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22회 제 8 부 사탕 두 개(2)

천마리학 2009. 8. 29. 23:23

 

  22회 제 8 부 사탕 두 개(2)

 

동혁과 이 장학사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선배님, 이런 시골에 계시긴 아깝습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자리를 하나 만들어보지요. 경성사범 아닌 출신들도 판을 치는 세상인데.... 아닌 말로 뭐가 부족합니까?”

 이 장학사를 지그시 보며 동혁은 말문을 열었다.

 “자넨 고향이 어딘가?”

 “서울입니다. 그건 왜 묻습니까?”

 “난 전라도가 고향일세. 그래서 여길 떠날 수 없다네. 난 내 고향에서 내 뜻을 펼쳐 보려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난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걸세.”

 동혁에게 술잔을 건네며 그가 대답했다.

 “역시 다르십니다. 안일하게 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동혁의 허허로운 웃음 뒤에는 그늘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까짓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배님.”

 “어서 들게나. 우리 그런 시시한 이야긴 집어치우고 학창시절로 돌아가세.”

 “그럽시다. 우리가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쉴 때면 럭비선수들은 다 모여서 운동연습을 했지요. 우린 공부도 힘든데 무슨 운동이냐고 비웃곤 했지요.”

 “그랬었나? 우린 신나게 운동장을 누볐지. 시합 때마다 우승 컵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미 중년이 지났구만.”

 “그렇습니다.”

 “자네 노랠 좋아하나?”

 “갑자기 노래는요?”

 “나는 황성옛터를 좋아한다네. 함께 부르지 않겠나?”

 “그러죠. 황성옛터에....”

 두 사람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다.

 “선배님, 교육계에도 더러운 놈이 많습니다. 경계하십시오.”

 “교육계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내 자신만 반듯하면 되는 거야. 난 신경쓰지 않아. 오늘은 자네랑 마시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구만. 자 한잔 받게나.”

 “예, 예, 감사합니다. 선배님.”

 둘 다 잔뜩 취해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는데 밤 예비 싸이렌이 길게 울리고 있었다.

 최 선생도 그 시각에 누군가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 이 장학사 말입니다. 교장 후배라고 하면서 참.... 교장을 도와서 좋은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그럽디다.”

 “그의 약점을 이용하려 했는데.... 뭔가 다른 것을 찾아봐야겠네.”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동혁은 아직도 술이 덜 깬 얼굴로 북어국을 먹고 있었다.

 “여보, 내가 어제 늦었지?”

 “예, 열두 시가 넘었어요.”

 “이 장학사는 어디로 갔나?”

 “신 선생님이 여관으로 모셨다고 하던 걸요.”

 “신 선생님이? 어떻게 알았나?”

 “단골을 아니까요. 어서 출근하셔야죠.”

 식사를 끝낸 동혁은 넥타이를 골라 매며 후꾸고에게 말했다.

 “일요일에 내장산에 갑시다. 산이 왼통 불바다라고 하던데....”

 “불바다요?”

 “단풍이 아주 곱다는 뜻이야.”

 “예.... 준비할게요.”

 “오늘은 내 일찍 들어오리다.”

 동혁은 명자의 손을 잡고 대문을 나서며 후꾸고에게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명자도 후꾸고에게 인사를 하며 동혁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단발머리가 썩 잘 어울려 보였다.


 만추의 내장산은 동혁의 말대로 불바다였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거개가 가족단위임을 알 수 있었다.

 대웅전으로 가는 그 단풍터널에서 명수와 명호가 뛰어가고 있었다.

 “조심해. 넘어질라.”

 “괜찮아, 좀 넘어지면 어떻소.”

 “그래도요.”

 “정말 왼통 산이 불타고 있구만.”

 “예, 이런 단풍은 처음이에요.”

 “언제 놀러가고 안 간 거요? 그동안 내가 잘못했소. 미안하오.”

 “아니에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후꾸고는 계면쩍은 듯이 빙그레 웃었고 동혁이도 이미 그녀가 이해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웅전 뜨락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는데 파란 하늘 아래 풍경의 가느다란 움직임도 신비로왔다.

 “어머니, 저걸 뭐라고 불러요?”

 명자가 후꾸고의 손을 잡고 이끌더니만 이상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풍경이란다.”

 “고기가 매달려 있어요.”

 “그렇구나. 바람이 불면 소리가 들린단다.”

 동혁과 가족들은 대웅전을 빙 돌아보았고 내장사를 병풍처럼 두른 산들을 바라보았다. 후꾸고가 오른쪽 산봉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보, 저기 산봉오리가 아름답네요.”

 “신선봉이라고 부릅디다. 그 아래로 금선 폭포가 떨어진다는데 장관이라고 합디다.”

