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5회 제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2)

천마리학 2009. 8. 10. 06:12

 

 15회 제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2)

 

 조국의 패망으로 후꾸고는 이제까지 입었던 기모노를 잘 손질하여 장롱 깊숙이 보관했다.

 깊은 밤이었다.

 옆에서 칭얼대던 명수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고 아직도 신문사에서 퇴근하지 않은 동혁을 기다리며 장롱 속에 감춰 두었던 기모노를 꺼내어 어루만지고 있는 손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평안하세요? 전 어떡하면 좋아요. 명수아버지와 다시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난 그를 사랑해요. 정말로.... 하지만 내가 있음으로 그에게 폐가 된다면 난 차라리 일본으로 돌아갈래요. 그를 위해서라면 말예요.’

 골목으로 동혁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얼른 눈물을 닦고 기모노를 장롱 속에 집어넣었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살그머니 나가서 열어주었다.

 “늦었네요.”

 “음.... 들어가지.”

 동혁이 앞장서기를 기다려 뒤따라 들어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절했다.

 “당신 왜 그래?”

 “이제껏 해왔잖아요.”

 그는 후꾸고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 와락 끌어안아 주었다.

 “나 당신 생각 알아. 하지만 난 당신을 보낼 수 없어. 잘 알잖아. 우리가 어떻게 싸워 이겼는가를, 양쪽 집안에서 쫓겨나면서까지....”

 후구고는 동혁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가면 난 살 수 없어. 내 삶은 당신과 함께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그는 오래도록 후꾸고의 등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동혁은 후꾸고의 귀국에 반대하면서 일본이 패했다고 그녀를 아들과 함께 보낼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전주신문사에서 동철과 만난 그는 본가에 자신의 뜻을 전달하라고 완곡하게 부탁했다. 그가 남애기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달려와 물었다.

 “쪽발이 가버렸제?”

 “형님이 그러는데 절대로 보낼 수 없다능구만요이.”

 “뭐여? 이렇게 좋은 때가 워디 있간디. 아이고 그 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만이.”

 할머니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그대로 평상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머님, 형님은 형수를 버릴 순 없지요이.”

 “아가 그게 무신 말이여?”

 “그렇잖아요이. 달면 삼키고 이제 와서 쓰다며 뱉어버리면 되것냐고요.”

 “그럼 너는 늬 형이고 고년 땜씨로 기도 펴지 못허고 사능게 좋겄냐?”

 동철을 쏘아보며 어머니가 말하자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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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에 살고 있는 오빠 내외가 전주 후꾸고의 집으로 찾아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함께 가자며 짐을 꾸리라고 말했다.

 “전 갈 수 없어요. 알잖아요. 난 이미 조선인인 걸요.”

 “후꾸고쨩, 언제까지 고집을 피울 거야? 우리가 살 곳은 이 땅엔 없어. 돌아가자. 센다이의 그 숲길을 다시 걸어봐야지.”

 “그래요. 그 아름다운 숲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방문을 열고 이치로쨩이 들어와 오빠 내외를 보며 인사했다.

 “저 앤 누구야?”

 “이치로쨩이에요. 경찰서장 아들인데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동경에 외가가 있다는데 가서 찾아주세요.”

 “염려 말아요. 고모, 곡 찾아줄게요.”

 올케가 후꾸고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방학이라 아이들이 센다이에 있어서 다행이네요.”

 “맞아요. 우리 두 사람만 나가면 되니까요.”

 이미 해는 저물고 있었다. 후구고는 이제 가면 다시 볼 수 없는 오빠 내외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려고 부어으로 나섰다.

 올케가 따라나와서 두 사람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동혁이 대문을 밀치며 들어서서 후구고를 찾았다.

 “부엌에 있어요.”

 그가 부엌을 들여다보다가 올케를 보았다.

 “오셨군요. 형님은요?”

 “지금 명수 보고 계셔요. 어서 들어가요.”

 동혁이 방으로 들어가자 명수를 안고 있던 다께오가 일어났다.

 “앉으세요, 형님.”

 “늦었네.”

 “요즘 신문사가 바빠서요.”

 “그렇겠지.”

 “저희가 찾아 뵈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닐세. 난 그저 후꾸고쨩을 데려가려고 왔네. 내일 화물차가 와서 우리들을 부산으로 데려간다는구만.”

 “안 됩니다. 후꾸고를 전 보낼 수 없습니다.”

 “자넨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난 내 동생이 여기에서 수모를 당하며 살아가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진다네.”

 “아닙니다. 절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동혁의 완강한 반대에 다께오는 입을 다물었고 이치로쨩도 눈치를 살피며 앉아있었다.

 “형님, 이치로쨩을 데려가시죠.”

 “들었네. 우리와 함께 가야지.”

