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23회 제 8 부 사탕 두 개(3)

천마리학 2009. 9. 2. 23:44

 

  23회 제 8 부 사탕 두 개(3)

 

그날 밤에 네 아이가 잠이 들고 너무나 조용한 시각에 후꾸고는 혼자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밤인데도 환한 달빛으로 마당에 있는 꽃들과 채소들이 그림처럼 있었다. 마당가에 작은 돌 위에 앉아 있던 후꾸고의 어깨가 물결치듯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오까상, 명자와 명선이가 사탕 두 개를 훔쳤어요.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아이들을 매질을 했지만 실은 내 마음은 더 아팠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거나 먹을 것을 준비해놔야겠어요. 보고 싶어요. 오까상도 이즈미쨩도.... 오늘 이즈미쨩이 보내준 소포는 잘 받았어요. 전후 거기 사정도 여의치 않다는데....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요? 너무 보고싶어요.’

 후꾸고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도 고목 위에서 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명자와 명선이의 사탕사건은 가까이에 사는 권 교감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사모님은 퇴근하여 돌아온 권 교감에게 며칠 전에 그 일이 있었다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모님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셨을까 말예요. 교장 선생님 체면은 또 뭐가 되었겠어요.”

 “쥐꼬리만한 월급에 책값으로 반절 이상이 들어가니 말이요.”

 “무슨 책을 그리 많이 사실까요.”

 “일본에서 나온 교육서적들인데 원서라서 그 값이 더하지. 그럼 어쩐다.... 워낙 남의 도움도 마다하는 성격이시고.”

 “당신이 교장선생님 월급을 직접 사모님께 드리면 어떨까요?”

 그 말에 권 교감은 사모님과 마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 드려 보리다.”

 “사모님이 조금 형편이 피겠네요.”

 권 교감과 사모님은 서로 웃고 말았다.

 그 다음 월급날에 권 교감은 동혁의 월급봉투를 들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 오늘부터 월급은 제가 압수하겠습니다.”

 “아니, 왜요?”

 “한달 책값으로 얼마나 나갑니까?”

 동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왜 묻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반절은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비싼 원서만 사 보니 그렇구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직접 사모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럼 날 뭘로 씁니까?”

 “사모님한테 타서 써야지요. 죄송합니다.”

 권 교감이 봉투를 주지 않고 웃자 할 수 없다는 듯이 동혁이도 따라 웃었다.


 

 

 

 

 

 후꾸고는 털실로 동혁에게는 조끼를 네 아이에게는 쉐타를 하나씩 떠서 모두 입혔고 털목도리를 하나 자신의 목에 둘렀다.

 그렇게 겨울은 오고 있었는데 방학이 시작되는 날에 동혁에게 갑자기 발령이 났다.

 권 교감은 문서를 들고 들어오며 당혹한 얼굴이었다.

 “교장선생님. 이건 뭐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

 “뭡니까? 그건.”

 “저.... 발령문섭니다.”

 “누구요? 어디 좀 봅시다.”

 권 교감이 내민 문서를 본 동혁의 얼굴색이 변하고 말았다.

 “줄포구만요.”

 “아니, 어떻게 이런 발령을 낼 수 있습니까? 해도 너무한 처삽니다.”

 “가라는 데로 가야지요. 월급쟁이가 뭐라고 말을 합니까?”

 “.....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나가 보세요.”

 “예....”

 권 교감은 교장실을 나갔고 동혁은 뒷짐을 지고 창가로 걸어가 바라 보았다.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네가 있는 한 쪽에는 눈사람이 두 개 서 있었다.

 담배를 피워 문 동혁의 얼굴 위로 유리창 너머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동혁은 밝은 얼굴로 일찍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팽이를 치며 놀던 명수와 명호가 인사를 하고 동혁과 함께 대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 오셨어요.”

 명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부엌에서 준비를 하던 후꾸고가 환한 얼굴로 나와서 동혁을 맞았다.

 “일찍 오시네요.”

 “추운데 어서 들어가요.”

 동혁은 아이들과 현관으로 들어섰고 후꾸고는 기분 좋은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네 아이가 잠든 후 후꾸고는 책을 읽고 있는 동혁의 방으로 건너가서 이부자리를 펴고 그의 곁으로 가 앉았다.

 책을 읽고 있던 동혁은 책을 덮어놓고 그녀에게 돌아앉았다.

 “우리 이사 가야 하오.”

 “어디로요?”

 “줄포라는 곳이요. 부안군이라는데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고 하오.”

