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9회-제3부 벚꽃나무 아래서 (2)

천마리학 2009. 6. 17. 04:46

 9

 

      9회    제3부 벚꽃나무 아래서 (2)

 

두 사람이 시장에 들르자 아낙네들이 서로 눈짓을 하며 그들이 다가오자 인사를 했다.

 “선상님덜이 웬일이데요, 뭘 사러왔당가요.”

 “저 새우 좀 살려구요.”

 “오널은 비싼디요이.”

 하며 경숙 어머니는 좋은 새우로 골라 담으며 말했다.

 “선상님요. 우리 경숙이 공분 잘허남요?”

 “오 학년이 되어서 가네다 선생이 맡았지요. 상급 학교에 보내야 해요.”

 새우를 받고 돈을 건네주며 대답했다.

 “애덜 아버지는 딸덜은 그냥 눈만 뜨면 된다던디요?”

 “그건 옛날말이구요.”

 모리무라가 말했다.

 “예.... 안녕히 가시기라우.”

 “많이 파세요.”

 후꾸고는 모리무라와 약간의 과일과 야채도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놈의 여편네는 쪽발이 선상들만 오믄 그저 ‘예, 예’ 허고 그려. 속도 없강가?”

 “쪽발이덜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랑께. 우리 경숙이가 그러는디 지바 선상은 말여. 조선애들 코도 다 닦아주고 댕긴디야.”

 “그것이 뭐 마음에서 우러나서 허는 것인 줄 알아?”

 “우러나지 않으믄 더러운 코를 왜 닦아주고 댕긴댜. 쪽발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제. 을메나 사람이 좋은지 모른당께.”

 생선에 날아오는 파리들을 쫓으며 경숙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그려도 쪽발이 근성은 있는 것이제.”

 “맞당께. 그건 석칠 어머니 말이 맞어.”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두 사람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우리들은 조샌징관 달라요. 그쵸?”

 모리무라가 말을 하며 후꾸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 일본제국의 일등 국민이란 말이죠?”

 “네.... 그런데 선생님의 거기에 동조할 수 없다는 표정인데요?”

 “....”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모리무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언덕배기에서 길례와 춘미가 무엇인가 열심히 봅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후꾸고의 목소리에 일어나 인사를 하며 두 손 가득 쥔 삐비를 내밀었다.

 “삐비요. 선생님. 우리가 먹는 거예요.”

 “그걸 다 먹어?”

 모리무라가 길례의 손에서 삐비를 하나 뽑아 어떻게 먹는 줄을 모르니 춘미가 얇은 껍질을 벗겨 입 속에 넣었다. 모리무라도 먹다가 이내 얼굴을 찡그리더니 뱉어버렸다.

 “이게 무슨 맛이냐?”

 아이들은 킥킥 웃어버렸다.

 “우린 맛있는디요.”

 두 아이들은 인사를 꾸벅하더니 까르르 웃고 다시 언덕백기로 가서 삐비를 봅기 시작하였다.

 “조선아이들의 간식이에요. 나도 어려서부터 살아 그 맛을 알아요.”

 후꾸고가 말하자 모리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리를 지나 후꾸고의 집에 들어갔다.

 후꾸고는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풍로에 숯을 놓고 불을 지피자 얼마 후에 탁탁하며 숯이 달아올랐다. 후꾸고는 속이 깊숙한 냄비에 기름을 부어 새우를 튀겨내었다. 모리무라도 함께 만들며 즐거워했다.

 “선생님 오셨당가요?”

 부엌 앞에서 주인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선상님 책 가져았당가용. 두례란 년이 아까부텀 지둘리던디....”

 “그만 잊어버렸네요, 곧 가서 가져올게요.”

 “죄송혀서 어쩐디야. 책이 비싸노니께 워디 사달란 대로 살 수가 있어야지요이.”

 “그렇죠 뭐. 참 이거 조금인데 드셔 보세요.”

 후꾸고는 접시에 이제 막 튀겨낸 새우튀김을 건네주었다.

 “아니구만이라. 만날 얻어만 먹으면 쓴당가요이.”

 “저한테도 더 좋은 것 주시잖아요.”

 주인댁의 손을 잡고 들려주며 안채로 갈걸음을 옮기게 했다.

 “참.... 지바상동, 그 비싼 새우를 그렇게 많이 줘 버림 난 뭘 먹죠?”

 모리무라가 웃으며 핀잔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도.... 나중에 또 해줄게요.”

 새우튀김을 다 끝내고 풍로에 숯불은 이미 하얗게 재로 남았다. 두 사람은 학교로 다시 가기로 했다.

 “나 집에 들어갈래요. 지바상.”