 “똑똑한 아이라서요.”

 방문이 열리고 올케가 상을 들고 들어왔고 후꾸고는 쟁반에 물을 가져왔다.

 상을 보더니 동혁이가 후다닥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의 손에는 정종 한 병이 들려 있었다.

 “형님께서 처음 오셨는데 술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세.”

 두 사람이 술병을 비워 가는 동안에 그 분위기는 착잡하였고 올케와 후꾸고도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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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에 그들은 이치로쨩을 데리고 집결지로 향하고 있었다. 후꾸고는 명수를 업고 오빠 내외가 가는 것을 보려고 동혁과 함께 걸어아고 있었다.

 화물차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 있었고 그들의 후송을 맡은 군대는 옛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침묵하고 있었다. 화물차에 오르기 전에 다께오는 후꾸고와 동혁을 번갈아 꼭 안아주었고 올케도 그녀를 끌어 안아주었다.

 동혁에게 이치로쨩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고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그를 꼭 안아주었다.

 “잘 가거라, 이치로쨩.”

 “예, 정말 감사했습니다. 편지 꼭 쓸게요.”

 이치로쨩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을 하고 다케오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

 그 화물차가 붐비도록 꽉 찬 다음에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구고는 그 차의 꽁무니에 뿌연 먼지가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그렇게 서 있었다.


 노을이 물드는 들판에 동혁은 명수를 업고 어디론가 떠나는 후꾸고를 보았다.

 그녀를 잡으려고 열심히 뛰어갔지만 여전히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후꾸고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노을진 들판을 정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여보, 여보, 가지 마.”

 동혁의 울부짖음에도 어디론가 후꾸고는 노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그는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곁에는 명수가 젖을 문 채 잠들어 있었고 후꾸고는 눈가에 눈물이 마르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불쌍한 사람. 난 당신을 떠나게 하진 않겠어.’

 동혁은 곁에 잠들어 있는 후꾸고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당신 아직도 잠들지 못한 거예요?”

 그의 입맞춤에 깨어난 후구고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꿈 때문에 깬 거야. 어서 잡시다.”

 “꿈요? 무슨 꿈이었는데요?”

  “아냐. 난 아직 다 크질 못했나봐.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이었어.”

 “이젠 명수 아버진걸요? 어른이에요. 어서 자요. 여보.”

 후꾸고는 동혁의 베개를 잘 놓아주며 말했다.


 남애기 집으로 찾아온 고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올케, 그 쪽발이년 일본으로 돌아갔지라.”

 “가긴 어딜 간당가이. 아적도 눌러앉아서 사는디....”

 할머니의 볼멘 소리에 환하게 웃고 있던 고모의 얼굴에 금세 독기가 솟아 올랐다.

 “뭐여라. 그년이 뭘 믿고 눌러 있당가라.”

 “친정 오래비가 가는 질에 찾아왔는가 보던디.... 안 갔당께.”

 “아이고, 그년이 우리 둘째 조카를 잡아 먹것구만이. 아니 왜 가만두고 보고만 있당가이. 내쫓아버려야지. 요새 다들 쫓겨가니라 쪽발이던 집에 가서 모두들 물건도 가져오고 야단났다던디.”

 “오수사 쪽발이 집이 몇 안 되니께. 그러고 고것덜이 쓴 물걸을 워떻게 쓴당가이.”

 “그렇긴 혀요. 그라고 우리가 가서 쫓아내야지. 올케가 앞장서야지. 아덜 앞길이 이제 훤하게 뚫릴 판인데 그년 땜시 망하는 꼴 보고 정신 차릴 것이요이?”

 “고게 무신 말인랑가?”

 “쪽발이덜이 모두 떠나 갔응께. 조카가 한 자리혀도 크게 헐 것 아니란 말여요이. 경성사범에 동경 유학꺼정 혔는디 그런 사람을 안 써 먹겄냐고요.”

 “그렇긴 혀도....”

 “그란디 그년 땜시 앞길을 망쳐도 좋단 말여요? 시방?”

 할머니는 고모가 옆에서 부추기자 어느새 화가 치밀었는지 그 여름에도 찬바람이 쌩하니 불 것 같은 얼굴로 문을 박차고 앞장을 섰다.

 그 뒤를 고모가 뒤따르며 남애기 동구밖을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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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에 온 두 사람은 다짜고짜 방문을 열어젖혔다. 후꾸고가 명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을 보며 움찔했다.

 “들어오세요. 어머님, 고모님.”

 명수를 안고 후구고가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두 사람은 대꾸도 없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 때 동혁이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님, 언제 오셨습니까? 고모도 오셨군요.”

 상을 후꾸고 앞에 놓으며 그가 말을 하자 할머니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졌다.

