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2회-제4부 쫓겨나는 두 사람(2)

천마리학 2009. 7. 14. 10:26

 

    12회

제4부 쫓겨나는 두 사람(2)

 

햇살이 눈부신 오후 한나절이었다. 두 사람은 나무 그늘아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바상, 가족들 모두 반대했습니까?”

 “그래요. 동혁씨는요?”

 두 사람의 마주 보는 눈길이 열정적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요. 예상했던 것 아니었소?”

 그에게 대답도 못하고 말없이 그녀는 시선을 운동장으로 던지고 말았다.

 “구월엔 우리 결혼합시다.”

 “....”

 동혁의 결의에 찬 시선을 마주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언제 전주에 다시 가겠소? 함께 가서 인사를 하리다.”

 “환영하지도 않을 텐데.... 공연히 마음만 상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도 부모님을 봐야지요.”

 “방학하는 날 가겠어요. 일직은 그 다음 주부터니까 오시는 날에 내가 전주 역에 나가겠어요.”

 후꾸고가 밝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전주 역이 아니고 다가 공원에서 만납시다. 그 날 열두 시에 만나 같이 식사하고 인사를 드리겠소.”

 “언제 오실 건데요?”

 “토요일에 가겠소.”

 동혁이는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을 하였다.

 한 머리의 매미가 울자 여기저기서 덩달아 울며 나른한 칠월의 운동장을 깨우고 있었다.

 “요란하네요.”

 “음. 이제 들어가지.”

 일어나서 교무실로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가고 파란 하늘엔 한가로이 구름 한 점 떠다니고 있었다.


 후꾸고가 갑자기 부안 소학교로 전근을 받았다.

 두 사람은 닥쳐 올 난관 중에 첫 번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취 집에서 짐을 꾸리며 후꾸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울지 말아. 우리를 갈라놓을 건 아무 것도 없어. 이건 잠깐 동안이야. 올 가을에 결혼할 거잖아?”

 동혁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꼭 안아주었다. 후꾸고는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어떻게 마나죠? 너무 멀어서요.”

 “일요일 첫 기차로 가겠소. 전주에서 기다려 줘.”

 “매주 말에요? 어디서요?”

 “다가 공원에서 열 시에....”

 “그럴게요.”

 두 사람은 그 방을 나서기 전에 긴 입맞춤을 했다.

 

 

 

 

 

 


 그들을 갈라놓았지만 두 사람의 사랑까지도 갈라놓을 순 없었다. 부안과 오수를 잇는 그들의 편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두 사람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다나까의 편지로 동혁은 더 난처한 입장에 처해졌다.

 오수 소학교로 상부에서 내려 온 스즈끼는 그가 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서서 사표를 강요했다.

 “난 사표를 쓸 순 없습니다.”

 “감히 조센징 주제에 지바상을 넘봐. 어서 여기 쓰시오. 파면 당하기 전에.”

 “난 못 씁니다.”

 교장실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감정 싸움은 끝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입장이 난처해진 교장은 동혁을 따로 불러서 사표를 쓰라고 권고했다.

 “난 선생님이 우수하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이 상황에선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는게 좋을 것 같소.”

 “난 교사가 천직이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다시 생각해 봐요. 지바상도 지금쯤 닦달을 당하고 있을 거요. 어쩌면 가네다상이 버티는 동안에 부모님과 함께 센다이로 보낼 궁리를 하는지도 모를 일이고....”

 칠원의 긴긴 해가 지고 어둠이 교정 안에 가득하였을 때 동혁은 사표를 내고 짐을 꾸려 무거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교단을 떠난 그를 보고 남애기 집에서는 더 큰 소동이 일어났다.

 “내가 뭐라드냐? 쪽발이허고 이래도 혼인을 헐 거여?”

 어머니는 그에게 전주에서 여학교를 나왔다는 처자를 이참에 보자고 슬며시 운을 떼었다.

 “아닙니다. 우린 구 월에 결혼하기로 약속했어요.”

 “약속은 무신 놈의 약속여?”

 “인자는 뭐 헐 거냐?”

 담뱃대만 말없이 만지더니 아버지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전주로 가서 일자리를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려. 오수 선상하기도 틀렸당께이..”

 그는 한 달쯤 지나 전주에서 지방 신문의 통신 기자로 근무할 수 있었다.

 후꾸고는 동혁이 사표를 내고 전주에 살자 토요일이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다가공원 아래에 있는 그의 하숙방에 여름방학으로 자주 드나들던 그녀는 어느 날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취재차 무주에 간 그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두 시가 되어서 하숙집에 돌아온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이든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만 보았다.

