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6회-제2부 에노 공원에서의 약속 (2)

천마리학 2009. 6. 1. 06:43
 
 

    제2부 에노 공원에서의 약속  (2)

 

 

 

 두 사람이 센다이 시에 내린 것은 세시가 지나서였다. 여름이지만 선선함을 느낀 것은 바다가 바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었다.

 후꾸고는 동혁화 함께 아오바 성터로 발길을 옮겼다.

 “피곤하지 않습니까?”

 “그럼요. 어제 이모 댁에서 충분히 쉬었거든요.”

 그녀가 쾌활하게 말하자 동혁이도 안심이다는 얼굴로 웃어 주었다.

 아오바 성터가 가까워 오자 후꾸고는 그의 부모님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동혁 씨, 이곳은요, 사무라이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상들이 사무라이였거든요.”

 후꾸고의 말에 은근히 자랑하는 빛이 있음을 그는 알 수 있었다.

 “한때 일본을 다스린 것이 그들인 것도 난 알죠. 소위 무사계급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천황이 이 나라를 다스리지요.”

 “천황? 그가 조선을 침략하고 우리 주권을 빼앗은 것에 모두 분노한다는 것 아시죠?”

 “....”

 아차 실수였구나, 하는 표정을 후꾸고는 감추지 못했다. 동혁은 말없이 아오바 성터를 걸었고 그녀도 곧 뒤따라왔다. 아오바 산속에 있는 성터는 옛날의 웅장했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뿐으로 지금의 성터는 붕괴된 후에 다시 축성된 거라는 후꾸고의 설명이었다.

 데젠지 거리를 걸으며 울창한 느티나무 숲속에서 두 사람은 한여름인데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주죠?”

 후꾸고가 옆에서 걷는 동혁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맞아요. 이 숲은 꽤나 오랫동안 잘 보존되어 왔군요. 아름드리 나무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산소도 공급해 주고 정신적인 휴식처도 되어주지요.”

 “그래요.”

 그녀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조선이 아니라서 두 사람은 마주보며 걷고 또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조선에는 언제쯤 돌아갈 예정입니까?”

 “방학이 끝나기 전엔 가야죠.”

 “동경엔 다시 들를 거요?”

 동혁이가 바라보며 후꾸고에게 묻자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될까요?”

 “나는 히구찌상과 훗카이도에서 삼사일 보내다 갈 겁니다. 소식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럴게요. 아참.... 기차를 다시 타셔야죠? 어디서 식사하고 가세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두 사람은 데젠지 거리가 끝나는 가까운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센다이 역에서 동혁은 기차를 타고 훗카이도로 떠났다. 후꾸고는 그제야 서둘러 할머니 댁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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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포로 역에서 내린 동혁은 한 젊은이에게 히구찌의 주소를 보여주며 안내를 부탁했다.

 “저도 같은 방향인데 함께 가시죠.”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역광장을 빠져 나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삿포로엔 처음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말씨로 보아 동경에서 오신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동경에 살죠.”

 어디서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동혁이가 두리번거리자 그는 웃으며 손으로 시계대를 가리켰다.

 “명치시대의 종소리죠. 이 고장의 명물입니다.”

 “그렇습니까?”

 동혁은 고개를 들어 지붕 위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고 히구찌의 집까지 그 사람은 친절하게도 안내해 주었다.

 히구찌가 나와서 동혁과 그를 번갈아 보았다.

 “이분이 여기까지 수고해 주셨다네.”

 동혁이 그를 소개하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 하시지요?”

 “아닙니다. 저도 집에 가봐야죠.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동혁에게 말을 하고 웃으며 그 사람으 걸어갔다.

 “감사합니다.”

 동혁이 멀어져 가는 그에게 말하자 뒤돌아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어 주었다.

 “자, 어서 들어가세. 오까상께서 기다리신다네.”

 “그러지.”

 두 사라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까상, 동혁이 왔습니다.”

 히구지의 말에 중년여인이 나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와요. 먼 길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겠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동혁이 오까상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자 그녀도 마주 허리를 굽혔다.

 히구찌의 방으로 안내되었고 긴 기차여행으로 세수도 못한 그는 서둘러 얼굴을 씻었다.

 “여긴 날씨가 동경보다는 선선한데?”

 “바닷가와 면해 있고 또 그보다 훨씬 북쪽에 있으니까. 당연하지.”

 오까상이 식사를 하라며 상을 히구찌의 방안에 들여놓았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동혁의 말에 “많이 들어요” 라고 말하고 이내 방을 나섰다.

 “자네도 같이 들지.”

 “아니야. 난 벌써 먹었다네. 어서 들게나.”

 히구찌가 마주앉으며 동혁을 바라보았다.

 식사 후에 동혁은 밀려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잠에 빠지고 말았다. 얼마만큼을 잤을까? 깜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히구찌가 보이질 않았다. 동혁이가 마당에 나가 서성거리니 그가 다른 방에서 나왔다.

 “잘 잤나? 몹시 피곤한 모양이더군.”

 “좀 긴장을 했었지. 먼 여행이기도 했고.”

