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7회-제2부 에노 공원에서의 약속 (3)

천마리학 2009. 6. 2. 22:17
 
 

    제2부 에노 공원에서의 약속 (7회)

 

 

 

 

동혁은 후꾸고와 함께 오사카조안의 덴슈카큐에 올라가 전망대에서 시내를 바라보았다.

 “꽤 넓죠?”

 그녀가 동혁의 가까이에서 물어왔다.

 “그렇군요.”

 덴슈카쿠 아래 서 있는 벚나무 나뭇잎 위로 햇빛이 쏟아져 내려와 바람에 잎이 흔들릴 때마다 초록빛으로 반사되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 말ㅇ벗이 그렇게 서 있었다.

 뜨거운 여름 날의 오후여서 관람객들은 이미 아래층으로 모두 내려가고 없었다.

 동혁이 곁에 서 있는 후꾸고를 와락 껴안은 건 바로 그 때였다. 예쁘지는 앉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발그레한 빛이 감돌았다.

 “동혁씨, 우리 하늘에 이르는 탑에 가요. 네?”

 “하늘에 이르는 탑? 오사카에 그런 탑이 있습니까?”

 “그럼요. 굉장히 높은 탑이래요.”

 후꾸고는 그의 팔을 풀고 천천히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동혁이도 얼른 그녀의 뒤를 쫓아 내려갔다.

 지상에서 높이가 64미터에 가까운 통천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후꾸고는 그의 팔을 꼭 봍잡았고 그녀는 돌아보는 동혁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얼른 내려가요. 무서워요.”

 후꾸고의 목소리가 떨려나오자 동혁은 엘리베이터로 함께 통천각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무서워요?”

 “동혁 씬요?”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후꾸고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도 약간은....”

 동혁은 자신도 무서웠다며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오사카역에 도착했다.

 후꾸고가 가방에서 고케시를 두 개를 꺼내어 한 개를 동혁에게 내밀었다.

 “우리 지방의 특산물인 고케시를 샀거든요. 다시 만나서 나란히 맞춰 볼 때까지 잘 간직하도록 해요. 네?”

 동혁은 고케시를 내미는 후꾸고의 손을 으스러져라 꼬옥 잡아 주었다. 그녀가 먼저 조선으로 가기 위하여 기차에 올랐다.

 “잘 가요.”

 “네, 건강하시구요.”

 “편지하겠소.”

 “네, 어서 가요. 곧 동경 행 기차도 떠나잖아요.”

 후꾸고를 실은 기차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동혁이도 동경으로 가기 위하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이 떠난 오사카 역에는 더 깊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 해 구월이 다가오고 있었던 어느 날 오후였다. 히구찌와 동혁은 장미다발을 들고 고히데쨩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들의 등하교길에 언제나 흐르던 바이올린을 켜는 주인공이 고히데Wid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그 여자아이는 오까상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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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즐겨 바이올린을 거의 하루 온종일 연습한다는 것을 하숙집 아주머니를 통하여 익히 알고 있었다.

 고히데쨩의 오까상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이내 고히데Wid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고히데쨩, 옆집 대학생들이 찾아왔네.”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고히데쨩은 얼굴을 붉히고 연주하던 것을 멈췄다.

 “들어가세요. 차를 가지고 오겠어요.”

 고히데쨩의 오까상이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하고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고히데쨩, 나는 히구찌이고 이분은 동혁이라고 하지요.”

 “네.”

 고히데쨩이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환하게 웃었는데 덧니가 귀여운 소녀였다.

 “몇 살이니?”

 히구찌가 묻자 고히데Wid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열세 살이에요.”

 “그런데도 바이올린을 켜는 솜씨는 대단하던데요.”

 동혁의 말에 소녀는 덧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방문이 열리고 오까상이 쟁반에 차를 가지고 왔다.

 그때까지 꽃을 들고 있던 히구찌가 고히데쨩 안겨 주었다.

 “고맙습니다. 처음받는 꽃다발이에요.”

 고히데쨩이 장미다발을 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오까상이 웃어주었다.

 “차 들어요.”

 무릎을 꿇은 자세로 오까상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지요.”

 “아뇨. 천만에요. 고히데쨩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를 좋아한답니다. 진즉 오시지 않고요.”

 히구찌와 동혁은 차를 들며 고히데쨩을 바라보았다.

 “고히데쨩, 잘 켜는 곡으로 연주를 해보렴.”

 “네, G선상의 아리아를 켤게요.”

 고히데쨩은 그제야 장미다발을 내려놓고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어놓았다.

 두 사람과 오까상도 바이올린이 연주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히데쨩도 두 눈을 감고는 연주에 몰입했다.

 방안 가득 지선상의 아리아가 출렁거리듯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연주가 끝났지만 바이올린의 현의 떨림이 계속되는 듯했다.

 “고마웠어요. 고히데쨩.”

 히구찌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제가 감사한 걸요. 처음이에요. 제 연주를 들어주신 것 말예요.”

 고히데쨩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동혁이도 히구찌도 박수를 쳤다. 두 사람은 더 듣고 밤이 깊었다며 고히데쨩의 집을 나섰다.

 히구찌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우리 이대로 하숙집으로 들어가긴 뭐한데.... 걸을까?”

 “그러지.”

