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7회-제 6부 현해탄을 바라보며(1)

천마리학 2009. 8. 13. 15:32

 

17회

 제 6부 현해탄을 바라보며(1)

 

 

 가을 하늘은 푸르렀으며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아름다웠다. 누렇게 물든 플라타너스 잎 아래로 바람에 빈 그네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구령대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맨손체조를 가르치는 박 선생과 따라서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운동장까지 들려오는 한글 익히는 낭랑한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청소가 끝나고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 직원종례를 알리는 종이 학교 안에 맑게 울리고 있었다.

 5학년 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박 선생과 동혁은 시계를 보며 일어섰다.

 “벌써 종이 울리는구만.”

 “요즘 하루하루가 사는 것 같아. 아이들의 얼굴 표정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아서 좋고.”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며 교실을 나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금방 터져나올 것 같은 복도를 걸어갔다.

 교무실에는 벌써 자리에 앉아 있는 교장선생님이 보였다. 목례를 하고 두 사람은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한복을 입은 여교사도 보였고 양장을 한 여교사도 보였다.

 곽 교장선생님은 모두를 둘러보며 만족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차차 우리 아이들도 한글을 익히고 역사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예.”

 “몇 달 전만해도 조선말을 쓴다고 혼이 난 아이들인데 자유롭게 글을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습니다.”

 교사들의 동감한 얼굴을 보고 교장은 또 말을 이어나갔다.

 “우린 일제하에서 교육을 받았고 또 가르쳤지요. 아마 시행착오가 생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서로 도와주며 슬기롭게 이깁시다.”

 “예, 좋은 말씀이십니다.”

 고 선생이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이제 누구 눈치볼 것 없습니다. 소신껏 가르치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오늘 교사회의는 이만하지요. 나도 평교사싯절에 시간 오래 끌면 교장이 미워집디다.”

 교장의 농담에 모두들 와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가 일어나서 교장실로 가고 교사들은 자신들의 책상을 치우고 있었다.

 책상서랍에 학습보도안을 넣고 잠그는 것을 본 고 선생이 박 선생에게 다가와서 말을 하였다.

 “저.... 박 선생님, 김 선생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땡감 씹은 얼굴을 하고.”

 “그가 일본여자와 결혼했다면서요?”

 “아셨구만요. 그만한 일본인 보기 쉽지 않습니다. 이 학교에서 나도 함께 근무했거든요.”

 “그렇습니까?”

 “사랑엔 국경이 없다잖습니까? 좀더 두고 봐요. 김 선생만한 사람도 드뭅니다.”

 박 선생의 동혁을 옹호하는 말에 그만 머쓱해져서 고 선생은 이내 교무슬을 나갔다.

 명수를 업고 시장에 온 후꾸고는 반가운 얼굴로 경선어머니의 생선 가게로 들어섰다.

 “선상님이 나오셨구만이라.”

 “명태하고 새우 좀 주세요.”

 “그러지라우. 요새 어떠신기라.”

 “네. 좋아요.”

 생선을 싸서 시장바구니에 넣어주자 돈을 건네는 후꾸고를 한 시장 아낙네가 도끼눈으로 쳐다보다가 얼른 들어가고 있었다.

 후꾸고가 인사를 하고 나서자 모른 척하고 물을 뿌리고 들어가려하자 경숙어머니가 달려나왔다.

 “웬일이여? 선상님이 뭘 잘못혔다고 물을 찌크린당가? 이 여편네야?”

 “이 여편네가 생선을 사 줬다고 아주 쌍심지를 돋우며 달라드네이. 뭘 얻어먹어도 단단히 먹어뿌렸나베?”

 “무식헌 여편네야. 지바선상님은 달러. 뭘 알고나 까불어야지. 선상님 얼른 가서 명수 옷부텀 갈아입혀야겠소이.”

 남애기에서 시장을 보러 온 돌이어머니가 고소하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싸우지 말아요. 괜찮아요.”

 시장바구니를 들고 후꾸고가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시장아낙네들은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왜 쪽발이가 안 간거여?”

 “소핵교 김 선상 부인이잖여.”

 “하필이면 왜 쪽발이랴이. 조선여자는 뭐 부인될 만헌 여자가 없당가? 나도 이만허면 괜찮은 여잔디.”

 “아이고, 이놈의 여편네가 어디다가 갔다 붙이고 지랄여. 김 선상이 그래 너 같은 여자허고 살 양반여?”

 경숙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을 하자 그 아낙네가 핏대를 세우면 덩달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에이. 망할 여편네들아. 장사나 혀. 남의 일에 참견들 말고.”

 한 아낙네의 말에 모두들 제자리로 가서 물건을 팔고 돌이어머니도 장을 봐 가지고 시장을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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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애기의 돌이네 안방에는 동네아낙네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구마를 쟁반에 들고 들어오며 돌이어머니가 신나는 얼굴로 말을 꺼내었다.

