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2회-제1부 비어있는 자리 (2회)

천마리학 2009. 5. 26. 09:06
 

 

 

  제1부 비어있는 자리 (2)

 

 

 

벚꽃이 환하게 핀 소학교 운동장에서 지바 후꾸고는 조선인 김동혁 선생을 처음 보았다.

 아침 조회 때에 이시하라 교장은 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단에 서게 된 여선생 지바 후꾸고를 소개하였다. 뒤이어 후꾸고가 단 위에 올랐다.

 “만나서 기뻐요. 서로 도와주며 공부하기로 해요.”

 간단한 인사말을 마치고 내려가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동혁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갑자기 조용해지고 그의 구령에 맞춰서 아이들은 교실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텅 비인 운동장 파란 하늘가에는 하얀 구름.

 교무실에서 출석불를 챙기며 오노는 후꾸고에게 같이 나가자고 말했다.

 “난 삼학년인데 지바상은 사학년 담임이세요? 바로 옆 교실이네요.”

 “그래요. 난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 달려갈게요.”

 오노는 언제든 오라고 하면서 둘은 나란히 교무실을 나갔다. 뒤이어 동혁도 출석부를 들고 나갔다.

 “땡땡땡.”

 종소리가 교정에 울리자 그 소란스러움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러나 사학년 교실에서는 한 일본인 학생이 자리로 가던 영철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면서 손등으로 쓰윽 문지르자 이내 새빨간 코피가 묻어 나왔다. 몇 명의 일본아이들이 웃고 있었고 조선아이들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두 손을 불끈 쥔 영철이가 그대로 가즈오의 턱을 내리치자 싸움은 치열해졌다. 빙 둘러선 아이들은 겁먹은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후꾸꼬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드르륵 들리자 빠른 걸음으로 제자리로 가서 앉았다. 두 아이는 엉망이 된 얼굴로 그대로 서 있었다.

 “제자리로 가서 앉아.”

 후꾸고는 두 아이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뒤에 천천히 교실을 둘러 보았다. 모두들 시선을 모으고 후꾸고를 바라보았다.

 “반장, 일어나서 인사하자.”

 가즈오가 일어나서 구령을 하자 인사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맑았다.

 “반장도 싸우나? 반장은 그대로 서 있고 같이 싸운 너도 일어나.”

 영철이가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너희는 복도에 나가서 손들고 꿇어 앉아.”

 둘이 나가고 수업은 후꾸고의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다. 옷 차림을 보니 일본인 아이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아디들이 조선인이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복도를 지나가는 아이들이 벌을 서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면서 쑥덕거리며 쿡쿡 웃었다.

 둘이 마주보는 눈빛에 증오가 가득 찼다.

 교실문을 열고 후꾸고가 그만 들어오라고 말하자 두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와 말없이 서 있다.

 후꾸고는 두 아이에게 서로의 손을 잡게 한 후 따라서 말하라고 하였다.

 “우린 싸움을 하지 않는다.”

 후꾸고가 먼저 말하자 모기만한 소리가 나왔다.

 두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어 주었다.

 “너희들 아까 싸운 힘은 어디로 도망간 거야? 목소리가 너무 작잖아?”

 후꾸고의 웃음 띤 얼굴을 보자 영철이가 먼저 큰 소리로 복창하였다. 가즈오도 질세라 따라했다.

 “우리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이젠 자리로 가서 앉아. 공부해야지.”


 

 

 교무실에서 바라다보이는 운동장에는 벚꽃이 눈송이처럼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이 동혁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운동을 잘 하네요.”

 후꾸고의 시선을 따라서 보던 오노가 웃으며 대답했다.

 “김 선생님요? 경성사범 시절엔 럭비선수였대요. 조센징이지만 실력은 알아줘야 해요.”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결혼은 했겠군요.?

 눈을 반짝이며 후꾸고가 묻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결혼요? 아직이에요. 내년엔 동경으로 유학 간다고 공부도 열심히하는 걸요. 뭐든 최선을 다하는 점은 높이 살 만하죠.”

 “네, 그렇군요.”

 “아침에 당황했죠? 아마.... 영철이하고 가즈오가 싸운 것 같던데.”

 오노가 묻자 후꾸고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대답했다.

 “어떻게 아세요? 둘이 꽤나 말썽꾸러긴가 보죠?”

 “뭐라고 말해야 적절할까요? 음.... 영원한 맞수랄까 뭐 그런 거예요. 작년엔 내가 담임이었는데 영철이가 많이 참는 편이구요. 가즈오는 서장아들이라서....”

