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5회-우에노공원에서의 약속 (1)

천마리학 2009. 5. 31. 02:20
 
 

     제2부 에노 공원에서의 약속 (1)

 

 

활기 찬 대학교정에서 삼삼오오 학생들이 강의실을 찾아가는 오후였다.

 동혁이도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교정 안에는 짙은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혁이의 어깨를 툭 치며 형수가 말했다.

 “자넬 기다렸다네.”

 “날 왜?”

 “벌써 여름방학이잖나. 헤어지기 전에 함께 저녁이라도 들자는 거지 뭐.”

 “나이도 많고 쑥스러워서.....”

 “아무튼 조선인들은 모두 모이기로 했다네. 학교 앞 음식점일세.”

 “그러지.”

 두 사람은 웃으며 헤어져 각자의 강의실로 걸어갔다.

 강의실 안은 다음 주부터 시작될 시험으로 모두 긴장된 모습이었다. 동혁도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본인인 강의실에서 그는 잘 버텨 내었고 이제 구월에는 졸업식이었다.

 그 식민지시대에 조선인에게 정치를 내어줄 일본인들도 아니었다. 동혁이가 젊은 시절에 왜 정치학과를 선택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기로 남아 있다.

 노 교수의 강의가 끝나고 우르르 더운 강의실을 모두 빠져 나갔다.

 동혁이도 가방을 챙겨 들고 약속된 장소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에 앉아 있던 형수가 손을 들어 알은 체를 했다.

 동혁이가 다가가 앉아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오랜만이군요.”

 미옥이가 반갑다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전혀 반가운 얼굴이 아닌걸요.”

 미옥이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곁에 앉아 있던 웅규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서로 눈인사를 하며 형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조선유학생들은 그 암담한 일제치하에서 만나 자신들의 이상을 펼치곤 하였다.

 “이번 여름방학엔 집에 갑니까?”

 웅규가 동혁에게 물었다.

 “여행을 하려고 생각중이라네.”

 “어딜 가려구요?”

 미옥이가 얼른 동혁을 보며 물었다.

 “여기 저기.... 이젠 구월에 졸업하면 일본에 언제 올는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응, 방랑인이 되는 거로군요. 나도 좀 끼워 줄래요?”

 미옥의의 말에 웅규의 얼굴이 금세 변하였고 형수는 얼른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저, 시험 때문에 미안합니다. 먼저 실례합니다.”

 동혁은 가방을 들고 그들에게 인사한 뒤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미옥 씨, 방학 때에 집에 같이 들르랍니다.”

 웅규가 미옥에게 말을 건네자 그녀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였다.

 “아직은요.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저 김 선생 때문은 아닌 거죠?”

 웅규가 힐문하듯 그녀에게 묻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미옥 씨, 그에겐 조선에서 좋은 사람이 기다려요.”

 “그걸 형수 씨가 어떻게 알아요?”

 미옥이가 대들 듯이 형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 나이에 정해진 사람이 없겠어요? 그리고 그의 신중한 행동으로도 증명되지 않냐구요.”

 그의 대답에 미옥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하숙집을 향하여 동혁응 생각에 잠기며 걷고 있었다.

 언제나 들려오는 바이올린소리가 여전히 골목길을 휩싸 흐르고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듣고 있는 동혁 곁으로 히꾸지가 와서 함께 듣고 그 선율이 끝나자 말했다.

 “이제 갑시다.”

 “그러죠.”

 두 사람은 함께 하숙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금 오세요?”

 “네, 다녀왔습니다.”

 동혁과 히구찌가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김상, 조선에서 편지 왔어요. 책상 위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혁이 빠른 걸음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히구찌도 그 뒤를 따라 들어와 윗옷을 벗어 걸고 밖으로 나갔다.

 후꾸고에게서 온 편지는 간단한 내용으로 이제 곧 방학이니까 센다이시로 가는 길에 동경에 들르겠다는 거소가 우에노 공원에서 만나자는 약속의 편지였다.