 “이놈아, 여편네 상을 차려다 주고 이 꼴이 뭐냐? 네 년도 그렇지. 서방이 차려다 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더냐?”

 할머니는 상을 엎어버리고 고모는 덩달아 명수를 안고 있는 후꾸고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그만두세요. 왜 이러십니까?”

 동혁이 말리자 그를 두들겨 패며 할머니는 울어버렸다.

 “저 사람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이렇게 행패를 부릴려면 저희 집에 오지 마십시오.”

 “오매, 오매 저놈 좀 봐. 아주 쪽발이가 다 되었구만이. 너도 일본으로 가지. 왜 못 갔냐 이 놈아.”

 “....”

 “네 년도 오래비가 와서 가자고 허면 갈 것이제. 네 남편 잡아 먹을라고 붙어 있는 것여?”

 고모도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욕을 퍼부었다.

 후꾸고는 울며 보채는 명수를 업은 채 엎질러진 상을 주섬주섬 다시 차려서 부엌으로 나갔다.

 “너 정신 차려야 한다. 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랑께.”

 고모가 조카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고모님, 나도 압니다. 하지만 우린 선택했어요. 난 명수 어멈을 떠나 보낼 순 없습니다. 두 분 이해해 주시고 그만 돌아가세요.”

 “에이. 이 천하에 몹쓸 놈. 그렇게 말해도 모르것냐?”

 “다 압니다. 다 알아요.”

 할머니와 고모는 화를 내며 온 길을 씩씩거리며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잃어버린 걸로 칠라요. 장가가면 다 쓸데 없당께요이. 지집년에 빠져서 말여요.”

 할머니가 울먹이면서 말을 하자 고모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걸어가기만 했다.

 남애기 집으로 늦게 돌아온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할아버지는 호통을 쳤다.

 “이 여편네가 쓰잘 데 없는 일만 저지르고 다닌당가이. 둘이 산다는데 웬 간섭여? 좇아버렸으믄 그만이제.”

 “그려도 워디 그래요이.”

 할머니의 작은 대답에 또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그 옆에 서 있는 고모를 보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도 괜헌 짓거릴랑 말고 어여 네 집으로 가 봐. 우리 집안 일에 간섭일랑 허덜말고 늬 집일이나 잘 허드라고....”

 흠흠 큰 기침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고모는 이내 남애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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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으로 발족된 건국준비위원회는 전국적으로 많은 지부가 등장하게 되었고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인민위원회로 전환되었다.

 인민위원회는 그 지방에서 떠나는 일본인들의 집에서 큰 공장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일본인 재산의 경영권과 모든 증서를 그들로부터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1945년 9월 학교에 아직은 일본인교사들도 남아 있는터라 조선인 교사와 그들 사이에도 미묘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9월 10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고, 조선인 교사가 턱없이 부적했던 터라 동혁에게 다시 교단에 서달라는 소식이 와서 그는 기쁜 마음으로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그 날로 오수 소학교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학교 앞에 어렵게 구한 방 한 칸과 부엌 하나로도 흐뭇해했다.

 그 날밤에 명수를 업고 동혁과 후꾸고가 남애기 집을 찾아갔을 때 출타중인 할아버지는 만나지 못하고 할머니의 호된 꾸지람만 받은 채 또 돌아서야만 했다.

 “야들 좀 봐. 여그가 어디라고 찾아와. 동네 부끄러우니까 어서가.”

 “어머니. 작은오빠가 무신 잘못을 혔다고 쫓아낸당가이. 명수도 있잖여.”

 막내가 동혁의 편을 들자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어머님, 우리가 갈랍니다. 막내 때리지 마십시오.”

 동혁은 민수를 업은 후꾸고와 함께 대문을 나섰다.

 “이눔의 가시네가 대가리가 커졌다고 인자는 오빠 편만 드네이.”

 “어머니는 작은오빠 너무 괄시하지 말어. 나중에 새 언니를 어떻게 보려고 그런당가.”

 “안 보믄 될 것 아녀. 나가 왜 그년 꼴을 보고 살겄냐?

 “사람팔자 두고 봐야제.”

 “아이고. 그래도 이년이 입은 살았구만.”

 두 사람의 싸우는 소리가 고샅길까지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어둠 속인데도 고래를 푹 떨군 채 동구 밖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신작로를 따라서 할아버지가 술이 취한 듯 약간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여보, 아버님이요.”

 동혁이 머저 뛰어가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아버님 약주 드셨습니까?”

 “어? 어? 둘째로구나. 너 학교로 다시 왔다는 것 들었다. 혼자 왔냐?”

 “아닙니다. 명수 어멈과 함께 인사 왔습니다.”

 “안녕하셨어요? 아버님.”

