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4회-제1부 비어있는 자리 (4)

천마리학 2009. 5. 29. 06:17
 
 

   제1부 비어있는 자리 (4)

 

 

 사학년 교실 안은 여느때와 같이 활기에 차 있었다. 영철이가 절룩이며 교실로 들어서자 가즈오는 시선을 빨리 다른 곳으로 돌렸다.

 친구들이 우르르 다가가 자리에 앉은 영철이를 둘러섰다.

 시작 종이 울리고 떠들썩하던 교실은 후꾸고가 출석부를 들고 들어서자 금세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교탁 위에 출석부를 놓고 후꾸고는 영철이와 눈이 마주치자 웃어주었다.

 “오늘은 빈 자리가 없구나. 출석 부를 필요가 없겠네.”

 “예.”

 모두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철이 일어나라. 여러분, 선생님은 어제 누가 그림을 망쳐 놓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나는 그 사람도 지금 함께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꾸고는 말을 마치고 기다렸다.

 천천히 가즈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일어나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가서 꽂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래요. 그림을 망쳐 놓는 수치스런 일을 해선 안 돼요. 용기 있게 일어선 가즈오쨩도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하겠고 대신 맞은 영철이도 기분이 좋아졌겠죠? 둘 다 앉아요. 내가 여러분에게 사과할 일이 남아 있어요.”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동자들이 그녀에게 향했다.

 “선생님이 성급하게 상황을 잘못 판단한 점 사과드립니다. 영철이가 일어나자마자 때린 것 말예요. 미안해요. 다음부터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하겠어요.”

 “예.”

 아이들이 모두들 환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그렇게 밝은 분위기 속에서 공부는 시작되었다.

 모두 돌아간 후에 후꾸고는 다시 그림을 붙이고 있었다. 조용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기모노를 입은 그녀는 가즈오쨩의 어머니임을 알 수 있었다. 후꾸고는 교실문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그림을 붙이시는 중에 제가 방핼했군요.”

 “아니에요. 이렇게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가즈오쨩이 뭘 잘못했지요?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말썽꾸러기가 되었네요.”

 “반장이구요. 통솔력도 있는데.... 민족감정이 작용하나 봐요. 그제 그림들을 망쳐 놓았거든요. 조선어머니들의 얼굴을 검정 크레용으로 뭉갰더군요.”

 “네?”

 가즈오쨩의 어머니의 얼굴이 변하더니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림들을요?”

 “네.”

 “죄송합니다. 단단히 혼내 주어야겠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가즈오쨩이 일어나지 않아 영철이가 대신 맞았어요.”

 “영철이라면 저번에 싸웠던 아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영철이가 일어났죠?”

 가즈오쨩의 어머니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날 하루 종일 수업도 하지 못했어요. 다른 반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도 나오지 않으면 집으로 돌려 보내지 않겠다고 하자 영철이가 나왔죠. 저는 영철인 줄 알고 심하게 때렸어요. 어제 유난히 짧은 가즈오쨩의 크레용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어요.”

 “가즈오쨩이 정직하게 일어나질 않아서 대신 영철이가 맞았다는 거군요.”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주겠습니다. 내 아들이.... 아들에게 이렇게 크게 실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가즈오쨩의 어머니는 낭패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후꾸고에게 인사하고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얼른 교실을 나섰다.

 창가로 가가가서 보니 가즈오쨩의 어머니가 연둣빛이 싱싱한 벚나무 아래로 고개를 푹 떨군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뒷 모습에서 아들이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때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미혜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며 돌아보는 후꾸고에게 말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교장선생님께서 오시랍니다.”

 이 말만 하고 이내 나가버렸다. 교장선생님이? 왜? 그녀는 교실 문을 나서며 곰곰이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교장실 문을 두드리니 “들어와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꾸고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교장선생님과 낯선 남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바상, 이분은 안도상이라고 서에 근무하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후꾸고가 인사를 하자 안도상도 일어나서 인사했다.

 “어제 영철이네 갔습니까?”

 “교장선생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시죠?”

 “내가 봤습니다. 요주의 인물인 조센징집에서 나오길래 뒤를 쫓아가보니 군내무 과장댁으로 들어가더군요.”

 “오빠예요.”

 “교장선생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집엔 무슨 일로 가셨습니까?”

 안도상의 마치 심문이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에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닙니다.... 그 집이 워낙....”

 하면서 안도상은 말끝을 흐렸다.

 “저희반 아이고 별 일도 아닙니다. 담임이 결석한 아이집에 가는 게 잘못인가요?”

 후꾸고가 당당하게 말하자 안도상은 그 집은 감시당하고 있으니 가시지 않는 게 좋을 거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전 그만 다른 데에 볼일이 있어서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인사를 하고 교장실을 나가가 교장선생님은 후꾸고와 마주앉았다.

