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6회-제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3)

천마리학 2009. 8. 11. 14:53

 

  16회

  제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3)

 

해방이 되었다 해도 습관은 무서워서 모두들 조선말보다 일본말이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말을 하면 벌을 세우던 일본인 교사들이 다 가버렸어도 아이들은 조선말을 하고 얼른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시 5학년 담임을 맡았다. 아이들은 제법 어른스런 행동으로 해방의 기쁨을 알아서인지 조선말을 하려 애썼다.

 모든 교과서가 일본말로 되어 있어 제대로 수업이 이뤄지진 못하였고, 교사들은 이른 운동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들에게 기마전을 지도했고, 여아아이들은 마스게임을 준비했다. 각 반별로 달리기와 이어달리기를 연습했다.

 동네 어른들은 농악을 하기로 되어 있었고, 전교 어린이들은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응원 연습도 했다.


 운도외 날 아침에 오수 소학교에는 다른 운동회와는 전혀 분위기가 달라 있었다. 국기 게양대에는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나부끼었고 만국기에도 어김없이 태극기는 끼어 있었다. 손에 손을 맞잡고 들어서는 아이들과 학부형들의 얼굴도 기쁨에 들떠 보였다.

 본부석에는 누런 차일이 쳐져서 마을의 유지들과 교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을하늘은 운동회를 축하하는 듯이 높고 푸르렀고, 고추잠자리는 운동장을 떼지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간단한 말씀이 있고 나서 신나는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진 자리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고, 어느 새 들어왔는지 엿장수아저씨는 엿을 치며 아이들과 구경하고 있었다.

 후꾸고는 명수를 업고 학부형들 틈에 끼어 구경을 하고, 아이들의 홍조 띤 얼굴을 보았다.

 “오매. 저기 애 업고 서 있는 사람은 누구여? 쪽발이 선생이잖여?”

 “글씨 말이여, 김 선상고 혼인을 혔다고허등마나.”

 “왜 지 나라로 안 갔을까이?”

 “김 선상이 못 가게 혔겄제이, 아따 이상허시, 쪽발이가 뭐가 좋단가이.”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들려오자 후꾸고는 살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아이들의 높다란 목소리가 잠기기도 하련만 왁자지껄한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후구고의 귓속에서 웅얼거리고 있었다.

 동네아저씨들의 농악대는 초라한 행색으로 단장했으나 그들의 발걸음과 뛰는 모습에서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어버지와 할머니들은 어깨춤이 덩실덩실 함께 어우러져 운동장은 그야말로 환희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나무 울타리로 그들을 보며 후꾸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농악이 끝나고 박 선생의 점심시간을 알리는 마이크소리가 들려오자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학부형들에게 달려갔다.

 운동장 가득 음악이 흘러나왔고 옹기종기 앉아서 가족들끼리 점심식사를 했다. 일찍 식사를 끝낸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팔방 치기와 자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 사이로 개구쟁이 하나가 재빨리 들어가서 칼로 고무줄을 자르며 도망가자 우르르 쫓아가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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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무실에서 운동장을 내려보던 교사들도 환한 얼굴이었다.

 종이 울리고 이어서 교사들도 모두 운동장을 나갔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나 파란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 선생, 오랜만에 기분 좋은데?”

 “나도 그래.”

 다시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지고 응원석의 사람들도 오전처럼 질서 있게 앉아 있었다.

 여자아이들의 마스게임이 시작되었다. 하얀 저고리에 검정통치마 차림이어도 아주 예쁘게 보였다.

 학부형들은 섞여 있는 아이들 중에서 자기아이들 찾느라 부지런히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어디 있당가이.”

 “저기 있잖어요. 낸 잘만 보이능구만이.”

 “어디 말여.”

 “아따, 저기 빨간 댕기 맨 아이 뒤에 있구마능.”

 “맞구만.”

 두 아주머니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형들의 큰소리까지도 마스게임 음악소리에 잦아들고 말았다.

 기마전은 청군의 승리로 끝났고, 학부형들과 함께 이어달리기는 백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1945년 운동회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공동우승으로 끝이 났다.

 공책 하나 받았을 뿐인데도 아이들은 기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텅 빈 운동장 위로 함성과 더불어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황금빛 들녘에는 구성진 가락이 울려나오고 아낙네들의 새참을 이고 나르는 발걸음도 여느 때 같이 않게 흥겨웠다.

 “이제는 농사짓는 것이 우리 것이제, 공출 당하지 않을거란 말이시.”

 사발에 넘치는 막거리를 마시며 동수가 이웃집의 돌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따, 성님도 고걸 말이라고 한다요이, 이젠 우리덜 시상이랑께. 암요, 그렇고 말고요이.”

 입가를 손으로 쓰윽 닦으면 보시기에 담긴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만족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랬다.

 그 때에는 많은 것들을 배앗겨도 한마디 말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일본의 오랜 대동아 전쟁으로 인하여 조선에서 군량미 목적으로 어느 해에는 거의 반절도 넘는 양식을 빼앗아갔던 시절도 있었다.

 그토록 어렵던 순간들을 지나니 이렇게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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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수까지도 들려오고 있었다. 부산항구만다 꽉 찬 일본인의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소식이었다.

 조선엔 거의 80만 명이 달하는 일본인들이 상주해 있었고 만주에도 상당수의 그들이 살고 있었다. 연일 쏟아지는 일본인들로 부산거리는 북적거렸고, 이제는 조신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비굴함이 가득하였다고 부산에 다녀 온 한 고향친구가 전해주었다.

 ‘무사히 갔는지 모르겠구만.’

 동혁의 혼잣말에 후꾸고는 귀를 쫑긋했다.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했나 봐요. 이치로쨩오 무사한지....”

 “일본군대의 화물차를 타고 갔으니 모두 무사할거요. 이 와중에 편지가 제대로 들어오겠소? 또 전주에서 급히 왔으니.... 언제 전주에 가면 들려보리다.”

 동혁이 자고 있는 명수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매우 부드럽구만.”

 “그렇죠? 아이들 살결은 마치 비단결 같아요.”

 “당신은 조선말 잘 모르지 않소? 이제 우리 말만 사용할 텐데.... 글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구료.”

 “쓰지는 못하지만 말은 할 수 있는데 어떡하죠?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야죠?”

 “그래야지. 나한테 배워요.”

 알았어요.“

 동혁은 불을 끄고 누워서 곁에 있는 그녀를 안고 뜨거운 입맞춤을 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후꾸고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요. 조국의 말을 쓸 수 없다는 것에 그만.... 이제야 일본이 망했다는 실감이 오네요.”

 “....”

 “난 바보죠. 여보.”

 “아냐. 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 앞으로 두 나라가 서로 좋은 동반자로 남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오.”

 동혁의 품에 후꾸고가 파고들자 그는 꼭 껴안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녀의 깊은 마음속까지야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

 10월의 서늘한 바람이 나락사이를 부석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달빛은 새로 바른 창호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평안하게 잠든 세 식구의 얼굴을 비춰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