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313-스위스 <2> Family and Marly

천마리학 2008. 9. 7. 22:43

 

 

 

    할머니랑 아리랑 313

  

 

 

 

     2008년 여름 스2008년 스위스에서 퓟센까지<2>

                         Family & Marly 

 

 

왼쪽에서부터 

아빠, 니꼴라삼촌,  보누아삼촌그랑빠빠와 나, 마흐트고모할머니, 그랑마망, 그리고 우리 할머니.

마흐트 고모할머니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신데 금년 봄에 정년퇴임을 하셨다.

항상 할머니가 사진을 찍으니까 사진 속에 할머니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사진은 엄마가 찍었다.

 

 

 

 

나에게 끊임없이 뽀뽀를 보내시는그랑빠빠, 

 니꼴라 삼촌이 지켜보고 계시다.

그랑빠빠는 내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그랑빠빠의 친구가 나를 보러 오셨고 그랑빠빠는 열심히 내 자랑을 하셨다.

에이 민망하게...^*^

 

 

 

 

 

그랑마망은 벌써 나를 데리고 마실을 나가신다.

가는 곳마다 마을사람들 인사를 받느라 바쁘고 여기저기 사는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왔다는 소문이 벌써 파다하게 퍼져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장난감, 초컬릿, 비스킷 등의 선물을 주신다.

빵집 아줌마는 나를 위해 특별한 빵을 만들어 주셨다.

 

20m만 가면 크리스틴 고모네 집이다.

 

 

 

 

 

 

그랑빠빠의 닭장 앞에서

다른쪽 귀퉁이엔 그랑빠빠의 트럼본 연습실이 있다.

마치 조그만 오두막같이 지어졌는데 거기서 트럼본 연주도 하시고 책도 읽으신다고 한다.

벽에 나의 사진과 폴과 끌레어의 어릴 때 사진들도 붙어있었다.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그 집은 지난 번 왔을 땐 없었다고 한다. 

그랑빠빠의 형님이신 까뉘 할아버지랑 함께 손수 지으셨다고 한다.

까뉘할아버지도 그랑빠빠 집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있는데 집 짓는 솜씨가 뛰어나시고 좋아하셔서 

까뉘할아버지 집의 이층도 손수 새로 만드시고, 이어 짓기도 하신다.

까뉘할아버지네 쪽 아빠 사촌과 나의 사촌들은 음악 애호가들이 많다.

나의 사촌인 쟌 누나는 바이올린 연주자인데 후리북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멤버이다.

 작년에 캐나다 퀘백시의 초청으로 라쌀에서 연주회가 있었다. 

그때 엄마아빠 그리고 할머니랑 함께 나도 갔었따.

그 뿐이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의 스위스 결혼식때 사촌들이 직접 바이오린과 트럼펫 피아노 등으로 결혼행진곡 대신 '아리랑' '도라지'을 연주했다고 한다.  

 

 

 

 

 

 

그랑빠빠가 은행장으로 계셨던 은행 앞에서

몇 년전에 퇴임하셨는데 봉사활동에 전념하시고, 트럼본 연주도 열심이시면서,

지역의 유명인사로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있다.

 

며칠 전 그랑빠빠가 나를 데리고 방문하여 은행직원들을 소개받았고

커피랑 초컬릿이랑... 대접도 받았다.  

 

 

 

 

엄마아빠가 결혼식을 올린 성당 앞에서.

이 성당에서 우리 엄마아빠는 세번째의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세번째? ^*^깜짝?

첫 번째는 몬트리올에서, 두 번째는 한국의 서울에서, 그리고 스위스에서 세 번째.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한국전통혼례였고,

스위스의 결혼식은 멋지고 파격적인 퍼포먼스였대요.

신부인 우리 엄마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입장했고,

 아까 말한 음악가족인 쟌 누나네 식구들이  피아노오 바이올린과 트럼펫으로  

아리랑과 도라지 등 한국의 전통민요를 연주했고,

할머니가 엄마아빠의 만남에 선물로 주신 축하 시(詩),

<2H2+O2=2H2O>에 맞춰서 

그 시에 나오는 꺅투스, 촛불, 장미, 연못을 상징하는 물... 

그리고 한국의 대표음식인 김치와 스위스의 대표음식인 치즈...로 장식한 

조그만 분수까지 등장한 특별한 퍼포먼스였고,

그랑마망이 불어로 하 축하의 메시지를 낭송하셨고,

할머니가 한국어로 답사를 하고 마흐트 고모가 불어로 챨리아저씨가 영어로,

또 한국에서 온 우리 엄마의 작은 외숙모(나에겐 할머니가 되신다)가 

할머니의 시를 한국어로 낭송하고,

아빠 친구인 챨리아저씨가 옆에 서서 불어로 통역하여 낭송하고...

한국어와 불어와 영어가 이용되었대요. 

정말 특별한 결혼식이었겠죠?

할머니가 모두 기록해두셨대요.

 

그리하여 제가 태어났답니다.

^*^

 

 

 

 

그로 부터 4년 후.

  엄마아빠가 결혼식을 올린 이 성당 앞을 제가 걷고 있어요.

저기 제 뒤에 보이는 문 앞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엄마아빠를

아빠가 총각시절 멤버였던 말리의 축구팀들이 양쪽에 축구공을 들고 서서

아치를 만들어 축하해 주었대요.

피로연이 열린 마을회관을 이모할머니들, 삼촌들이 각각 맡아서 장식하고 꾸몄다는데요,

꽃들은 각각의 정원에서 손수 기르신 꽃으로, 

벽장식을 한 삼촌들은 직접 그리고 오리고 만들어서 꾸미고,

   심지어 식탁의 �킨까지도 맞추어서 세팅했대요.

모든 것을 가족들의 정성으로 이룬 거래요. 

그뿐이 아녜요. 

아빠 친구인 챨리 아저씨팀들이 아빠의 어릴적 모습들과 엄마아빠가 연애하던 시절들의 사진을 모아서 영화처럼 만들어서 환등기로 상영까지 했고,

남자들은 양복으로 여자들은 한복으로 입어서 두 나라의 결합을 상징했대요.

모두가 기존의 격식에 얽매이지 말고 벗어나자고 한 할머니의 뜻에 따라서 

엄마아빠가 의논해서 결정하고 시행했다네요.

와아~

 

 

 

 

엄마아빠도 감개무량한가봐요.

비가 살짝 내리니까 분위기도 더욱 좋구요.

앞장서서 걷는 저도 기분이 좋아요.

 

 

 

성당의 뜰에 있는 묘지.

이곳에 잠들어계시는 우리 친척들을 둘러봤습니다.

그랑빠빠가 열심히 설명해주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