 “나한테 모두 말하시겠습니까?”

 “네.”

 차분히 그동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교장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었고 후꾸고도 조용한 미소를 띠었다.

 “대단하군요. 가즈오쨩의 어머니까지 불러들이셨으니.... 서장 사모님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어요.”

 그 말을 하는 교장선생님의 얼굴에 장난기가 있었다.

 “하지만 영철네는 삼가해요. 안도상은 여기에서 여우로 불려집니다. 같은 일본인이지만 그와 자주 자리를 같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후꾸고는 교장선생님께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보고 오노상이 밖으로 나가자는 손짓을 보내어 두 사람은 운동장을 걸으며 이야기했다.

 “교장실엔 왜 불려갔어요?”

 “영철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미행했었나봐요.”

 “안도상이 나가던데.... 그 사람 직업이잖아요. 영철네엔 왜 가요? 그 집 항상 감시한다던데요.”

 “몰랐죠. 그리고 한번은 가야 했다구요. 그림을 망친 건 영철이가 아니었어요. 사과하러 갔지요.”

 “누구였죠?”

 “가즈오쨩요.”

 “가즈오쨩! 그럴 줄 알았다니까. 갠 조선인들을 괴롭히는 게 재미있나 봐요.”

 “오늘은 아이들 앞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어제는 영철네에 가서 사과하고.... 정말 난 교사자격이 없나 봐요.”

 “아이들한테 정식으로 사과까지요? 선생으로서 용기 있는 행동이군요, 지바상은 뭔가 다르군요.”

 “아니죠. 누가 잘못했든 사과할 건 해야죠.”

 후꾸고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홀가분한 얼굴로 웃어주자 오노도 함께 웃었다.

 

 

 

 

 

 

 

 

 화단에는 새싹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키재기 시합을 하는 듯 하루가 다르게 뾰쪽히 손을 하늘을 향해 내젓고 있었다.

 고요한 오후를 직원종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무참히 깨뜨리고 있었다.

 부안소학교 운동장은 평화롭게 고추잠자리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키가 커다란 해바라기가 높고 푸르른 하늘을 보며 해를 따라 기우는 오후였다.

 후꾸고는 교실에서 환경정리를 하고 있었다. 호랑나비 액자를 들고 벽 위쪽 높은 곳에 걸려고 걸상 위로 올라갔지만 손이 미치지 못하였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는 동혁을 보고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김 선생님.”

 후꾸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동혁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액자를 들어보이자 동혁은 교실로 들어왔다.

 “저 곳에 걸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그녀가 동혁에게 말하자 선선히 응해 주었다.

 “그러죠. 예쁜 호랑나빈데요?”

 동혁이가 액자를 보며 말했다.

 “가오쨩이 채집한 건데 보존상태가 좋아서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혁이가 걸상에 올라서 말하였다.

 “이 걸상 꼭 잡아요. 못도 주시고.”

 못을 건네며 후꾸고가 소리죽여 웃었다.

 “후꾸고상. 꼭 잡은 겁니까?”

 “보기완 다르게 겁쟁이시네요. 염려 말아요.”

 후꾸고가 웃으며 말하자 그도 덩달아 큰 소리로 웃었다.

 “선생님 웃으시는 거 처음 봐요.”

 “그래요? 하긴.... 웃을 일이 별로 없죠.”

 “....”

 “기분 좋은데 일 더 시킬 거 없습니까?”

 “없어요. 고마웠어요.”

 “아닙니다. 종종 불러주세요. 언제든지....”

 직원종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자 걸상에서 내려오며 빙그레 웃었다.

 “함께 가시죠.”

 “네.”

 두 사람은 복도를 걸어가며 이야기를 하였다. 잘 닦여진 유리창에 비친 햇빛이 반사되었다.

 “김 선생님, 내년에 동경으로 유학 떠나신다구요?”

 “그렇습니다.”

 “부러워요. 공부하시는 거.”

 “후꾸고상도 공부하시죠. 동경엔 친척 없습니까?”

 “있지만.... 전 소학교 교사로 만족할래요.”

 “후꾸고상의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알고 있습니다.”

 “아뇨. 전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걸요.”

 “조선아이들에게 편견 없이 대한다는 거 잘 압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교사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동혁은 마주보며 웃어주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나란히 들어가자 모리아끼가 말하였다.

 “늦으셨군요.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한경정리가 덜 끝나서요. 김선생님이 도와주셨어요.”

 후꾸고가 자리에 앉으며 말하고 동혁은 아무 표정도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시하라 교장선생이 교장실에서 나와 둘러보며 앉았다.

 “모두들 피곤해 보입니다. 환경정리를 하시느라 본데 오늘은 같이 식사합시다. 군청 앞에 있는 음식점이 맛이 좋습니다. 종례를 마치고 갑시다.”

