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랑 아리랑 506회
*11월 1일 일-김치국물! 흉내쟁이
오늘은 엄마아빠랑 아리만 쇼핑에 나섰다. 할머니가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할머닌 지금 청탁받은 희곡도 있고, 쓰기 시작한 채 멈추어선 소설원고도 있고, 출판준비를 해야 할 시집 원고들도 엄청 많이 있단다. 영어공부도 해야지, 책도 읽어야지. 또 다른 사람이 평해달라고 보내온 원고들도 읽어야지. 신문사에 보낼 시와 칼럼 원고도 준비해야지… 정말 시간이 없어 몸이 열 개였으면 한단다. 책을 읽는 시간을 내기도 어렵지만 읽은 책의 독후감 쓰는 건 아예 포기했지. 어떻튼 오늘은 네 엄마의 배려로 할머니 혼자 집에 남아 밀린 일들을 정리했단다. 원고를 쓰기 전에 정리해야할 잡다한 일들이 많거든. 신문 스크랩을 정리했고, 블러그에 육아일기 한편 올렸고, 은행계좌정리 했고, 한국집에 보낼 10월분 공과금을 이제사 겨우 풀었다. 점심도 거르고 일을 했단다. 그것만 하는데도 점심을 거르고, 너희들이 돌아온 저녁 무렵을 지나 밤 9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내었구나. 그렇게라도 공과금을 풀어 메일로 보내고 나니 후련해.
존아저씨와 함께 만든 장난감 마을 입니다. 책을 바닥에 깔아서 기차길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토마스 추레인을 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식품점에서 사온 송편을 할머니 입에 넣어주는 아리. 그거 받아먹고 있는데 이번엔 숟가락을 들고 와서 들이민다. 자세히 들어보니 “할머니, 김치국물! 김치국물!” 하는 것이다. 요런 녀석 봐라. 요즘 할머니가 무청으로 물김치를 담가서 새콤하게 먹기 좋은 상태여서 그걸 떠먹이기도 하고, 거기에 밥을 말아 먹이면서 “김치국 밥이야. 맛 있으면 더 주세요 하세요” 하고 먹였더니 잽싸게 삼키고는 “더 주세요” 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할머니에게 김치국물이라고 하면서 떠먹이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요즘은 어른들의 흉내도 잘도 낸다. 예를 들면 제 아빠의 흉내를 내면서 비스듬히 눕기도 한다. 또 연필과 크레용으로 할머니 얼굴에 화장하는 흉내도 내고, 뒤에서 머리를 움켜잡고 머리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또 나무 주걱과 뒤지기를 가지고 요리하는 흉내도 낸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란 말을 실감한다. 매사 아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온가족이 조심하고, 또 좋은 본보기가 되려고 행동을 자제한다.
이번엔 나무기차를 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파냐 아저씨가 체코여행에서 사오신 선물입니다.
요즘 아리가 부르는 노래는 ‘썬데이 먼데이 튜스데이 웬즈데이……… 세븐데이tm 어 위크~’와 ‘크로크 다일 스위밍 인더 워터!’ 그리고 할머니가 가르친 ‘찌르릉’과 ‘아리랑’이다. 한동안 즐겨부르던 ‘나비야’는 이젠 시시해졌는지 안 부른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멜로디도 맞지 않게 부르지만 한국말로 노래부르는 것이 신통하기만 하다.
할머니 담당인 한국말 가르치기. 아빠와 잘 통해서 그런지 불어를 더 많이 아는 것 같다. 그래도 끊임없이 한국말을 시키니까 다 구사하진 못해도 말을 하면 거의 다 알아듣고 때로는 영어로 때로는 한국말로 대답한다. “카우 그리고 한국말로?” “소” 하고 시작하면 그 다음부턴 저 혼자서, 덕, 오리! 카멜, 낙타… 하는 식으로 영어와 한국말을 병행해서 말하기도 하고, 한국말만 하기도 한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프리스쿨에 갈 때와 돌아올 때 하는 한국말 인사가 제법 습관이 되었다. “좋은 아침” “다녀씨다(다녀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고마씨다(고맙습니다)” “다녀씀다(다녀왔습니다)” “사양해요할머니(사랑해요 할머니)”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 아빠에게도 하라고 강요하곤 한다. 오, 귀여운 우리 아리! 할머니도 아리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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