시를 하지도 않으므로 별로 적극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상대쪽에서 짐작하고 평가해서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 할머니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아리가 고맙다.

제 이든에 대해서는 아리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알렉산더도 마찬가지다. 아리와 알렉산더, 둘이 서로 매우 좋아한다. 매일 데이케어에서 매일 만나고 휴론 학교에도 매일 같이 가는데도 그렇다. 제이든도 아리보다 6개월 나이가 많고, 알렉산더도 아리보다 한 살 많다.

그런걸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든다.

 

오늘도 데이케어에서 나오기 직전에 할머니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었다.

탈 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알렉산더와 계속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지켜보는 알렉산더 엄마도 할머니도 독촉하며, 꼬마들의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중에 마이라가 마침 통로 쪽에 서 있었다. 아리가 달려가서 ‘마이라!’하면서 등을 떠밀었다. 반가움이었고 장난기였다. 아리의 행동이 터프하기도 하다. 마이라가 앞으로 엎어졌다. 심한 일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아리~ 하고 말렸다. 그 순간이었다. ‘아리!’하고 부르는 웬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쪽에 있으면서 눈에 띈 모양이었다. 할머니도 앗차 하고 있는데 아리는 벌써 재빨리 몸을 돌려, 옷을 거는 좁은 칸막이 사이로 끼어들어 몸을 감추었다. 그런 모습을 할머니는 몇 번 봐온 터였다. 아리가 웬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또 꾸지람을 받는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웬선생님이 와서 ‘아리…어쩌구’하다가 아리를 보지도 않고 돌아서 가버렸다. 그때 웬선생님의 표정은 잔뜩 찡그린 얼굴이었다. 귀찮다는 듯.

지켜보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이 편찮아졌다. 그리고 불만스러웠다. 그렇구나 하고 확인할 뿐이었다.

그 럴 경우 아이에게 무조건 안 돼. 나빠, 잘못했어, 왜 그래? 하는 식으로 나무라며 제지할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물어보고 설명해줘야 할 것이다. 할머니가 보기엔 아리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장난기와 반가움이라는 것을 잘 안다.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좋아서 그렇더라도 친구가 놀랄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방법을 다르게 하라고 이야기로 이해시켜야 한다. 또 마이라에게도 아리가 좋아서 한 거라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느라고 장난을 친 것이니까 울지 말라고 이해시켜야한다. 쌍방을 다 이해시키며 다둑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완전 일방적인데다 무조건 잘못한 것으로 단정하고 다스려버린다.

 

 

 

 

 

 

책읽기가 끝났습니다.

피곤해진 아리가 도리 곁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도리가 말합니다.

오빠! 고마워!

 

 

 

 

아 이들에겐 그런 일이 한 두 번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이 어린이들의 행동이고 반복되는 것도 다반사이며 당연하다. 그걸, 자로 재듯, 그저 제지하고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다스려버리면 당하는 아이는 죄책감을 갖게 되고, 기가 죽고, 마음속에 상처를 입게 된다. 어른이고 선생님인 사람들이 그 정도의 상식과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자질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할머니는 분명 느끼고 있다.

룰 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한 것으로 단정해버리는 것도 좋지 않지만 할머니가 보기엔 그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과 그 인식대로 아이를 나무라며 제지시키는 것,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 룰도 아니다. 그것은 사실 유아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제도교육의 한계다.

 

오 늘도 도리는 할머니를 보고 잘도 웃는다. 온종일 엄마하고만 보내다가 할머니가 아리를 데이케어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서 도리를 어루면, 도리는 마치 할머니를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함박웃음을 웃고, 아악 아아앙 소리를 내면서 옹알이를 크게 한다. 옹알이의 소리도 카랑카랑하다. 표정만이 아니라 팔다리까지 움직이며 전신으로 감정표현을 한다. 영락없이 의사표시다. 할머니하고는 참 잘 통한다.

아침에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도리를 안고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하면서 할머니 방으로 온다.

“도리야, 잘 잤어?”

할머니가 도리를 들여다보면 일이초 쯤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이내 할머니를 확인하면서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천사가 따로 없다.

이상하게도 할머니에게는 옹알이도 많이 잘 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듯이. 요즘은 몸짓 표현도 훨씬 강해졌다. 나날이 자라는 모습이 확인된다.

“도리야. 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