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85- 알밤과 귀마사지 그리고 2등이 승자.

천마리학 2011. 3. 16. 20:20

 

 

*2011년 2월 20일(일)-알밤과 귀마사지 그리고 2등이 승자. 

 

 

 

어제부터 롱 위켄. 월요일의 페밀리 데이까지 쉬기 때문이다.

노 스쿨, 노 데이케어다. 아리는 신이 났다.

간밤에 아리가 1층에서 제 아빠랑 잤다. 할머니가 계속되는 불면으로 너무 힘들기도 하고, 또 아빠가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아빠를 좋아하는 아리에겐 절호의 찬스다. 아빠와 함께 레고를 만들며 보냈다. 덕분에 할머니가 좀 수월하다.

어제 밤에 일찍 저녁식사를 하고 가족영화 타임! 7시경부터 빙하시대 영화를 모두 함께 보는 중에도 할머니는 또 피곤해져서 도중에 올라오고 말았다. 8시경.

요즘 계속해서 2~3시간 정도밖에 못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오늘 새벽까지 잠결에도 아리가 아래층에서 자는구나 느끼면서도 잤다. 그런데 2시 반 경, 소리가 나서 혼자 자고 있을 아리가 생각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층계소리를 듣고 아리 방에서 나온 아빠를 보고나서야 아차, 아빠가 쉬는 날이지. 롱 위켄이라는 걸 생각 못했다. 다시 올라와서 잠을 시도해서 아침 7시까지 잤다. 대단한 성과다. 덕분에 몸이 모처럼 가뿐해졌다.

8시경, 화장실에 갔는데 아리가 할머니를 부르며 올라왔다.

“할머니, 아빠는?”

아리가 묻는 바람에 아빠가 쉬고 있다는 걸 또 깜빡.

“회사에 갔지.”

아리가 미심쩍은 듯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도 미심쩍다. 가만, 간밤에 아빠랑 함께 잤을 텐데 하면서. 아리가 다시 올라왔다.

 

 

 

 

 

 

 

 

 

“할머니, 아빠, 이불, 이불 음음 아래층에 이불 슬리핑.”

“아빠가 이불 속에 자고 있다고?”

“예스. 후후후. 알밤! 앤 귀 마사지!”

아리가 재미있게 웃으며 깨금발로 할머니의 머리에 알밤을 하고 양귀를 잡고 맛사지를 두어 번 하고 내려간다.

 

 

‘알밤과 귀맛사지’는 할머니와 아리 사이에 게임을 하거나 질문에 틀린 답을 했을 때의 보상이다. 맞으면 귀맛사지, 틀리면 알밤. 그러니까 조금 전에 회사에 갔다고 한 할머니가 틀렸다는 뜻이다. 귀맛사지까지 해준 것은 아리가 기분 좋을 때 선심 쓰는 보너스다.

 

또 한 가지. 아리가 할머니와 놀기 위해서 할머니를 꼬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바로 2등이 승자이다.

아리와 놀다보면 사실 할머니는 지친다. 특히 아리는 달리기와 딩굴기. 말이 딩굴기지 실제로는 레스링처럼 격렬한 놀이다. 아리는 ‘화이팅’이라고 표현한다.

애초에 할머니가 아리를 좀 강하게 기르고 싶은 생각에서 일찍부터, 아리가 2살적부터 달리고 뛰고 딩구는 것을 시켜왔다. 모험에 가깝게 했기 때문에 가끔 엄마아빠의 걱정스런 눈길을 받은 것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차마 말 못하거나 강하게 반대하지 못한 것을 할머니는 안다.

 

 

 

 

 

 

 

 

 

 

4살이 될 무렵부터는 태권도, 복싱 등의 자세도 나름대로 흉내 내어 가르쳤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니면 다른 아이들도 그러는지는 몰라도 아리는 매우 활동적이다. 쉽게 말해서 보기보다 혹은 성격보다 터프하다. 그래서 할머니하고 놀 때도 ‘파이팅!’하면서 어설픈 공격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데이케어에서나 학교에서 가끔 아리가 터프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 내버려 둔다.

 

 

그리고 아리는 에너지가 넘친다. 이것은 식구들만이 아니라 다니던 데이케어마다 하는 말이다. 먹는 건 그리 많지 않고 오히려 잘 안 먹어서 걱정하는 편인데 힘은 어디서 그렇게 솟아나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태성이 그런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어찌됐던 에너제틱하고 활기 찬 것이 아리의 특징이다. 운동신경도 매우 좋고 또 의욕도 대단하다. 하기 어려운 동작이나 자세를 보면 제 마음에는 곧 할것 같은 모양이다. 재주넘기라든지 구르기, 다이빙 같은 동작을 흉내 내는데 그때마다 몸 어딘가가 다칠 것 같아서 여간 조마조마한 게 아니다.