 “이제 곧 만나겠구만.”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으며 히구찌가 들어오며 말했다.

 “방학이잖나.”

 동혁이가 대답하였고 편지는 이내 책상 서랍 속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어서 저녁 들어요.”

 아주머니의 말에 동혁은 씻으로 나가고 히구찌는 먼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에노 공원에서 두 사람은 기쁨에 찬 얼굴로 만났다. 작은 가방을 들고 그녀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었다. 예븐 얼굴은 아니었지만 ?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가방을 건네들고 천천히 공원을 걸었다.

 “우리 아이들은 다 잘 있습니까?”

 “네. 영철이는 경기고보를 다니는데 거기서도 성적이 우수하답니다. 가즈오쨩은 서장께서 본국으로 인사발령이 있어서요, 곧 오사카로 부임할 모양이던 걸요.”

 “그렇군요.”

 두 사람은 어느새 시노바즈 연못가를 거닐고 있었다. 한가롭게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모양이 이 세상과는 다른 판이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졸업하시면 조선으로 돌아오실 거죠?”

 후꾸고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동혁을 올려다보았다.

 “돌아가야죠.”

 “다시 교단에 서실 건가요?”

 “잘 모르겠지만 얼론사에 취직이 되어 특파원자격으로 귀국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셨잖아요.”

 동혁은 말없이 웃어주기만 하였고 그녀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리던데 보시죠.”

 “전 과학박물관도 보고 싶어요.”

 “시간도 넉넉한데 천천히 둘러봅시다.”

 두 사람은 먼저 미술관에 들러 개인전을 구경했다. 선생이라는 직업 의식이었는지 두 사람은 열심히 보았고 색채와 선의 처리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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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을 나온 두 사람은 과학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건물은 다섯 개로 나뉘어 있었다.

 “어머, 이것 좀 보세요.”

 후꾸고가 생물의 진화에 관한 것을 보며 그 의 손을 잡아 끌자 자연스럽게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구경했다.

 “진화론에 관심이 많군요.”

 “신기하잖아요? 정말 우리 사람들도 원숭이가 진화되어서일가요?”

 “난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원숭이들 중 어느 것이 사람으로 변했다고 생각합니까?”

 동혁이가 진지한 얼굴로 후꾸고에게 물었다.

 “그건 과학자들이 해명해야 할 것이 아닌가요?”

 “그렇겠지요.”

 두 사람은 과학관을 나와 그늘 진 곳의 긴 의자에 앉았다.

 “우리 조선에서 만나면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소.”

 동혁의 말에 후꾸고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지요? 갑시다. 너무 늦은 점심인가 봅니다.”

 그녀와 나란히 우에노 공원을 나가서 음식점들이 즐비한 거리로 걸어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시정이 넘치는 언덕을 거닐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동경대학이 있어서 많은 대학생들이 그 언덕을 걸어가고 있었다.

 “센다이엔 언제 가죠?”

 “오늘은 이모 댁에서 하루 묵기로 했어요. 내일 아침에 기차로 가야죠. 동혁 씬요?”

 “나도 이번엔 여행을 할까 합니다. 일본에 다시 와서 한가하게 여행을 할 기회는 좀처럼 없을 테니까요.”

 “어디루 가시게요?”

 “후꾸고의 고향도 가보고 싶고 홋카이도에 히구찌상의 집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동경 역에서 다시 만나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후꾸고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무슨 폐가 된다고 그러세요. 긴 여행에 지루하지 않아서 좋죠 뭐.”

 두 사람은 언덕을 걸어가며 내일 오전 열시경까지 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동혁은 피곤한 후꾸고의 얼굴을 보며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겠다고 이모 댁으로 가는 지하철에 함께 탔다.

 “나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다니까요.”

 후꾸고가 굳이 따라나서는 동혁에게 말을 하였지만 그는 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