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517-온종일 챕터스에서

천마리학 2010. 1. 11. 01:01

  할머니랑 아리랑 517

 

 

*11월 29일 일-온종일 챕터스에서.

 

아침 11시경에 집을 나서서 오후 5시경에 비를 맞으며 돌아올 때까지 온종일 아리와 함게 챕터스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오늘은 챕터스에 들어서자마자 3층으로 올라가자고 한다.

“노 다이퍼, 노다이퍼, 오케이?”

의기양양해 하면서 앞장서는 아리.

오줌을 가리게 하기 위해서 며칠전부터 잠자리에 들 때마다 ‘챕터스 아저씨가 다이퍼 쓰는 아이는 들어오지 못하게 한 대. 피피도 응까도 토일렛에서 하는 어린이만 들어올 수 있다는구나’하고 사전 교육을 시킨 때문이다.

또 비만의 아저씨가 찡그리고 있는 신문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아저씨 배에 벌레가 많이 들어있대. 왜냐하면 도도타임에 밀크를 먹어서 그런대. 닥터가 그러는데 벌레가 많이 들어서 배를 꼭꼭 찌르고 아프게 한다는구나. 닥터가 할머니에게 아리는 어떠냐고 묻기에 아리는 도도타임에는 밀크를 안먹는다고 말했지. 어때? 아리 도도타임에 ‘안추워밀크초컬릿’ 먹잖아, 어떻게 하지?”

도리도리한다.

 

 

 

챕터스 3층, 어린이용 책 코너.

스툴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다가 다른 책을 고르는 아리.

 

 

 

 

“이제부턴 도도타임에는 먹지말자. 아리 배에 벌레가 많이 생기면 안 되잖아”

걱정되는 표정 끄덕끄덕.

“그 대신 아침에 웨이컵 타임에 먹으면 되지”

끄덕끄덕.

그렇게 해서 요즘 잘 때 밀크먹는 습관이 중단되었고 따라서 침대가 젖는 일도 사라졌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정지 상태여서 스트롤러를 힘겹게 들어 올리며 올라갔다. 다른 때와는 달리 오늘은 벽난로 쪽에 자리를 잡았다. 1층의 입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사거리의 풍경이 보이기도 했는데 마침 밖에서 높은 유리벽을 닦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기다란 사다리를 펼쳐서 3층 높이까지 올라가서 비눗물로 유리창을 닦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잠시 시간을 보내었다.

사다리를 보자 아리가 노래를 시작했다.

 

 

 

 

드디어 새로운 책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높은 곳에 있어서 그걸 뽑아달라고 할머니를 소리쳐 불러대었습니다.

 

 

 

 

<리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

사다리 울타리 메아리 오리 우리 아리>

 

얼마 전 침대 위에서 동물농장 그림책을 보면서 사다리라는 단어를 알려주면서 노래말을 지어 가르쳤더니 잊지 않고 한다. 오늘도 사다리를 보고 연상해서 노래를 하는 것이다.

요즘은 또 다시 마 자로 시작하는 노래말을 가르쳐서 지금은 그것도 곧잘 한다.

 

<마 마 마자로 끝나는 말은

아줌마 울지마 아프지마 하마 마마 엄마>

 

애초에 어휘를 늘게 하려고 시작한 방법이다.

 

 

서점 누나가 책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중에 진열대의 빈 자리에 앉아서도 책을 읽습니다.

서점 누나와 아저씨들은 단골 꼬마손님인 아리를 모두 압니다.

모두모두 만날 때마다 귀엽다고 한 마디씩 하고,

가끔씩 다가와서 무얼 도와줄까? 묻기도 한답니다.

 

 

 

 

책을 뽑아오고 또 뽑아오고…를 반복하면서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고,

그저 책을 좋아하는 우리 아리. 책을 읽는다고는 하지만 한 장씩 넘기면서 동물이름대고 우는 소리 흉내 내고… 또 이야기를 꾸며 붙이거나 하는 식이지만 그래도 책을 옆에 쌓아놓기도 하고 제가 앉은 의자 뒤편에 세워두기도 하면서 요리조리 들추고 또 가져오고… 정말 책 욕심도 많은 아리.