 “예, 그렇게 아름답데요?”

 후꾸고는 묘하게 생긴 신선봉과 그 둘레의 많은 봉오리들을 보며 말했다.

 “금강산과 비슷하다고 하여서 남금강이라는 다른 이름을 내장산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려.”

 “남금강요?”

 “그렇다니까.”

 동혁과 후꾸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명호가 말했다.

 “어머니, 나 배고파. 언제 김밥먹어요?”

 “벌써?”

 “비자림으로 가서 먹자꾸나.”

 동혁과 가족들은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난 비자림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비자림의 숲길은 잘 다듬어져 있었고 오고가는 인파로 인적은 드물지 않았다.

 동혁과 명수는 장소를 마련하고 가져 온 신문지를 깔고 김밥을 먹었다.

 “야! 맛있다.”

 명호가 말을 하자 명자도 명선이도 손을 내밀어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럼. 어머니 솜씨는 그만이란다. 새우튀김은 일류지.”

 “맞아요. 맛있어요.”

 명수도 대답했다.

 “천천히 먹어라. 명호. 자 물도 마시며 먹어라.”

 후꾸고가 급히 먹는 명호를 보며 말했다.

 “컵을 줘. 내가 따르지.”

 동혁이가 물을 따라주자 명호도 입안 가득히 먹고 있다가 물을 마셨다.

 “아버지, 나도 물.”

 명선이도 그에게 컵을 내밀자 물을 따라주었다. 그것을 보는 후꾸고의 얼굴이 오랜만에 밝아보였다.

 다람쥐가 쪼르르 지나가다가 저만치 서 있는 감나무 위로 올라가버렸다.

 “나 다람쥐 잡을래.”

 “형, 나도 올라가.”

 그러는 사이에 다람쥐는 그 옆의 도토리나무로 가서 볼 가득히 도토리를 넣고 있었다.

 “에이. 벌써 다른 나무로 올라가 버렸다.”

 명수가 놓쳐서 아깝다는 얼굴로 말하자 명호도 애석한 얼굴이 되었다.

 “할머니네 감이야.”

 “그래. 감이구나. 서리를 맞아서 더 붉구나.”

 감나무에 잎은 다 지고 주홍빛의 감만 가지가 휘어지게 달려 있었다. 그 풍경은 가을의 푸르디푸른 하늘과 감가지 사이로 흘러가는 하얀구름과 묘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런 감나무는 지천으로 서 있었다.

 

 

 

 

 


 명자와 명선이는 삼거리가게 앞에서 사탕을 먹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설탕이 덕지덕지 뭍어 있는 커다란 눈깔사탕을 꼭 한 번만 빨아봤으면 하는 얼굴로 명자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맛있냐?”

 “응.”

 “나 한 번만 빨아먹게 해 줘.”

 “입 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주냐?”

 그 여자아이는 참 이상하다는 얼굴로 얼른 골목길로 들어가 버렸다.

 “명선아, 너도 먹고 싶지?”

 명자의 물음에 명선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한참을 사탕이 있는 곳을 노려보던 명자가 주인아주머니가 다른 물건을 파는 동안에 두 개를 집어서 하나는 명선이의 입에 넣어주고 하나는 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너희들 돈을 내야제이.”

 주인아주머니가 명자에게 말했다.

 “없는데요.”

 명자가 큰 사탕을 입에서 꺼내어 손가락으로 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당장 명자와 명선의 손을 붙들고 집으로 가자며 앞장섰다.

 “뭣여? 돈도 없으면서 남의 사탕은 왜 먹는 것여? 집이 어디랑가이?”

 “재네들요. 교장선상님 딸들이랑께.”

 지나가는 동네아이들이 말해 주었다.

 “뭣여? 어서 가자이. 기냥 지나갈 일이 아니구마능. 어여. 가자니께.”

 “잘못했어요. 아주머니.”

 잘못인 줄을 깨달은 명자는 후꾸고의 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고 있어서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끌려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서 아주머니는 큰 소리로 후꾸고를 부르고 있었다.

 “사모님요. 사모님 안 계신당가요이?”

 현관문이 열리고 후꾸고가 나왔고 이내 사태를 알아 차렸다.

 “우리 아이들이 뭘 잘못했나보군요.”

 “바로 맞혔구만이라우. 나 저 삼거리서 장사허는디요이. 야덜이 큰 눈깔사탕 두 개를 훔쳐먹었구만이라우.”

 “예? 죄송합니다. 곧 드리겠어요.”

 후꾸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돈을 들고나와 아주머니의 손에 쥐어주었다.

 “고맙구만이라우. 나가요이 이 돈을 받고잡어서가 아니고요이....”

