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시사칼럼-재봉틀에 박아버린 양심

천마리학 2009. 11. 7. 10:11

 

 

   <시사칼럼>

 

                          재봉틀에 박아버린 양심

                                        -가짜명품 만드는 공장

 

 

권     천     학(시인)


 

'가짜 명품 가방 제조 공장‘을 적발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진품 가격으로는 수백 만 원짜리이지만 단돈 만원에 동대문이나 이태원에 있는 전문 가게로 넘어가고, 그 가게에서는 15만원에서 20만 원 정도에 팔린다고 한다. 서울의 허름한 작업장에서 중국산 원단과 부속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이른 바 짝퉁명품이다.

명품이야 좋겠지만 가짜가 뭐 그리 좋다고. 가짜라도 들고 명품행세하면 그 마음 정말 쁘듯할까? 속없는 사람들…하는 말이 입속에서 흐물거렸다. 나는 '속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취재기자는 '씁쓸한 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씁씁하기도 하다. 한편으론 헛헛하기도 하다. ‘명품이 뭐길래?’ '가짜명품을 만드는 공장'이라면 이 공장은 진짜 명품공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가짜명품만드는진짜공장, 가짜명품만드는진짜공장… 헷갈린다. 가짜명품을 만드는 진짜공장이 명품공장? 마치 '간장공장공장장은 장공장장 된장공장공장장은 김공장장' 하는 말놀이 같다. 말이 헷갈리니까 생각도 헷갈린다. 아무리 헷갈려도 헷갈리지 말자….

허튼 생각에 빠져 건성으로 뉴스를 흘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오리지널을 사면 우리가 이걸 안 만들죠."

이어지는 뉴스 중에 제조업자의 말이다. 할 일을 한다는 투다.

알고 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제조업자는 한 술 더 떠 당연한 말을 하듯 대답한다.

"당연히 알고 사죠"

그 말에 마치 내가 가짜 명품을 산 사람처럼 얼굴이 민망함의 후끈거림이 지나간다.

거기다 핑계인지 변명인지 아니면 원망인지 모를 말이 그럴듯하게 어어진다. 사뭇 거국적이기까지 하다.

 

 

 

 

 

100년의 소리-고성현의 작품-해밀턴의 로얄보타니칼 가든

 

 

 

 

"수출이 많이 돼서 일거리 많으면 이런 일 하라고 해도 안 해요. 백화점 같은 데서는 소규모 공장에 거의 물건을 안 맡겨요."

수출이 안 되니까 가짜를 진짜로 만들고, 속없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가짜를 전문으로 만드는 일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짝퉁 가방을 만드느라고 원단을 재봉틀에 이어 붙이면서 양심마저 둘둘 박아버린 모양이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한 조각의 뉘우침도 없어 보인다.

가짜 명품을 구입하여 근근이 자신을 위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속없는 사람이라고 중얼거리며 건성으로 대충 뉴스를 흘리고 있는데, 가짜 명품 제조업자의 핑계가 사뭇 거국적이기까지 하다. 부끄러움이 없는 그 뻔뻔스러운 태도가 더욱 얄밉다.

웃겨 정말!

속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주머니를 채우면서 경제의 역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변명을 하는 걸 보면 가짜를 만드는 일이 그리 내세울만한 일이 못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알면서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만든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파는 사람이 있으니까 산다는 뒷골목의 성매매. 이런 논리가 통해서는 안 된다. 악순환의 연결 고리일 뿐이다.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알아버린 그들이 수출이 잘 된다고 과연 그 짓을 안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직 양심에 맡길 일이다.

요즘 늘어나는 장발장식 도둑, 배가 고파서 담을 넘고, 남의 가게에 들어가 진열장의 유리문을 몰래 열고, 남의 가방을 열다가 붙잡힌 소위 생계형 도둑들을 보면서 일말의 안쓰러움 같은 연민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들은 급속도로 악화된 경제상황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생긴 소위 생계형 도둑이기 때문이다. ‘생계형’이라는 말은 붙인 것 자체가 바로 그런 연민의 표시이다. 물론 생계형 도둑이라 해서 그들의 행위를 옹호 받은 수는 없다. 살기 힘드니까 도둑질을 해도 나쁘지 않다? 그런 논리도 성립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짜 명품을 만들어 몰래 유통시키면서 뻔뻔스러울 수 있다니, 배가 고파서 남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보다 더 비겁하다고 더 불쌍해 보인다. 생계형 도둑들보다 더 단호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 남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은 배만 부르게 되면 그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라도 있지만, 가짜 명품을 만들어서 쉽게 돈을 벌고도 뻔뻔한 사람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안 이상 경제가 좋아져도 쉽게 돈 벌 궁리만 하려고 들것이기 때문이다.

 

 

 

 

100년의 소리-고성현의 작품-해밀턴 로얄보타니칼 가든

 

 

 

 

이런 나의 생각에 장단을 맞추기라도 하듯, 수사당국은 가짜 명품을 파는 소매상 단속과 함께 가방 제작을 주문한 전문 판매업자에 대해서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규모 제조업자들이나 중소기업자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 환경을 만든다든지, 경제기반을 다시 튼튼하게 만들어 경제상황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오늘의 경제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친 것이 아니듯이 경제가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일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사회적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모두가 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의 양심을 찾는 일이다. 이 물건이 과연 필요한가. 이 물건을 만드는 일이 떳떳한 돈벌이인가 하는 것을 먼저 짚어보는 양심. 그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만약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기자의 질문에도 그렇게 뻔뻔할 수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양심을 접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도 있어야 한다.

가짜를 가짜인 줄 알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존심을 지키라고, 가짜로라도 자신을 치장해야 자존심이 지켜진다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라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바로 가짜 명품제조업자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길이라고 그리고 가짜를 사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 둘 다에게 부끄러움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가짜 대신 부끄러움을 사고 팔아야 한다고… 가짜 명품공장에 대한 뉴스가 진행되는 동안 잠시 뉴스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한 생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장 거리로 나앉는다 해도 양심 찔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것도 용기 있는 삶의 자세라는 것. 비록 거리로 나앉는다고 누구나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지만 바르게 걷고, 떳떳하기 위해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자세다.

 

<16매/2009년 3월 11일/ 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