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칼럼-문딩이 코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지…

천마리학 2009. 10. 8. 06:00

 

  

 

 

문딩이 코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지…

 

 

                                   권 천 학(시인)

 

 

 

내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보리고개’라는 말을 듣고는 엄마 보리고개가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대관령이나 추풍령과 같은 어느 높은 산 고개의 이름으로 알고 묻는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 어릴 적보다는 얼마나 풍요로워진 세상인가 생각하며, 내 아이에게 가난을 가르치는 일을 빠트릴까 봐서 신경을 썼었다. 그러던 아이가 지금 삼십 대 중반이 되어가니 벌써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 삼십 년 동안, 세상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했고 가난도 훨씬 빨리 사라져갔다. 그 동안 우리와 우리의 어버이 세대는 몇 번을 허리띠를 졸라맸다 풀었다, 빈 보퉁이를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고생했다. 고생하면서 우리의 자식세대에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이를 앙다물었다. 대통령은 경제개발 오 개년 계획이라는 듣고 보면 참 서글픈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기까지 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한다. 그리하여, 모두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오히려 풍요가 지나쳐서 비만의 시대가 되었다. 보리고개야말로 추억이 되었고, 웰빙식품과 같이 되어버렸다. 보리고개를 겪던 시절의 식품들이 지금은 사치로 먹거나 장수를 위해서 일부러 비싼 돈 들여 찾아먹는 사치스러운 식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시절에 일반명사였던 보리고개가 지금은 특수명사가 된 셈이다.

 

 

 

 

 

 

 

 

지금 우리는 분명 비만으로 넘치는 식탁 앞에 앉아있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번들거리는 쇼핑 센터의 거울 앞에 서서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고 자축한다. 이처럼 골라먹고, 너무 먹는 시대가 왔으니 굶는 사람은 없어야 맞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굶는 나라, 굶는 사람이 많다. 세상은 언제나 밤과 낮이 있고 모든 일에는 양지와 그늘이 있듯이.

우리와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은 가난의 시절엔 어떻게든 먹었다. 송피(松皮)를 벗기고 풀씨를 모으고 나물을 뜯어 죽을 쑤어먹더라도, 몸이 마르긴 했어도 굶어 죽는 없었다. 그런데 풍요로워졌다고 하는 지금 지구상의 어느 구석에선가 매일 끊임없이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식의 시장논리가 가져다 준 풍요다. 어느 누군가는 누군가로부터 보이지 않게 뺏고 뺏기는 불균형의 풍요. 풍요의 명(明)과 암(暗)이다. 잘 사는 시대의 넌센스다. 그 넌센스가 잘 살게 되었다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아직도 결식아동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있는 현실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그 동안 정부에서 급식지원을 해왔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지만 굶겨서는 안 되겠기에 학교급식을 해왔다. 그렇게 끼니를 해결하던 가난한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어려워진다. 그래서 방학 중에도 한시적으로 급식 지원을 받아왔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그 방학 동안의 급식지원이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지원하던 예산을 삭감해버리고 그 부담을 각 지자체에 떠맡기고 그 부담을 떠맡게 된 전국 16개 지차체는 재정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 내년엔 급식지원이 끊기게 된다는 것이다. 급식이 끊기면 32만 명의 학생이 굶게 된다.

 

 

 

 

 

 

 

문딩이 코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지, 결식아동 여름방학 동안의 급식비를 빼다니, 쯧!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었다.

나라살림에 돈 들어가는 일이 한 두 곳이 아님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일의 중요성에 따라 완급과 우열을 조절해야 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국제관계도 중요하고, 외교문제도 중요하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이들 먹여오던 예산을 삭감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옛날부터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 논에 물 대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고 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우리 모두 부모이기도 하다. 북한 돕기도 좋고, 가난한 다른 나라를 돕는 것도 좋지만 우선 내 새끼 배부터 채우는 것이 순서 아닐까?

 

 

 

 

 

 

 

 

4대강 정화사업으로 쏟아 붓는 엄청난 예산으로 막대한 국고손실을 염려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그 액수에 비하면 굶는 새끼들 먹이는 돈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이고 내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 있을까. 잘 키워야 하는 것은 부모의 희망이자 책임이다. 배부른 사람들은 배고픔의 설움을 모른다더니 높이 앉아계시는 분들은 낮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르나 보다. 큰일만 나랏일이 아니다. 우리의 새싹들을 키우는 일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른 것 줄이고 우선 우리의 새끼들부터 먹이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