 “출출헌틴디 고구마들 먹더라고. 나가 어저께 오수장에서 물벼락을 맞는 영준이 작은 어메를 봤당께.”

 “그려? 일본에도 안 가고 산다능만이. 눈총이 여간 심허지 않을 틴디.”

 남원댁이 고구마 하나를 집어 껍질을 벗기며 대꾸했다.

 “어떤 여편넨지 손모가지를 똑 분질러 놔야 쓰겄구만이. 우리 형옥이를 가르친 선상헌테 그런 짓을 누가 헌겨? 지바 선상님이 뭘 잘못혔다고. 잘만 가르쳤다네.”

 장수댁이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곁에서 고구마를 먹던 관촌댁이 동감한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려. 나도 그 말은 들었구만이. 선상헐 때 말여이. 조선아덜 일본아덜 구별없이 똑같이 대했다는 것여이.”


 “그려도 누가 쪽발이덜을 좋아허냔말여. 아적도 돌아오지 않는 상수아버지도 옥이아버지도 있잖냔말여.”

 그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우리덜은 다 치를 떨었제. 순사놈덜만 봐도 슬슬 피해버렸잖능가이. 쉽게 잊을 순 없당께.”

 “다들 모였구만이.”

 밖에서 들려오는 동수처의 목소리에 긴장하는 얼굴들이 되었다. 돌이 어머니가 입에다 손을 대는 시늉을 하고 곧 문을 열었다.

 “늦었구만이. 어서 들어오드라고.”

 모여앉았던 자리를 넓게 하며 동수처와 함께 앉는다.

 “나가 들어와서 이야기를 못 혔나보네. 나가 들으면 안 되는 건가?”

 “아무것도 아니구만이라. 이 뜨끈뜨끈한 고구마 좀 들어봐요이.”

 관촌댁이 빈 김치보시기를 보고는 돌이어머니에게 말했다.

 “돌이어메, 짐치를 더 내와야쓰것소. 짐치를 걸쳐 먹어야 제 맛이 난당께.”

 “후딱 내올랑께 지둘려.”

 재빨리 보자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돌이어머니를 보며 동수처의 얼굴에 의심의 빛이 보였다.


 남애기 집 부엌에서 밥을 짓는 동수처를 보며 쟁반을 들고 장수댁이 들어섰다.

 “성님, 저녁밥을 하고 있구만이라.”

 “저녁밥은 안 허고 웬일이당가?”

 “갓짐치가 잘익어서요이. 잡숴보라고 안 가져왔소이.”

 쟁반을 열어보며 한나를 집어먹으며 정말 맛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참 맛나게 담갔구만.”

 “정말이지라.”

 장수댁이 쪼그리고 동수처 곁에 앉으며 말했다.

 “낮에 돌이네집에서 한 이야그를 알려드릴냐고 왔구만이라.”

 “나가 들어도 될 이야근가?”

 “그렇구만이라.”

 장수댁이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이자 화들짝 놀라며 바깥 동정을 살폈다.

 “그랬당가이.”

 동수처의 목소리가 금세 풀이 죽어버렸다.

 “할머니는 모르능게 좋을 것이요.”

 “무신 이야근디 내가 알문 안 된당가?”

 할머니가 바로 부엌문 앞에서 장수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구만이라. 성님, 저녁밥이 늦었겄는디 가볼라요이.”

 “어여 가 봐.”

 “할머니 안녕히 기시기라우.”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꽁지가 빠지게 걸어가는 장수댁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솔가지를 무릎에 대고 끊으며 불을 때는 동수처도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부엌을 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쫓으며 동수처는 슬픈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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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식사가 끝나고 동수처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둘째네에 무신 일이 있제?“

 “아니라우.”

 대답하는 동수처의 말소리가 떨려나왔다. 할머니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당황하며 들고 있던 그릇을 그만 떨어뜨렸다.

 “깨지겄다.”

 부엌바닥이 흙이라 깨지진 않았지만 건네주는 할머니는 동수처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 시방 시에미한테 거짓말하고 있쟈?”

 “아니구만이라.”

 “그람 떨지 말고 어서 말혀. 내가 늙어서 눈치도 없는 줄 아냐? 눈치만 남능겄여.”

 “지도 지눈으로 안 봐서 모른당께요. 그냥 소문이구만요이.”

 “무신 소문여?”

 “명수어머니가 시장에 나왔다가 물벼락을 맞았다고....”

 갑자기 할머니의 노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그랑께. 지가 친정오래비 따라서 갔으믄 좋잖여. 지를 이 마당에 누가 좋아할꺼여.”

 “....”

 “앞으로 을메나 당하고 살 건가이. 내 아들 얼굴에 먹칠을 허고 있네이. 아이고 속상혀서 원.”

 할머니가 그냥 밖으로 나가며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동수처도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에 주저앉아서 가마솥뚜껑만 행주로 오래도록 닦아내고 있었다.

