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시칼-희망의 싹을 틔우자

천마리학 2010. 1. 21. 23:32

 

<시사칼럼>

 

희망의 싹을 틔우자 * 권 천 학

 

 

 

입춘 지나고 우수 경칩이면 개구리가 깨어나고,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춘분 때쯤이면 겨울잠에 빠져있던 동물만이 아니라 갯가의 버들가지도 깨어난다. 비록 가슴을 파고드는 매서움은 품었을망정 봄바람도 불어와서 새싹이 돋고 잇달아 꽃소식도 실어 올 것이다. 계절의 절기는 이렇게 어김없이 오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의 마음은 얼어붙은 채 편치가 못하다.

이상한 소문까지 돌았다. 대한민국의 '빨간 속옷'은 모두 부산으로 보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유는 부산의 모 대형 백화점 개점 일에 즈음하여 일어난 웃지 못 할 헤프닝이다. 대형 가게의 개점 날 빨간 내복을 사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상술의 계략임이 뻔하다. 마치 바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 초컬릿을 선물로 주고받는다거나, 자장면을 먹는 날, 빼빼로날 등…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를 꾸면서 매상을 올리는 상술로 소비자들을 업어치기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씁쓸해지는 것은 속설을 들먹여가면서 부리는 업자의 재주에 넘어가는 소비자들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때문이고, 극심한 불경기와 불안 심리를 반영하는 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고유가, 물가고, 실직, 널뛰는 주식과 환율, 파국의 부동산시장…소비가 미덕이라던 때가 전설 같고, 잘 살게 되었다고 샴페인 터트리던 일이 뜬소문 같다. 지금의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너나없이 풍랑의 바다에 떠있는 기분이다. 언제 좌초할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 비록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 해도 어쨌든 우리는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리 정치와 경제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귀에 넘치는 뉴스마다 비관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영하의 경제 체감온도를 어찌 할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빨간 내복'과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는 것이다.

임신 3 개월째인 부인과 실직한 남편이 한 조가 된 부부강도, 어려운 생활에 낙태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강도짓을 했다고 한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가 붙잡힌 65세의 남자도 있다. 쪽방에 살면서 일용직 노동을 해오던 그는 최근에는 일감마저 끊겨서 굶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자신이 다녔던 고시원의 냉장고에서 음식을 몰래 훔쳐 먹다가 구속된 27세의 젊은 청년도 있다. 모두가 처벌보다는 동정심이 앞서는 범죄들이다. 사흘 굶어 담 안 넘는 사람 없다고 한다. 장 발장이 그랬다. 배고픔을 못 이겨 훔친 빵 한 조각 때문에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버려진 노인도 있고 7살짜리 노숙아동도 있다.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가계를 돕겠다고 나서는 가정주부들, 그러나 어디에도 그들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없다. 속이 뻥 뚫릴 소식은 도통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데 이 수렁을 넘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국민들이 보아야하는 것은 공약(空約)과 두 팔 걷어 붙여가며 몸싸움이나 하는 국회의 모습이니 더욱 답답할 뿐이다. 과연 희망은 없는 것인가. '빨간 내복'이나 '생계형 범죄'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구제금융 시대를 건너뛰어서 더 멀리, 삼사십년 전 누구나 가난했던 70년대로 역행하는 기분이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베풀고 싶어도 가진 것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인 사람들에게는 추위도 더 혹독한 법. 저만큼 봄이 오고 있음에도 봄 타령이 공허할 뿐이다. 그들에겐 여전히 겨울이고 여전히 춥다. 지리산 반달곰이 첫 출산을 했다는 소식만이 봄기운이 묻어있고, 사람 사는 세상에선 우울한 소식들뿐. 그러나 어찌 할 것인가. 어둡고 추운 이 난국의 터널을 언제 벗어날 것인가?

 

 

 

 

 

 

 

 

 

추위가 가면 따뜻한 계절이 오는 것이야 당연지사겠지만, 어려운 경제 한파 속에 얼어있는 우리네 마음은 언제 녹을 수 있을까? 끝이 보이는 속 시원한 소식은 아직 없다.

생활 속의 봄은 멀게만 느껴진다. 멀게만 느껴지는 봄은 기다리자니 마음만 착잡해질 뿐이다. 그래도 봄은 오려니. 오죽하면 빈말인줄 알면서 ‘빨간내복’에 기대게 될까.

마냥 웅크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비록 공염불에 그칠지라도 힘내라고 할 수 밖에, 용기 잃지 말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다고 했다. 미래 역시 꿈꾸는 사람에게만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건너는 방법은 인내와 지혜로움이다. 봄은 꼭 온다는 믿음을 가지는 지혜로움,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더 밝듯, 추울수록 봄이 더욱 따뜻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말자. 이 추위 속 어느 어두운 구석에서도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는 여린 나뭇가지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 가난과 전쟁을 겪고도 여기까지 온 우리들 역사를 생각하며, 독새기 풀씨모아 죽을 쑤어먹고 송기 벗겨 허기 달랜 흉년의 일도 상기해가며, 수없이 넘겼던 보리고개도 있었음을 회상하며…… 빵냄새 소올솔, 창자를 비트는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다가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장발장을 생각하며, 마음 단단히 먹고 이 시대를 건너야 한다. 한 번 더 힘을 내어 춘분의 버들가지처럼 우리의 희망에 어렵사리 싹을 틔워보자.

 

 

<13매/2009년 3월11일 씀/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