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25- 제 9부 아버지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2)

천마리학 2009. 9. 20. 08:09

 

 

 

 25회

  제 9부   아버지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2)

 

 그날 밤에 어둠 속에서 일어나 앉아 후꾸고는 또 몸을 긁기 시작하였고 잠에서 깨어난 동혁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당신 언제부터 이렇게 몸을 긁은 거요?”

 “확실치 않지만.... 오수에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럼? 나을 때도 되었는데.... 무슨 병일까?”

 “밤마다 한 번씩 그러는 걸요 뭐. 곧 나아지겠죠. 어서 주무세요.”

 후꾸고가 명혜를 안고 눕자 동혁이도 누우며 무심코 시선을 던지니 가을에 바른 방문 창호지가 색이 누렇게 바래져 있었다.

 후꾸고의 병색이 깊어져 덜컥 자리에 누웠을 때에야 동혁은 정읍병원을 찾았다. 그녀를 진찰하는 의사가 깜짝 놀라며 얼굴을 다시 살펴보았다. 힘없이 앉아 있는 얼굴만 아니라 보이는 손등도 노랗다 못해 거무스름하게 변하여 있었다.

 “사모님,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모르겠어요. 명혜를 낳고 더한 것 같아요. 무슨 병인가요?”

 “선생님과 함께 오셨습니까?”

 “예.”

 “이 간호원. 사모님께 주사 놔드리고 약도 지어요.”

 “예, 사모님 이리 오세요.”

 후꾸고는 이 간호원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열린 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눈으로 동혁을 찾았다.

 “교장선생님, 들어오십시오.”

 복도에서 서성거리던 그는 원장실로 들어가서 불안한 얼굴로 마주 앉았다.

 “병이 너무 깊었습니다. 밤에 혹시 몸을 긁진 않던가요?”

 “가끔 밤이면 일어나서 몸을 긁던데.... 그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 만성이군요. 안 됐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설마....”

 “사모님께서 평소에 술 드십니까?”

 “전혀 못합니다.”

 동혁은 무슨 엉뚱한 질문이냐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정신적인 부담을 많이 안고 살으셨던지.... 그래서 발병을 한 겁니다. 늦었습니다. 입원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집으로 모셔서 아이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 말을 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고 담배가 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동혁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모님께 무관심하셨군요.”

 “....”

 “지금 이 간호원이 주사를 놓아드리지만 오늘 밤도 넘기지 못하실겁니다.”

 “가망이 전혀 없습니까? 살려낼 수 없나요?”

 거의 울음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병실 유리창에 부딪치고 되돌아왔다.

 “지금으로선 저도 어떻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동혁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후꾸고의 소식을 전해 듣고 병원으로 권 교감선생님과 신 선생님이 달려왔다.

 “교장선생님.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단 말입니까?”

 신 선생님이 얼굴을 붉히며 따지듯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사를 맞고 나오는 후꾸고를 동혁이가 얼른 가서 부축해 주었다.

 “사모님, 어떠세요?”

 “접니다. 사모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권 교감선생님과 신 선생님을 보고는 웃어 보였다.

 “오셨어요. 난 괜찮은데.... 소문만 내네요.”

 “예.... 어서 앉으세요.”

 의자에 앉는 후꾸고의 모습에서 권 교감선생님은 완연한 병색을 볼 수 있었다. 신 선생님이 전화로 택시를 부르고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빛의 시발택시가 병원 앞에서 서자 동혁과 후꾸고와 두 선생님들과 줄포로 향하고 있었다. 차 안에는 오랜 침묵만이 있을 뿐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후꾸고는 지나치는 차창 너머로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부드러운 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 위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옷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내고 있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길가에서 명자는 명혜를 업고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시발택시가 와서 멈추었다. 아이들이 누가 내리나, 하고 우르르 몰려가 보았는데 그 속에 명자도 끼어 있었다. 신 선생님이 먼저 앞자리에서 내렸고 권 교감선생님과 동혁과 후꾸고가 차례로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

 “명자로구나?”