 동철이도 면서기로 근무하게 되어 농사를 짓는 동수와 할아버지의 가을걷이는 매우 바쁘고 힘들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아이들은 책보자기를 허리에 매고 논둑길을 걷고 있었다. 벼이삭 하나를 꺾어다 잡은 메뚜기머리를 꿰어 누가 더 많이 잡았나 내기를 하곤 하였다.

 “이놈들아, 메뚜기를 잡으려면 병을 가지고 잡으러 다녀야지. 벼 한 모가지 잘라 잡으믄 고만큼 쌀이 줄잖여?”

 동수의 호통에 서로 메뚜기를 잡았다고 우기던 아이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고 있었다.

 “그려이. 너희들은 좋은 시상을 만났구만.”

 달아나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보내며 논둑에 주저앉아 들판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누런 벼이삭을 한줌한줌 베어가며 구성진 노동요가 들판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목청껏 부르는 동네사람들과 서로 힘을 합쳐 가을걷이를 할 그 해 1945년 가을은 유난히 풍요로운 것 같았다.

 무명베잠방이가 땀으로 다리에 휘휘 감겨도 농부들은 불평 한마디 없었다. 새참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아낙네들의 발걸음도 신이 나 있었다. 어머니의 뒤를 막걸리주전자를 들고 걸어오는 아이들도 흥겨워하였다.

 그들은 넉넉한 마음을 다시 되찾았다. 그 해 한가위를 맞아 집집마다 송편을 빚으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흥겨워하였다.


 교무실의 동혁의 책상 위에 한 통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오전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며 편지의 발신인을 찾아보았지만 밝혀 있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뜯어 읽어내려 가던 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편지를 다 읽고 그는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동혁의 얼굴에는 불쾌한 빛이 역력하였고 그대로 운동장으로 축구공을 들고 나가버렸다. 점심도 먹지 않고 나가는 그를 보다가 박 선생이 쓰레기통 속의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았다.

 ‘어떤 놈야? 이따위 편지질이나 하는놈은?’

 끝까지 읽지도 않고 다시 구겨 던져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의 행동을 눈여겨보던 고 선생이 심술궂은 얼굴이 되어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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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잔 들게나.”

 “마시자구. 자네 얼굴이 그게 뭔가?”

 “뭐가? 나 아무렇지도 않아.”

 동혁은 술잔에 가득 따르는 박 선생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자네가 쓰레기통에 넣은 편지를 나도 보았네.”

 “....”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따위 편지질이나 하다니 참 한심하구만.”

 “그 편지를 쓴 사람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겠지.”

 “지바선생, 아니 명수엄마가 모르도록 하게. 지금도 힘에 겨울 텐데.... 남편을 모함하는 편지가 온다는 걸 알면 못 견뎌 할 테니까.”

 “알았네.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 줘 고맙네.”

 “고맙긴.... 자 술잔을 비워야지.”

 두 사람은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며 일제시대가 가고 새로운 미군정의 치하 아래서 좌우이념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꾸고는 문밖에서 동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부터 <황성옛터>를 부르며 걸어오는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이세요?”

 후꾸고의 목소리가 들리자 동혁은 노래를 뚝 그치고 대답했다.

 “날씨도 차가운데 왜 나와 있소?”

 “명수가 잠이 들었구....”

 “들어갑시다. 내 오늘 박 선생하고 한 잔 했소.”

 “네.”

 후꾸고의 어깨를 감싸며 걸어가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보름달이 광복 한 필을 펼쳐 놓은 듯 비쳐주고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와보니 책상 위에는 제법 커다란 봉쿠가 놓여 있었다. 전주에 있는 신문사의 옛 동료가 부쳐준 편지였다.

 커다란 봉투속에는 일본에서 보내 온 편지 한 통이 넣어져 있었다. 동혁은 그 편지를 들고 점심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집으로 달려갔다.

 명수와 함께 놀아주던 후꾸고가 갑자기 온 동혁을 보며 이상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퇴근시간도 아닌데 벌써 오세요?”

 동혁이 명수가 엎드려지는 것을 보다가 후꾸고의 눈앞에 편지를 내 놓는다.

 “어머! 이즈미쨩이 보냈네.”

 편지를 뜯으며 기쁨이 얼굴로 오랜만에 번지는 것을 보며 동흭의 마음이 저려오고 있었다.

 “오빠네는 동경엘 자릴 잡았다네요. 이치로쨩도 할아버지를 만났구요. 모두들 무사히 도착했군요. 이즈미쨩은 부모님과 센다이에 산다고 하네요.”

 “잘 되었소. 당신 금방 답장을 써야 되겠소.”

 “그래요. 우리 이야기도 쓸래요. 당신, 학교 가셔야죠?”

 “일찍 돌아오겠소.”

 동혁이가 나가자 배웅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낮은 책상 앞에 앉아서 편지를 쓰는 후꾸고의 손놀림이 바쁘고 옆에는 명수가 또 엎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편지를 다 쓰고 봉투를 붙이고 나서 후꾸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우체국으로 가는 후구고의 발검음이 신이 났고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