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14회 -제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1)

천마리학 2009. 7. 30. 10:47

 

14회

제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1)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초토화된 일본열도에 8일,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이날 밤 쾌속정으로 함경북도 상리를 습격한 것을 기점으로 소련군의 한반도 진국이 본격화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아베 총독은 정보를 입수한 그날 밤부터 연합군의 진주와 일제의 한반도 철수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조선인의 일본인 보복사태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선의 민족지도자 중에서 여운형을 지목했다.

 일본측에서는 엔도오정무청감이 여운형과 15일 오전 8시에 총독부관저를 내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여운형과 엔도오의 한 시간 남짓한 밀담에서 엔도오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조선은 분단되고 미.소 양군대가 나뉘어서 점령할 것이다. 여운형과 지도자들이 치안유지 드으이 행정권을 맡아달라.”

 총독부로부터 행정권을 이양 받기로 한 여운형은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945년 8월 15일 더위에 지친 듯 플라타너스의 잎들도 늘어져 보였다. 신문사 창밖으로 바라다보이는 소학교 하얀 운동장의 시소에도 한낮의 고요가 매달려 있었다.

 텅 빈 운동장과 눈이 시리도록 높은 하늘에도 구름 한 점도 없었다. 벚나무 아래에는 공기놀이하는 동네아이들이 몇 명 보일 뿐이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함성에 놀던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보더니 일제히 치마에서 쏟아져 내리는 공기 돌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문으로 달려나갔다.

 남문시장 안에는 상인들이 일손을 놓고 서로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들이었다.

 “만세, 만세!”

 “해방이다, 해방이여!”

 “천황이 항복했다. 만세, 만세!”

 두 손을 높이 들어 외치는 만세 소리가 시장 안을 가득 메웠다. 시장을 보러 나온 일본인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여 되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우리도 발뻗고 자게 생겼구만이. 징용 당한 철재 아부진 언제 올랑가.”

 “곧 오겄제이. 그려, 우리 속담이 틀린 거이 하나도 없당께.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 말이여.”

 “그러게 말이여, 저것 좀 보더라고. 시장 보러 왔던 쪽발이덜이 인자는 슬슬 피하지 않는 갑네이.”

 “그려이. 벌 받아도 싸지 뭐여. 싸고 말고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함성 소리와 더불어 인상인해를 이루며 뜨거운 용광로처럼 해방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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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 남애기 집에도 해방의 기쁨으로 서로 환하게 웃으며 외치고 있었다.

 “왜놈덜도 이 땅을 떠나가겠구만이.”

 할아버지의 흥분한 말에 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그란디 저렇게 아들을 낳고 누워 있으니 떠날지 모르것구만요이.”

 “언제 걔네덜 이야그여? 손자 본 지가 을메나 되었다고 쫓아낼 거여? 인정머리가 없어도 분수가 있어야제. 몸도 추스르지 못했잖능가.”

 “누가 저더러 손자 놔달라고 애원한 사림이 있다요. 지가 좋아서 살응거지.”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자 할아버지가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 핏줄이여.”

 “쪽발이 피가 반인디 그것이 워째 우리 핏줄이당가이.”

 “이 여편네가 그람 우리가 감싸야제. 누가 감싼당가. 전주로 어여 가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

 할아버지의 강압적인 말투에도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고 앉아 있당가, 어여 가서 데리고 오라니께.”

 “난 못 혀요. 갈려면 영감이 데리고 오더라고.”

 그 말을 하고 획 돌아서서 뒤란으로 가버렸다. 그때 동수처가 급히 들어오면서 할머니를 찾았다.

 “어머님, 어머님.”

 뒤란에서 방앳잎을 손에 들고나오며 무슨 소란이냐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여, 해방되었다는 것 알고 있당께.”

 “그래서 그라는디요이, 전주 동세한테 안 가봐도 될랑가 모르것네요이.”

 동수처의 물음에 화를 버럭 내며 대답했다.

 “거긴 왜 간다능 거여. 즈그덜이 알아서 헐꺼 아녀이. 인자는 우리가 주인잉께 왜놈덜 눈치볼 것 없당께.”

 “어머님. 그려도 서방님넨 우리 식구잖아요잉. 다덜 오수장터로 가는구만요이. 저도 갔다오것어요이.”

 동수 처가 머리에 쓴 무명수건을 벗어서 치마를 털어 내고 우물가로 가 물을 길어 땀에 젖은 얼굴을 씻어내고 대문을 나섰다.

 “그려도 큰며느리가 맴을 옳게 쓰는구만이.”

 “아이고,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할머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할아버지는 담뱃대에 잎담배를 채우며 마루에 걸터앉아 고샅길을 바쁜 걸음으로 걷는 동수 처의 뒷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오수시장 안에 있는 전설의 나무 아래 모이 군중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해방이다, 해방!”

 “왜놈들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어른들 속에서 덩달아 외치는 아이들의 얼굴도 기쁨으로 환했다. 그 속에서 외치는 동수처의 모습도 보였다.

 “지서장 놈 집으로 가자.”

 한 사람이 외치자 모두 ‘와’ 하며 지서를 향하여 줄달음쳐 가고 있는 군중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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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난 아들을 안고 두려움에 똘고 있는 후꾸고의 부은 얼굴이 해산한지 얼마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열린 문으로 뛰어와서 황급히 문을 두드리는 동혁의 얼굴도 심상치 않았다.

