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312-스위스에서 문헨, 다카를 거쳐 퓟센(Fussen)까지<1>

천마리학 2008. 9. 5. 13:49

 

 

  할머니랑 아리랑 312

스위스에서 문헨, 다카를 거쳐 퓟센(Fussen)까지

--2008년 여름의 여행

 

*여기서부터 USB를 잃어버린 중단했던 일기를 다시 시작함.

 

 


7월 말경.

USB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앗찔! 

그 순간은 야말로 앗찔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그동안 써둔 일기가 사라졌다. 할머니의 원고마저도 몽땅!

범인은 아리 너다!


평소에 할머니 컴퓨터를 제 것 마냥 즐기는 아리, USB도 제 마음대로 뺐다 꽂았다하고 가끔은 그걸 바로 옆에 있는 휴지통에 넣어버리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아니 틀림없다!


독도문제로 정신이 없던 차에 요 며칠 동안 네 엄마에게 양보하느라고 할머니가 컴퓨터에 앉지 못하면서 USB를 챙겨야할 텐데... 하면서 그냥 넘어가곤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에겐 항상 이상한 징크스 같은 게 있어서...불안했다. 그게 뭐냐하면 무슨 일이 있기 전에 이상한 예감이 있곤 한데 그때마다 그 예감이 들어맞곤 하는 거.


엄마가 일하는 동안에도 할머니의 책상 밑에서 구부러져 노는 너를 보면서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미 그렇게 여러 번 그래왔듯이 네 엄마나 아빠가 너로부터 USB를 빼앗아 어디다 치워두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다소 불안한 마음을 다둑이며 그냥 있었는데...


8월 1일, 오늘 이제 밀린 것 정리해야지 하면서 계속되는 불안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다른 때 같으면 엄마아빠 책상이나 할머니 방 책장 윗칸에 있을 법 한데... 늘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아무데도 없다. 사라져버렸다.

앗찔~

막상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까 숨이 턱 막히는 기분, 정말 앗찔했다.

아빠도 엄마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네 아빤 혹시 네가 발코니 유리 틈으로 던졌나 해서 1층의 정원까지 찾아보았지만 허사.

할머닌 알지. 미안해서 그렇게라도 해보는 거라는 걸. USB는 이미 엊그제 네 엄마가 휴지통을 비울 때 사라졌다는 것을.

할머니 생각엔 틀림없이 네가 휴지통에 던졌을 거라고 하니까 네 아빤 정말 그렇게 믿느냐고 했고 할머닌 믿는다고 대답했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반성이 왔다. 그동안 글 안 쓰고 게으름 부린 죄로 이제 그만 문학을 포기하라는 뜻인가 하는, 아직도 못쓰고 계획만 가지고 있는 소설쓰기도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뜻인가 하는, 이루지 못할 꿈이라면 일찍 포기해버리는 것이 자신과 주위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지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잠을 못 이루었는데, 그래도 네가 미운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천천히, 마음을 갈아앉히고 보니 해답은 19개월.

이제 19개월 된 네가 뭘 알까?

다 챙기지 못한 어른들 잘못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기억나는 대로 너의 육아일기 <할머니랑 아리랑>을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그동안 다녀온 스위스와 독일로 여행은 사진으로 대체하고 지금부터 7월말까지는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쓰는 거란다. 물론 사진과 할머니의 일기를 바탕으로.


우선 이번 여름의 스위스와 뮌헨여행부터 사진으로 나누어 옮긴다. 

 

                                         -할머니 씀

 

 

  2008년 여름 스위스에서 퓟센(Fussen)까지 <1>

                    출발, arrive Marly, Cristin aunt's family

 

 

 

 

 

<*호칭에 대하여*>

*할머니-나랑 함께 캐나다에 사는 할머니(우리 엄마의 어머니).

*그랑빠빠 그랑마망-스위스에 사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우리 아빠의 아버지 어머니)인데  '그랜드 파파'와 '그랜더 마더'의 불어발음이다. 


 

 

 

 

토론토의 피어슨 공항

엄마가 나에게 창밖의 풍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아리는 공항에서도 즐겁다

 

 

 

 

 

스위스 말리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웃에 사는 크리스틴 고모네가 먼저 왔다.