 “어머 내가 잠들었나 봐요.”

 후꾸고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잠든 모습이 평화로웠어.”

 동혁은 창호지 사이로 흐르는 달빛 속에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다음날 저녁에 전주 집 안방에는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화가 난 다께오가 칼을 높이 빼들고 서 있었다.

 후꾸고의 아버지가 들어서며 아들에게 한마디했다.

 “그 칼 치워라.”

 칼을 꽂으며 서슬이 시퍼런 눈빛을 두 사람에게 주고 그는 나갔다.

 아버지는 다다미가 깔린 방에 앉았다. 두 사람이 일어나 인사를 하고 앉았다.

 “자네가 가네다상인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예전과는 달리 심하게 떨려나오자 후꾸고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얼굴을 들게나.”

 아버지가 고개를 드는 동혁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후꾸고는 일본인도 택할 수 있었네. 그런데 자넬 선택했어. 이제 후꾸고는 우리집안의 딸이 아닐세. 난 찬성을 할 순 없네. 하지만 자넬 우리보다 더 사랑하니까.... 난 후꾸고를 자유롭게 나주겠네. 대신 단 한마디만 묻겠네. 우리 후꾸고를 사랑하는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 떨려 나왔다. 한참 만에야 그가 대답했다.

 “예.”

 “그럼 되었네. 가 보게나. 들어서 알겠지만 우린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네. 이곳을 이젠 떠날 거야.”

 그 말을 마치고 아버지는 열린 문으로 나갔다.

 열린 문으로 어둠이 밀려올 때까지 두 사람은 그냥 앉아 있었다. 동혁은 후꾸고와 함께 전주 집을 나섰다.

 그들이 풍남동 골목길을 돌아설 때 이즈미쨩이 울면서 달려왔다.

 “네쨩.”

 자매는 한참이나 서로 얼싸안고 울어버렸다.

 “이젠 형부라고 부를게요. 우리 네쨩에게 잘 해주세요.”

 “걱정 말아요. 이즈미상.”

 이즈미쨩이 눈물을 닦으며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어둠 속으로 묻힐 때까지 그녀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이 오수 역에 내렸을 때에는 하늘에는 깔아놓은 듯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두 장의 기차표를 동혁이가 내고 그 뒤를 후꾸고가 지나가자 역무원이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두 사람이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남애기로 가는 길을 걸으며 후꾸고는 마음속으로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오까상. 그러나 난 동혁씨를 잃을 순 없었어요. 언젠가 서로 만날 때 환히 웃어요. 모두 다 함께.... 난 모두에게 축복 받고 싶었어요.’

 그녀의 혼잣말이 울음 속에서 잦아들고 말았다.


 

 

 

 

 남애기 집 앞에서 망설이다가 동혁은 후꾸고와 함께 대문을 들어섰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이야기를 하던 가족들이 인기척에 모두 바라다 보았다.

 “누구여?”

 동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접니다.”

 “반공일도 아닌디 웬일이랑가이.”

 어머니가 평상에서 내려와 다가서다가 그만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같이 온 처자는 누구랑가?”

 “지바상입니다. 어머니.”

 “뭣이여? 누구라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나왔다.

 “쪽발이를 데려왔구만이라.”

 “죄송합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냥이구만요이. 환한 대잔에 안 데리고 껌껌한 오밤중에 디리고 온 것 보믄요이.”

 “절 받으십시오.”

 “일없다. 꼴 보기 싫응께 어서 이 집에서 나가더라고. 낳아 준 부모보다 지집년이 더 좋다는 자석 둔 일이 없승께.”

 어머니가 말했다.

 “....”

 그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자 부모님들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두 사람은 절을 하고 이내 남애기 집을 나섰지만 갈 곳이 없었다.

 “어머이. 작은오빠 가지 말라고 붙들어요이.”

 “가라구혀. 천하에 몹쓸 놈여.”

 대문 밖으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나왔지만 동혁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 곁에는 가엽게도 그녀의 집에서도 쫓겨난 후꾸고가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미안해요.”

 “내가 도리어 미안하지. 당신에게 편안한 잠자리 하나 마련하지도 못하고....”

 두 사람은 밤길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어느 산자락 한 모퉁이에 쓰러져 가는 빈 초가를 발견하고 동혁은 근처에 있는 보릿단을 옮겨다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잠에서 깨었을 때에 해는 이미 하늘 높이 떠올라서 팔 월의 쨍쨍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어난 거예요?”

 어느 새 일어났는지 세수를 마친 그녀가 환한 얼굴로 보릿단 곁에 앉았다.

 “이게 무슨 향기로운 냄샌가?”