 기쁨의 북소리와 징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어우러져 들려오고 있었다.

 다시 세게 두드리자 후꾸고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야. 문 열어요.”

 그제야 급히 문을 여는 후꾸고의 얼굴이 질려 있었다. 동혁이 들어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를 꼭 끌어 안아주며 말했다.

 “여보 괜챃아. 내가 있잖소.”

 “무서워요. 여보, 결국은 전쟁에 패하고 말았군요. 아까 천황폐하께서 항복했다는....”

 그 말을 하며 후꾸고의 얼굴 n이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지 않소? 이건 당연한 귀결이오.”

 “난 어떡하죠? 무서워요.”

 “두려워 말아요. 당신은 내 아내요.”

 “부안의 오빠가족은 어떡해요?”

 “일본인이라고 무조건 다 해치진 않을 거요. 염려 말아요. 참 어서 누워. 내가 상 봐가지고 오겠소.”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팔을 풀고 동혁은 아내를 편안히 눕게 했다.

 이때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일순 두 사람은 긴장했다.

 “누구요?”

 그의 목소리에 주인할머니가 대답했다.

 “나야, 문 열어.”

 동혁이 문을 열어주었고 할머니는 미역국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누워 있어. 아직도 부기가 고대로 있구마는. 젖은 잘 나온당가이?”

 “예.”

 “어여 먹어 봐. 식기 전에....”

 “고마워요. 할머니.”

 “고맙긴.... 해방이 되었다고 모두들 좋아허는디 여긴 걱정이겄네.”

 주인할머니의 그 말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나는 나가볼랑께.”

 그들의 침묵에 주인할머니는 재빨리 방문을 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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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경찰서도 발칵 뒤집혀지고 몰려갔던 성난 군중들은 이미 할복 자살한 경찰서장을 볼 수 있었다.

 “이놈이 우리 손에 맞아 죽긴 싫어서 지손으로 목심을 끊었구만이.”

 앞장선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는 그를 외면하며 밖으로 나갔다.

 한 사람이 곡괭이로 경찰서의 건물을 부수기 시작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우르르 부수기 시작했다.

 언제 왔는지 경찰서장 부인이 시체를 꺼내려 하였지만 성난 군중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발만 구르고 있었다.

 누구인가 불을 질러 건물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그 부인이 기모노의 넓은 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매, 독한 것.”

 “불 속으로 뛰어들었당께.”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잡을 수도 없이 두 사람은 건물과 함께 불타 오르고 말았다. 거기에 모였던 군중들은 하나 둘씩 그들의 주검 앞에서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두 사람의 자녀인 외아들만 눈물을 흘리고 주어앉아 버렸다.

 동혁은 취재하면서 울고 있는 서장아들 이치로쨩을 우선 집으로 데리고 갔다.

 “누구예요?”

 “서장아들 이치로쨩인데.... 두 분 모두 죽었소. 일본으로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보호해 줘야겠소.”

 “그래야죠.”

 “난 바빠서 그만 신문사에 들어가 봐야겠소.”


 신문사에는 해방의 기쁨에 모두들 흥분된 상태였다.

 “가네다상, 서장이 자살했다면서?”

 “예, 거길 취재하고 왔습니다.”

 “그들은 이상해. 나라가 망했다고 자신도 죽음을 선택해야만 하는걸까?”

 이때 기사를 쓰고 있던 한 기자가 말을 가로채며 대답했다.

 “아, 그 서장 말예요. 우리 조선인한테 얼마나 악랄하게 했습니까?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렇다고 미리 죽을 건 뭐요? 아내와 자식들이 있을 거 아니냔 말입니다.”

 그 때 가네다상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서장은 죽고 그의 부인은 경찰서가 불탈 때 뛰어들었답니다. 외아들만 울고 있더란 말입니다.”

 일순간 모두들 입을 다물고 말았다.


 8월 17일 여운형에 의하여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부서 결정을 완료하였고 담화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와 약속에 따라 치안유지의 권한과 방송국을 비롯하여 각 언론기관까지 이양을 받았다.

 조선총독부의 아베 총독은 일본인들의 안전을 위하여 조선 민중에 항복함으로 평화스럽게 철수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제는 16일 갑자기 건준의 경찰서 접수 등 행정군 이양을 거부했고 18일 조선군 구 사령부는 민심 교란 시에는 군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19일부터 일본경찰은 조선인의 시위와 정치활동을 노골적으로 탄압했다.

 이리의 일본군 제 16사단장은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종주권 이양까지 조선은 황토이며 조선인은 황민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독립운동을 인정치 않으며 태극기 게양을 금지한다는 포고령을 선포하였음을 볼 때 15일 직후의 조선은 완전한 독립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을 맞아서 평소에 조선인들을 학대하던 일본인들은 그에 상응한 테러를 당했음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빌붙어서 행세하던 이른바 친일파들도 몸을 사리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1945년 8월 22일 소련군은 이미 평양에 들어왔고, 미군은 1945년 9월 9일 16시 30분 조선총독부에서 패전일본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한국주둔 미군 사령관 <존 R 하지>중장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35년에 걸친 일제의 조선지배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미군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치 않고 곧바로 군정을 실시하여서 조선총독부에는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나부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선은 38선을 사이로 분단의 비극을 다시 맞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