책꽂이가 있는 곳까지 혼자서 가서 제가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면 할머니~ 소리소리 부르면서 달려오는 아리. 그 목소리에 신나게 좋아하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중 나가 듯 다가가면 손에 든 책을 들어 보이면서 횡재라고 한 것 같은 태도이다.

“할머니 할머니 아 화인딧!, 씨, 씨.(보세요)”

“오우, 아리가 발견했어? 정말 잘 했구나. 아주 재미있겠다. 빨리 가서 읽어보자”

아리를 어린이용 책꽂이 쪽으로 보내놓고도 할머닌 그림자처럼 멀리서 숨어본다.

“할머니 할머니~”

이번엔 부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후닥닥 뛰어가보면 책꽂이의 높은 칸을 가리키며 거기 꽂혀있는 책을 뽑아달라고 주문한다.

 

 

 

 

 

이번에는 벽난로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전히 독서삼매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땐 늦는다 싶어 다가가보면 발디딤용 의자위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정말 우리 아리,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우리가 있는 벽난로 근처의 좌판을 챕터스 직원이 책을 모두 걷어서 다른데로 옮기고 있었는데 잠시 빈 공간에 올라앉아 책을 보고있던 아리가 제 옆에 있는 책을 가리키며 자기 책이라고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 그 직원이 웃으면 알았다고 대답한다. 좌판을 다 비우자 마치 자기세상을 만난 냥, 그 위에 편하게 올라앉아 한동안 책을 보고 있기도 했다.

준비해가지고 간 김밥과 콩쥬스 3개와 물. 그리고 피피하러 화장실에 두 번 다녀왔다. 그런데 드디어 문제가 발생했다.

3시경, 벽난로 옆의 유리벽 틈으로 들어서서 심각하다.

“응까?”

고개를 끄덕끄덕. 오, 맙소사.

“아리야 토일렛에 가자”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버티는 아리. 이미 일을 벌인 뒤였다. 그래도 가야한다고 달래고 당기고 했지만 너무나 완강하다. 챕터스 아저씨가 올 텐데… 해도 막무가내다. 이 상황에서는 ‘다이퍼 안 쓰고 응까도 토일렛에서 하는 어린이만 쳅터스에 들어오게 한다’고 했던 말의 약효가 사라져버린 셈이다.

억지로 화장실 행. 벗기고 씻기고…

겨우 마치고 났더니 또 다시 책세상으로 빠져드는 아리.

정말 천사다.

4시가 넘어서면서 집에 돌아가자고 했더니 그때마다 하는 말,

“파이브 미닛 모어(5분만 더)”

두어 번 거듭하더니, 다시 재촉하니까 책꽂이 앞에 서서 읽고 있던 책을 다 보고 가겠다고 했다.

“좋아, 그 책만 다 보고 가자”

했더니 다시 말을 바꾼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대 여섯 권의 책을 가리키며 이걸 다보고 가자는 것이다.

 

 

그 사이에 책 진열대가 텅 비었습니다.

옮기기를 다 끝낸 누나가 아리 더러 마음껏 읽으라고 하며 바이바이! 손을 흔들며 갔습니다.

아리는 지금 할머니에게 책을 펼쳐서 바다사자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없어서 할머니가 대신 친구 노릇을 해주는 겁니다.

 

 

 

 

 

5시경에야 챕터스를 나섰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밖에 나오니 비가 내렸다. 스트롤러를 밀고 뛰었다. 숨이 턱에 받치고 정말 힘들었다. 중간쯤 오는데 대답이 없다. 아리는 스트롤러 위에서 이미 잠이 들었다.

그렇지. 고단도 하겠지. 저라고 고단하지 않을까.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눕히는 사이 잠깐 눈을 뜨면서 할머니를 확인하고는 이내 잠에 빠진다.

대충 정리를 끝내었을 때 쯤 쇼핑을 마친 엄마아빠가 돌아왔다.

정말 힘들고 중요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