 내일은 환경정리 심사날이며 그 밖의 여러 거지 말씀이 있은 후 교사들과 함께 음식점으로 향하였다.

 큰 방으로 안내되어 모두들 자리에 앉자 뒤이어 상이 들어오고 술잔도 오고가는 좋은 분위기였다.

 “김 선생. 동경에 유학가면 뭘 전공할 거요?”

 “예, 정치학을 하려고 합니다만....”

 “정치학이라, 이건 내 생각이지만 썩 김 선생에게 어울리는 과는 아닌 것 같소.”

 순간 동혁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이시하라 교장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다른 뜻은 없고 김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이제까지 쭈욱 지켜본 바 나의 느낌을 말한 것뿐이오.”

 그가 이시하라 교장을 보며 말하였다.

 “아닙니다. 전 부족한 게 많고 그들에게 좋은 선생이 되질 못합니다.”

 “교사로서 삼십 년이 넘었소. 난 선배로서 확언합니다.”

 이시하라 교장이 술잔을 동혁에게 내밀고 가득 부었다.

 “교장선생님, 전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오노가 이야기를 하였다.

 “이제 결혼할 때가 아닌가? 누가 오노상을 좋아한다던데....?”

 “아니에요. 그냥 소문이에요.”

 그녀의 빠른 대답에 모두들 웃었지만 동혁만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결혼도 적기가 있어요. 때를 놓치면 여간 힘든 게 아니오. 자 같이 듭시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음식점 앞에서 헤어졌지만 후꾸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어두운 동혁의 얼굴이 생각나서 짐짓 큰 소리로 말하였다.

 “김 선생님, 저 무서워요. 바래다 주실래요?”

 후꾸고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모리아끼도 오노도 놀란 표정으로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그렇게 서 있었다. 두 사람은 후꾸고의 집으로 향하였고 모두들 자리에서 헤어졌다.

 

 

 


 두 사람은 천천히 서림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바람이 우울했던 동혁의 마음을 씻어가는 듯이 불어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고 푸른 달빛이 벚나무 사이로 폭포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걷는 두 사람은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산새의 울음소리에 그만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우리가 방핼 했나 봐요, 김 선생님.”

 “그러게 말입니다.”

 “뭘 그리 깊이 생각하세요?”

 “....”

 동혁이 발걸음을 옮기자 그녀도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후꾸고는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이 동혁의 마음을 아프게 하리라는 것쯤 그녀도 알 수 있었다.

 정상을 돌아서 내려오는 언덕배기 아래로 무리져 피어 있는 들국화가 달빛 아래로 아름다웠다.

 “김 선생님, 들국화예요. 너무 아름답죠?”

 들국화를 보며 감탄하는 후꾸고를 두고 동혁은 내려가 한아름 꺽어오더니 말없이 내밀었다.

 “고마워요.”

 들국화에게 고개를 묻으며 그녀가 말하였다.

 “그냥 들국환데요 뭘.... 내려갑시다.”

 들국화를 안고서 내려가는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많은 비석들이 서 있는 중턱에서 걸음을 멈추며 그녀가 물었다.

 “김 선생님, 이 비석들은 다 뭐죠? 많아요.”

 “옛날에 이 고을을 다스린 훌륭한 현감들의 이름이 새겨진 것들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분히 비양거리는 투로 덧붙였다.

 “아아, 이 후엔 훌륭한 일본인 군수들의 비석들이 즐비하겠군요.”

 그 말에 후꾸고가 비석 뒤로 숨어 말을 하였다.

 “오늘은 기분이 엉망이네요. 이제 가요.”

 비석 뒤에서 나오는 그녀의 손에 들린 들국화가 한층 더 청초해 보였다.

 두 사람은 걸어서 어느새 후꾸고의 집 앞에 이르렀다.

 “꽃 고마워요. 안녕히 가세요.”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동혁은 이내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다. 후꾸고는 그의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대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게다를 끌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며 올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늦었네요. 저녁은 하신 거예요?”

 문을 열어주는 올케의 목소리가 잠에 취해 있었다.

 “미안해요. 곤히 주무시는 걸 깨웠나 봐요. 오빤요?”

 “오늘 숙직이래요.”

 앞서가는 후꾸고의 뒤로 빗장 거는 소리가 들려오며 올케의 게다소리가 뒤따라왔다.

 “웬 꽃이죠?”

 “선물받았어요.”

 “산에 들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데요. 뭘.”

 “잘 자요. 고모.”

 현관문을 닫으며 하품을 하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듯 웃었다.

 “무척 피곤하신가 봐요.”

 “아니에요.”

 후꾸고는 웃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들국화에게 얼굴을 묻었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후꾸고는 이미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찬 작은 마당에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마치 들국화를 받아든 몸짓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