 “산 냄새죠 뭐. 너무 싱그러워요.”

 “나도 일어나서 세수를 해야지.”

 그가 일어나자 후꾸고는 집 뒤쪽에 흐르는 개울가로 안내했다.

 “무릉도원이 여기 있었군.”

 동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죠? 너무 아름답죠?”

 후꾸고의 목소리가 명랑하게 울려나왔다.

 “그런데 이 집을 두고 왜 떠났을까요?”

 “아마 북간도로 이주해 갔겠지. 여기선 살 수 없었을 테니까.”

 그 말을 하는 동혁의 얼굴이 침을해짐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후꾸고의 손을 잡고 한 바퀴 돌았다. 생나무 울타리가 유난히도 짙은 푸른빛을 띠었고 꽃밭에는 채송화도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아름다웠다.

 우물가에는 물이 퐁퐁 샘솟고 곁에 있는 깨어진 장독대에도 햇살이 부딪쳐 반짝였다. 감나무 가지 위로 고추잠자리가 앉으려다가 바람에 놀라서 날개를 흔들거리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동혁은 그녀와 함께 산에 올라 잘 익은 새까만 산딸기로 요익했다. 두 사람은 그늘진 곳에 누워서 새파란 잎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새로운 생활의 시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린 서로를 선택했어.’

 동혁은 옆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들은 오래도록 누워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 구름들을 좇으며 행복해했다.

 “내가 당신을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아?”

 “아뇨?”

 “당신이 처음 부안 소학교에 와서 영철이 다리에 시퍼런 줄을 친 다음 날인가 과일바구니 하날 들고서 찾아온 날 밤이었지. 그 용기를 사랑하게 된 거요.”

 “그러고요?”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였지.”

 “그랬군요.”

 “그럼 난 왜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아요?”

 후꾸고의 물음에 동혁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게 와서 사과하라고 호통을 칠 때였죠.”

 “난 일본에 다녀와서 당신의 진가를 알 수 있었소. 물론 다른 선생들한테 들은 이야기였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조선의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 난 선택한 거요. 당신을.”

 “우리 전주로 가야 잖아요?”

 “전주로 가기 전에 먼저 결혼식을 올려야지.”

 “어디서요?”

 “물론 여기서지.”

 “....”

 “싫어요?”

 “아니에요. 우리가 아무도 없이 둘이서만 결혼식을 한다는게....”

 “아무도 없긴 저길 봐요. 하늘에서 지저귀는 산새도 있잖소?”

 산새의 지저귐과 숲 속에서는 바람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산을 내려 와서 텅 빈 오두막 집 부엌에서 다 가져가지 못한 그릇 중에서 작은 그릇 하나를 집어들었다. 뒤에 있는 우물가로 가서 그릇을 깨끗이 씻어 후꾸고는 솟아오르는 물을 가득 담았다.

 앞마당에서 두 사람은 보는 이 없이 정화수를 가운데 두고 맞절을 했다. 후꾸고의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는 것을 그는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간단하게 둘 만의 식이 끝나자 그는 후꾸고를 으스러져라 안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나 오수 그 다리까지 걸어가 나란히 섰다.

 “여기 앉읍시다.”

 동혁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먼저 앉자 따라서 그녕도 곁에 앉았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아래를 봐요. 해가 자꾸만 흘러가도 저 시냇물 속에 다시 떠요.”

 “맞소. 우리도 해처럼 밝게 삽시다.”

 “네.”

 “앞으론 이보다 더한 시련이 있을 거요. 내가 지켜 주리다.”

 “고마워요.”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동혁의 귓전을 울렸다.

 ‘불쌍한 사람’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전주로 향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했다.

 차창 밖으로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알몸으로 햇빛을 받아 구리빛이 된 얼굴로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벼이삭이 있는 논은 적막하리만큼 조용하였고 떼지어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떼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전주에 온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거처로 가서 동혁이 새로운 방을 얻을 때까지 따로 생활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후꾸고는 어머니에게 두 사람의 결혼을 알렸다.

 “오까상, 저희 두 사람 어제 결혼했어요.”

 “뭐라고? 너희들끼리?”

 “네.”

 고개를 푹 숙이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말없이 두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그곳에서도 쫓겨난 거구나? 그래도 그가 좋으니?”

 “네.”

 “불쌍한 것.”

 그녀는 측은한 눈빛으로 오래도록 바라보더니 가만히 두 손을 놓고 작은 상자를 가지고 다가왔다.

 “네 결혼에 쓸 돈이었단다.”

 두툼한 봉투를 내밀어 손에 쥐어 주었다.

 “.... 미안해요.”

 “요긴하게 쓰도록 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눈가로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