 권 교감선생님이 명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며 명자는 후꾸고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명혜가 배가 고픈가 봐요. 마구 울었어요.”

 명자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쏘아보는 후꾸고의 강한 눈길을 느끼고 순간 무서움에 뒷걸음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명자에게 응시한 시선을 거두고 동혁에게 의지한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뒤를 두 선생님들이 따르고 명자는 멀찍이 따라갔다.

 동네아주머니들이 걸어오는 후꾸고에게 눈인사를 하고 비켜 서자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 못 사시 것네이.”

 “그러게나 말이시. 어제하고 또 영판 다르잖능가이.”

 동네아주머니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고 명자는 그 말의 의미를 모른 채 명혜를 업고 후꾸고의 뒤를 따라들어갔다. 방안에는 그녀가 누워 있었고 동혁은 곁에 앉아 있었다. 명자가 명혜를 방에 내려놓자 후꾸고는 일어나 벽에 기대어 젖을 물렸다. 젖을 힘껏 빨아대는 명혜를 보며 그녀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후꾸고의 눈물을 보며 명자는 아무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다. 마루에 서니 줄포 바다로 지는 붉은 해가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을 색칠하고 있었다.


 아직도 노을이 길게 뻗어 있을 때 할머니와 큰고모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할머니다.”

 명수가 맨 먼저 보고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넘어질라. 천천히 오그라.“

 할머니가 손자를 보며 그늘 진 얼굴로 말했다.

 “명수 많이 컸네.”

 “그러게나 말이다. 요로코롬 자석들을 냉겨놓고....”

 할머니는 명수의 손을 잡고 오르며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와 고모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동혁과 신 선생님이 방에서 방에서 나와 맞았다.

 “그려. 늬 처 지금 어떻냐이?”

 할머니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울먹이는 말로 물었다.

 “정말로 살 가망은 없는 것여?”

 “....”

 “왜 이 지경이 되도록.... 이 자석들은 어떡 헐 거여?”

 그 말을 하는 할머니도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나가 한번 만나 봐야제이.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다 나가 죄가 많은 탓이랑께.”

 동혁과 할머니와 고모가 방으로 들어서자 누워 있던 후꾸고가 일어나려 하였다.

 “괜찮다. 누워 있거라이.”

 “예, 오셨어요.”

 권 교감선생님과 신 선생님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후꾸고 곁에 가서 앉는 할머니와 고모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하구나. 니가 미워서 그란 게 아니여.”

 “잘 알아요. 그동안 죄송했어요.”

 후꾸고의 손을 와락 잡으며 할머니가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아이고, 동상. 이렇게 되드락 놔 뒀당가이.”

 고모도 후꾸고를 나무라는 투로 말을 하다가 목이 메었다.

 “형님....”

 후꾸고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자 할머니와 고모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동혁만 후꾸고 곁에 남았다.

 “여보....”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후꾸고의 목소리에 동혁이가 바싹 다가 앉았다.

 “나, 여기 있소.”

 “미안해요. 당신에게 짐만 지워 놓고.... 아이들 잘 키워 줘요.”

 “용서하구료. 날 용서하구료.”

 “아뇨. 난 언제나 당신이 자랑스러웠어요. 내 조국을 버린 것도 후회하지 않았구요. 내가 죽었다는 것 일본에 알리지 말아요.”

 눈물이 후꾸고의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장래를 가로막았다는 것 잘 알고 있었어요. 이런 시골까지 올 당신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요, 다 나 때문이었어요. 나요.”

 “당신 때문이라니. 아니요. 아니야.”

 “이젠 날 잊어도 좋아요. 아이들이 크면 이야기해 줘요. 사랑했었다고, 어머니 몫을 다 하지 못하고 가는 날 용서하라고 전해 줘요. 그리고 당신도 사랑했어요.”

