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지바후꾸꼬 나의 어머니

20회-제 7 부 움막을 짓고(2)

천마리학 2009. 8. 23. 03:26

 

  20회 제 7 부 움막을 짓고(2)

 

 칠복이는 플라타너스 아래로 걸어가서 쉬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아직도 코를 흘리고 있냐?”

 후꾸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손수건을 꺼내어 자신의 코를 닦아주던 그 손길이 느껴지는 듯이 칠복이는 눈을 들어 먼데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바 선생님은 안 돼. 김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많은 꿈을 꾸게 해줬어. 그날 밤 지서에 불을 지른 것도 지바 선생님은 알면서도 날 감싸 주었어.”

 그가 혼잣말을 하며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서 일어날 때 더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별들이 총총 빛나는 밤이 되자 칠복이는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맨 끝 교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두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선생님 저 칠복입니다. 어서 나오십쇼.”

 “고맙다.”

 후꾸고가 문을 열어주는 칠복이의 손을 맞잡고 고마워했다.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넌 어떡하고?”

 “전쟁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선생님을 처단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을 가르친 죄밖에는 없는 걸 뻔히 아는데요. 전 여기선 살 수 없습니다. 인민군을 따라서 북으로 가야지요.”

 그 때 멀리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서 절 따라오십시오. 그리고 남애기 집에서 계시지 말아요. 피하셔야 합니다. 더구나 일본인이시잖습니까?”

 “정말 고맙다.”

 동혁이도 칠복이의 손을 맞잡아 주었다.

 “절 용서하십시오, 선생님. 그리고 그 때 민 형사님 손에서 절 구해준 것 잊지 않겠습니다.”

 칠복이의 도움으로 야음을 틈타 남애기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잠이 든 두 아들을 나눠 업고 더 깊은 산으로 별빛 속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8월 초에 낙동강의 방어선에서 서로 대치 중이던 양쪽 군대의 전력은 미국측의 우위로 양상이 달라져 가고 있었다.

 미 공군기들은 북한군에게 무차별 공격을 단행함으로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남한에서 그들이 점령한 곳과 주요 철도를 비롯하여 군 보급에 관계된 일체의 시설을 파괴했다. 오수학교에 쌓아둔 포탄도 미 공군기의 폭격으로 오수학교전관이 소실되는 참상이 일어났다.

 미 공군기는 일반주택도 학교는 물론, 이제 막 경제의 기틀을 세우고 발전하려는 공장까지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9월 15일 미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인천 상륙작전으로 16일에는 미군 전차부대의 인천상륙, 20일에는 서울시를 공략하였고 9월 28일에는 서울시를 완전히 손에 넣어 중앙청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다시 펄럭이고 있었다.

 오수에서도 그 해 가을부터 빨강완장을 차고 으스대며 걸어가던 박가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박가는 지리산으로 들어간다며 남원 쪽으로 걸어간 것을 봤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칠복이도 인민군을 따라서 월북을 했다는 소식만 있을 뿐 확인되지는 않았다.


 9월 30일 이후 한국군과 미군의 주축이 된 연합군은 38선 이북으로 진격하라는 맥아더 장군의 명령과 함께 북한군 총사령관에게 보내는 항복 권고문도 발표했다.

 그 해 10월 19일에는 미 8군이 평양을 함락시켰고 10월 26일에는 원산도 함락해 보리고 말았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미군과 국군은 뜻하지 않은 복병 중공군과 접전하게 되었다. 12월 5일 청진에서 후퇴를 시작하여 12월 15일에는 흥남 철수를 단행했다.

 1950년 겨울에 후꾸고는 두 아들 아래로 딸을 낳아서 명자라 이름 붙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젖을 물린 터라 젖도 부족한데 명호는 배가 고픈지 칭얼대기만 하였다.

 “맘마 줘. 맘마 줘.”

 쌀도 다 떨어져서 고구마로 연명한 그 때에 명호의 맘마타령은 후꾸고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명호는 헛소리를 하며 칭얼거렸다. 명자에게 젖을 물리고 곤히 잠들었던 후꾸고가 잠에서 깨어 울고 있는 명호를 안아주었다.

 “애가 불덩이네.”

 당황한 그녀는 곁에서 잠이 든 동혁을 흔들어 깨웠고 명호를 안겨 주었다.

 “언제부터야?”

 “모르겠어요. 나도 방금 깨어난 걸요. 많이 아픈가 봐요.”

