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9회-제 7 부 움막을 짓고(1)

천마리학 2009. 8. 17. 15:57

 

19회

제 7 부 움막을 짓고(1)

 

 

 1950년은 동혁네 가족뿐만 아니고 온 민족에게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의 역사였다.

 그 해 6월 25일 새벽 4시경 38선 중심으로 대치 중이던 옹진과 개성 등지에서 한국군과 북한군이 전투를 하기 시작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일요일의 단잠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UP통신 한국 주재 제임스 특파원 말에 따르면


 “한국 38선에서 일요일 새벽에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침공하여 왔음을 전함. 현지 시간 9시 30분의 보고로는 서울의 한국군 사령부에서 북쪽으로 65킬로 거리에 있는 개성에서 한국군 제 1사단이 9시경 격파되고, 옹진반도의 남쪽 3,4킬로에서 한국군이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음. 보고에 의하면 동해안의 강릉 아래에 20정의 소형 선박들이 바다에서 상륙하고 있음. 해안도로를 차단했다고 함. 아직 단편적이고 불명확한 것임을 강조해 둠.”


 그날 오전에 동두천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저녁에는 포천이 26일 오후에는 의정부마저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27일에는 북한군 일부가 서울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전쟁의 발발을 알리는 기사를 보고 동혁은 먼저 학교로 달려가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교무실에는 착잡한 표정의 교사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자 서성거렸고 종이 울리고 교장선생님의 직원조회는 시작되었다.

 “모두들 아시는 것과 같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우선 아이들을 모두 돌려보내야겠습니다.”

 “그럼 언제쯤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동혁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이 끝나야 무슨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까요?”

 박 선생은 두려운 얼굴로 물었다.

 “그 동안에 일직 같은 건 어떻게 해요?”

 “박 선생님과 은 선생님은 여자분들이니까 고향집으로 가셔야 합니다. 학교는 나와 또 남자선생님들께서 극한 상황에 다다르지 않는 한 지킬 것입니다. 어서 아이들을 부모님께 돌려보내십시다.”

 교장선생님이 일어나서 교장실로 들어갔고 선생님들은 서둘러 각자 교실로 들어갔다.

 

 

 

 

 

 

 

 

 동혁이가 들어간 반에는 한 명의 결석자가 있을 뿐 모두 등교했다. 출석을 부른 다음에 모두를 둘러보니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전쟁이 일어났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여러분을 모두 부모님과 함께 있도록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셨다. 언제 다시 학교에서 여러분과 함께 공부를 할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모두 전쟁이 끝날 때 까지 부모님과 함께 행동하고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모두 몸 조심하여라.”

 동혁의 마지막 말이 떨려 나왔고 아이들도 모두 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반장인 영우가 일어나 구령을 외치자 아이들과 서로 인사했다.

 동혁은 아이들 모두에게 손을 꼭 잡아주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음 해 봄 다시 공부가 시작될 때까지 헤어지게 되었다.

 박 선생과 은 선생이 먼저 고향으로 떠났고 몇 명 되지 않은 남자선생님들은 순번을 돌아가며 학교를 지키기로 했다.

 동혁은 매주 목요일이어서 그날은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방안에 있던 후꾸고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명수와 명호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여보, 우선 간단한 것만 가지고 남애기 집으로 들어갑시다. 우리끼리 여기 있는 것보다 나을 거요.”

 “어머님이....”

 “이 전쟁통에 설마 죽으라고 떼밀겠소? 어서 챙깁시다.”

 가방에 옷가지들을 챙기고 동혁은 명수의 손을 잡고 후꾸고는 명호를 둘러 업고 남애기로 걸어갔다. 포플러 나뭇잎새로 바람이 지나가고 논에는 시퍼런 물결 되어 이리저리 밀리고 있었다.

 “아버지, 지금 할아버지에게 가는 거야?”

 동혁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명수가 물었다.

 “그래. 명수도 할아버지 집 찾을 수 있지?”

 “예, 나 혼자서도 찾을 수 있어요.”