 아주머니는 말끝을 흐리고 이내 열린 대문으로 나갔다. 대문을 잠그고 후꾸고는 명자와 명선이를 끌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마루가 있었는데 그 마루의 기둥에 명자와 명선이를 꽁꽁 묶어놓고 매로 때리기 시작했다.

 “사탕이 먹고 싶으면 사 달라고 하지. 남의 사탕을 몰래 집어 먹어? 그건 도둑질이라는 거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아파. 어머니.”

 명선이가 더 큰 소리로 울면서 매달렸다.

 “명자가 그랬지?”

 “응. 다시는 안 할게요. 어머니.”

 명자와 명선이의 울음소리가 부엌을 새어나와 크게 들리고 있었다. 매질을 하다가 후꾸고는 뚝 그치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귀에 익은 우체부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우체부 아저씨다.”

 명자가 먼저 알아듣고 말을 하자 매를 놓고 후꾸고는 부엌을 나갔다.

 “명선아. 아프지?”

 “응. 언니는 안 아파?”

 “아프지 뭐.”

 둘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후꾸고가 소포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게 뭐야?”

 “이모가 일본에서 부쳤구나. 방으로 들어가 보자. 다시는 도둑질 안할꺼지?”

 “예.”

 명자와 명선이는 풀어주는 그녀를 바로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후꾸고와 함께 들어가서 소포를 펼쳐보니 수박색의 골덴과 털실이었다. 편지도 함께 보내어져서 후꾸고는 물건보다 편지를 먼저 읽으며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어머니, 이게 뭐야?”

 명선이가 푹신한 털실에 볼을 부비며 말했다.

 “털실이구나. 쉐타를 떠서 입는 거야. 아주 따뜻하단다.”

 “어머니, 나도 해 줘.”

 명자가 말을 하자 명선이도 덩달아 해달라고 말했다.

 “그래. 명선이 것도 떠야지.”

 후꾸고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명선이가 명자를 보며 손을 잡는다.

 “참 너희들 나가서 오빠들 찾아 봐 어머니가 오란다고 그래라.”

 “예.”

 명자는 명선이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서고 있었다. 후꾸고는 편지를 가슴에 안고 보내 온 소포들을 보고 있었다.

 ‘고맙다. 이즈미쨩. 보고 싶구.’

 후꾸고는 편지와 소포들을 이층장 위에 올려놓고 방문을 열어 놓았다.

 두 오빠는 동네친구들과 자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명수가 멀리쳐서 좋아라 재고 있었다.

 “오빠, 어머니가 오래.”

 허리를 굽히고 자를 재던 명수가 고개를 들며 귀찮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오빠. 숙제했어?”

 “아니. 아직 안 했어.”

 “어서 가.”

 명호도 숙제를 안 했는지 가자고 명수에게 말했다.

 “야! 오늘은 그만하자. 숙제 아직 안 해서 가야 돼.”

 “우리도 숙제 안 했다. 그만 가자. 내일 또 하자이.”

 동네친구들과 헤어질 때면 해가 서산에 기울고 노을이 깔리고 나서였다.

 

 

 

 

 

 

 

 후꾸고는 명수와 명호의 숙제장을 살펴보았는데 글씨는 엉망이었고 전혀 성의가 보이질 않았다.

 ‘애들 봐 아버지가 교장이라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네. 이것도 숙제라고 해간거야?’

 명수와 명호는 이미 겁을 먹고 들어오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후꾸고의 얼굴에 이미 나타나 있었다.

 명수의 종아리를 세게 치며 후꾸고가 물었다.

 “왜 맞는지 모르냐?”

 “숙제 때문에....”

 “알긴 아네. 이것도 숙제라고 한 거냐? 너 육한년이면 글씨는 제대로 써야 잖아? 이게 뭐야? 글씨야? 지렁이가 기어간 거야?”

 “잘못했어요. 다시 잘 쓰겠습니다.”

 명수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서 다시 해 와.”

 숙제장을 들고가는 명수의 종아리에 주욱주욱 줄이 가 있었다.

 “너 이리 와.”

 명호를 보고 후꾸고가 말을 하자 종아리를 걷기도 전에 울음소리부터 냈다.

 “매 맞는게 그렇게 무서우면 숙젤 해야잖아?”

 “잘못했어요. 어머니.”

 “너도 종아리 맞어야 해. 어서 올려!”

 명호의 종아리 때리는 소리가 다섯 번이나 나고 그쳤다.

 “너도 어서 형 곁에 가서 숙제 해.”

 “예.”

 명호가 얼른 숙제장을 들고 형 곁으로 가는 종아리에 주욱주욱 그어진 매 자국을 후꾸고는 말없이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