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지바후꾸꼬-1회

천마리학 2009. 5. 24. 05:03
 
    <소설>  

              나의 어머니 지바 후꾸꼬 

                                       김       한      나

 

 

제1부 비어있는 자리 (1)

 

 김씨 선산으로 가는 장례행렬은 기게 이어지는 만장과 구슬프게 울리는 요령소리로 앞장섰다.

 상여 뒤를 따르는 세 아들과 두 명의 사위와 손자들은 고개를 떨구며 말없이 걷고 있었다. 후꾸고와 동수 처와 동철 처, 그리고 두 딸은 노재를 지내고 멀어져 가는 상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관을 마치고 흙을 관 위에 삽으로 떠서 뿌릴 때 동혁은 그 자리에 고꾸라지듯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막내사위가 와서 그를 조용히 일으켜 부축하는데 동혁의 눈물은 어쩌지 못하였다.

 상인들이 산을 내려가고 만장이 불살라지고 그 뽀얀 연기는 산을 휘감아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대문 밖에는 생전에 할아버지가 입었던 옷들이 불살라지고 막내딸의 울음소리가 애처로왔다.


 몸져누운 할머니 곁에 아랫동네에 사는 고모가 와서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성님요. 오라버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은요이 방을 잘못 들여서 라능구만요이.”

 “뭣여. 그게 무신 소리여?”

 할머니가 손을 뿌리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 그 뭐 쪽발이며느리 방 준다고 올봄에 콩밭 팔아서 헛간 옆에 방들였잖아요이.:

 “그랬을까이.”

 할머니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하자 임실에서 온 막내딸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이고 . 콩밭꺼정 팔아갔고이.”

 “웬수여. 그 년이 웬수랑께.”

 할머니는 고모의 손을 맞잡고 또 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삼우제를 다 지내고 하나 둘씩 친척들은 떠나갔고 남원에 사는 큰 딸과 임실에서 온 막내딸이 대문 밖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상이 많것네이.”

 큰딸이 후꾸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에요, 형님.”

 “나도 알고 있구만이. 그려도 참고 지둘리면 좋은 날이 올 거여. 동상.”

 “잘덜있더라고이. 영준어메도 영희어메도 참 고상 많았서이.”

 “고모부님덜이 지둘리는구만이라. 어서 가보셔요이.”

 그들은 벌써 고샅길을 벗어나 하얀 신작로를 세 아들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성, 빨리 가잖께.”

 “그랴.”

 큰딸은 막내딸의 재촉에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명절이나 쇠고 한번 댕기러 오것네이.”

 “예.”

 

 


 두 사람이 골목길로 돌아가 모습이 보이지 않자 후꾸고와 동수 처와 동철 처도 문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님이 통 못 잡수시니께 들깨를 갈아 톱톱허니 끓여 드리세나.”

 동수 처의 말에 후꾸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누가 들깨죽을 쑤어 오라했냐이.”

 할머니의 째진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 늬년 때문여. 늬가 이 집안에 들어온 뒤로 더 망조가 들었당께. 그라고이 시아버지꺼정 잡아먹었잖여.”

 할머니의 그 말에 후꾸고는 그만 밖으로 뛰쳐나왔다. 부엌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동수 처가 우르르 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머님, 명수 어머니가 어쨌다고 이러신데요이.”

 “너는 또 뭣여? 같은 며느리라고 편드는 것이냐 시방.”

 할머니의 눈에는 노기가 시퍼렇게 번득이고 있었다.

 “다 똑같은 년들이랑께. 시아버지 돌아가신 것은 안중에도 없고.... 내가 저년헌테 헌 그 말이 그러코롬 맴에 걸리더냐?”

 “어머님, 돌아가실려니까 그리 된 것이지요이. 명수 어머니도 맴에 한이 많이 쌓였을 구만요이.”

 “요것덜이 시아버지 없다고 날 우습게.... 아이고 아이고. 영감, 영감.”


 할머니의 큰 울음소리가 생나무 울타리를 넘어 고샅길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동수 처가 나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후꾸고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제야 그녀는 주저앉아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동수 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다가 그대로 방을 나왔다.

 그날 밤 동혁이도 그림처럼 앉아 울고 있는 후꾸고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개학을 앞두고 동혁은 혼자 전주로 왔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걸레를 들고 방문을 두드렸다.

 “선상님요. 어저께 닦았는디 그래도 훔쳐야 쓰것구만이라.”

 “예.”

