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시사칼럼-포식자 인간의 애교 ‘칠면조의 사면’

천마리학 2010. 1. 27. 10:27

 

   

<시사칼럼>

 

 

포식자 인간의 애교 ‘칠면조의 사면’ * 권 천 학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칠면조를 사면하는 장면의 사진을 보았다. 전국칠면조 연맹인 NTF에서 추수감사절 만찬용으로 백악관에 기증된 칠면조를 요리해먹지 않고 살려주는 간단한 의식이다. 급박한 정세와 중요한 사안을 처리하기에도 바쁘고 긴장된 시간을 보내야 할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이게 무슨 해프닝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한편,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휴식의 점 하나 찍어주는, 작지만 나름대로 재미 있는 의식이라고 봐줘야 할 지, 의미 있는 의식이라고 봐줘야 한지… 근지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눈감고 아웅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해마다 5천만 마리에 가까운 칠면조가 추수감사절에 요리로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삼복에 개를 요리해먹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렇게 사면된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의 칠면조는 ‘올해의 칠면조’라는 명예(?)를 안고 디즈니랜드로 옮겨져 디즈니랜드의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그랜드 마샬’로 참석하게 되고, 그 다음엔 디즈니랜드 내의 프론티어 랜드의 빅 선더 랜치에 가서 천수를 누리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보내는 여생에 대하여 과연 칠면조는 만족할까? 그리고 감사해 할까? 인간들의 헤프닝을 비웃고나 있지 않을까?

 

 

 

 

 

 

 

추수감사절에 잡아 먹히는 5천 여 마리의 칠면조에 대한 인간의 미안함을 사죄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죄이면서 합리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어찌 됐건 목숨을 바쳐야 할 칠면조가 오히려 평생의 안락을 약속 받는 일이니 칠면조에겐 천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잘 길들어진 인간이라는 동물의 상식으로 하는 아전인수격의 생각에 불과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맨 처음 인도라고 믿고 상륙한 신세계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보게 된 이름 모르는 날짐승을 공작을 뜻하는 인도말인 ‘터키’라고 불러서 칠면조가 ‘터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연유에서부터 오늘날의 사면식에 이르기까지 칠면조들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그렇듯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져 왔을 것이다. 이는 칠면조와 인간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헌신봉사 당하는 모든 가축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핏빛 역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런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변이 없는 한 인간은 변함없이 강자 내지 포식자의 위치에 서 있을 것이다. 강자의 입장에 선 인간의 이름으로 잠시 미안함을 표하고 희생되는 그들을 위하여 잠시 묵념을 올려주는 인간의 애교 어린 상징적 행위인 셈이다.

 

백악관에 기증되는 칠면조는 보통 칠면조와는 달리 엄선되어 특별 관리를 받은 칠면조라고 한다. 미국에서 칠면조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노스캐롤라이나 농장에서 갓 부화한 수컷 칠면조 2,500마리 정도가 쾌적한 환경에서 특별히 길러진 다음, 8월에 몸무게가 25파운드 정도가 되면 그 중에서도 튼실한 녀석 6마리를 골라 별도 건물에서 따로 보살핀 후 가장 탐스럽고 잘 생긴 칠면조를 골라 추수감사절에 즈음하여 백악관으로 보내게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옛날 임금에게 고르고 골라서 진상하는 진상품이다. 백악관에서는 이 진상품으로 추수감사절 만찬 요리로 만들어 즐기는 것이 미국의 추수감사절 전통이다. 그런데 이 진상품이 최초로 요리로 사용되지 않은 것은 1926년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 때라고 한다. 당시 크리스마스 만찬용으로 보내어진 칠면조를 대통령의 아들 태드가 애완동물처럼 좋아해서 ‘잭’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친구처럼 노는 것을 보고 차마 먹을 수가 없어서 사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잭은 한동안 백악관 안뜰을 누비며 ‘퍼스트 터키’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 후에도 백악관에서는 추수감사절이 되면 여전히 엄선되어 뽑혀온 칠면조요리를 즐기곤 했는데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다시 이 사면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의 모든 대통령들이 다 칠면조 사면을 한 것은 아니다. 드와이트 아이젠 대통령은 두 번 임기 내내 진상된 칠면조를 요리해 먹었다고 한다. 그런 ‘칠면조 사면’이 공식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89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부터라고 한다. 그 전통이 이어져 오늘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내려 온 것이다.

늘 긴박하고 중차대한 일들이 다루어지는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이 꼭 해프닝만은 아니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긴장의 연속으로 굳어진 분위기를 잠시나마 풀어내는 여유, 휴식의 점 하나, 위트, 유모어…

 

더불어 생각의 가지를 뻗어 이야기 해보자면,

만일 삼복에 개를 요리해먹는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한 마리쯤 이유를 붙여 상징적으로 사면식을 거쳐 살려주는 행사를 한다면 어떨까? 그러잖아도 프랑스의 여배우처럼 우리나라의 개고기 요리에 대하여 왈가왈부 시비가 더러 있기도 한 판에 개의 사면식을 한다면 개고기 문화에 대한 문화적 충돌에 대한 완화도 되고, 홍보도 되지 않을까?

칠면조의 사면식 사진을 보고 속이 근지러운 같은 과의 인간으로서 잠시 생각의 점 하나 찍어보았다.

 

<2009년 11월28일 토, 토론토에서//1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