 후꾸고의 얼굴에 잠시 근심어린 빛이 서렸지만 금세 밝은 표정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사랑으로 대하면 문제는 없겠죠, 뭐.”

 교무실을 열며 모리아끼가 출석부를 들고 들어왔다. 오노를 보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후꾸고는 생각했다.

 직원종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조용한 소학교를 깨웠다. 아이들과 축구를 하던 동혁도 공을 한 손에 들고서 아이들과 손을 흔들고 교무실로 들어왔다.

 “또 축구야?”

 모리아끼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후꾸고의 귓가에서 맴돌았다.


 이시하라 교장의 훈시가 있었다. 새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아이들 개개인을 잘 파악해서 공부도 가르치고 서로 융합하여 좋은 분위기 속에서 올 한 해를 보내자는 말이었다.

 직원종례를 마치고 이시하라 교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후꾸꼬의 맞은편 자리가 동혁의 자리였다. 책상을 정리하던 그와 눈이 서로 마주쳤다.

 “아이들 가르쳐 보니 어떻습니까?”

 “저.... 아직은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동혁의 물음에 후꾸고는 수줍어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엔 다 그렇죠. 나도 그랬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다정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후꾸고가 퇴근 준비를 하고 일어나자 오노도 덩달아 일어났다.

 “지바상은 집이 어디죠? 함께 가요.”

 “오빠네예요.”

 “어딘데요?”

 “서림공원 아랜데요. 오노상은요?”

 “동중리예요. 자췰하거든요.”

 후꾸고와 함께 오노가 교무실을 나갔다.

 저만치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모리아끼가 뛰어와 오노에게 목례를 하며 이야기하였다.

 후꾸고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인사를 하고 걸었다. 오노가 잰 걸음으로 따라와서 함께 걸어갔다.

 동혁은 아직도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젠 집으로 돌아가라며 교문을 나섰다.


 

 

 

 영철네 마당에는 개나리와 목련이 어우러져 피어 있었다. 그리고 뾰쪽한 연푸른 새싹들이 꽃밭에 가득했다. 잘 가꾸어진 정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퇴근하여 들어오던 동혁은 한복을 곱게 입은 영옥과 영철이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영옥은 다소곳이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지금 오세요.”

 “예.”

 동혁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영옥은 다시 영철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후에 동혁이 영철이를 불렀다.

 “너 가즈오랑 또 싸웠다면서?”

 “녀석이 먼저 발을 걸어서 말예요. 참을려고 했는데 그만 화가 나서요.”

 “그래. 너 앉아봐. 네가 걸어가는데 앞에 똥이 있다고 치자. 밟고 가겠냐? 아님 피해 가겠냐?”

 동혁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멍하고 있던 영철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피하죠. 왜 신을 더럽혀요.”

 “맞아, 그거야. 내 말 알아들었지?”

 그가 영철이의 등을 두들겨 주며 빙그레 웃었다.

 “지바 선생님은 우리 둘에게 같이 복도에서 두 손을 들고 벌을 서게 했어요. 한 시간이 지나 들어오라고 했어요. 가즈오랑 둘이 손을 맞잡게 했죠. 그리고 ‘우린 싸움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따라서 하라고 하여 둘이 따라 했구요.”

 “그랬어? 좋은 선생인가 보다.”

 “일본인인 걸요.”

 동혁은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영철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일본인이라고 다 나쁘겠냐? 좋은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럴까요? 선생님. 우리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붙잡아 가려고 우리 집 둘레에서 지키는 형사들과는 다른 사람일까요?”

 아버지를 걱정하는 영철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동혁은 영철이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기모노를 입은 후꾸고가 책을 읽고 있었다. 문밖에서 걸음이 멈추는 소리가 나더니 올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하세요.”

 “네, 금방 갈게요.”

 읽던 책을 덮고 방문을 열고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오빠와 올케가 들어오는 그녀를 웃으며 맞았다.

 “어서 와. 처음 교단에 서니 어때?”

 다께오가 묻자 생각난 듯이 대답했다.

 “첫날부터 당황했는 걸요.”

 “무슨 일이 있었구나?”

 “가즈오라는 아이와 영철이라는 아이가 싸웠거든요. 둘 다 벌을 주었죠 뭐.”

 다께오가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결국 터뜨렸다.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벌을 주었다고?”

 “뭐가 우스워요? 오빤....”

 다께오가 웃는 것이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가 물었다.

 “가즈오는 서장 아들이야.”

 “서장 아들이면 벌도 못 줘요? 교육이란 모두에게 똑같은 형태로 나타나야 된다고 봐요. 그렇지 않아요?”