 권 교감선생님과 신 선생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

 “선생님들도 고마웠어요.”

 후꾸고가 힘들게 말하는 것을 보고 신 선생님이 말했다.

 “사모님, 일본 말로 해도 됩니다.”

 “아뇨. 난 이미 조선인인 걸요.”

 후꾸고가 감기는 눈을 뜨고 동혁을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이젠 자고 싶어요. 나 피곤해요.”

 “눈을 떠요. 눈을 뜨라구.... 자면 안 돼.”

 “나 잘래요. 내일 이야기해요.”

 동혁이가 후꾸고의 얼굴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가 한번 그의 얼굴을 보더니 그만 손이 미끄러져 스르르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동혁이가 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신 선생님은 후꾸고의 얼굴에 이불을 올려 덮었다. 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던 할머니와 고모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고, 아이고, 이렇게 죽을려고.... 이렇게 죽을려고....”

 할머니가 그만 넋두리를 하며 통곡을 하였고 고모도 곁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동네아이들하고 신나게 노는 명자와 명선이를 보며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혀를 차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철딱서니 없는 것들. 지에미가 죽은 것도 모르고 놀고 있구만이.”

 “그러게나 말여. 그러나 저러나 명혜는 젖도 없이 워떻게 키울까이.”

 “글씨. 젖동냥을 혀야 쓰것네이.”

 “할머니, 명혜가 오줌을 쌌나 봐요.”

 명혜를 업고 놀던 명자가 할머니 앞에 와서 말을 하였고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놀고는 잡고 심은 들고이. 명자가 꾀를 썼구마능.”

 “고무줄 띠긴디 발이 올라가겄써?"

 동네아주머니들이 말을 하며 웃고 말았다.


 입관을 마치고 네 아이들은 후꾸고를 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옷이 조금씩 잘라져 관 속으로 넣어졌다.

 동혁이가 네 아이들은 상복을 갈아입고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있었다. 관 위로 기다란 판자가 올려지고 이내 망치소리가 울려왔다.

 문밖에서 바라보던 할머니가 털썩 주저앉으며 울고 말았다.

 “아이고, 내 새끼덜은 누구보고 키우라고....”

 명혜를 안고 있던 고모도 눈시울을 붉히며 돌아서고 말았다. 방문 밖에서 지켜보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속치마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관을 들고 나와 마당에 있는 하얀 꽃상여에 관을 넣고 있었다. 후꾸고의 꽃상여는 집을 한 바퀴 돌더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상복을 입은 동혁과 네 아이들이 뒤따르며 울고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도 눈물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았다.

 계단을 다 내려간 하얀 꽃상여는 앞장서서 날리는 만장 뒤로 천천히 혹은 제자리 걸음으로 요령소리와 상여꾼들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상복에 지팡이를 짚은 동혁이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두 아들과 함께 꽃상여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명자와 명선이는 꽃상여를 뒤따르지 못하게 동네아주머니들이 꼭 붙잡고 있었다. 할머니와 명혜를 업은 고모도 제 자리에서 멀어져 가는 꽃상여를 눈물로 보내고 있었다. 명자와 명선이는 동네아주머니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후꾸고가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무섬 안 탈려면 여그서 한번씩 뒹굴어야 헌다이.”

 “나 안 할라는디....”

 명자가 말을 하였지만 명자와 명선이는 동네아주머니들의 손에 이끌려 방안에서 뒹굴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오월의 맑은 하늘가에 퍼져 나가던 그 해 명자와 명선이는 하얀 꽃상여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후꾸고가 아끼고 아끼던 그녀의 기모노는 한 줌 재로 스러져 그 날 아카시아 향기에 묻혀지고 말았다.


 그 날 이후 동혁은 명혜를 안고 늘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바다 속으로 침몰해 가는 해를 바라보는 동혁의 뒷모습은 중년이 된 지금의 명자 마음속에 빛바랜 풍경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