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86-백까지 세기와 열하나 사람, 열하나 말.

천마리학 2011. 3. 18. 14:30

 

 

 

*2011년 2월 23일(수)-백까지 세기와 열하나 사람, 열하나 말.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데이케어에 가기 위해서 콘도 밖으로 나오는 순간,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할머니, 와이 눈이 눈에 들어가요?”

눈 내리는 하늘을 향했다가 눈송이가 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또 할머니가 ‘눈이 내리네. 가버린 추억처럼, 눈이 내리네…’하고 샹송스타일의 노래를 흥얼거리자 아리가 재깍 ‘뻐얼 뻘 눈이 내이네. 하늘에서 응응응……’하고 할머니가 가르쳐 준 동요로 막는다. 얼마 전부터 한국동요 ‘펄 펄 눈이 내리네 하늘에서 눈이 내리네…’를 가르쳐 준 효과다.

“아하, 그렇지? 한번 불러봐. 퍼얼펄 눈이 내리네…”

할머니는 슬쩍 빠져버리고 아리 혼자 부르도록 유도하는데, 잘 모르는 부분은 응응응으로 이어나가면서 ‘하얀 가루 똑 갈루가 하늘에서 내려 오니다 자꾸자꾸 내려오니다’가 서툴게 한국말 노래가 이어진다. 그래도 할머닌 가르친 효과가 있다는 생각에 즐겁다.

 

 

 

 

 

집에서 한국말을 가르치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더불어 교민 2세들의 부모들로부터 들은, 가르치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아리의 경우, 불어까지 곁들여지니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안 가르칠 수 없는 노릇, 하는 데까지 아니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칠 수밖에 없다.

요즘 아리는 백까지 한국말로 거뜬히 센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툴렀고, 휴론학교의 평가서에도 써티(30)까지 셀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채 보름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제법 잘 세고, 즐기기까지 한다.

하나, 둘, 셋, 넷 ………열 하나, 열 두울 ………스물, 스물 하나 ………서른, 서른 하나 ………마흔, 마흔 하나 ……… 쉰, 쉰 하나 ……… 예순, 예순 하나 ………그러다가 아흔에 들어가면 빨리 백을 하고 싶어서 속도가 빨라진다.

아리가 좋아하는 숫자 백!

 

 

소파 등받이 위로 올라간 아리에게 엄마가 내려오라고 합니다.

글쎄요, 아리가 말을 들을까요?

 

 

 

이럴 줄 알았지요, 아리가 얼마나 에너제틱인데요.

엄마가 도리를 안고 피해버립니다.

 

 

동물과 사람의 단위에 대해서 가르쳤다. 동물을 셀 땐 ‘마리’를 붙이고, 사람을 셀 땐 ‘명’이나 ‘사람’을 붙인다고.

그랬더니 하나 사람, 열 하나 사람………, 하나 마리, 열 하나 마리, 한다.

어른들이야 쉬운 말이지만, 아리에게 한 개와 하나 개의 차이점을 인식시키고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다.

스트릿 카를 탈 때 아리가 ‘하이!’하자 운전사가 아주 반갑게 반응한다.

“하이, 땡큐. 하오 어버웃 유?”

“굿. 플리즈, 트랜스퍼 티켓!”

아리는 대답하면서도 트랜스퍼 티켓 받는 일에 더 집중한다. 그런 아리에게 아저씨는 티켓박스의 손잡이를 가리키며 눌러보라고 한다. 아리가 손잡이를 누르자 차르륵 소리를 내며 들어있던 티켓들이 아래로 떨어진다. 아저씨는 아리가 귀여워서 그것을 체험하게 해 보는 것이다.

 

 

 

엄마가 도리를 안고 떠나거나 말거나

아리는 소파의 등받이 위를 걸어다닙니다.

에구, 고얀녀석!

 

 

 

자리를 잡습니다.

떨어지는 건 싫은가봅니다.

 

 

 

맨 입구의 일인석 자리에 앉은 아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운전사 아저씨는 이야기를 이어 가다가 정류장에서 설 때마다 잠시 중단하고 출발하면 다시 이어나간다.

“학교나 데이케어에 다니니?”

“녜. 데이케어 앤 휴론스쿨.”

“몇 살이지?”

“네 살이예요. 세 살부터 데이케어에 다녔어요.”

“오, 그래? 재미있니?”

“녜.”

“친구 있니?”

“녜.”

“여자친구도 있니?”

“녜. … 까밀라.”

“오, 그래. 학교에서 먹을 것을 주니?”

“녜.”

 

 

 

이젠 옆의 작은 테이블로 건너 뛸 작정을 합니다.

"아리, 위험! 조심해!"

할머니가 경고했습니다.

 

 

 

"안돼! 아리!"

아리가 건너뛰려는 찰나

할머니가 더욱 목소리를 높혔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니?”

“파스타.”

“파스타? 나도 좋아해. 운동은?”

“……?”

“학교에서 무슨 놀이를 하니?”

“슬라이딩, 런 앤 … ”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말놀이요.”

“말놀이? 너 말을 좋아하는구나?”

“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예요.”

그러는 동안 스파다이나 역에 도착했다.

 

 

 

 

그제야 아리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자세가 달라졌지요?

아리 특유의 몸짓을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춤추며 노래하며.....

아리는 신이 났습니다.

할머니에게 온갖 애교를 부립니다.

아리의 애교에 할머니는 늘 꼼짝 못합니다.

예쁘잖아요!ㅎ ㅎ ㅎ

 

 

 

 

“내 이름은 크리스야. 네 이름은?”

“아리. 에이 아 아이!”

“오우, 아리! 난 크리스. 다음 만날 땐 크리스라고 불러줘. 하이, 크리스하고말야.”

끄덕끄덕하고 내리면서 목소리를 지금까지보다 더 높여서 ‘바이바이’했다.

“유투!”

“오우, 유 아 쏘우 큣! 해브 어 굿 데이!”

크리스가 대답하는데, 정류장에서 일하는 자주색 유니폼의 유니온직원까지 인사를 받아준다.

그런데 웃으운 것은 서브웨이를 갈아타기 위하여 계단을 내려가면서 할머니가 물었다.

“그 드라이버 아저씨 이름이 뭐랬지?”

“아이 던 노우.”

너무 쉽게 뱉어버리는 아리. 지금까지 내내 이야기를 주고받아놓고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모양이다.

 

 

 

 

노래와 춤이 끝나자 또 뛰어내립니다.

할머니는 이 순간을 놓칠리가 없지요.

할머니는 아리와 도리의 전용사진사이거든요.

 

 

 

“크리스라고 했잖아. 다음에 만날 땐 하이, 크리스! 하고 말해달라고 했잖아.”

“오우, 2 미닛!”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관심 없다는 투로 흘려버리고, 전광판에 나타난 서브웨이 도착알림시간을 말한다.

얼마 전부터 플렛폼에서 전광판 읽는 방법을 가르친 것에 대해선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