 동혁에게 잡힌 손을 빼고 하얀 길을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남애기 동구밖에는 할머니가 나와 있었다.

 “어머님이세요.”

 “우릴 기다리고 계셨을 거요.”

 “할머니.”

 두 팔을 벌려 명수를 안아주며 볼을 부비는 할머니의 얼굴이 기쁨에 차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려. 왜 이리 늦었당가? 아그덜은 진즉 오등만이.”

 “학교에서 좀 늦었습니다.”

 “어여 들어가더라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명수가 앞장서 걸어갔고 두 사람은 뒤따라 걸어갔다. 열린 쪽문으로 뛰어가며 명수가 할아버지를 부르고 모두 안으로 들어가서 할머니는 대문을 걸었다.

 방안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서 어디로 피난을 가야 할 것인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두 살 박이 바기 명호는 칭얼거리기 시작하였고 후꾸고는 아랫방으로 내려와야 했다.

 “집은 나와 어머니가 지킬 것잉께 너그덜은 어여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더라고. 우리덜은 살 만큼 살았당께. 너그덜은 아그덜도 있고이. 아적은 젊잖여? 오늘 밤 저녁은 여그서 먹고 남의 눈에 안 띄게 마령.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떠나더라고이.”

 할아버지의 말에 모두들 공감했고 각자 방을 내려와 세 며느리가 저녁을 짓는 동안 형제들은 앞으로의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세 아들과 자부와 손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여 가거라. 내가 밤으로 밥을 나를 것잉께.”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먹이고 있었다. 밤중에 나선다고 했는데 가는 도중에 여러 사람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모두들 같은 곳으로 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말을 꺼내는 일도 없었다. 그 밤길에 달빛만이 피난 가는 사람들을 말없이 비치고 있었다.

 

 

 

 


 한편 6월 28일 새벽 2시에 북한군 전차 2대가 서울시내로 들어왔고 이 보고를 받은 육군참모총장은 즉각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국군의 주력은 한강 이북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인도교의 폭파로 여러 가지 무기나 장비 등 또 군 보급품도 역시 운송되지 못한 채 북한군에게 포획 당하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북한군의 개전 3일 만에 우리 정부는 서울을 버린 채 남쪽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형무소에 감금되었던 반정부 세력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석방으로 남한은 또 다른 전기를 맞고 있었다.

 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 낙동강 이남만을 고수한 채 끈질긴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한국군의 후튀로 많은 국민들이 걸어서 각자의 고향을 버리고 무작정 남으로 남으로의 긴 피난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동혁과 후구고가 피난간 곳에서도 명호가 자꾸 울어대는 바람에 민망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누구 아들인디 그렇게 울어댄당가이. 울음소리가 밖으로 나가면 우리 모두 성치 못 헐 것인디.”

 한 아주머니가 후꾸고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미안하고만이라. 젖이 모자라서 그란디요이.”

 동수처가 얼른 미안하다며 말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불안한 눈길로 명호를 바라보았다.

 “아들을 데리고 나가겠어요.”

 후꾸고가 명호를 업고 밖으로 나가자 동혁과 명수도 뒤쫓아 나왔다.

 “당신 어딜 갈려고 그래?”

 “우리가 방해되잖아요? 어디로 가죠?”

 “남애기 집으로 갑시다.”

 동혁은 후꾸고의 손을 이끌고 다시 남애기 집으로 걸어갔다.

 

 

 

 

 


 남애기 집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머님, 어머님.”

 동혁의 작은 소리에 방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웬일이당가이.”

 “같이 있을 수 없었구만요.”

 “늬 처 때문여?”

 “아닙니다. 명호가 자꾸 보채서요.”

 “지 에미가 입덧을 하느라고 힘드는디.... 새끼꺼정. 어여 들어가.”

