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1회-제4부 쫓겨나는 두 사람(1)

천마리학 2009. 7. 4. 00:15
 
 

11회  

제4부 쫓겨나는 두 사람(1)

 

 

 소화 19년 그 해 여름도 어김없이 높다란 하늘로부터 오고 있었다. 더운 바람이 불어와 시퍼런 녹색의 논에 출렁거림을 만들었다.

 벼이삭에 앉으려 하는 잠자리들도 놀라서 다시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 버렸다.

 동혁은 잠자리의 반복되는 날갯짓을 바라보며 우리 두 사람도 차라리 잠자리가 되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왜 이러지? 그녀도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는 마찬가진데.... 더 이상 미룰 순 없어.’

 후꾸고와 자신의 연애사건은 다나까가 부안에 사는 그녀 오빠의 부탁으로 들통이 났을 때 두 사람은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전주에 가서 그녀의 가족들과 어려운 결정을 해야함에도 배웅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렇게 못나 보일 수 없었다.

 ‘잘 다녀 와.’

 동혁은 높다란 포플러 그늘에 멈춰 서서 기적 소리를 내며 기차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 비로소 걷기 시작했다.


 전주로 가는 기차에는 모리무라와 후꾸고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았다.

 “지바상, 에이이찌상이 이번 가을에 결혼하자는 데 어떡해요?”

 “모리무라상도 그 분을 사랑하잖아요? 뭘 망설이세요?”

 후꾸고가 부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학교를 하긱 도중에 그만둬야 해서요.”

 “그렇군요. 따로 살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망설ㅇ여지는 거죠 뭐. 봄으로 미루어야 할까 봐요. 지바상은 언제 결혼하나요?”

 의미 있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모리무라가 물었다.

 “오늘 부모님, 오빠와 만나야 해요.”

 “다나까상이 지바상 오빠에게 고자질을 했다는 게 난 믿기지 않아요.”

 “....”

 후꾸고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처음엔 설마 했어요. 지바상이 가네다상과 사랑에 빠지다니? 하고 말예요. 그러나 나도 객관적으로는 사랑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

 “그를 사랑하시죠?”

 후꾸고는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은 각자의 집에 우리들의 결혼을 알리고 또 이해 받으려 해요. 아마 두 집안에서 심한 반대에 부딪치겠죠.”

 “.... 그 용기가 대단해요. 난 포기했을 거예요.”

 “날 이해하려 들지 않을 거예요. 이즈민 이해하겠죠? 어렸을 때부터 내 편만 들었거든요. 하지만 자신이 없어요. 그들은 자존심이 대단한데....”

 “지바상, 부딪쳐 보지도 않고 속단하지 말아요. 의외로 이해할 지바상 편도 있을 거예요. 편이라는 표현이 우습지만요.”

 “자신 없어요. 모리무라상.”

 “그건 가네다상도 마찬가지겠죠. 사랑이란 두 분에게 가족도 버릴 수 있게 만들지도 몰라요.”

 모리무라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보는 후꾸고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창밖으로 맑은 시냇가에서 아이들의 물장구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전주 집에는 부모님과 다께오 내외와 이즈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올케는 쟁반에 잘 익은 수박을 가져왔다. 수박을 먹으며 다께오 오빠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님, 내일 후꾸고쨩의 선을 보려는 사람은 경성제대 졸업반인데 아오야기 상입니다.”

 다께오의 말에 후꾸고는 깜짝 놀라며 들고 있던 수박을 내려놓았다.

 “전 나갈 수 없어요.”

 그녀의 한마디에 그만 모두 놀라서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냐?”

 아버지가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약속한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냐? 누구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었다.

 “네쨩, 누구야?”

 이즈미가 후꾸고에게 다가앉으며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고모가 말하기 난처한가 봐요.”

 “내일이 약속인데 안 나가면 나만 실없는 사람이 되고 우리가 납득할 만한 사람이라면 지금 말해봐.”

 “아버지, 그는 소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는 가네다상인데 조센징....”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뭐, 뭐라고? 너지금 뭐라고 했냐? 조센징이라고?”

 “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가네다상은 동경유학까지 한 인텔리지만 어림없습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난 그와 결혼해야 해요. 난 그를 사랑해요.”

 가족들 모두가 한 대 맞은 얼굴로 일제히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인 후꾸고에게 시선이 박혔다. 그렇게 오래도록 소리 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절 이해해 주세요. 어머니도요.”

 “난 못해! 어떻게 널 키웠는데. 조센징과 결혼하려거든 차라리 이번에 학교 사직서 내라. 아버지와 난 전주 집 다 정리하고 센다이로 가기로 했는데 함께 가자.”

 어머니의 목소리는 울음에 가까웠다.

 “안 돼요, 전 못 가요.”

 후꾸고도 울먹거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네 방으로 건너가거라. 후꾸고쨩.”

 아버지의 목소리에 후꾸고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이즈미쨩도 얼른 뒤따라 나갔다.