 “내일은 시코쓰코 온천에 함께 쉬러 가세. 하루면 충분히 쉴 테니까 말일세.”

 히구찌가 동혁의 오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곳에 온 이상 자네의 말에 따라야겠지.”

 동혁이 말하자 그는 말없이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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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동혁은 히구찌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소개되었고 가족 모두가 그에게 호감을 나타내며 이야기했다.

 히구찌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 동혁은 그에게 물었다.

 “자네집 가족들이 나에게 잘 대해 주는데 전혀 일본인 냄새가 나지 않아서 말야. 이상한데?”

 “그런가? 관찰력이 대단하군. 우린 원래는 아이누 족이었다네. 훗카이도가 아닌 에조치로 불리던 시적이 있었지. 그러다가 막부군의 패배로 명치정부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 거지.”

 히구찌가 동혁에게 돌아누우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자네의 나라 조선도 일본정부에 의하여 주권을 빼앗기지 않았나?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은 어느 시점에서 한계에 부딪혀서 항복할 때가 올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언젠가는 꼭 그 날이 오겠지. 그 때 우리 조선은 진정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남게 될 걸세.”

 동혁이 히구찌의 안색을 살피며 결의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신새벽이 찾아올 때까지 두 사람은 쉬임없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새벽이 오고 있구만.”

 “그렇군. 밤이 아무리 어둡고 길다 해도 환한 아침이 오듯이 우리 조선에도 새벽이 올 날이 있을 걸세.”

 “나도 그 날이 오리라 믿네....”

 두 사람은 그제야 눈을 붙이기로 하고 각자 돌아누웠다.


 동혁가 히구찌는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의 오까상은 매우 섭섭해하며 기회가 되면 겨울에 한번 놀러오라고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동혁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그의 가족들도 마주 인사했다.

 “오까상, 전 동혁이 가는 것 배웅하고 내일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오까상은 두 사람이 골목길을 빠져 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시코쓰코 호수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나란히 앉았다. 히구찌상은 동혁에게 시코쓰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호수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네.”

 “이 곳은 상당히 추운 지방이 아닌가?”

 동혁이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그는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곳은 온천이 유명하지 않은가? 일본의 부동호의 북한계로 이곳 호수는 겨울에도 거의 얼지 않는다네.”

 “우리 고향은 매우 남쪽인데도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는다네. 그래서 썰매를 타고 놀기도 하고 얼음 위에서 팽이도 씽씽 치고 논다네.”

 서로 이야기를 하고 가는 사이에 버스는 두 사람과 다른 승객들을 시코쓰코 호반에 내려놓았다.

 그 호수는 짙은 녹색을 띠었고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답군.”

 동혁의 짧은 감탄사에 히구찌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코쓰코 호수를 바라보며 온천을 향하여 천천히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온천에서 어젯밤에 설친 잠으로 피곤한 몸을 깨어나게 할 수 있었다. 히구찌는 동혁에게 이곳의 명물요리인 각시 송어 요리를 대접하겠다며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혀끝에 감칠맛 나는 각시 송어 요리는 두 사람의 점심식사를 즐겁게 해주었다.

 동혁은 자신도 어느새 일본요리에 익숙해져 있음에 당황했다. 그의 마음을 알리 없는 히구찌상은 많이 들라고 권했다.

 “실컷 먹었네. 공연히 내가 와서 폐만 끼치는구만.”

 “폐라니 당치않네. 내가 조선에 가면 자넨 그곳의 음식을 권하지 않을건가?”

 히구찌의 물음에 그는 물론이지 하며 웃어 주었다.

 시코쓰코 호반을 다시 걸어오며 동혁은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히구찌상, 삿포로에 와서 이렇듯 아름다운 호수를 본 것만도 내 일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걸세.”

 “고맙네. 내 고향이 자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주었다면 다행이지.”

 히구찌가 동혁의 어깨에 손을 얹어 친밀감을 나타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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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오후에 노보리베쓰 온천가에 도착했다. 양쪽에 산을 끼고 있는 이름난 온천이었다. 산을 바라보니 안개처럼 구름처럼 뿌옇게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저게 뭔가?”

 동혁이 산을 가리키며 묻자 그가 설명을 해 주었다.

 “온천에서 뿜어나오는 수증기라고 해얄까?”

 “마치 구름 같구만....”

 “나도 어렸을 적에 처음 왔을 때 그렇게 생각했지. 여기 훗카이도는 활화산도 있어서 온천이 많은 게 우리에게 이로울 때도 있지 앞으로도 그럴 거고.”

 히구지가 동혁에게 여관을 가리키며 들어가자는 시선을 던졌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시라오이에 있는 아이누 민족 박물관을 둘러보러 버스를 타고 갔다.

 히구찌는 이 박물관이 이미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건립된 사실에 대하여 말했다.

 “비록 우리가 정복당하였다고 해도 여러 가지 생활 풍습 등은 여저히 남아 있어 아직도 쓰이고 있는 것들도 많아.”

 동혁은 마음속으로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문화재산은 잘 보존되어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도굴되어지며 훼손되어 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시라오이에 도착하여서 히구찌는 박물관을 안내했다.