 명호를 다시 건네 안아서 일어나 후꾸고는 이름을 부르며 달랬다.

 “이 밤에 남원까지 가야 병원이 있잖아요.”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동혁을 근심어린 눈길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남원으로 가야지 어쩌겠소?”

 낡은 외투를 입는 동혁을 보며 후꾸고는 명호에게 옷을 입히고 그의 품에 띠로 꼭 묶어주었다.

 그날 밤 남원으로 가는 기차는 더 이상 없었고 동혁은 남원까지 걸어가 병원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두드려서야 잠이 덜 깬 남자가 투덜거리며 누구냐고 물어왔다.

 “미안합니다. 아이가 아파서요. 오수에서 걸어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함박눈을 뒤집어 쓴 동혁과 아이를 본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이가 많이 아픈 겁니까?”

 문을 닦고 물으며 원장실로 안내했다.

 “열이 많습니다.”

 청진기를 들고 마주앉으며 하품을 했다.

 “미안합니다. 아이가 너무 보채서 말입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어제 환자가 좀 많아서요....”

 아이를 이리저리 진찰하던 의사는 급성감기라고 말하며 주사를 놓고는 이틀 분의 약을 조제해 주었다.


 1951년 1월 4일 후퇴에서 서울 시민은 또다시 서울을 떠나야 했다. 남한국민들은 다시 전쟁의 와중에 맡겨질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3월 18일 서울이 재탈환되었고 양측은 38선을 경계로 밀고 당기는 양상의 소규모 전쟁을 하고 있었다.


 오수 남애기에는 국군으로 나간 복순 아버지가 왼팔 하나를 절단 당하고 상이군인으로 되돌아왔다.

 그 후로 복순네는 남편의 술주정에 시달려야 했다. 할아버지 댁과 가까운 곳에 살아서 그의 술주정은 가끔 나무울타리 너머로 들려왔다.

 “술 좀 가져오랑께. 술.”

 “그만 마시랑께 그러네. 농사 지어서 겨우 입에 풀칠 허는디 맨날 마실 돈이 있당가이.”

 “아니, 이놈의 여편네가 환장을 혔나. 팔 하나 없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것여? 뭣여?”

 그러더니 급기야는 두드려 패는 소리에 이어서 복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놈의 여편네가 덜 맞은 것이여. 워디서 입주뎅이를 놀리고 그려?”

 씩씩대며 소리를 지르는 복순 아버지의 목소리가 마침내는 울음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울음소리가 울타리 너머 들려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텃밭에서 일을 하다가 복순네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그만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양은주전자를 들고 광으로 가 막거릴를 한 주전자 담아 대문을 나섰다.

 마당에 퍼질러 앉아 울던 복순 어머니가 들어오는 할머니를 보고 얼른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고 마루에 있다가 복순 아버지는 토방에 내려와 인사했다.

 “여그 담근 막걸리여.”

 “.... 죄송 허구만여요이.”

 주전자를 건네 받으며 복순 어머니는 부끄러워했다.

 “자네가 이 혀를 혀. 성한 팔을 잃고 을메나 맴이 아플 거여이.”

 복순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주며 할머니는 휭하게 그 집을 나섰다.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언 땅을 녹이고 시냇가 버들강아지의 눈을 뜨게 했다.

 그때까지도 복순 아버지의 술주정은 간간이 울타리너머로 들려오곤 했다.

 군대에 자원 입대했던 수철의 전사소식은 남애기를 또 한번 오열 속에 몰아넣고 말았다.

 수철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전사통지서를 가슴에 품고 매일 해질 무렵에 남애기 동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임실 장이 서고 술에 취한 채 걸어오던 복순 아버지는 그 날도 동구 밖에서 수철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수철 엄니, 들어가시지요이.”

 “아녀, 우리 수철이가 올 틴디.... 야가 집을 잊어버렸당가이. 왜 못 온디야.”

 “....”

날은 이미 어두워오고 있었는데 꼼짝도 안 하는 수철어머니 곁에 복순 아버지도 주저앉았다.

 “집에 들어가야제.”

 “같이 들어갈라요.”

 “아녀. 싸게 들어 가.”

 수철 어머니는 복순 아버지의 손을 와락 잡으며 말했다.

 “이렇게 돌아온 것도 고맙제이.... 우리 수철이는 왜 안 온당가이.”

