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64-1월 23일(일)-수실아저씨

천마리학 2011. 2. 23. 17:55

 

 

  

*2011년 1월 23일(일)-수실아저씨

 

 

 

지난 11월 하순경부터 아리를 아래층 제 방에서 재우기 시작했었다.

아리의 이부자리를 펴놓고, 할머니가 잠이 들 때까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또 아빠가 재우기도 했다. 그렇게 아리가 며칠 동안은 잘 해냈다.

그래서 따로 재우기를 별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된다싶었는데, 어느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자정 무렵, 혹은 새벽 두 세 시 경이면 잠이 깨어 ‘할머니이!’하고 소리친다. 그 소리를 듣고 그러잖아도 잠귀 밝은 할머니가 안내려갈 수가 없다.

그 시간부터 같이 자게 되고, 잠이 들면 다시 올라와 할머니의 작업을 했다. 그 무렵, 소설 <등대섬>에 몰두했다.

그런데 아리는 밤마다 자정 무렵이면 꼭 할머니를 부르며 울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할머니는 수면시간이 점점 줄어들다 못해 아예 잠을 잘 시간을 잃어버렸다. 그러잖아도 불면증이 심한 할머니의 수면은 완전히 고장이 나버렸다.

 

평소 잠을 쉬 들지 못해 자정을 넘기기 일쑤인데다 컴퓨터작업을 시작했다하면 아예 날밤을 꼬박 새거나 새벽녘에야 잠을 자려고 하는 할머니의 습성 때문에 애를 먹는다.

근래에도 원고에 매달려 날밤을 꼬박 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삼일연속 뜬눈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다 아리가 새벽녘에 깨어나 할머니를 찾으니 어쩌다 그 전에 잠이 잠간 들었다가도 그렇게 깨고 나면 영영 잠을 자지 못하고 만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자 점점 몸이 지치고 맥을 못 추었다.

할머니 친구인 수실아저씨는 멜라토닌을 먹으라고 권해올 정도이다.

 

 

 

 

 

 

 

더 이상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엄마는 새해가 되자마자 한약보약을 지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리와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실아저씨의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엄마의 약 짓는 일도 반대했었다. 약에 의존하지 않고 할머니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선 아리와 할머니의 싸이클을 맞추기 위해서 결국 따로 재우기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못돼서 할머니 방에서 아리와 함께 자는 걸로 다시 바꾸었다.

가능한 한 저녁 9시경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8시경까지 재우기.

저녁에 좀더 일찍 재우고 싶지만 데이케어에서 돌아와 씻고 저녁 먹고… 그러다보면 빨라야 9시다. 그 시간을 만나는 것조차 사실 어렵다. 거의 강제적으로,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엄마아빠도 일찍 올라간다.

그 결과 요즘은 아리도 할머니도 수면시간이 늘어났다.

그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러다보니 단 1분도 할머니의 시간이 없다. 요사이는 할머니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는다. 주말이면 행여 내시간이 있을까 기대해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함께 놀아줘야하고, 함께 놀다가 혼자 노는 듯 하여 살며시 이층으로 올라오면 금방 할머니를 찾곤 한다. 휴우~

주말이라고 해서 아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토요일 오전엔 코리아 킨더 가든에 가야하고 바로 오는 경우 오후 1시경에 돌아온다. 오는 길에 쇼핑이라도 하려면 오후가 그럭저럭 다 보내진다. 다행히 코리아 킨더 가든에 가는 일은 아빠가 담당해주기 때문에 토요일 오전에 엄마와 할머니는 잠시 느긋해질 수 있는데 엄마는 여전히 도리 때문에 손을 뗄 수 없고, 할머니 역시 그런 엄마 곁에서 자질구레한 집안일 하다보면 제대로 영화 한편을 보기 어렵다.

고작 컴퓨터를 이용하여 한국의 KBS 9시 뉴스와 어쩌다가 짬을 내어 시사교양프로그램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골라 보는 정도다.

하여튼 어렵더라도 계속 상황을 체크해가며 노력해보는 수밖에. 그렇다고 아리의 교육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할머니 친구 수실아저씨가 또 선물을 가지고 오시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은 며칠 전부터 했던 이야기지만 자꾸만 많은 선물을 주시고 너무나 잘 해주시니까 미안하고 고마운데…. 그래서 자꾸만 미루고 핑계 대어왔었는데, 그것조차도 미안할 지경.

오늘은 수실 아저씨도 날씨가 너무나 추워서 외출을 안 하지만 선물을 준비해놓고 진즉부터 전달하려고 했었는데 자꾸만 미루어져서 아저씨가 선물만 전달하겠다잖아.

 

 

 

 

 

 

 

 

3시 45분.

할머니의 가방과 아빠의 선 그라스, 엄마에겐 다크 초컬릿, 그리고 아리에겐 롤리팝, 하지만 이건 엄마 선에서 스톱, 아리에게 전달이 안 되지^*^ 너무 달기 때문에.

로비에서 수실아저씨하고 30 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지.

 

와, 할머니 선물인 가방 속에는 또 하나의 숄더백이 들어있고, 숄더백 속에는 은색 펜이 두 개나 나란히 꽂혀있고, 작은 쇼핑용 가방, 작은 수첩과 동전지갑, 2011년 달력, 표지가 가죽으로 되어있는 노트와 편지지와 봉투 여러 가지.

정말 수실아저씨는 너무나 자상하셔.

수실아저씨가 젊은 시절에 영국에 처음 가서 살기 시작했을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할머니가 여러 가지로 적응하기 어려울 거라면서 세심하게 신경을 서주시는 거야.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외출을 안 하시는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서 일부러 오신거야. 콘도 앞에 차를 파킹해놓고 로비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지. 할머니는 곧 아리를 픽업하려 가야하니까.^*^

땡큐, 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