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3회 제4부 쫓겨나는 두 사람(3)

천마리학 2009. 7. 23. 09:09

 

 13회   제4부 쫓겨나는 두 사람(3)

 

며칠 후 신문사 근처 다방에서 만난 동혁은 후꾸고에게 부탁했다.

 “신문사 일로 너무 바쁘니까 당신이 방을 구해 봐요.”

 “네.”

 “나 오늘 취재하러 떠나니 다녀와서 연락하겠소.”

 “잘 다녀와요.”

 후꾸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녀도 함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정류장에서 동혁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모리무라가 후꾸고의 어깨를 탁 쳤다.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 결혼했어요.”

 “네? 소문도 없이 그렇게 하기에요? 어디에서 한 거예요?”

 “아무도 없는 빈 집 앞마당에서요.”

 “우리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지 말고 어디 가서 차라도 하면서....”

 “차는 방금 마셨는걸요. 누구와 약속 있는 건 아닌가요?”

 “그 사람도 동경에 다녀온다고 떠난 걸요.”

 “그럼 걸어요.”

 두 사람은 한벽루를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결혼이라니.... 두 사람 다 정말 대단해요.”

 “누구도 축하해 주지 않았는 걸요 뭐.”

 후꾸고의 목소리가 젖어들고 있었다.

 “그건 각오했던 거잖아요. 난 부럽군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이게 진정한 용기가 되나요? 설득도 못하는 바보들이죠.”

 “그리 간단히 설득할 수도 당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아무튼 축하해요.”

 모리무라의 축하한다는 말에 그녀는 씁쓰레한 웃음을 웃어주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시원스레 쏟아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벽루 아래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옆에 흐르는 시냇물 위로 비가 쏟아지며 하얀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플라타너스 잎이 더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머리 위에 빗방울을 털어 내며 후꾸고가 말없이 흐르는 시냇물을 보고 있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실비 되어 해가 다시 떠오르며 무지개가 하늘 높이 걸려 있었다.

 “어머 무지개예요.”

 후꾸고가 곁에 서 있는 그녀에게 환호하며 말했다. 모리무라도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기도 하네요.”

 두 사람은 무지개가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보고 있었다.

 “이젠 나 방을 구하러 다녀야 해요.”

 “방도 구하지도 않고 결혼식부터 했어요?”

 “그렇게 된 걸요. 오수에서 쫓겨나 그 밤에 오갈 데도 없었거든요.”

 “가엾어라. 참 우리 집 맞은편 골목에 방을 세 놓는다고 하던데 가볼래요?”

 “그래요. 가 봐요. 어서.”

 후꾸고가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자 빙그레 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모리무라와 함께 간 그곳은 후꾸고의 마음에 쏙 들었다.

 마음 좋은 노부부가 적적하여 세를 놓아 집은 조용하고 아담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곧 함께 이사할게요.”

 “그렇게 해요. 우리도 적적하지 않아서 좋겠수.”

 할머니가 웃으며 후꾸고의 손을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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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에서 돌아온 동혁은 후구고가 구한 방을 보며 만족해했다. 그와 후꾸고가 노부부에게 인사를 하자 두 사람이 조선인과 일본인임을 알고 당황해했다.

 “가네다입니다.”

 “창씨개명을 했구만요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한번 주기로 한 방이니 내 번복하지는 않겠소만.... 내년엔 다른 방을 구해 보도록 하시오.”

 “예.”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쳐서 그 방을 나오고 말았다. 그날 밤에 동혁은 하숙집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여 이사를 했다.

 신문사에 며칠의 휴가를 얻어서 두 사람은 경성으로 늦은 여행을 떠났다. 두 사람은 아침식사를 하고 창경원으로 가서 여러 가지 동물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연못에서 작은 배를 저으며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앞날에 대하여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처럼만에 평안한 쉼을 만끽하고 싶어서 그날에 충실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가족끼리 나와서 하루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처럼 보이는 몇 쌍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어요. 어디로 갈 거죠? 경성사범 보고 싶어요.”

 후꾸고가 그를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점심식사 하고 갑시다.”

 “그래요.”