 “함께 들어가요. 교무실에서 책 한 권만 가져오면 되는 거니까요.”

 “그럴까요?”

 두 사람은 학교의 작은 물을 슬며시 열어보았다. 이내 소리없이 문은 열렸고 어둔 속에서도 하얗게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고 모리무라는 탄성을 질렀다.

 “저길 봐요. 전 처음 보는 거예요.”

 “아름답군요. 꼭 눈이 오는 것 같죠?”

 두 사람은 벚꽃나무 아래로 달려가서 떨어지는 꽃잎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서 있는데 숙직을 하던 동혁이 학교 주위를 돌아보다가 어둔 속의 두 그림자를 보고 다가왔다.

 “누굽니까? 이 밤중에?”

 “우리예요. 가네다 선생님.”

 후꾸고의 목소리에 동혁이가 다가오던 걸음을 멈춰 섰다.

 “웬일로 다시 학교에 오신 겁니까?”

 “나도 왔어요.”

 모리무라가 대답을 하고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두 사람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례가 책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그만 제가 잊어버렸거든요. 교무실에 가야 하는데 같이 가 줘요.

 “그럽시다.”

 “그동안 나는 그네를 타야겠어요. 낮엔 아이들 볼까봐 못 탔는데 실은 난 그네가 재밌거든요.”

 모리무라는 플라타너스나무 아래에 있는 그네를 타기 위해 걸어갔다.

 “곧 가지고 나올게요.”

 후꾸고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동혁과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교무실로 앞장서 가는 동혁은 그녀가 걷는 곳에 후래쉬를 비쳐주었다.

 문을 열고 후꾸고는 책상 서랍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들고 나왔다.

 “내일 저녁 여덟 시 다리 위에서 기다리겠소.”

 “예.”

 “잠깐....”

 동혁이 어둠 속 복도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모리무라상이 기다려요. 내일 만나요.”

 그녀는 동혁의 팔을 풀고 이내 복도를 걸어나갔고 그는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네 위에 걸터앉아서 모리무라는 자운영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꾸고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지바상이죠? 이제 우리 가요.”

 “그러죠.”

 두 사람이 작은 문을 나서고 동혁은 이내 그 문을 걸어 잠갔다.

 “수고하세요.”

 모리무라가 인사를 하자 동혁이도 조심해서 가라며 돌아섰다.

 “가네다 상에게 뭔가 풍기는 매력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난 에이이찌상이 있지만 지바상은 아직 정해진 상대잔 없죠? 가네다상이 일본인이라면 난 파혼했을 거예요. 트림없이요.”

 “....”

 후꾸고는 모리무라의 말에 아무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예요. 나 들어갈게요.”

 “그렇게 해요. 두레가 기다리니까 그냥 갈게요.”

 후꾸고는 그녀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뒤로 걸어가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가네다상이 일본인이라면 난 파혼했을 거예요.’

 그녀는 모리무라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며 낮은 소리로 웃고 말았다.


 후꾸고는 검정 자오하 한 켤레를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반장의 구령에 인사를 받자 재현에게 아무 말없이 불쑥 장화를 건네 주었다.

 부러움과 시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화를 들고 가는 재현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한 반에 한 켤레씩 배급 나왔는데 재현에게 맞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후꾸고가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현이를 둘러싸고 반아이들이 놀려대고 있었다.

 “얼레꼴레리 재현이는, 재현이는 선생님헌테 이쁨 받아서....”

 재현이가 가운데서 한 손에 장화를 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칠복이가 장화를 낚아채서 논 한가운데로 던져 버리고 달아났다. 그 때에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말했다.

 “이놈들아! 친구를 놀리면 못 써. 어여 집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반아이들이 모두 줄행랑을 쳤다. 재현이는 논으로 들어가 물에 젖어버린 장화를 들고 집으로 달음질쳐 뛰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선상님이 나헌테만 장화를 주셨당께.”

 텃밭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던 어머니가 재현이가 들어 보이는 장화를 보았다.

 “웬 장화란가?”

 “몰러. 한 켤레를 가져오셔서는 나에게 주셨당께.”

 “아이고, 우리 재현이가 공불 잘허니께 이뻐서 주신 거지이. 더 열심히 공부허야 혀. 참 배고프쟈? 그란디 새 장화가 왜 젖었당가?”

 “그렇게 됐당께요이. 나 숙제부터 허고 밥 먹을 거여.”

 장화를 우물가로 들고 가 깨끗이 닦아 마루에 걸쳐놓고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반아이들은 재현이를 더 놀리기 시작했다. 후꾸고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미웁기도 한 것이었다.

 교실로 오던 후꾸고가 복도에서 울상이 된 재현이를 보고 물었다.