 명수가 다섯 살이 되었고 명호가 두 살 때였는데 후꾸고는 그 때에 태중에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남애기 집의 우물가에는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동혁과 후꾸고는 눈에 띄지 않게 그곳에 움막을 짓고 치열했던 그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낮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잘 놀던 아이들이었지만 밤에는 후꾸고와 잠을 자려고 비좁고 더운 움막으로 들어오곤 했다.

 “엄마, 맘마 줘. 맘마 줘.”

 명호가 칭얼대는 바람에 후꾸고는 명호에게 젖을 물려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한낮의 뜨거움이 스러지기도 전에 움막에서 지내야 했던 두 아이는 온몸에 땀띠투성이가 되었다. 할머니는 깊은 밤이면 명수를 데리고 가 서늘한 방에서 재워주었다.

 움막을 막아놓은 작은 문을 밀치자 서늘한 바람이 그들의 더위를 식혀 주었다.

 “여보, 이 전쟁은 언제 끝날까요?”

 “글세. 낸들 알 수 있나. 어서 끝나얄 텐데.... 아이들도 모두 다 잘 있는지 궁금하군.”

 “잘 있겠죠. 어린아이들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구요.”

 “당신도 고생이 심하지. 입덧으로 힘들 텐데 이 더위에 지낼려니까.”

 “괜찮아요. 모두가 다 치르는 걸요 뭐.”

 후꾸고가 몸을 옆으로 누우며 말하자 동혁은 가볍게 이마에 입술을 대 주었다.

 “여보, 나 내일 학교에 가봐야겠어.”

 “조심하세요.”

 “염려하지 마.”

 어느새 신 새벽이 왔는지 희뿌연 속으로 참새가 감나무 위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에 동혁과 선생님들이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학교를 접수하겠다고 하며 다짜고자 동혁과 선생님들을 몰아냈다.

 처음에 그들은 지서장과 경찰관들을 색출해 내는 일부터 착수했다.

 어느 집 헛간에 숨어든 민 지서장을 고발한 사람은 그 집 머슴인 박가였다.

 그는 북한군들이 붉은 완장을 달아주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색출하는 데 앞장을 섰다.

 그 집 주인인 황 노인도 함께 붙들려 가는데 박가는 그저 무심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네 이놈, 세상이 변했다고 네 놈까지 덩달아 뛰느냐?”

 “지는 몰라라우. 고발허면 땅을 준다고 하등만요이. 지도 새 세상 만나서 이놈의 머슴살이 고만허고 싶었당께요. 정말 그 동안 질 을메나 부려먹었는지 잊어뿌렸당가요?”

 박가의 당찬 말대답에 그의 어머니가 달려와 황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있었다.

 “어메여. 인자는 우리 세상여. 그러질 말랑께.”

 “이놈아, 시상을 그렇게 사능게 아닌 거여? 늬가 배운 게 뭐 있다고 그려. 모두들 널 보고 손가락질혀는 것도 모르냐? 이놈아.”

 어머니는 박가의 등을 바지랑대를 가져 와 후려치고 있었다.

 “어메여. 나가 뭘 잘못 혔다고 그려? 땅을 골고루 나눠주면 좋잖여?”

 “그 말을 믿는 거여? 시방. 정신 차려 이놈아.”

 어머니는 마당에 퍼질러 앉아 울지만 박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짓으로 민 지서장과 황노인을 연행하라고 했다.

 민 지서장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두 사람의 인민군이 연행할 때 그가 완장을 차고 뒤에서 큰 기침을 하며 가는 모양을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때부터 평화로운 오수에서도 살육이 시작되었다.

 “위원장동무, 민 지서장을 잡아왔당께요이.”

 그가 북한군에게 거수 경례를 하고 민 지서장을 인계하였을 그의 눈동자가 분노에 이글거렸다.

 “수고했소. 박 동무. 가서 일 보시오.”

 위원장이 힐끗 그를 보며 대답을 하자 박가는 두 사람의 인민군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나갔다.

 “너 칠복이 이놈. 늬가 위원장이라고 이 무식한 놈아.”

 “민 형사님. 아니. 민지서장님이지요이. 나가 그랑께. 그 때 지서에 불 지른 사람이요이.”