 반문을 하는 그녀의 얼굴이 진지해 보였다. 그제야 다께오도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물론 이론상으로야 그렇지. 그러나 세상은 그렇다곤 볼 수 없지.”

 “왜요?”

 올케가 음식이 식는다고 채근했다.

 “오빠, 가즈오가 서장아들인 거 어떻게 알아요?”

 “이 시골에서 누가 그걸 모르냐? 난 군청에서 근무하고 경철선 바로 담 하나 사이잖아?”

 “네.”

 후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철이네 마당에 고요함이 내려앉은 깊은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 이 서방이 조심스럽게 할아버지 방 앞으로 걸어갔다. 그 방안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 앞의 인기척에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밖에 누군가?”

 “저 손님이 오셨구만이라.”

 이 서방의 조심스러운 말씨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이 밤중에 웬 손님이?”

 “서방님께서 보내셨다는디요이.”

 “어서 뫼시지 않고....”

 이 서방이 문을 열면서 이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보이고 손님이 들어섰다.

 보따리장수 차림의 젊은이가 방안에 들어서자 할아버지의 형형한 눈빛과 마주쳤다.

 손짓으로 앉으라고 하자 이내 보따리를 풀어놓고는 넙죽 절을 하였다.

 “어서 앉게나. 우리 영철아범은 잘 있능가?”

 “d{, 여기 서찰이 있습니다.”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정중하게 두 손으로 건네었다. 아들의 편지를 읽는 할아버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오느라 수고했소. 정말 장하구만.”

 편지를 다 읽고 난 후에 할아버지는 옻칠이 잘된 작은 궤짝을 꺼내어 가져왔다.

 “누군들 고생이 안 되랴만 남의 땅에서 수고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싶네.”

 지폐를 꺼내어 잘 싸서 건네자 할아버지의 두 손을 꼭 쥔 젊은 손님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김 동지에게 잘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녁이나 들었는지 모르겠구만.”

 “오면서 들었습니다. 그럼, 내일은 아침 일찍 길을 떠나야겠기에 지금 인사드립니다.”

 젊은이가 일어나서 큰 절을 하고 조용하게 문을 열고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던 이 서방이 앞장서서 그를 안내했다. 사랑채 방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시골집은 어둠과 적막에 휩싸였다. 그 어둠 속에서 이 집안의 동태를 살피던 한 그림자는 골목길을 나서며 다시 뒤돌아보았다.

 다음날 신새벽에 그 젊은 손님은 아무도 모르게 이 서방의 안내로 집을 떠났다. 토방 아래도 아침을 짓는 연기가 맑게 깔리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서너 마리 까치가 높은 감나무 가지 위에서 울고 있었다.


 

 

 

 

 흰눈처럼 벚꽃잎이 쏟아져 내리는 소학교 운동장 가득히 풍금소리에 맞춰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후꾸고의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기모노를 입은 어머니와 조선옷을 입은 어머니가 그려지고 있었다. 후꾸고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책상 사이를 걸어다녔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지적을 하기도 하고 잘 그렸다고 칭찬도 했다. 후꾸고는 아이들이 다 가고 난 후에 잘 그려진 그림들을 가지고 뒤 게시판으로 갔다.

 그녀가 그림을 붙이고 있는데 교실문 여는 소리가 들리며 모리아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그림인가 봅니다. 조센징의 그림도 있군요.”

 “잘 그린 그림인 걸요. 그림에서도 차별을 둬야 하나요?”

 후꾸고가 물으며 고개를 돌리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지바선생은 사무라이 집안이라면서 대일본제국의 딸이라는 게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조선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거 진심인가요? 아님 뭔가요?”

 모리아끼가 빤히 마주보며 후꾸고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리아끼상, 난 아버지께서 전주에서 사업을 하시기 때문에 비교적 일찍 조선에 왔어요. 고향은 센다이지만 난 전주가 고향 같아요. 어려서 조선에 왔기 때문일 거예요. 난 조센징 친구도 많아요. 모리아끼상은 조선에 있는 것조차도 부끄러운 건 아니세요?”

 후꾸고의 역습에 그는 멍하게 바라보다가 대구했다.

 “부끄럽기보다 난 내 고향으로 가고 싶은 겁니다.”

 직원종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같이 나가죠.”

 후꾸고는 모리아끼의 말에 붙여진 그림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나서야 교실물을 닫았다. 두 사람은 오후의 햇살이 긴 그림자를 남기는 복도를 걸어갔다.

 교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가즈오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잰 걸음으로 조선의 어머니가 그려진 그림들을 검정칠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