 “너 무슨 일이 있었냐? 울상이 돼서 서 있게.”

 “저.... 친구덜이 놀린당께요. 선생님이 나만 이뻐한다고요이.”

 “놀렸던 아이들이 누구야?”

 “은철이랑 영수랑 형석이랑요.”

 “칠복이는? 그렇다고 사내아이가 시무룩해 있으면 어떡해? 어서 들어가자.”

 교실로 들어온 후꾸고는 재현이가 자리에 앉자 네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너희들은 복도에 나가서 손들고 서 있어.”

 칠복이와 세 아이들이 일제히 재현이를 바라보았다.

 “재현이 놀린 적이 있어? 없어?”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복도로 걸어나갔다.

 재현이는 친구들이 한 시간 동안 벌을 받고 있는 동안에 마음이 불안했다. 집으로 갈 때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후꾸고는 재현이와 네 아이들을 데리고 자취집으로 갔다. 아이들과 같이 과자를 먹고 놀면서 기분을 풀어주었다.


 

 

 

 

 

 

 동혁의 모습은 달빛 아래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후꾸고는 종종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늦었나요?”

 “아냐. 어서 갑시다.”

 “어디루요?”

 “심포정에 가 봤소?”

 “그럼요. 그래도 가 보고 싶어요. 밤엔 가 보지 못했거든요.”

 두 사람은 보리밭 사잇길로 접어들자 이제 막 펴기 시작한 이삭을 볼 수 있었다.

 “참 기분 좋은 봄바람이네요.”

 “....”

 동혁이 어둠 속에서 그녀의 옆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

 동혁은 말끝을 흐리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고 심포정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숲 속 산새들이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퍼드득 거리며 날아올랐다.

 “우리가 산새들의 잠을 깨웠군요.”

 후꾸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비탈길을 올라가며 말했다. 동혁이 낮게 웃어 주었다.

 “맞아. 우린 그들의 침입자야.”

 “침입자?”

 후꾸고의 되묻는 말에 그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두 사람은 한참을 올라가 심포정에 다달아 나란히 앉아서 그 작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은 곤한 잠에 빠져 있었고 달빛은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며 있었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일제히 여기저기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가 몹시도 짖네요.”

 “그러게나 말이오. 이 고장의 전설을 들었소?”

 “예, 오수라는 지명도 충직한 개가 주인의 생명을 구해 준 그 전설 때문에 붙여진 거죠?”

 “그렇다오.”

 동혁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후꾸고는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나 때문인가요?”

 “결혼을 하라고 성화시니까 말이요.”

 “....”

 그는 말없이 곁에 있는 후꾸고를 안아주며 긴 입맞춤을 했다.

 “이젠 우리도 결심할 때가 온 거요.”

 “예.”

 그의 팔에 안겨 있는 후꾸고가 떨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내가 항상 당신을 지켜줄 테니까.”

 “....”

 후꾸고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보리밭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후꾸고의 문 앞에는 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가 두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녀가 들어가고 동혁이 발길을 재촉하였을 때 다나까의 모습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조센징인 주제에 일등 국민인 지바상을 넘봐? 어림없지. 다께오상이 왜 내게 이런 일을 시켰는지 이해가 가는구만.'

 동혁의 모습이 사라졌을 때에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남애기로 가면서 동혁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구밖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왜 이리 늦은 거여?”

 “주무시지 않고 또 나와 계셨어요?”

 “잠이 와야제. 늬 형도 요샌 논일로 바쁜디 넌 선상이라고 핵교만 댕겨와 맘대로 하는 것여? 좀 도와야제.”

 “알겠습니다. 어머니. 제가 생각이 모자라서.... 죄송합니다.”

 “에미헌테 죄송헐 일이 아녀. 그러고 너 앞집 할머니가 참한 처자가 있다고 혼인을 허자는디 말여. 늬 생각은 어떠냐이.”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뭣여? 그람 늬 맘에 든 처자가 있단 말여?”

 “예.”

 “진즉 말헐 것이제. 참 잘 되었다이.”

 동혁의 손을 잡으며 어머니는 시냇가로 심겨진 뽕나무 잎이 바람에 건들거리는 하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학비를 내지 못한 반아이들이 있었다. 월급을 타서 후꾸고는 그 아이들의 학비를 내 주었는데 칠복이도 들어 있었다.

 모리무라는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지바상은 왜 돈을 아무렇게나 써요? 조센징아이들한테....”

 “우리반 아이들인걸요. 다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구요.”

 “내가 보기엔 그렇지도 않던데요. 칠복이도 모범생인가요? 아직도 글도 깨우치지 못했잖아요? 코도 줄줄 흐르고.... 또 아이들 코는 왜 닦아주나요?”