 그가 가방을 놓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미옥이 다알리아 몇 송이를 안고 찾아왔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얼른 자리를 뜨고 나갔다.

 “혹시나 해서 왔는데 오셨군요. 나 보고 싶었죠?”

 “어떻게 왔소?”

 “무슨 대답이 그래요. 한 달 만에 만나서 겨우 그거예요?”

 빈 꽃병에 다알리아를 꽃으며 미옥이 대답하였다.

 “내가 차 선생에게 뭘 어쨌길래 이러냐 말요.”

 “어쩌긴요. 내가 좋아 그러는 건데요. 상을 당하셨군요.”

 “아버님이 돌아가셨소. 나 쉬고 싶으니까 돌아가시오.”

 “난 안 갈래요.”

 동혁은 목에 매달리는 미옥을 뿌리치며 그냥 방을 뛰쳐나갔다.

 “난 선생님을 구속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세요?”

 그의 등뒤로 미옥의 말이 귓전을 때렸다.


 

 

 

 할머니는 후꾸고의 방을 곡괭이로 부수고 있었다. 마당에서 놀던 명수가 할머니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할매, 할매. 그러지 마. 우리가 사는 방이잖여.”

 “너거들은 인자 나가서 살아. 알겄냐이?”

 “우리보고 워디 가서 살라고요이. 어머이, 어머이.”

 명수는 논으로 일 나간 후꾸고를 부르며 대문을 나섰고 할머니는 힘없이 부숴진 문짝을 팽개치고 흙벽을 찍기 시작하였다. 생나무 울타리 너머로 순덕 어머니가 눈시울을 붉히며 보고 있었다.


 “어머이, 어머이.”

 명수는 저 멀리 명선이를 업고 물꼬를 바라보며 있는 후꾸고에게 숨이 턱에 차게 뛰어갔다.

 “무슨 일이냐?”

 “할매가 우리 방을 부수고 있당께요이.”

 “....”

 후꾸고는 와락 명수를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어서 가서 할매를 말려야 허는디.”

 “그냥 여기 앉자.”

 “왜요? 어서가. 어서 가.”

 명수는 후꾸고의 손을 뿌리치며 달려갔고 그녀는 멍하니 논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럴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사에 만족하지 못한 시어머니의 따가운 시선이 늘 그녀를 따라다녔다.


 시장에 다녀오던 동수 처와 동철 처는 부숴진 방을 보며 그만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어메나, 성님. 이게 뭐란가요이.”

 “동상이 알고 있을랑가 모르것네이.”

 이때에 명수가 울면서 들어오는 것을 보며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명수야, 어머닌 워디 있냐이? 알고는 있냐?”

 명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이층장에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명수가 가방을 낑낑대며 들어올리자 동철 처가 들어와 아랫마루로 옮겨 놓았다.

 부엌에서 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여왔다.

 “아이고 이제사 마음이 시원허구만. 언제꺼정 이 집에 붙어살려고 했당가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새어나오자 명수가 돌을 부엌문을 향해 던지며 소리쳤다.

 “할매, 인자는 다시 안 올거여요.”

 명수는 그 말을 하고 울면서 대문을 뛰쳐나갔다. 급하게 물소리가 들려오고 문을 열고 할머니가 화난 얼굴로 나왔다. 마당에 서 있는 며느리들을 보자 그만 머쓱해져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머님이 기어이 일을 맹그셨네이.”

 

명수는 산 아래 오두막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올봄에 혼자 살던 할머니가 죽은 후에 아무도 살지 않던 집이었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시퍼렁 탱자를 달고 푸른 잎은 윤기가 반지르를 흐르고 있었다. 그 마루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였고 방문을 여니 빈 방에 신문지로 바른 벽이 뜯겨져 있었고 방바닥은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에이. 냄새가 나네.”

 명수는 방문을 열어젖히고 반대편 쪽문도 열어젖혔다. 맞바람이 치니 곰팡이 냄새가 가시는 듯하였다.

 “이제 우리집이야. 내가 얼른 치워야지.”

 명수는 밖으로 나와 한쪽에 있는 싸리비로 방안을 쓸고 있는데 순덕어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주머니.”

 “그래. 명수가 더 먼저 왔구만이. 나가 치울라니께. 너는 어머니 모시고 오너라이.”

 “예.”

 명수는 후꾸고가 앉아 있는 논둑길로 이제는 환한 얼굴로 달려가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명호도 명자도 그녀 곁에 앉아서 방아깨비로 방아를 찧고 있었다.

