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84-일찍부터 규칙에 가두는 제도교육에 대하여

천마리학 2011. 3. 16. 20:02

 

 

 

*2011년 2월 19일(토)-일찍부터 규칙에 가두는 제도교육에 대하여.  

 

 

 

 

아리가 학교나 데이케어에 안 가는 날을 바라는 기색이 가끔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다. 처음에 그러니까 아리가 두 살도 채 되기 전에 데이케어에 보내면서부터 한 생각이다.

(저 어린 것을 벌써 부모와 떼어놓아야 하다니. 살 냄새가 얼마나 좋은 건데…)

조금씩 자라면서 아침이면 어김없이 행장을 차리고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서거나, 때로 할머니가 대행하거나 하면서도 늘 안쓰러웠다. 차츰 데이케어에 가는 것을 실증내지 않고 길들어갈 때 더욱 그랬다. 두 살 무렵까지는 그랬다.

(저 어린것을 제도권 교육으로 길들여야 하다니…)

그래도 아침마다 가지 않으려고 하지 않고 으레 가야하는 것으로, 데이케어에 가는것을 즐겁게 생각하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조금씩 더 자라 세 살이 되면서 때때로 가기 싫어할 때가 생기자 그 생각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

(평생을 사회의 규율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규칙과 제도에 얽매여야 하다니…)

벌써부터 인생 공부 시작이로구나. 훈련의 시작이구나. 불쌍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최근 3세 말 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가끔씩 데이케어에 가는 것을 싫어할 때가 생겼다. 특히 도나 선생의 엄격한 교육태도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엄격? 그것이 꼭 필요할까? 적당히 엄격할 필요가 있고 엄격을 가르칠 필요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교육을 위한 엄격일까? 잘 생각해보야야 한다. 아인 경우가 더 많다. 어찌됐던.

 

 

 

 

 

 

 

 

 

근래엔 아침에 눈을 뜨거나 저녁에 잠들기 전에 ‘할머니, 노스쿨, 노 데이케어 투데이?’하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더 자고 싶어 이불을 뒤집어쓰며 뭉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적당히 유도하여 일어나게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안쓰러운 마음 여전하다. 그러다보면 아래층에서 ‘데이케어 가야지. 빨리 일어나세요.’ 하는 엄마의 말이 들려온다. 얄미워지기도 한다. 게다가 아리의 활발하던 성격이 움추러드는 것으로 변해간다. 물론 천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하이!’하고 방글거리던 아이가 지금은 ‘하이!’는커녕 누가 이름을 물어도 아는 체로 반가워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데이케어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결국 뭔가가 아리를 바꾼다는 생각이다. 데이케어의 규칙, 특히 그것을 다루는 도나선생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집에서는 그렇게도 밝고 익사이팅한 아이가 어떻게 규율 속에 갇힐 것인가?

게다가 영어만 하는 게 아니다. 데이케어에서는 영어만을 사용하지만 집에서는 오히려 한국말과 불어를 더 많이 가르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보니 데이케어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국어가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데이케어 선생님들이 그것까지 귀담아 듣고 대처해주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소통의 길이 막힌다. 거기다 규칙은 엄격하여 늘 지적이 따라다닌다.

 

 

 

 

 

 

 

 

 

(아이 개성을 눈여겨 살펴주는 진짜 성의 있는 교육자가 필요하거나, 아이의 개성을 발견하여 맞춰주는 대안교육이 필요하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현실적인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 요즘 젊은 부모들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데이케어에 보내는 것은 꼭 현실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그것을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서 한심할 때가 있다.

이래저래 마음이 짜안하다.

  

최근에 도나 선생님을 비롯한 웬선생님의 태도를 보며 할머니는 매우 불만스럽다. “아리, 노우!”

하고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지적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어쩌다 아리가 픽업하러 간 할머니를 발견하고 뛰어온다거나, 아이들끼리 놀다가 순간적으로 짧은 거리를 뛸 때가 있을 때도 꼭꼭 불러 세우며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제지당한 아리가 머쓱해져서 서있고 어쩌다가 그 순간에 할머니가 와있으면 할머니의 눈치를 살핀다. 도나와 할머니 사이에서. 그 점이 교육상 어려운 점이며 동시에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할머니는 너무 과하다 싶은데도 일체 말 하지 않고 도나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도록 한다. 하면서도 지나치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아침에 교실에 막 도착했을 때인데, 도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집짓기 장난감을 아리 앞에 내놓으며 이거 네가 어제 놀다가 안 치운 거니까 치워라 하는 말을 들었다. 물론 리오와 함께. 리오는 나이가 두 살이나 위이고, 이미 킨더가든의 주니어 클라스다. 그러나 리오는 다른 아이와 노는데 여념이 없이 도나의 말을 무시했고 놀이 속으로 사라져 버린 후인데도 굳이 아리에게만 강요하는 것을 여실하게 봤다. 그 때도 할머닌 무안해하면서 눈치를 살피며 기가 죽어있는 아리를 간접적으로 달래며 유도하여 그 집짓기 놀이로 들어갔고 시간이 지난 후에 자연스럽게 치우게 했다.

도나 선생님은 매우 엄격한 편이고 웬 선생님은 태도는 조금 부드러운 편이지만 중국인이라서인지 중국아이들에게만 치우치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오나 제프리, 메튜 그리고 써니 등의 중국인 아이들과는 자주 테이블에 마주 앉아 놀아주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마다 아리는 따로 혼자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놀거나 그 아이들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속이 수세미 속이 되면서 교육에 대한, 교육자에 대한 인식에 불만이 강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꿀떡 삼키며 견딜 수밖에 없다. 상관하고 나서면 오히려 아리에게 해가 될 것 같아서다.

 

거기다 아리에겐 다른 아이와 다른 약점 아닌 약점이 있다. 한국어와 불어 그리고 영어혼용이라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이다. 그런 것들을 헤아려 감안한 보살핌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