 “아니 뭐여? 나도 심중에 너라고는 생각했다. 소학교학생이라서 수사를 못 헌거지.”

 “나가 나이 많아 학교를 다녔지라우. 그 날 밤에 날 순순히 풀어줘서 고맙긴헌디....”

 위원장과 민 지서장의 눈싸움이 팽팽하게 진행되는 동안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날 죽이려거든 빨리 죽여라.”

 “....”

 칠월의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들의 증오도 불타고 있었다. 박가가 이끄는 인민군들은 두 명의 경찰관을 색출해 끌고 왔다.

 민 지서장과 경찰관들에 대한 인민위원회의 일방적인 인민재판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일사천리로 속개된 그 재판에서 그들은 미제앞잡이와 남한인민을 괴롭힌 죄과로 사형이 언도되어 즉결에 부쳐졌다.

 황 노인에게도 그 동안 지주로 인민들을 착취한 죄가 인정되어 사형이 언도되었다.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민 지서장의 부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안돼. 나를 죽여라. 이놈들아.”

 사람들이 그녀를 말려 보았지만 사력을 다하여 군중 속을 뚫고 들어와서 이미 총성이 울려 퍼진 운동장에서 실신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동네아낙네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그녀를 플라타너스 아래로 옮기고 있었다.

 “....”

 “이 무신 날벼락인감.”

 한 아주머니의 혼잣말이 지나가던 한 인민군에게 들려왔다.

 “동무도 죽지 않으려면 입 다물기요.”

 말을 했던 아주머니가 부들부들 떨며 학교를 바쁜 걸음으로 나가고 있었다.

 황 노인도 피를 흘리며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박가가 다가가서 보더니 침을 캭 뱉어버리고 문을 나섰다.


 

 

 

 

 인민군들과 아직도 앳된 소년 티가 남아 있는 소년병까지도 남루한 옷차림으로 누런 이를 드러내놓고 오수학교 운동장에 포탄들을 쌓으며 웃고 있었다.

 인민군들은 아이들과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스탈린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동무들. 오늘은 이만 하겠씀메. 내일 오전 열 시까지 또 모이기요.”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아는 얼굴들은 하나씩 둘씩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팔월의 내리쬐는 뙤약볕으로 벼 이삭들도 모두 축 처져 있는 시퍼런 들녘을 돌아서 붉은 완장을 두른 박가와 두 명의 인민군이 남애기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움막에서 나와 막 점심을 먹으려 할 때에 그들이 들이닥쳐서 동혁에게 다가왔다.

 “김 선생님이지요?”

 “맞소만....”

 “잠깐이면 되오. 함께 가야겠소.”

 동혁이가 그들을 따라서 집을 나설 때 명수와 명호가 겁에 질려 울고 말았다. 후꾸고는 할머니에게 두 아들을 부탁하고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어서 돌아가.”

 후꾸고는 동혁의 뒤를 대답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하얀 신작로가 왜 그리 길던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타이르며 그녀는 걸어가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가.”

 총부리를 동혁의 등에 대고 한 인민군이 말을 하였다. 그들은 동혁을 오수학교로 데리고 들어갔다.

 “꿇어앉아.”

 그가 외치자 동혁이가 땅바닥에 꿇어 앉자 후꾸고도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고개 들어.”

 두 사람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자 인민위원회에는 뜻밖에도 소학교에서 후꾸고가 가르치던 코흘리개 칠복이가 붉은 완장을 두르고 서 있었다.

 “여긴 어떻게?....”

 칠복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해 하고 있었다.

 “친일파라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동혁을 끌고 온 그가 부동자세를 취하고 대답했다.

 “수고했다. 우선 맨 끝 교실에 두 사람을 감금시켜.”

 “예.”

 그는 동혁과 후꾸고를 맨 끝 교실에 감금하도록 명령하였고 의자에 앉아 있는 위원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인민위원장은 북한에서 온 한 젊은 사내가 맡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일은 칠복이가 관장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