 “....”

 후꾸고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말을 할 수 없었다. 동혁은 그녀의 마음을 읽고 있었으나 가만히 후꾸고를 끌어 안아주는 것 만이 그 시각에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아니요. 내가 시대를 잘못 만난거요. 당신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내가 덕이 부족한 탓이지.”

 “그 시대가 가장 암울한 시대였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겐 여전히 끝나지 않네요.”

 후꾸고의 울음 섞인 말소리에 이어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하였고 동혁의 품에 안긴 채 오래도록 울고 있었다.

 사택에는 유리창이 많이 달려 있었는데 그날 밤에는 겨울바람이 심하게 불었는지 밤새도록 유리창문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정읍에서 이사 가던 날에 함박눈은 무릎에 닿을 정도로 쌓여 후꾸고의 마음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정류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왠지 무거워 보였다.

 정류장에 배웅 나온 선생님들과 사모님들도 추워 손을 호호 불며 인사했다.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교장 선생님.”

 “아닙니다. 다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모님.”

 “예, 추운데 어서 들어가세요.”

 동혁이가 가족들은 버스에 오르면서 인사를 하였고 아이들은 자리에 먼저 앉느라 웃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정읍을 벗어나 고부를 지나 줄포로 달려가고 있었다. 유난히 대나무 밭이 많아 하얀 벌판에 대나무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줄포에 도착하였고 정읍에서 온 아저씨와 줄포학교의 아저씨는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줄포학교는 높은 곳에 위치하였었는데 많은 계단을 올라서야 학교가 보였다. 하얀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와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검정고무신에는 황토가 빨갛게 묻어 있었다.

 사택은 낡은 교사 뒤에 대나무 밭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외따로 있었다. 이삿짐은 간단하여서 곧 정리되었고 후꾸고는 피곤하였는지 그만 방에 눕고 말았다.

 동혁이가 부엌에서 장작불을 때고 명자와 명선이는 후꾸고의 손을 자고 있었는데 방이 따뜻해지자 그녀는 또 몸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명자가 몸을 긁는 후꾸고에게 이상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어머니, 왜 몸을 긁어요?”

 “나도 잘 모르겠다. 오수에 살 때부터 조금씩 가렵기 시작했는데 요즘 더 가렵단다.”

 후꾸고도 몰랐었을 게 분명하였다. 그것은 나중에 후꾸고의 목숨을 앗아간 만성간질환의 일종이었던 황달이었음을 몰랐을 것이다.

 명선이가 후꾸고의 배가 불러옴을 알고 물었다.

 “어머니, 배가 아파요?”

 “아니야. 배가 아픈 게 아니라 명선이 동생이란다.”

 그 말을 할 때 후꾸고의 얼굴이 환하게 밝았음을 명자도 명선이도 알 수 없었다.

 “내 동생?”

 명선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녀의 배를 만져 보고 있었다.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오며 동혁이가 누워 있는 후꾸고에게 물었다.

 “이제 곧 따뜻해질 거요.”

 “고마워요.”

 “아버지, 내 동생이래요.”

 명선이가 후꾸고의 배를 가리키며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 동생이 숨어 있구나.”

 동혁이가 대답을 하며 손짓으로 명자와 명선이를 불러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힘들었으니까 우리는 여기서 쉬자. 오빠들이 들어오면 밖으로 저녁 먹으러 가자.”

 “야! 신난다.”

 “아버지, 바다는 어디 있어요? 나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은데....”

 명자가 동혁의 손을 흔들며 물었다.

 “아직 아버지도 보질 못했단다. 모두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가 보자.”

 두 딸애의 호기심이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며 동혁은 환히 웃어주었다.

 

 

 

 

 


 해가 바닷속으로 서서히 빠지고 있었는데 동혁과 가족들은 추운 것도 잊은 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해가 빠져 버리면 캄캄해지잖아요?”

 동혁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유난히 무서움이 많은 명자가 말했다.

 “그렇단다. 그 대신에 달님이 떠오르지.”

 “달님은 밝지 않아요.”

 명호가 대답했다.

 “해보다 밝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빛을 환하게 비춰 준단다.”

 후꾸고가 명호와 명선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바닷바람이 그들 모두에게 싸하게 불어와 웅크리게 만들었다.

 “이제 그만 저녁 식사 하러 갑시다.”

 식사 후에 가족 모두는 계단을 세어가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후꾸고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피었지만....


 그러나 그녀의 길고 오랜 그리움에 비하면 너무나 짧게 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