그랑빠빠, 그랑마망, 크리스틴 고모와 사촌 폴과 끌레어 그리고 우리 엄마.

 

 

 

 

 

벌써 사촌형 폴과 선물용 시계를 가지고 장난을 시작한 아리.

나의 사촌 폴은 지금 사춘기가 시작되어서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에 엄청 신경쓰고 있다고 그랑마망이 살짝 알려주셨다.

썬그라스도 쓰고 다닌다고 한다.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만 봐도 얼마나 멋을 내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 목걸이도 본인이 골랐다고 한다.^*^

내가 지금 이런 말 하는 것도 형은 모르지?

 

 

 

 

 

크리스틴 고모와도 친해졌어요

크리스틴 고모는 중학교 선생님이시다.

 

 

 

 

 

큰길 쪽 테라스에 피어있는 선인장 꽃.

테라스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장소.

그랑마망은 이 꽃을 시들기 전에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좋아 하셨다.

 

 

 

 

 

 

위 아래 따로따로 화분인데 한데 붙은 것처럼 보인다.

참 예쁘다.

할머니는 보고 또 보고 하셨다.

 

 

 

 

 

 

테라스 천정을 가로지르는 포도넝쿨,

할머니가 테라스를 좋아하는 것은 실내를 관통하는 바로 이 포도넝쿨 때문이다.

포도넝쿨은 동서로 가로 질러 식탁 위를 관통하고 있다.

엄마아빠가 스위스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해엔 8월이어서 포도가 까맣게 익었었다고한다.

그땐 서울에서 온 경재, 경수 삼촌들이 따먹었다고 한다.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할머니가 얘기해주셔서 알게 됐다.

나는 그때 생기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번 여름엔 나도 드디어 보게 됐다.

 

지금 포도넝쿨 아래서 엄마아빠도 추억을 말하고 있다.

 

지금 포도는 좁쌀알만큼씩 생겨났다.

나처럼 어린 포도들이다.

머지 않아 나처럼 튼실한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할 것이다.

 

저 쪽 바깥에 나를 보러 제네바에서 달려온 에디뜨할머니도 보인다.

에디뜨 할머니는 미인이어서 그런지 늘 인기가 많다. 

지금도 또 누군가로부터 온 전화를 받느라고 잠시 나를 잊어버리고 있다.

 

 

 

 

 

 

큰길 쪽 정원을 내다보는 우리 엄마.

사진을 찍는 할머니 모습이 유리창에 보인다.

 

어렸을 땐 종군기자가 되고싶었다는 우리 할머니, 

지금은 우리집 전용 사진기자가 됐다^*^

사실 우리 할머니는 시인이시다.

 

유리창을 통하여 테라스에 있는 타원형의 커다란 식탁도 보이고 

그 위로 드리워져있는 포도넝쿨도 보인다.

우리 할머니가 테라스를 좋아하는 이유인 바로 그 포도나무의 넝쿨이다.

 

 

 

 

 

 

 

그랑빠빠랑...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그 포도넝쿨 아래에서 

그랑빠빠와 그랑마망 그리고 말리(Marly)의 모든 가족들이 나의 스위스 첫방문을 대단히 환영해주셨다.

말리에 사는 우리 가족들은 대가족이다.

그랑빠빠가 8남매이시고 그랑마망은 딸 넷 중의 두째딸이시다.

그 가족들이 거의 모두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으니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아빠 사촌들만 모여도 50명이 넘는다. 

젊은 사촌들은 스위스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등 여러 나라로 뻗어가 있으니 모두 모이기도 어렵다.

다 모인다해도 서로 얼굴을 모를지경이라고 한다.

우리 아빠는 토론토에, 산드라 고모는 몬트리올에 살고있지 않은가.

산드라고모는 요즘 제네바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지만 우리 아빠는 토론토의 제약회사의 메니져이시다.  

나에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줄줄이고 안트와 언클들이 줄줄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빠 대에서 정식 에메네게어 성을 물려받은 유일한 손자이다.  

 

 

 

 

 

고양이 그리그리스.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고양이다.

이젠 나와 친구이다.

회색과 흰색이 섞인 그리그리스는 아주 점잖다.

포도나무 뿌리 근처에 그랑빠빠가 만들어 주신 구멍으로 드나든다.