 “....”

 수철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에 그는 물끄러미 자신의 붙잡힌 오른손을 보고 있었다.

 “그려이. 오늘도 오긴 틀렸당께.”

 “....”

 “내가 살믄 을메나 살 것능가이. 이놈 돌아오는 걸 봐얄 텐디.”

 “밤이라 춥구만이라우. 들어가시지라우.”

 어느 덧 복순 아버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뒷모습 위로 환하고 싸늘한 사 월 달이 높이 떠 올라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에 입학하여 전쟁을 맞은 주인댁 아들 상민이가 돌아온 것은 보리밭이 물결치는 오월의 노을이 불타는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정상인이 아닌 다리 하나를 잃고 목발에 의지한 채 돌아왔다.

 상민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육순 노모의 몸부림은 보는 모든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늬가 워떻게 전쟁에 끌려 갔다냐이. 재빨리 나왔서야제이.”

 “모두들 이렇게 큰 전쟁일 줄 말랐다니께. 하숙집에서 있는데 인민군이 들이닥쳤다는 말을 듣고.... 하숙생들 모두가 앉아서 죽늬 군대에 들어가자고 혀서....”

 “편지도 못 헌다냐? 모두들 너 죽은 줄 알았다니께.”

 “병시으로 사는 것 보담 죽는 거이 났제요이.”

 “아녀. 아녀.... 너 살아 온 것 봤으니께. 이제 죽어도 편히 눈 감겄다이.”

 노모가 상민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굳이 닦으려 하지 앟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동혁이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고 상민이도 인사했다.

 “선생님, 제가 돌아왔구만요.”

 동혁은 그가 목발을 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 전쟁에 나갔구나? 우리 나중에 이야기하자.”

 상민이의 등을 두드려 주며 그는 방으로 들어왔다.

 며칠 후 토요일 오후에 동혁은 상민이와 함께 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민들레가 하얀 꽃씨를 날리고 있었다.

 상민과 나란히 앉아 기적 소리를 내며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바라보고 또 떠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한참 만에야 동혁에게 말을 건네는 상민이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고 있었다.

 “학교에 복학해야지. 넌 이 나라에서 꼭 필요한 사림이 될 거라고 믿는다.”

 “제가요? 이 나라는 제게 뭘 원하고 있습니까?”

 “네가 선택한 학문의 길을 걸어가야겠지. 그래서 당당하게 우뚝 서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는 게 좋을 듯싶다.”

 “....”

 상민이는 기어 다니는 개미를 보고 있었다. 동혁이가 보니 그 개미의 연약한 등위로 그의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상민아. 넌 이 시골에서 보기 드문 인재야. 하긴 그 인재라는 것이 네게 올무가 될 수도 있겠지.”

 “난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뭐란 말이냐? 그 잃어버린 다리 하나 때문에 네 인생 전부를 내팽개치려 하다니.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친 게 고작 그것뿐이었다면 난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거야. 다 내 탓이구나.”

 동혁의 목소리가 분노와 함께 질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상민이의 고개가 더 푹 숙여지고 아무 말이 없었다.

 “넌 할 수 있어.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 넌 특별한 아이였다고 이제야 네게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선생님.”

 “처칠을 봐라. 넌 그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상민이가 동혁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했다. 이미 보리밭 사이로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였고 불어오는 바람은 두 사람을 감싸주며 지나갔다.

 “선생님. 그 전쟁의 와중에서 저만 살아 온 것이 잘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후퇴를 하던 중에 어느 날 밤이었어요. 어둠 속으로부터 이상스러운 피리소리가 울려오고 징 소리도 함께 들려왔을 때 우리 모두는 그만 발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소리가 중곤군이 부른 차르멜라 소리라는 것은 병원에서 수술 받은 후에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차르멜라?”

 “예. 그 소리가 차츰 고조되었을 때 어둠 속에서 수류탄이 쏟아지며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우리는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바로 인해전술이라는 거였습니다.”

 “거기에서 부상 당한 거구나?”

 “아닙니다. 그곳에서 부상당했더라면 전 이렇게 살아오지 못 했을 겁니다.”

 “그럼?”

 “그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서 우리는 궤멸직전에 놓였습니다. 유대위님이 우리를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던 그분이 총상을 입고서도 우리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퇴로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전사하셨구요.”