이런 아리를 ‘달리지 마라’ ‘하지마라’ ‘위험하다’ 하는 말로 제지시키니 아리가 데이케어에 가는 것에 대하여 흥미를 잃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도 데이케어에 픽업하러 갔더니 크리스티나가 할머니에게 대뜸 하는 말.

아리가 학교에서 배로 미끄럼을 타서 선생님이 전화 왔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았을까봐서 거듭 말하는 크리스티나에게 할머니가 되물으며 확인했다.

배로? 예쓰. 라잌 디스? 하면서.

그렇다고 했다.

“소우 썸 엑시던트?”

“노우, 티처 이즈 앵그리.”

 

 

 

 

 

 

 

 

 

그러나 할머닌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에겐 ‘티처의 앵그리’가 문제가 아니라 아리가 사고 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할머니에겐 아리의 모험심과 그 모습이 충분히 상상되기 때문에. 아리는 그러고도 남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집에서 늘 몸을 뒤집고, 딩굴고, 과할만큼 뛰고 달리게 한 장본인이니까. 일부러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보나마나 학교 측에서는 그러다가 사고가 날까봐서 그러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그런 교육방법이 과연 최선일까? 아니라고 본다.^*^

 

어떻튼,

요녀석은 언제나 놀자고 조르고, 주로 달리기와 화이트(씨름처럼 덤벼들어 몸싸움을 벌인다.)인데 한번 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달리기는 1층에서는 거실에서 시작되는데, 소파와 식탁 주변을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한다.

‘미니미니 마니모, 캣취어 타이거 바이 더 토우…’

할머니와 제 발을 마주 대고 번갈아 찍으면서 노래를 불러 술래를 정한다. 술래가 결정되면 달리기 시작하는데 소파와 식탁의 둘레를 쫒고 쫒기면서 달린다.

아리의 달리기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지난 해, 그러니까 세 살까지는 엇비슷한 가운데 그래도 할머니가 간발의 차이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리에게 잡히고 만다. 도저히 아리보다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두 바퀴도 채 돌기 전에 잡히고 만다. 그렇게 대여섯 번 반복하다보면 할머니가 지친다. 등에서 땀도 난다. 할머니가 퍽석 소파에 주저앉으며 좀 쉬자고 사정하지만 아리는 여전히 펄펄해서 계속 뛰라고 떼를 쓰고 조른다.

 

 

 

 

 

 

 

 

 

“할머니, 런! 런!”

(언제나 할머니더러 달리라고 한다. 녀석 어디 두고 보자. 지가 육십이 지나 내 나이 먹어보면 알겠지. ㅎ ㅎ ㅎ. 그런데 그때 난 어디에 있지?^*^)

 

놀이 중에 아리가 할머니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런!이다.

그런데 아리가 가끔 쓰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세컨 이즈 윈>이다.

놀이도중에 갑자기 룰을 바꾼다. 순전히 지 맘대로다.

할머니, 세컨이 윈 이라고 해놓고는 계속 달리라는 것이다. 그래놓고 할머니가 달리면 저는 뒤쳐져서 이등으로 달린다. 그래도 할머니가 느리면 계속 앞으로 달려서 1등하라고 손짓하며, 저는 느릿느릿 뒤처지며 할머니를 앞세운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도착점에 도달하면, ‘오, 할머니 일 등!, 아리 이즈 세컨!' 해놓고,

'소우 아리 이즈 윈! 비코우즈, 세컨 이즈 윈. 리멤버 할머니?’하고 강조한다. 

지가 세컨이 윈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행여 할머니가 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우길까봐서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같은 방법을 쓴다. 복도를 달려서 도착해서 할머니가 먼저 누르면 뒤늦게 누르면서 자기는 세컨이니까 자기가 승자라는 것이다.

요런 녀석 봤나. 아주 앙콤한 녀석이다.

 

저도 생각하는 것이다. 항상 저만 일등하면 할머니가 놀기를 싫어할 지도 모른다고. 계속 할머니와 함께 놀기를 원한다면 할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래서 잔꾀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윈은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리는 놀이 도중에도 수시로 저 좋을 대로 룰을 바꿔가며 진행하기 일쑤다.

 

할머니는 이렇게 속보이게 꾀스러움을 부리는 아리가 오히려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