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425-영특한 아리, 요즘은 이상해! 2/27

천마리학 2009. 5. 15. 02:26
 
  할머니랑 아리랑 425

 

 

*2월 27일 화-영특한 아리, 요즘은 이상해!     

 

 

 

아리는 영특하고 호기심이 많은 건 이미 잘 아는 사실이지. 좋은 점이고.

오늘 저녁에도 혼자서 벤취의자의 팔걸이에 올라서서 DVD 플레이어를 조작하고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바꿔 끼우고…

네가 어쩌다 그렇게 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넌 이미 플레이어 조작을 알고 있거든, 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정확하고.

상자 위에 올라서서 책장의 문을 열고 많은 DVD와 책들 사이에서 넌 용케도 네가 찾는 걸 짚어내곤 그걸 할머니에게 꺼내달라고 하지.

그리고는 그걸 TV 옆의 벤치의자 팔걸이 위로 올라서서 TV에 끼우고 버튼을 누르고 빼고… 하는 기본 동작을 다 알고 있어. 오늘 저녁엔 네 엄마가 플레이 버튼을 알려주었지. 그랬더니 넌 그대로 네가 좋아하는 DVD들을 플레이 시키곤 했잖아.


또 요즘 너의 콩고말도 여전하지. 몸짓과 눈짓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들을 네 식의 단축코드로 표현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 때론 못 알아듣는 게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말야^*^

그런데 너의 발음도 이상해졌어. 전엔 비교적 정확하게 하던 발음들이 요즘은 이상하게 달라져서 어떻게 생각해보면 더 퇴보한 것 처럼 느껴진단다.

‘밀크’하던 것을 ‘모얼크’라고 하고, ‘고 추레인’하던 것을 ‘거취’하고 하고 ‘비아 레일’하던 것을 ‘빌’ 하듯이.

‘모얼크’라고 할 때 ‘밀크’하고 고쳐주면 넌 ‘미울크’하지.

그래서 할머닌 전에 익숙하게 말하던 ‘씨엔타워‘를 너에게 실험해봤지. 그런데 넌 아주 이상한, 알아들을 수없는 발음으로 말하는 거야.

모든 것을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따라하도록 하긴 하지만 잘 안 되는 것 같아.

그래도 발음이 그런 건 지금 막 말 배우는 시기에 있는 네가 3 개 국어를 동시에 배우다보니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겠지. 그래서 다소 안심하고 있긴 하다만, 솔직히 말하면 그 외에도 아리가 많이 달라졌어.

어떻게?

글쎄…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할머니 생각엔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자존심 강한 너의 엄마가 불쾌해할 거고.

 

 

 

 

 

 


사실 할머니가 지난 연말전후로 한국에 다녀온 이후 느낀 거야.

너, 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버릇이 생겼더구나.

첫째 걸핏하면 울고, 짜증내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고 하는 건 좋지만 걸핏하면 울기부터 하니 쯧! 할머니가 보기엔 네가 놀기 좋아해서 잠이 부족할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애.

둘째, 늘 엄마에게 안기려고만 해.

아기가 엄마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안기려고만 하니까 문제지. 밀크를 먹을 때도 안겨서 먹으려고 하고 식사시간에도 안겨 먹으려고 하고. 이것도 할머니 생각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야. 왜냐하면 잘 때 엄마아빠 사이에서 자니까 네가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거겠지.

셋째. 밥을 잘 먹지 않아.

전에는 그러지 않았잖아. 무엇이든 잘 먹고 많이 먹고, 성격도 밝았는데 요즘은 먹는 걸 잘 먹으려들지 않고 습관도 나빠졌어. 엄마에게 안겨서 먹으려고 하거나 할머니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 음식을 차지한다거나, 음식그릇에 손을 집어넣고 음식을 마구 뿌리고 흩트리고.

데이케어에서 먹고 와서 그럴 수도 있고 또 물물이 잘 먹을 때도 있고 잠시 덜 먹을 때도 있으니까 좀 더 두고 봐야하겠지. 그런가하면 잠이 부족하거나 일어나자마자 입맛이 돌지 않을 수도 있지.

제발 잠 많이 자고 잘 먹었으면 좋겠어 아리!


어떻튼,

아직은 어린 아기니까 크게 걱정할 건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잘 먹고, 성격도 좋다는 것이 너의 특징이며 장점이었는데 지금은 잘 안 먹고, 성격도 달라졌어.

할머니가 이렇게 저렇게 시키고 싶어도 너의 엄마아빠의 주장이 강하니까 할머니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또 할머니의 방법이나 생각이 다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달라진 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란다.

어떡하지?

다이퍼 가는 걸 매우 싫어해서 갈 때마다 곤욕이지.

이건 처음부터 그랬고 할머닌 너무나 위생을 생각하는 너의 엄마아빠가 다이퍼를 갈 때마다 물티슈로 궁둥이를 철저히 닦느라고 강제로 했는데 할머니 생각엔 그게 너에게 싫다는 관념을 심어준 것 같아. 그 섬뜩하고 차거운 느낌 때문에 다이퍼 가는 것이 싫어진 거라고 보는 거야.


 

 

 

  

 

그래도 요즘 너의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뽀로로 친구들이고 관심사는 말이지.

엊그제 할머니랑 데이케어에서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서 만난 기마경찰을 보고 너무 신나하면서 떠날 줄을 몰랐잖아. 집에 와서도 온통 말 얘기였지. 그래서 어젠 엄마가 말그림을 선물로 주었고 할머닌 그걸 모두 빳빳한 종이에 붙여서 가지고 놀게 했지.

또 네가 먹는 올개닉 소이밀크의 박스에 있는 밀크컵의 그림을 8장이나 오려서 주었지. 이 모든 것들이 네가 에이비씨 등 컴퓨터의 유튜브를 통해서 보는 프로그램을 줄이기 위한 작전이란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프로그램 시청이 너로 하여금 내향성이 되게 하고 수줍음을 더 많게 할 염려가 있어서야.


넌 다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뒤로 숨고 입을 다물고 탐색만 하다가 엄마나 할머니가 “세이 하이!”하고 말을 시켜도 하지 않다가 그 사람이 돌아서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하이!” 하잖아. “크게!” 하면 조금 톤을 높여 대고 “하이!”하지.

‘하이’보다 먼저 네가 불쑥 하는 말은 ‘바이!“지.

넌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불편한가봐. 빨리 헤어지기만을 원하잖아.

주눅 든 사람처럼 목소리가 작아지고 뒤로 숨고…

뭐가 불안할까?

왜 그럴까?


아리야,

부디 잠 많이 자고, 잘 먹고, 큰 소리로 말하는 아리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