 “굉장한데? 이거 다 어디서 모은 걸까?”

 동혁이도 잘 정돈되어져 있는 아이누의 여러 가지 생활용구와 종교의식 때에 사용된 제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잘은 몰라도 아마 뜻있는 사람들이 모은 것이겠지. 여길 보게나. 사냥을 할 때 쓰이던 것들도 있지 않은가?”

 히구찌가 수렵용으로 쓰이던 활이며 화살들을 모은 곳에서 발길을 멈추어 서서 동혁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우리나라에도 여기와 같은 민족박물관이 건립되었으면 참 좋겠는데.... 일본보다는 더 역사가 깊잖나.”

 동혁의 말에 히구지가 주위를 둘러보며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도 주위를 둘러보고는 얼른 히구찌의 뒤를 따랐다.

 박물관을 나와서 길을 걸으며 히구찌가 말했다.

 “여긴 조선이 아니야. 여기저기에 깔린 게 형사들이지. 특히 우리같은 대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지 못해서 안달인데 그들에게 어떤 빌미를 제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네.”

 그의 말에 동조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혁이 대답했다.

 “내가 잠시 잊은 거지.”

 “방학이 끝나면 구월엔 졸업이야. 오까상은 내가 삿포로에 와서 함께 살기를 바라시지. 자넨 언론사에 근무하여서 특파원자격으로 귀국하겠구만.”

 히구찌는 동혁이 이미 언론사에 취직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음.... 내가 결정한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나도 잘 모르겠네. 자꾸만 아이들이 내게로 달려오는 꿈을 꾸곤 한다네.”

 동혁의 눈에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넨 교사가 더 잘 어울리겠어.”

 “우선 취직된 데로 일을 하다가 영 아니다싶으면 감히 다시 교단에 서야겠지.”

 “감히라니? 자넨 훌륭한 교사가 될 거야.”

 히구찌가 웃으며 그에게 대답해 주었다.

 동혁은 히구찌와 헤어져 동경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하코다테로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고마웠네. 동경에서 만나세.”

 “잘 가게. 그리고 지바상에게 안부 전해 주게나.”

 “그러지.”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동혁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그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동혁은 해안선을 끼고 달리는 기차 속에서 저 멀리 펼쳐지는 진녹색의 바다를 보고 있었다.

 파도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쉬임없이 달려오고 어선들은 멀리 점점이 떠 있었다.

 햇빛은 파도 위에 보석을 깔아 놓은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우리들의 앞날도 이처럼 빛났으면....’

 그는 조국의 암담한 상황을 생각하며 어둔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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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혁이가 하코다테 역에 내린 시각은 이미 어둠으로 주위는 깜깜했다. 그는 그 고장의 명물 요리인 오징어 소면을 생강 간장에 찍어 먹으며 담백한 맛에 반했다.

 “맛이 참 좋은데요?”

 동혁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코다테의 자랑이지요. 처음 오셨습니까?”

 음식을 상 위에 놓으며 종업원이 자랑스레 대답했다.

 “처음입니다. 삿포로의 친구집에 들렀다가 이제 본주로 가는 길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하코다테에는 볼 만한 곳들이 있습니다. 외인 묘지와 수도원들.... 그리고 고료카쿠 공원도 빼놓지 말아야죠.”

 종업원은 하코다테가 훗카이도의 현관이라며 환히 웃어 주었다.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동혁에게 인사를 하고 다른 손님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여관에서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여관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에 그는 천천히 발길을 하코다테야마의 남단에 위치해 있다는 외인 묘지로 향했다.

 외인 묘지에는 십자가가 하코다테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이국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하늘로 보내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묘지들도 러시아인 미국인 중국인 등등으로 나뉘어져 모여 있었다. 죽어서도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묻혀야 한단 말인가? 그는 갑자기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는 자신을 보며 후꾸고를 떠올렸다.

 ‘그녀는 일본인인데....’

 동혁은 한 묘지 곁에 주저앉아 항구를 바라보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오징어잡이를 하던 배들은 아직도 바닷속에 닻을 내린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갈 방향을 정하지 못한 나룻배인가? 나와 함께 배를 타길 원하는 후꾸고와의 항해는 무척이나 험난한 여정이 아니겠는가?’

 그는 머리를 가로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해가 환하게 동혁의 머리 위로 붉게 타올랐다.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그에게 마치 젊음은 어떤 시행착오라도 다시 번복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아니냐는 몸짓으로 서서히 으르렁거리며 밀려오고 있었다.

 ‘맞아, 난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는 겁쟁이인지도 모르겠다. 부딪쳐 보자. 내 삶에 또 하나의 굵은 선을 긋자.’

 그는 천천히 일어나 트라피스틴 수도원으로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앞쪽 정원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성 미카엘상이 주변 풍경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내며 동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신앙이 없었지만 옷깃을 여미고 주위의 여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올려다보았다.

 하나님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조선의 어머니는 오늘도 아들을 위하여 장독 위에 정한수를 떠놓고서 빌고 계시지는 않을까? 그는 차라리 어머니의 신앙이 더 친숙한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