 “그려 그려, 오니라고 욕 봤다. 네 어머니 봤냐?”

 “예, 지금 뵙고 오수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또 내쫓아버렸제?”

 두 사람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할아버지도 말이 없었다.

 “기둘려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인께.... 나, 갈란다.”

 “혼자 가셔도 괜찮겠습니까?”

 “염려마라, 어여 너희들이나 가거라.”

 할아버지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에 두 사람이 인사를 하고 고샅길로 접어들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초가을 시원한 바람이 벼이삭 사이로 서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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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학교의 운동장을 밟던 날 아침에 그는 태극기가 휘날이는 것을 보며 감격스러웠다.

 “자네, 이젠 다시 교단에 서는구만이.”

 동혁과 함께 근무하였던 박 선생이 다가오며 말했다.

 “반갑네. 일 년 만이지?”

 “지바 선생이 아들을 낳았다면서?”

 “그래.”

 “만나고 싶구만. 우리 세 사람은 다 아는 사이가 아닌가?”

 “퇴근할 때 같이 가지.”

 두 사람은 운동장에서 환하게 웃고 노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교무실로 향했다.


 명수를 업고 마당을 서성이다가 후꾸고는 박 선생과 함께 들어오는 동혁을 보았다.

 “박 선생님 아니세요?”

 후꾸고의 얼굴은 반갑고 놀라움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고생 많았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두요. 어서 올라가세요. 저녁 빨리 지을게요.”

 “저녁보다 먼저 술을 마시고 싶은데....”

 “알았어요.”

 후꾸고는 열린 부엌으로 들어갔고 동혁은 박 선생과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쪽에는 많은 책들이 자리를 잡았고, 책상 위에는 펼쳐진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다른 쪽에는 이층 장과 그 위에 이불이 놓여져 있었다.

 “여전히 책만 차지하고 있네그려.”

 박 선생이 둘러보며 말하고 앉자 그도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초라하지?”

 “두 사람의 사랑에 비해선 그런 편이구만.”

 “그런가?”

 마주보고 웃는 두 사람의 얼굴이 모처럼 환해졌다.

 “여기 상 가지고 왔어요.”

 “내가 나가겠소.”

 후꾸가가 밖에서 말하자 동혁이 얼른 나와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와요. 지바 선생.”

 박 선생이 말했다.

 “아뇨. 두 분이서 드세요. 조금 있다가 함께 저녁 먹으며 이야기해요.”

 후꾸고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럽시다.”

 후꾸고는 고개를 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고 두 사람은 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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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수를 업은 후꾸고는 키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쌀을 까부르는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내가 해줘야겠구만.”

 주인댁이 어색하게 웃는 그녀의 손에서 키를 건네 받아서 익숙한 솜씨로 키질을 했다.

 “감사합니다.”

 후꾸고가 고개를 숙이고 우물가로 가서 쌀을 씻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세 사람은 일 년 전에 있었던 그 사건들을 이야기했다.

 “그 때 말이여. 자네가 사표를 못 쓰겠다고 종일 버티니까 나중에는 진이 다 빠지는지 그 사람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교장헌테 말했다는구만이.”

 “그랬어요?”

 “아니 지바 선생님은 몰랐단 말이어요?”

 “전 그 때 부안에 있었잖아요. 오빠의 감시하에 말이에요.”

 그러면서 후꾸고는 수줍게 웃어 보였다.

 “이 사람이 말을 안 했구만요.”

 “음. 괜한 말을 왜 하나? 이 사람에게....”

 “하여간 그 사건으로 학교가 벌컥 뒤집어졌습니다. 아무튼 두 사람은 내가 증인이니까 끝까지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 염려는 마시게나, 자 술 한 잔 드세.”

 동혁의 그 한마디는 후구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열린 문으로 서늘한 밤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박 선생이 밖을 내다보니 어둠이 깔려있었다.

 “너무 늦었구만. 나, 가야겠네.”

 “술이 아직 남았는데?”

 “아니야, 이젠 종종 와서 마실 텐데 뭐. 지바 선생. 나, 갑니다.”

 “박 선생님, 전 이제 명수 엄마예요. 그렇게 불러줘요.”

 후꾸고는 조심스럽게 박 선생의 안색을 살피며 이야기했다. 그제야 그는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내가 생각이 모자라서 그만, 명심하겠습니다. 명수 어머님.”

 박 선생이 정색을 하며 인사를 하자 세 사람 모두 환하게 웃었다. 그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명수의 칭얼대는 소리에 후꾸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기저귀를 갈아주며 그녀는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냄새나는 기저귀가 뭐가 좋다고 웃고 있소?”

 언제 들어왔는지 동혁이가 곁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두요.”

 기저귀를 들고 나가며 후꾸고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