 “우선 후꾸고쨩은 부안으로 다시 데리고 갈까 합니다. 아버님도 센다이로 가시니까요.”

 다께오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아버지가 그를 마주보며 대답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 우린 오래 전주에서 살았고 어릴 때부터 후꾸고쨩은 조센징 친구가 유난히 많았어. 그렇다고 누가 신랑 될 사람을 조센징 중에서 고르리라고 꿈엔들 생각했겠니?”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다께오 내외도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후꾸고와 나란히 누운 이즈미쨩이 가만히 어둠 속에서 언니의 손을 잡았다.

 “가네다상이라면 부안에서부터 함께 근무했잖아.”

 “응.”

 이즈미쨩이 그녀의 대답에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안돼. 네쨩은 쫓겨 날거야.”

 “각오하고 있어.”

 “....”

 후꾸고도 일어나서 마주 보았다. 창호지로 바른 문이라 달빛이 희미하게 두 사람의 윤곽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이즈미쨩. 날 이해하니?”

 “못해. 절대로 못해.”

 이즈미쨩의 결연한 목소리였다.

 “사랑은 모두를 버리게도 하나 보지?”

 “난 버리고 싶지 않아. 모두가 축하해 주길 바랄 뿐이야.”

 이즈미는 언니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네다상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네쨩에게 들어 알 수 있어. 하지만.... 조센징에게 뺏길 순 없어.”

 “뺏기는 게 아니야. 우린 서로 선택한 거야. 나를 이해해 줘. 이즈미쨩.”

 후꾸고는 이즈미쨩을 꼭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댔다. 언니가 울고 있음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언니의 눈물을 씻어주며 물었다.

 “가네다상도 그 가족들에게 허락받은 거야?”

 “지금쯤은.... 우린 가을에 결혼하기로 했어.”

 “안 봐도 눈에 선하네 뭐. 그 쪽에선 쪽발이라고 반대하겠지. 피차에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네쨩에게도 좋을 텐데....”

 한숨을 쉬며 그녀가 등을 돌리며 눕자 후꾸고는 창호지문을 응시했다.


 남애기 집 평상 위에는 저녁식사를 끝낸 가족들이 매캐한 모깃불 냄새와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혁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버님, 이번 가을에 결혼을 할까 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동혁의 손을 꼭 잡으며 좋아했다.

 “너 시방 헌 말이 무슨 말이여? 네가 혼인을 한단 말이제.”

 “예.”

 아버지가 물었다.

 “어느 집 규수냐?”

 “저....”

 그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어머니가 채근했다.

 “아, 말을 왜 못 헌당가?”

 “함께 근무하고 있는 지바상이라고 합니다.”

 “혹시 일본인이 아니냐?”

 옆에서 줄곧 듣기만 하던 동수가 물었다.

 “맞습니다.”

 동혁의 대답에 아버지의 벽력 같은 고함이 떨어졌다.

 “네가 제정신이냐? 왜놈의 딸을 데리고 살겠다는 게 뭐여?”

 아무 말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의 어깨 위로 어머니의 탄식 섞인 목소리가 내려꽂히고 있었다.

 

 

 

 

 

 

 

 

 

 

 “이게 무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당가. 그려. 동경 가서 배워왔다는 게 고작 쪽발이 년 데리고 사는 것이여? 이 천하에 쓸개 빠진 놈아.”

 분에 못 이겨서 끝내 울어버리는 어머니를 보고 막내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둘째 오빠, 동네 사람덜이 다 손가락질 헐꺼여, 남애기서 용 났다고 혔는디 이게 뭐여.”

 아버지는 담배만 피우고,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속치마로 훔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려, 나라 잃고 사는 목심여. 누구하고 혼인을 혀? 나라가 마허니께 우리 집안꺼정 망하는갑다. 영감은 왜 애꿎은 담배만 피운당가. 자석 잃것구만.”

 “네가 말여. 끝꺼정 혼인을 헌다명 별수없제. 인연을 끊는 수밖에.”

 “용서하십시오. 아버님. 어머님.!”

 일어나서 동혁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어머니가 달려나가서 붙잡고 들어오며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너도 알거여. 거너편에 참헌 규수가 있는디.... 니헌테 진즉 혼삿말이 들어왔는디 말여.”

 “죄송합니다. 어머님.”

 동혁이가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어미라고 부르지도 말더라고. 부모도 몰라보는 천한에 몹쓸 놈아.”

 어머니가 아예 방에 드러누워 버렸다.

 “너 좋은 규수 마다하고 웬 일본여자여. 창피스런 일여. 어디다 고개를 들고 살 것이냐?”

 “형님, 미안합니다.”

 동혁이가 방문을 나서자 어머니는 다시 돌아누워 탄식했다.

 “어떻게 키운 자석인디....”

 담뱃대를 두드리는 아버지의 손길도 부르르 떨리는 것을 막내가 눈물을 글썽인 채로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