 상민이는 유장교의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는 그 분의 고향엘 찾아가질 못했습니다. 제게 돌이 지난 아들과 사모님께 편지를 전해 달라고 주셨지만....”

 상민이의 흐느낌은 곁에 있는 동혁의 가슴도 찢어놓고 있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었던 전쟁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고향이 어딘가?”

 “전주 풍남동입니다.”

 “그럼 여기서 먼 거리도 아니질 않나?”

 “예, 지나쳐 왔습니다. 전주에 내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바봅니까?”

 “.... 아니지. 유대위의 죽음을 알릴 수 없는 네 마음을 왜 모르겠냐?”

 “....”

 동혁은 상민이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그래도 이미 그들에게 전사통지서는 전달되었을 게다. 유대위의 편지는 그들에게 슬픔과 함께 기쁨이 될 수도 있고.... 용기를 내 전주에 가보도록 해.”

 “잘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어두운 마음만큼이나 주위는 짙은 어둠 속에 잠기고 있었다.

 “선생님. 서울로 가서 학교관계도 알아보고 오면서 전주에 들르겠습니다.”

 “그렇게 해. 넌 해낼 수 있어.”

 동혁은 곁에 서 있는 상민이의 등을 힘있게 두르려 주었고 두 사람은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늦었네요.”

 동혁이가 상민이와 함께 골목길로 접어들자 명자를 업고 자장가를 부르던 후꾸고가 다가가며 말했다.

 “선생님. 저 때문에 늦었습니다. 용서하세요.”

 “용서는.... 어서 들어가 봐. 어머님이 기다리시던데.”

 “예, 편히 쉬십시오.”

 상민이가 인사를 하고 대문으로 먼저 들어가고 동혁과 후꾸고도 곧 들어와 대문의 빗장을 걸었다.

 “아이들은?”

 “요샌 왼 종일 밖에서 놀더니 피곤한가 봐요. 벌써 잠들었어요.”

 “그래? 당신도 피곤하지? 명자도 잠투정이 심한가 보군.”

 “예, 딸이라서 예민한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나란히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제멋대로 발을 뻗은 채 명수와 명호가 잠을 자고 있었다.

 등에서 잠든 명자를 내려 요 위에 놓고 얇은 이불로 덮어주었다. 잠든 아이의 볼이 불그레 물들어 있었다. 동혁이가 명자의 볼을 어루만져 주었다.

 “예쁘죠?”

 “응.”

 동혁은 불을 끄고 곁에 누운 후꾸고를 꼭 끌어안고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


 며칠 후 토요일 오후에 책을 일고 있는 동혁에게 상민이가 건너와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전주에 들러 유대위 댁에 갔다가 서울로 가겠습니다. 학교관계도 알아보고 등록해야죠.”

 “참 잘 생각했다. 넌 달라. 내가 역까지 함께 갈까?”

 “아닙니다. 저도 혼자서 갈 수 있습니다.”

 “그래. 고맙다.”

 “제게 선생님은 용기를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상민이가 일어나서 동혁에게 큰 절을 올리자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가서 곧 편지 드리겠습니다.”

 “그래야지. 여기서 궁금해하니까.”

 상민이가 그의 어머니에게서 여행가방을 건네 받아서 대문을 나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잘 갔다 오너라.”

 끝내 그의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상민아버지는 혀를 차며 못마땅해했다.

 “먼 길 가는데 눈물을 왜 보이고 그려.”

 “아버지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려. 사내가 한번 마음 먹었으믄 고대로 해야 허는 것이다.”

 “예.”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상민이가 골목길을 빠져 나갈 때까지 모두들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 출근하던 동혁은 벚나무에 매달려 버찌를 따 먹는 아이들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일찍 오시네요?”

 뒤에서 김 선생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는 김 선생님도 마찬가집니다.”

 “아이들이 버찌 따 먹는 걸 보셨죠? 맛있나요?”

 “달콤합니다. 버찌를 한 번도 먹질 못하셨습니까?”

 “예.”

 “가서 맛 보시죠. 그럼....”

 동혁은 이제 막 교문을 들어서는 고 선생과 이야기를 하며 교무실로 걸어갔다.

 나중에 교무실로 들어 온 김 선생의 입이 새까맣게 되어 있어 모두들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왜요?”

 “거울 좀 봐요.”

 박 선생이 웃으며 말을 하자 거울 앞으로 다가가서 보더니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맛있었습니까?”

 “예.”

