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태극기’를 ‘태극기’로 인식시키자

천마리학 2009. 12. 13. 03:28

 

 

‘태극기’를 ‘태극기’로 인식시키자

 

권 천 학  

 

지난 10월 2일, 온타리오 주 의사당에서 열린 제28회 한인의 날 기념식에 다녀왔다. 행사는 주 의사당 앞의 잔디밭에서의 태극기 게양식에 이어 의사당 안의 리셉션장에서 가진 축하연으로 마무리 되었다. 한인의 날 기념행사이므로 당연히 한인들이 대다수였지만 내빈들 중에는 외국인들도 섞여있었다. 국기게양이라는 뜻있는 자리에 온 가족이 함께 초대되어 모처럼 모이는 한인들끼리의 만남의 장소라서 각별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물놀이의 연주가 시작되자 거기 모인 한인들은 물론 행사와는 관계없는 근처의 외국인들까지도 시선이 집중되었다. 타악기 특유의 묘한 끌림에 더하여, 울려 퍼지는 우리의 전통 사물놀이 장단에 쿵쾅쿵쾅 가슴이 뛰었다. 꽹가리며 징이며 북이며 장고가 어우러져 내는 소리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내가 한국인임을 일깨우는 큰 소리였다. 뭉클했다.

태극기 게양이 시작되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맑은 캐나다의 하늘에 천천히 오르는 태극기를 따라 시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시선을 따라 마음도 함께 게양되는 기분이었다.

 

 

 

 

 

 

 

 

‘태극기! 태극기!’

두 살 반짜리 손자 ‘아리’가 신기한 듯 외쳤다. 또 한 번 가슴이 저릿했다.

작년에 한국에 다녀올 때 핸드폰에나 걸면 마땅할, 고무로 만들어진 조그만 태극기 두 개를 어머니로부터 받아 왔다. 당신께 증손자가 되는, 나의 손자 ‘아리’에게 주라고 하셨다. 작지만 볼륨감도 있고 모양이 선명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져서 더욱 소중했다. 한 개는 ‘아리’의 앞섶에 매달아주고, 한 개는 나의 배낭 지퍼에 매달고 다닌다. 그렇게 해서 ‘아리’는 그렇게 처음으로 태극기를 알게 되었고, 나는 가끔 길에서 한국사람이세요? 하고 말을 걸어오는 한국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외국인도 있다. 그때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라고 설명해준다. 외국인을 대할 때마다 나는 항상 면허증 없는 외교관이 되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킹 스트리트에 있는 스코셔 뱅크의 객장 안의 정면 벽에 세계 각국의 국기들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중심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태극기를 발견하였다. 그날 나는 ‘아리’를 그곳에 데리고 가서 태극기를 보여주었더니 ‘크다 태극기, 크다 태극기’하면서 서툰 발음을 익히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태극기가 토론토의 하늘에 휘날리는 날, 낯선 나라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수고하셨을 28년 전의 이민 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했고, 어린 손자의 태극기에 대한 인식이 뿌듯했다. 따라서 오늘 나에게 조국이 존재하는 사실에 감사했다. 태극기가 게양되는 짤막한 시간이었지만 가슴은 뜨거웠다.

 

 

 

 

 

 

 

 

식은 한국말과 영어로 진행되었다. 사회자도 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 가지, 한국어와 영어로 인쇄된 식순의 팜프렛에서 아쉬운 점을 발견하였다.

그대로 옮기면 -태극기 게양(Flag raising accompanied by Korean)-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쉽다. 한국말로는 ‘태극기’라고 해놓고 영어로는 ‘Flag’다. 국기라고만 해도 한국사람은 다 안다. 정작 영어로 표현해야 할 태극기라는 말이 빠졌다. ‘Flag’ 대신 ‘태극기’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문장으로 바꾸면 안 될까? ‘태극기’를 ‘태극기’로 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단어 하나만 바꾸면 될 일이다. 마치 ‘태권도’가 ‘태권도(Taekwondo)'이듯이. 28회가 되도록 무심하게 방치되었음이 매우 아쉬웠다. 선배들이 일구어 놓은 것을 보완 보충해나가는 것이 후배들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런 기회가 그 자리에 참석한 외국인들에게, 그리고 그 외국인들을 통하여 더 널리 자연스럽게 우리의 태극기를 알리는 기회가 된다. 우리의 말이든 글이든, 문화든 상표든, 우리말로 인식시키는 것은 우리의 국력을, 우리나라의 존재를 세계 속으로 확장시키는 일임과 동시에 국력신장의 표현이며 지름길이므로 작은 일 같지만 큰일이다. 우리의 ‘김치’가 왜 ‘기무치’가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속 안 상하면 한국사람이 아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이어야 한다. 우리 전통의 사물놀이가락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게양되는 태극기를 보고 가슴이 뭉클한 것은, 그리고 두 살 반짜리 손자가 서툴지만 ‘태극기’를 인식하고 말하는 것이 뿌듯하고 고마운 것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비록 이번 행사만이 아니라 수많은 행사의 식순 진행표나 문서 등에서 ‘태극기’를 ‘태극기’로 바로 인식되도록 문장을 바꾸어주기를 거듭 제안한다.

‘태극기’를 ‘태극기’로 바로 인식하게 하자!

 

<2009,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