 동혁이 노를 저어 선착장에 닿자 기다리던 한 쌍의 젊은이가 노를 저으며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경성사범을 구경하고 나온 두 사람은 해가 기울기 시작한 종로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종로 야시장이 그 때 당시으이 명물임을 동혁은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음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두 사람은 종로 거리로 다시 들어섰다.

 여름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종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왔네요.”

 후꾸고가 곁에 서 있는 동혁에게 속삭였다.

 “유명하거든.”

 두 사람은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좌판 위에 놓인 갖가지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후꾸고가 그의 손을 잡아끈 것은 예쁜 그릇들을 펼쳐놓고 파는 곳이었다.

 “예쁘죠?”

 후꾸고는 아예 쭈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하였다. 모두 두 개씩이었지만 접시는 여유 있게 크기대로 서너 개 더 샀다.

 “너무 많잖소?”

 “이게 많아요? 아주머니 잔도 다섯 개 더 주세요.”

 후꾸고는 잔을 고르고 돈을 지불했다. 아주머니는 그릇이 깨지지않도록 지푸라기를 넣어서 보자기로 잘 싸 줬다.

 후꾸고가 그릇을 받아 들었는데 무거운 듯이 팔을 내렸다.

 “내가 들겠소.”

 “괜찮아요. 나도 들 수 있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동혁이각 보자기를 건제 받아 먼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자 그녀는 웃으며 뒤따라갔다.

 두 사람이 야간열차를 탄 늦은 시각에 서울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 각기 발걸음을 빨리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후꾸고는 그릇을 자신의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선반 위에 놓으면 될 걸 그래요?”

 동혁이가 곁에 앉은 후꾸고에게 말했다.

 “덜컹거리다가 깨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내가 안고 갈래요.”

 후꾸고는 무슨 보물인 양 두 손으로 보자기를 감싸 안았고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기차는 어느새 한강 철교 위를 달리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후꾸고를 휩싸며 지나갔다.

 “강바람이 무척 시원하네요.”

 “기분 좋은 밤인데....”

 그와 그녀가 마주 보며 이야기했다. 동혀그이 눈동자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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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전주 역에 내린 때에는 신새벽을 깨치는 시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목에서 장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집으로 들어와서 여행에 지친 몸을 쉬느라 두 사람은 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혁과 후꾸고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해는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야시장에서 사 온 그릇들을 부엌에서 정리하며 후꾸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일본 된장찌개를 끓이는지 구수한 냄새가 방에 있는 동혁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가 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후꾸고에게 말했다.

 “언제 밥을 먹게 되는 거요?”

 “조금만요.”

 상을 차리며 후꾸고는 수줍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좀 열어줘요.”

 동혁이가 문을 열어보니 후꾸고가 진수성찬을 차린 상을 들고 서 있었다.

 “무겁겠는데? 어서 내려놔요. 내가 들게.”

 그가 상을 들고 들어서자 후꾸고는 문을 닫았다.

 “언제 다 만들었지? 그리고 맛이 일품이고.”

 “정말요?”

 “그럼.”

 두 사람은 마주 바라보며 먹기 시작했다.


 “쪽발이 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 죽여라.”

 군중들의 함성에 쫓기다가 후꾸고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나 좀 살려워요. 날 해치지 말아요.”

 그녀의 입안에서 이 말들은 뱅뱅 돌았지만 끝내는 밖으로 나오진 못하고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동혁이 나타나서 그녀를 두 팔에 안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아악....”

 두 사람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꼭 잡은 두 손을 거의 놓칠 뻔하다가 다시 잡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꿈이었다.

 후꾸고의 외마디에 같이 깨어난 동혁이도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세 시었다. 그녀가 입은 얇은 잠옷까지도 젖어 있었다.

 “무슨 꿈이야? 이 땀 좀봐.”

 “아니에요. 주무세요. 저 째문에....”

 그녀는 세수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우물 속에서 두레박에 건져 올려진 달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두레박으로 별들이 쏟아져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건 그녀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후꾸고는 자꾸 달과 별들을 길어 올렸다.

 마치 그것이 행복을 건져 올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