 두 사람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구월의 밤바람이 두 사람의 어깨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난 고향으로 가기로 했다네.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공무원이 되기로 작정했지.”

 히구찌가 나란히 걷는 동혁의 옆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난 경성에서 신문사 특파원으로 일할 걸세.”

 “그럼 우리 서로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거로군. 그동안 자네와 생활하면서 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네.”

 그의 옆 얼굴을 바라보면서 동혁이 대답했다.

 “나도 히구찌상 같은 일본인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네.”

 “난 아이누인이야. 우리들의 세대가 오면.... 아마 그 때엔 서로를 잘 이해하는 동등한 입장에 서서 함RP 역사의 장을 이어갈 걸세.”

 히구찌가 동혁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면서 힘주어 대답했다.

 “고맙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겠네.”

 “고향집으로 소식 주겠지?”

 “물론이야. 자네도 내게 소식 주게나.”

 두 사람이 걷던 길을 되돌아오며 어깨동무를 했다. 동혁이 올려다본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동경의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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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 17년 9월 30일에 동혁은 일본대학 본과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졸업식장에 소전의 유학생들이 모여서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형수가 동혁의 두 손을 맞잡으며 환히 웃어 주었다.

 “졸업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동혁이 졸업장을 손에 쥐고 그의 손에 잡힌 채 대답했다.

 “친일파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창씨개명은 안 하셨더군요.”

 미옥이가 동혁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며 비꼬는 말투로 말을 건네었다.

 그의 얼굴이 당혹감에 휩싸이자 곁에 있던 응규가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미옥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왜요?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다는 투로군요. 응규 씬.”

 미옥이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다.

 “자자, 이러지들 말고 어디 가서 축하주나 듭시다.”

 형수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꿀 필요를 느꼈는지 제안했다.

 “나 가운을 벗고 오겠소.”

 동혁이 말을 마치고 가운을 벗어 복도를 빠져 나갔다.

 “미옥 씨, 왜 그래? 아직도 동혁 씨에게 마음이 있는 거냐구?”

 응규가 미옥이의 팔을 세게 잡아 흔들었다.

 “아야. 이 팔 좀 놓고 이야기해요. 전혀 마음을 드러내놓지 않는 그가 미웠거든요. 이제 보지 않으니까 속이 시원하겠죠 뭐.”

 “그뿐야? 그에게 지대한 관심이던데....”

 응규는 그녀를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마주보았다. 미옥이도 그를 바라보며 이제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운을 멋은 동혁이 다가와서 기다리던 그들과 함께 정든 교정을 떠나며 다시 뒤돌아보았다.


 “정말 축하합니다. 동혁 씨.”

 모두 잔을 들어 마시기 전에 형수가 말을 건네었다.

 “여러분들께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만족한 웃음을 띠며 잔을 비웠다.

 “동혁 씬 조선에 나가서 언론사에 근무할 예정이라면서요?”

 응규가 그를 보며 이야기를 꺼내었다.

 “특파원자격으로 경성에 있을 것입니다.”

 “소학교 선생은 하지 않을 겁니까?”

 형수가 의외라는 얼굴로 되물었다.

 “우선은요.”

 “가르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여기 저기 취재다니는 것보담요.”

 미옥이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내가 다른 직업도 가질 수 있다는 걸 경험이랄까요? 도전하고 싶습니다. 내 아이들이 그리워질 때 아니 그들이 날 필요로 할 때는 기꺼이 다시 교단에 서야 되겠죠.”

 형수가 동혁의 빈 술잔에 정종을 부었다.

 “그럼 언론사는 일종의 외도임 셈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동혁은 다시 잔을 비우며 대답했다.

 “동혁 씨의 앞길에 행운의 여신이 항상 함께하기를 빕니다.”

 형수가 말을 마치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렇게 동경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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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 역에는 히구찌가 조선으로 가는 동혁을 배웅하고 있었다. 커다란 가방 하나와 작은 가방을 든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났다.

 “자네 얼굴이 빛나는구만.”

 “그래? 자넨 모레에 삿포로로 가겠구만. 부모님들께 안부 전해 드리게.”

 동혁이 히구찌를 마주보며 말했다.

 “전해 드리지. 고향에 가면 우린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

 “응. 편지로 서로 안부를 전해야지. 동경에서 자네와 함께 지낸 시간들을 잊지 못할 걸세.”

 “나도 자네와 같은 조선인을 만나 것에 감사할 뿐이라네. 자넨 정말 다른 조선인관 달라. 내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무튼 그런 마음이라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자 히구찌는 동혁을 와락 껴안았다.

 “잘 가게. 그리고 지바상에게 안부 전하고 내가 조선에 가는 것은 자네 결혼식에 축하해 주기 위해서일거네.”

 “고맙네. 꼭 전하지.”

 동혁이도 큰 가방을 놓고 그의 등을 탁탁 쳐 주었다. 동혁이가 탄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히구찌는 기차를 따라오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가게.”

 “잘 있게나. 도착하면 곧 소식 주겠네.”

 그도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기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하더니 동경역 플랫폼을 빠져 나갔다.

 동혁에게는 또 하나의 삶에 획을 긋는 고국행이었다.

 동경역사 하늘 위로 10월의 맑은 하늘이 그의 앞날을 축하해 주는 듯이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