 “어머이, 순덕 아주머니가 집을 치우고 있당께요.”

 “무슨 집을?”

 “산 아래 오두막집이랑께요이.”

 “응.... 고맙구나. 너희들은 가서 도와드려라. 어머니는 물꼬 막은 뒤에 천천히 갈게.”

 명수는 명호와 함께 신이 나서 논둑길로 달려갔고 명자는 오빠가 주고 간 방아깨비를 가지고 명선이 눈앞에 보이며 방아를 찧었다. 영문도 모른 채 명선이가 까르르 까르르 웃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후꾸고는 명자와 함께 산 아래 집으로 먼저 가 보았다. 순덕 어머니는 아직도 부엌에서 가마솥을 씻고 있었다.

 “수고하시네요.”

 후꾸고가 들어서며 말하자 일하던 순덕 어머니는 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선상님이 고상이지라우. 다 봤고만이라. 할머니가 심도 쎄지. 곡괭이를 들고 다 부셔버리드랑께요.”

 “내가 부족해서지요 뭐.”

 “아이고 무신 말씀이랑가요이. 선상님이 지금 일본에 사신다면 이런 고상은 허지도 않을 것이요.”

 순덕 어머니는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하였다. 후꾸고는 방안을 들여다보며 네 아이와 함께 쓰기에는 조금 비좁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머이, 우리 짐 가지러 가요이. 내가 가방을 드니까 작은어머니가 들어서 아랫마루에 놓았고 나머지는 모른당께.”

 “그래, 가 보자.”

 후꾸고는 순덕 어머니와 네 아이와 함께 집으로 향하였고 고샅길로 들어서자 순덕 아버지를 부르려 간다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평상 위에는 할머니와 동수 처와 동철 처와 조카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후꾸고가 들어서자 할머니는 수저를 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수 처와 동철 처가 미안해하며 일어섰다.

 “성님헌티 영희를 보냈등만 안 계신다고 혀서....”

 “저 산 아래 오두막에 가 봤어. 명수가 거길 생각했구만.”

 땀에 등이 흠뻑 배인 후꾸고의 후줄근한 모습을 보며 동수 처가 말하였다.

 “마음이라도 편해야제. 잘 생각혔네이. 산 입에 거미줄 치것능가?”

 “....”

 후꾸고는 부서진 방에 먼지를 뒤집어쓴 이층장을 바라보며 흙벽돌을 한 곳으로 쌓으며 치웠다.

 “밥이라도 먹고 허제. 너그덜 배 고프냐? 큰어메가 가져올팅게.”

 “안 먹어요.”

 명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부엌으로 가려던 동수 처가 그만 우뚝 섰다.

 “형, 나는 배 고프다. 여그서 먹자이.”

 “안 돼. 다시는 할매집에서 밥 안 먹는다이. 어서 우리 집으로 가자이.”

 명호의 말에 명수가 큰 소리로 말하며 동생의 손을 잡고 할머니 집을 나서고 있었다. 할머니는 문에 달린 작은 유리문으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덕 아버지가 와서 이층장을 꺼내고 후꾸고는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 지게로 짐을 옮겼다. 가방을 들고 후꾸고는 할머니 방을 향해 인사를 하고 명자의 손을 잡고 대문을 나섰다. 두 동서도 조카들도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등뒤로 노을이 긴 주황빛을 하늘에 칠하고 있었다.

 

 

 


 “자네 정말 차미옥과는 아무 관계가 아니랑 말이지?”

 사범학교 동창인 한 장학사와 술을 마시는 동혁은 그의 질문에 화를 버럭 내었다.

 “자네까지 날 의심하는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소문이 하도 이상해서 말일세.”

 “나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난 그럴 수 없었네.”

 “그럼 됐어. 자네도 차미옥도 다치지 않게 처리하겠네.”

 “....”

 동혁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인사이동 때에 서로 다른 학교로 발령을 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맙네. 술이나 드세. 청년시절에 그 막힌 벽을 뚫으러 럭비공으로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것을 냅다 던지곤 했네.”

 “그래. 그랬지. 사범학교 운동장에서 늦은 시각에도 달리던 자네의 기억은 내 오래 간직하겠네.”

 두 사람은 밤이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혁 씨.”

 후꾸고는 그 오두막의 작은 마당에 나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나 동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나 늘 곁에 있을 거라는 그의 말은 이미 오 년 전에 거짓말이 되어 그녀 곁을 맴돌다 가버렸다. 후꾸고는 토방에 주저앉아 동혁을 처음 만난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