 김 선생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했다.

 직원조회를 할 때에 교장 선생님은 요즘 벚나무에 아이들이 매달려 위험하니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오늘은 버찌를 가장 많이 따 먹은 반 아이들이 운동장 청소를 맡아 해주십시오.”라고 덧붙여 말하여 교사들은 모두 웃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을 때 아이들이 벚나무에서 내려와 교실로 뛰어가는 것을 보며 교사들도 출석부를 들고 반으로 향했다.

 동혁의 교실문이 열려 있었고 헐레벌떡 뛰어 온 영진이가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물론 그 아이의 입도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영진이처럼 버찌를 따 먹은 사람은 모두 일어나.”

 아이들이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거의 다 일어서 있었다.

 “오늘은 우리 반이 운동장 청소당번이다. 교장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버찌를 따 먹은 반이 운동장 청소를 하라고 하셨다. 모두 앉아.”

 출석부를 부르고 동혁은 수업을 시작했다. 밖에는 일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운동장 청소를 마치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 동혁이도 함께 학교를 나섰다.

 “야. 우리 오두개 따 먹으러 가자. 시냇가에 뽕나무에 많이 열러 있더라이.”

 “아적은 시퍼렇잖여?”

 “오늘 아침에 오면서 보니께 말여. 익어가드랑께.”

 “그려. 가자이.”

 “선생님. 먼저 갑니다.”

 인사를 하고 아이들이 우르르 시냇가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자 허리에 찬 책보자기에서 빈 도시락 통이 요란스레 소리를 냈다.

 달려가는 아이들의 등뒤로 짙은 노을이 번지고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동혁이가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던 명수와 명호가 달려와서 인사를 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그래. 잘 놀았냐?”

 그의 목소리에 부엌에서 명자를 업고 새우튀김을 하던 후꾸고가 반갑게 나와서 이사를 했다.

 “지금 오세요?”

 “벌써 저녁준비를 하는 거요? 새우튀김인가?”

 “예, 시장하시죠? 손 씻고 들어가요.”

 “알았소.”

 동혁은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두 아들과 함께 우물가에서 얼굴과 손을 씻어주며 자신도 세수를 했다.

 상민어머니가 우물가로 다가와 말했다.

 “선상님. 편지 왔구만이라우. 학교에 잘 다닌다고 겨울에나 내려 온다네요. 공부를 워낙 못 혔다고 그러등만요이.”

 후꾸고가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

 “당신에게도 편지가 왔어요. 책상 위에 있어요.”

 “알았소.”

 후꾸고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동혁이도 방으로 들어와서 편지를 뜯고 읽는 동안에 그의 얼굴이 환해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조그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야구중계방송을 들으며 동혁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호무랑. 호무랑.”

 아나운서의 말에 명자를 등에 업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후꾸고도 나와 좋아하곤 하였다.

 “여보 자이언츠죠?”

 “맞아. 당신 야구에 꽤 관심이 있어.”

 “아니예요.”

 멋쩍은 얼굴로 웃으며 후꾸고가 부엌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동혁은 야구중계가 끝날 때까지 반딧불이가 지나가고 하늘에 별들이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여름밤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여보, 피곤할 텐데 그만 자요.”

 모기장이 비치는 방안에서 후꾸고가 말을 하여도 동혁은 듣지 못하는지 귀를 기울이며 이마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설핏 잠이 든 후꾸고 곁에 누우며 동혁이가 가볍게 입맞춤을 해 주었다.

 “이제 끝난 거예요?”

 “겨우 이겼네.”

 “어서 자요.”

 “당신 센다이에 가고 싶지?”

 “.... 이즈미쨩이 보고 싶어요. 아길 무사히 잘 낳았는지 궁금하네요.”

 “당신을 봐줘서라도 어서 일본과 국교 정상화가 되어야 하는데....”

 “언젠가 되겠죠.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릴래요. 부모님도 연로하신데 한번 뵙고 싶네요.”

 어느 새 후꾸고의 목소리가 젖어들고 있었다.

 “미안하오. 당신을 붙잡아서....”

 후꾸고는 동혁의 품에서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아니에요. 당신 탓이 아니란 걸 난 잘 알아요.”

 “....”

 명자가 칭얼대자 젖을 무리는 후꾸고를 그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모기장을 비집고 들어 온 달빛 속에서 동혁의 시선은 언제까지나 후꾸고의 모습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