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남을 돕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천마리학 2010. 2. 1. 11:21

 

 

남을 돕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 권 천 학

 

 

지난 12일 아이티에 일어난 지진을 전해주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뻥 뚫린 듯 벌린 입을 다물기가 어려웠다. 천재지변을 당한 아이티 사람들의 절망과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풍성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일도 편안한 침대에서 자는 일마저도 죄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나에게 나의 삶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아이티를 돕는 성금을 보내기 위하여 두드리기 시작한 인터넷 뱅킹이 보안카드의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안내 멘트가 나오고 그걸 풀어보려고 계속하다보니 사용중지가 되어버렸다. 이럴 수가. 며칠 전까지도 아무 일없이 잘 되던 인터넷 뱅킹이 갑자기 닫히다니. 무슨 변괴인가. 칫, 어쩌다가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생겨 실행하고자 하는데 그것마저 막히다니. 항상 내 생각만 하고, 내 욕심만 부리며 살아온 내가 모처럼 남을 돕겠다는데 그도 안 되니 남을 돕는 일 조차도 내 팔자엔 없나보다 하며 쓴 입맛을 다셨다. 사후 절차를 밟느라고 며칠을 보내면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문득 남을 돕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 남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온 나에게 하느님의 책망이 내리는 것이구나 하는. 넌 남을 도울 자격도 없어! 하고. 하느님도 참!

견딜 수가 없어서 어느 날 저녁식탁에서 딸아이 내외에게 인터넷 뱅킹이 막혀서 성금도 낼 수 없게 되었다는 고민을 말했다. 그랬더니 딸과 사위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딸의 직장과 사위의 직장에서 벌리고 있는 성금행사에 엄마의 몫도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겨우 마음의 송구함을 씻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뻔뻔하게 살아왔다. 남을 돕는 일을 별로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남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늘 많았다. 그러나 그럴듯하게 실행에 옮긴 일이 거의 없다. 사실 나는 오래 전, 우리나라에 GEO가 없을 때부터 GEO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십 대 이후의 삶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경희대학교에 GEO 강좌가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때 내 아이의 외국 유학이 시작되었고 그 뒷바라지로 정신을 집중시키느라 등록금마련이 어려웠다. 그 후 나는 때가 되면, 그리고 나의 생활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굶주림으로 시달리는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 난민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그때는 또 나에게 첫 손자가 생겼고 그 손자를 돌봐야 할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나는 남을 돕는 일도 때가 맞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의를 좆아 소의를 버리는 것이 대인의 삶인가 보다. 나는 역시 소인이다 하는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비루하게 잠재웠다.

남을 돕는 일은 마음만이 아니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시간도 돈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기나 재주도 능력이다. 결국 남을 돕는 일 역시 내가 있고 난 후의 일이다. 나 자신이 먼저 두 발로 확실하게 선 다음에야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다. 가족이든 타인이든 간에 내가 짐이 되는 입장에서 남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선 나부터 남의 도움이 필요치 않게 되어야 한다. 스스로 위선자 아냐? 하는 속보이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생각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내 후반기의 삶을 인류 봉사와 헌신으로 보내야겠다는 계획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오히려 내 삶과 내 주변의 삶부터 불편 없이 정리된 후라야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 나 스스로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또 남을 돕는 일은 꼭 돈만이 아니다. 노력봉사도 있고 재주나 특기 봉사도 있다. 그렇다면 내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은 결국 내가 그나마 손쉽게 할 수 있는 글쓰기다. 자라나는 어린이나 글을 쓰고자 하는 어른들에게도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나 교육을 시킬 수 있고, 좋은 글을 씀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이나 지혜의 길을 터준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왠지 그것만으론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몸으로 하는 작은 봉사라도 겸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토론토로 옮겨 살게 되었다. 막상 옮겨 앉고 보니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으나 이젠 또 영어가 문제였다. 아직은 손자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차지만 나의 소망을 실현시킬 장래의 일을 생각해서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늦은 나이와 없는 시간이 걸림돌이 됨은 물론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이티 지진이 일어났고 그 작은 성금마저도 내 힘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자식들의 힘을 빌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 하느님은 그 거룩한 일을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는구나. 평소에 작으나 큰, 남을 돕는 신성한 일을 열심히 해서 연습해두는 것이 삶의 큰 자산(資産)이 되는구나. 결국 나 스스로가 나를 돕지 못했구나 하는 깊은 각성을 하게 한 아이티! 빨리 일어서라!

 

<2010년 1월 26일 화 토론토에서 / 1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