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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가짜명품 만드는 고도의 양심불량 * 권 천 학

천마리학 2010. 1. 18. 00:18

 

 

 

시사칼럼

 

가짜명품 만드는 고도의 양심불량 * 권 천 학

 

 

 

'가짜 명품' 가방 제조 공장 적발'이라는 뉴스를 보고 참 속없는 사람들…하는 말이 입 속에서 흐물거렸다. 취재기자는 '씁쓸한 소식'이라고 했지만 나는 '속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가짜명품을 만드는 공장'이라면 이 공장은 진짜 명품공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것이야말로 돌을 보석으로 만드는 연금술사처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할 테니까. 가짜명품만드는진짜공장, 가짜명품만드는진짜공장…

헷갈린다. 가짜명품을 만드는 진짜공장이 명품공장?

마치 '간장공장공장장은 장공장장 된장공장공장장은 김공장장' 하는 말놀이 같다.

말이 헷갈리니까 생각도 헷갈린다. 아무리 헷갈려도 헷갈리지 말자.

고도의 기술이 아니라 고도의 양심불량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진품 가격으로는 수백 만 원짜리이지만 단돈 만원에 동대문이나 이태원에 있는 전문 가게로 넘어가고, 그 가게에서는 15만원에서 20만 원 정도에 팔린다고 한다. 서울의 허름한 작업장에서 중국산 원단과 부속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이른 바 짝퉁명품이다.

"사람들이 오리지널을 사면 우리가 이걸 안 만들죠."

제조업자의 말이다. 할 일을 한다는 투다.

알고 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제조업자는 한 술 더 떠 당연한 말을 하듯 대답한다.

"당연히 알고 사죠"

그 말에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거기다 핑계까지 그럴듯하게 댄다. 사뭇 거국적이기까지 하다.

"수출이 많이 돼서 일거리 많으면 이런 일 하라고 해도 안 해요. 백화점 같은 데서는 소규모 공장에 거의 물건을 안 맡겨요."

수출이 안 되니까 가짜를 만들고, 속없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가짜를 전문으로 만드는 일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짝퉁가방을 만드느라고 원단을 미싱에 이어 붙이면서 양심마저 둘둘 박아버린 모양이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한 조각의 뉘우침도 없어 보인다.

 

 

 

 

 

 

 

 

하기야 먹고 살기 위하여 혹은 배가 고파서 담을 넘고, 진열장의 유리문을 몰래 열고, 남의 가방을 여는 소위 생계형 도둑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 이 현실에서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남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보다 더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배가 고파 남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은 배만 부르게 되면 그 짓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경제가 좋아져도 쉽게 돈 벌 궁리만 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당국은 가짜 명품을 파는 소매상 단속과 함께 가방 제작을 주문한 전문 판매업자에 대해서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그보다 소규모 제조업자들이나 중소기업자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아니,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양심을 찾는 일이다. 이 물건이 과연 필요한가. 이 물건을 만드는 일이 떳떳한 돈벌이인가 하는 것을 먼저 짚어보는 양심. 그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만약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기자의 질문에도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가짜를 가짜인 줄 알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존심을 지키라고, 자존심을 지켜서 그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짜로라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착각, 가짜는 절대로 진짜가 아니라는 것, 가짜는 자신을 더욱 가짜로 만들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속없는 사람들'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가짜로 허세를 부리며 자신을 위무하기보다는 하루빨리 착각에서 벗어나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살기 힘드니까 나쁜 일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가짜인 줄 알면서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만든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파는 사람이 있으니까 산다는 뒷골목의 성 매매. 이런 논리가 통해서는 안 된다. 악순환의 연결 고리일 뿐이다.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알아버린 그들이 수출이 잘 된다고 과연 그 짓을 안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직 양심에 맡길 일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당장 거리로 나앉더라도 양심 찔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용기 있는 삶의 자세다. 비록 거리로 나앉는다고 누구나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지만 바르게 걷고, 떳떳하기 위해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자세다.

 

<12매/2009년 3월 11일 씀/ 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