 “어려서 잘 못 닦아요.”

 “우리 반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난 닦으라고 주의만 주죠. 손대기 싫거든요. 냄새도 나고.”

 “모리무라상도 잘 하시던걸요 뭐.”

 “아뇨. 어쩔 수 없이 할 때가 있죠.”

 모리무라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동혁이 숙직하던 날에 후꾸고는 새우튀김을 정성껏 만들어 가지고 숙직실로 갔다. 그 방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가네다상 계세요?”

 “누굽니까?”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문을 열고 나왔다.

 “후꾸고예요. 교무실에 읽고 있던 책을 놓고 와서요. 가져갈까 해서 왔어요. 수고스럽지만 문 좀 열어 줄래요?”

 “그러죠. 이게 뭡니까?”

 “새우튀김을 해왔어요. 출출하실 것 같아서.... 아저씨랑 함께 드세요.”

 “이거 원....”

 후꾸고가 내민 보자기를 들고 열린 문으로 아저씨에게 전했다. 그제야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잘 먹것구만이라.”

 “예, 그만 갈게요.”

 “아저씨 교무실 열쇠 좀 줘요. 지바상이 책 가지고 가얀다니까.”

 아저씨가 열쇠를 건네 주자 두 사람은 교무실을 향하여 걸어갔고 그는 보자기를 재빨리 열어서 새우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고것 참 맛있구만이. 지바 선상이 그란디 뭔 일로 가네다 선상헌테 요런 걸 다 맹글어 왔을까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아저씨의 손놀림은 그치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낸다는 건 구실에 지나지 않았고 두 사람은 벚나무 밑으로 걸아갔다.

 하얀 운동장에 달빛이 쏟아지고 벚나무 위로 동혁이 올라갔다.

 “맛이 괜찮은데.... 던질 수도 없이 작은 거니까 어서 올라와요.”

 “전 무서워요.”

 “내가 손을 잡아주지.”

 아래로 내려오다가 멈추며 동혁이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 손을 잡아.”

 “안 돼요.”

 “이 작은 걸 던질 수 없어.”

 후꾸고가 벚나무에 매달려 천천히 올라가 손을 내밀자 그에게 끌어 올려져 가지 위에 앉았다.

 “가지가 부러지지 않을까요?”

 “내가 앉은 가지도 끄떡없는데.... 이제 보니 겁쟁이군.”

 “아닌데. 우리 각자 따 먹기로 해요.”

 “맘대로....”

 서로 각자의 나뭇가지에 매달린 버찌를 따 먹기 시작했다.

 “잘 익어서 맛이 좋아요.”

 “맞아. 밤에 함께 먹는 멋이란 유별나군.”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쉬지 않고 버찌를 따 먹고 있었다.

 “무섭지 않소?”

 “예, 맛 때문에 무서움도 그만 사라졌어요.”

 후꾸고가 웃으며 말을 하자 그도 따라 웃어 주었다.

 “늦었죠? 아저씨가 찾겠어요.”

 “내려갑시다.”

 남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불빛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불났어요. 지서 쪽 같아요.”

 “맞아. 내려갑시다.”

 동혁이 먼저 내려가 무서워하는 후꾸고를 나무 아래서 두 팔로 안아 내려주며 꼭 끌어안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네.”

 동혁이 교문까지 걸어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후꾸고의 뒷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지서 쪽으로 허둥대며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어둠을 일깨우고 있었다.

 동혁이가 숙직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누워 있던 아저씨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왜 웃어요?”

 “선상니묘. 왜 늦으신가 혔더니 버찌자셨지라.”

 그 가 거울 앞으로 다가가서 입을 보니 그 주위가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지바상이랑 따 먹었는데....”

 동혁이가 새우튀김을 보니 서너 개가 남아 있었다.

 “어서 들어요이. 맛이 여간 좋지 않더라. 작년 가실 원족 때도 맛있게 먹었는디....”

 그가 새우튀김을 먹는 것을 보고 아저씨가 하품했다.

 “지서 쪽에서 불이 난 것 같아요.”

 “뭣이라고라? 이 밤중에 뭔 불이랑가요이? 또 시끄럽게 생겼구만이라.”

 아저씨가 졸린지 하품을 하며 돌아 눕자 동혁이도 불을 끄고 누웠다.

 집에 돌아온 후꾸고는 거울을 보다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사랑해.’

 동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저두요.”

 혼자서 큰 소리로 말하고 이내 부엌으로 나가서 칫솔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 마당 가득히 쏟아져 내린 달빛과 동혁의 입맞춤으로 그녀는 잠을 설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