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63-TTC 노선도와 시내지도, 영화 <UP>

천마리학 2011. 2. 19. 19:54

 

 

 

*2011년 1월 22일(토)-TTC 노선도와 시내지도, 영화 <UP>

 

 

 

 

요사이 아리는 부쩍 더 할머니를 밝힌다.

아리와 함께 아래층에서 놀이를 하다가 저 혼자서 잘 노는구나 싶어 살며시 할머니 방으로 올라와 버리면 단 5분도 안되어

“Where is 할머니?”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계단을 올라오는 통통통 소리가 들린다.

그 다음부터는 할머니는 꼼짝없이 아리에게 붙들려 함께 보내야 한다.

손자를 길러내는 일, 그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지금 내 인생에서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삶, 나의 인생, 더구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심각하다. 갈등을 안 느낄 수가 없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일, 둘 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3세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집에서 아리에게 단연 할머니가 1순위였다. 그러나 아리가 세 살이 되면서부터 점점 아버지를 따르기 시작했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야 핏줄이겠지만 그 외에 부수적인 이유도 있다.

아리의 덩치가 점점 커지면서 몸무게도 늘고 활동범위도 늘어나 할머니가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함께 딩굴고, 들어올리고, 뱅뱅이를 돌리는 등 가뿐하게 하던 것들을 할머니가 할 수 없게 되자 거뜬하게 목마를 태우고, 뱅뱅이를 돌리는 아빠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더니 4세가 된 요사이 다시 할머니를 끔찍하게도 찾는다.

 

 

 

 

 

 

 

 

엄마가 출산을 하고 데이케어 가고 오는 일부터 시작해서 할머니가 전적으로 도맡게 되면서부터다. 평소에도 아리의 교육에 나름대로 신경 쓰는 점도 있지만 그 외에도 동생이 생겨 행여나 소외감 느끼게 될까봐서 각별히 그쪽으로 신경을 더 쓰다 보니 아리는 할머니를 챙기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아빠가 퇴근해오기만 하면 무척이나 반긴다.

토요일마다 코리아 킨더 가든에 가는 일, 아리 목욕시키는 일은 아빠 전담이고, 가끔 놀아주고 외출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할머니 방의 세계지도의 위치를 바꾸고, 아리의 책과 소지품을 놓는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화장실 문의 안쪽에 토론토시의 TTC 맵과 씨티 맵을 오려 붙였다.

아리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다.

 

 

 

 

 

 

 

 

지난 주 월요일에 TTC 카드를 티켓박스에 넣어버려 사용 못하다가, 금요일에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찾으러 고객서비스실이 있는 Davitville Station 에 갔을 때 가져온 것이다. 아리의 교육용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거기 붙어있는 확대된 지도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없다고했다. 그래서 고객용으로 비치되어있는 팜프렛을 넉넉하게 여러 장 가져왔었다.

 

아리의 눈높이에 맞도록 나지막하게 노선표와 지도를 위아래로 붙였다.

아직 어린 아리에게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만, 그래도 할머니 생각을 다르다. 완전히 파악하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구조, 또는 역 이름과 단어 등을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보면 뭔가 지도를 보는, 또는 방향을 이해하게 되는, 또 구조를 이해하는 감각이 트일 수 있을 테니까. 설령 그렇지 못하다하더라도 아리에겐 새로운 범위의 공부이고 체험이다.

 

사실 다시 할머니가 데이케어에 데리고 다니는 동안, 데이케어에 오가는 노선도 바꿨다. 엄마랑 다닐 때는 언제나 ‘브램너 블레버드 스테이션’에서 ‘스파다이너 스테이션’방향의 510번 스트리트 카 만을 이용하였다. 스파다이너 스테이션에서 블루어 라인의 서브웨이를 타고 한 정거장 가는 세인 죠지역에서 내리면 된다.

 

 

 

 

 

 

 

세인 죠지 역의 지상건물에 바로 토론토대학의 오이지(OIGE)교육센터가 있고 그 센터 안에 부속으로 아리가 다니는 데이케어가 있다.

그러나 지난 12월부터 할머니가 데리고 다니면서 방향을 바꿔어 봤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유니온 스테이션’ 노선을 이용해 본 것이다.

같은 510번이지만 반대방향의 스트리트 카를 타면, ‘퀸즈키 스트리트’를 거쳐서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가고, 유니온스테이션에서 영 라인 서브웨이로 갈아타고 세인 죠지 역까지 간다. 그 사이에 세인 앤두류 역, 오스굿 역, 세인 페트릭 역, 퀸즈 파크 역, 무제움 역 그리고 세인 죠지 역이다.

 

 

 

 

 

 

 

 

스파다이너 역으로 가면 서브웨이를 한 정거장만 타는데 비하여 유니온 역 쪽으로 가면, 여섯 번 째 역이 된다. 그 시간이 즐겁다. 역마다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이야기 해주었다.

아빠 이름과 같은 세인 페트릭 역, 어? 데디 역? 하며 신기해 했다.

“그럼 할머니 역은 없나?”

하고 슬픈 표정을 했더니.

“오우, 넥스트 스테이션 이즈 할머니 역!”

“정말?”하고 안심하는 척 했는데 다음 역 퀸즈 파크역이 나왔을 때 다시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더니,

“오우, 할머니, 던 워리, 던 워리, 더 가면 할머니 역이 있어요.” 하면서 자기가 언젠가 분명히 할머니 역이라고 들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요런 깜찍한 녀석!

 

무제움 역…

“무제움은 한국말로 박물관이야, 박 물 관, 따라해 봐, 박 물 관”

“박 물 관?”

그 뒤부터는 ‘박물관’을 잊어버리면 알밤! 안 잊어버리면 귀 마사지!

이건 아리와 할머니 사이의 벌과 상이다.

 

 

 

 

 

 

한국말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되고,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더니 지금 가보자고 눈을 빤짝였다. 그래서 주말에 가자고 달래어야 했다. 그만큼 관심이 촉발된 증거이다.

또 무제움 프렛폼에는 무제움의 특징을 살려서 도깨비, 파라오, 왕 등의 모형으로 기둥을 세웠기 때문에 그것 또한 아리에게 인상적이 되어 관심이 높다.

 

퀸즈파크 스테이션.

“아리, 기억하니? 우리 여름에 피크닉 갔었잖아. 거기서 다람쥐하고 놀았잖아. 그 생각 안나니?”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할머니가 서둘러서 6시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영화로 <UP>을 보았다.

평소에는 저녁식사시간이 항상 7시가 넘어야 했지만, 오늘은 주말이기 때문에 아리를 일찍 재우기 위해서 앞당겼다.

<UP>을 두어 달 전에 본 일이 있는데 그땐 좀 건성인 듯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심취해서 보았다. 이해가 되니까 장면에 따라 잔뜩 긴장하기도 하고 걱정스러워하기도 하면서.

풍선매단 집이 무사히 떠오른다거나, 나쁜 사람에게 쫒기다가 무사히 탈출하게 될 때는 야! 하고 소리치며 손뼉을 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